I.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57년 독일 베를린의 한자지구에는 ‘인터바우57 (Interbau57, 통상 인터바우)’이라는 국제 건축전시가 개최되었다. 이 주거단지는 발터 그로피우스, 에곤 아이어만, 알바 알토, 오스카 니마이어 등 독일 및 여러 국가의 당대 선도적인 건축가들이 초빙되어 건설된 주택단지로서, 바이센호프 주거단지의 계보를 잇는 독일 주거건축의 자긍심을 회복하는 상징이자, 전후 재건의 의지를 보여줄 이벤트로 기획되었다. 1950년대 이후 독일 베를린은 전후 재건의 상징적 도시였으며, 한자지구(Hansaviertel)는 그 대표성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종전 후 주택의 대량생산의 필요성과 함께 새로운 기술시대의 건축이념이 필요했던 1950년대 후반은 건축 이념의 충돌 시기라 할 수 있는데, 이때 인터바우 국제건축전시는 국제주의 건축의 이념을 계승하면서도 모더니즘 시대를 마감하고 전후 복구 시대의 독일의 집합주택 계획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고자 한 시도로 등장하였다.
인터바우 하에 건설된 한자지구의 건축물들은 이전 시대와 비교하여 보다 다양한 유형, 보다 다채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건축이념 충돌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이하 그로피우스)와 알바 알토 (Alvar Aalto, 이하 알토)라는 두 건축거장의 아파트 블록은 ‘반복과 복제’라는 기능주의 주거건축으로부터 탈피한 매우 독창적인 계획 특성들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입면 디자인에 있어서 조형적인 혁신을 이루었으며, 획일성을 배제한 다양한 평면 계획을 선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대의 유산을 물려받은 주거계획의 속성들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는데, 본 연구는 이러한 혼종적 특성들에 주목하였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두 건축가에 의해 계획된 사례 분석 및 비교를 통해 기능주의 주거건축의 계승으로서의 ‘표준화’의 적용,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대응하는 ‘조형성’의 추구라는 두 개념이 집합주택 디자인에 있어서 어떠한 전략으로 적용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단위세대 평면, 매스, 주거동 블록플랜, 입면 요소, 그리고 재료 및 색채 등에 있어서 대량생산과 다양성의 추구라는 두 목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구현하였는지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2. 연구의 내용 및 방법
인터바우 국제건축전시가 전후 주거건축의 패러다임 전환에 있어서 큰 전기를 마련했음에도 그동안 이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특히 국내에서 연구는 매우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본 연구는 이 주거단지의 주거사적 위상에 주목하여 다음 두 내용으로 연구를 구성하였다.
첫째, 이론적 탐구다. 단행본 및 잡지자료 등 문헌 조사를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복구 시대에 부상한 주거건축의 이슈들에 대해 탐구하고, 대량생산의 필요성이 지속되는 상황하에서 새로운 요구가 등장했을 경우 이들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우선 인터바우전시의 역사적 배경 및 의의를 살펴보고, 그로피우스와 알토의 주거건축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여 그들이 인터바우에서 어떠한 원칙으로 자신들의 아파트 블록을 설계했는지 그 맥락을 이해하고자 했다. 또한 두 거장 건축가의 건축디자인 경향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리고 집합주택계획에 있어서 상충할 수밖에 없는 ‘표준화’와 ‘조형성’이라는 두 목표가 어떠한 접점에서 적용될 것인가에 대해 이론적으로 살펴보았다.
둘째, 두 아파트 블록의 사례 비교 분석이다. 구체적으로는 ‘표준화’와 ‘조형성’ 논의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연구문제로부터 출발하였다.
• 단위세대 평면의 동일한 복제 및 변형 문제: 집합주택에서는 평면을 어느 정도 반복 구성하게 된다. 이때 평면 계획이 정량적으로 계산된 표준형 평면인가, 또는 건축가의 독창적 평면구성으로 이루어지는가? 대량생산 시대의 패러다임 하에서 평면들이 전체 건물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복제되는가? 또한 규격화된 치수에 대한 고려가 평면계획에 있어서 어떻게 적용되었는가?
• 매스의 정형성 및 비정형성 문제: 건물의 매스는 기하학적 원칙에 의해 구성되는가, 또는 자유로운 조형적 어휘로 디자인되는가? 또한 정형적 형태에 조형적 요소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부가되어 변화를 주는가?
• 기준층 플랜의 선형 조합 및 유기적 조합 문제: 주거 동의 형태 및 기준층 블록플랜은 평면 조합의 결과인데, 이러한 내부공간 구성의 요소들은 어떻게 상호연계 되는가? 또한 이는 어떠한 방식으로 정형적, 또는 유기적으로 결합되는가?
• 입면 요소의 반복 및 변화: 공업화 생산과 모듈화의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상황 하에서, 전쟁 후 폭증하는 주택의 수요에 대응하고자 빠른 시공과 합리적 건설을 통해 건물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목표가 있었다. 이것은 입면 디자인에 어떻게 반영되었는가? 이때 디자인 변화라는 새로운 목표에 부응하고자 한 건축가의 시도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
• 재료와 색채의 단순성 및 혼재성: 인터바우는 건축재료 생산의 산업시대가 도래한 이래 발전된 혁신적인 기술력과 재료들의 실험 무대를 연 것이었다. 이때 다양화된 색채, 재료 등이 건물의 외관에 어떻게 적용되었는가?
사례 분석을 위해서 2005년도에 현지 주거단지를 방문, 답사하여 촬영한 자료를 활용하여 입면디자인 및 건물의 유형 등을 분석, 파악하였다. 또한 평면 등 도면으로부터 주거동 및 단위세대 관련 내용들을 도출하였다.
II. 이론적 배경
1. 1950년대 집합주택 계획의 흐름과 인터바우 주택전시회의 시대정신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시기는 국제주의 양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시기이자, 급속한 주택건설의 결과물을 양산한 ‘혼돈의 시대’로 규정되며, 이전의 기능주의 주거건축 시대인 ‘순수의 시대’와 구분된다(Sohn, 2016). 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 독일에서는 1920, 30년대의 순수한 기능주의를 계승하면서도 구조시스템 및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지면서 순수주의로부터 벗어나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즉 대량생산의 원칙 하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던 시기였다.
한편, 1928년 시작된 근대건축 국제회의인 CIAM의 주요 논제들은 도시 및 주거건축이었다. CIAM은 모빌리티, 성장과 변화, 도시의 건축이 의제였던 1956년의 10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지속되지 않았다(Kim & Kim, 2008). 이를 마지막으로 그것이 와해된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더이상 과거의 근대주의 논의가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그 직후 완성된 인터바우는 새로운 도시 및 주거건축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주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베를린의 인터바우 국제건축전시회는 1953년부터 한자 지구의 재건에 대한 국제현상설계를 시작으로 추진되었다. 건축 목표는 도심 집중을 분산시켜 녹지 위에 새로운 도시건축의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될 유형들을 탐색해보자는 취지였다. 기존의 한자지구는 전쟁 중 거의 파괴된 상황이었으므로, 백지 위에 역사적 도시구조에 대한 고려 없이 완전히 새로운 도시주거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전후 냉전 시대 분단 독일의 건축 경향에 대한 연구(Castillo, 2000)에 의하면 인터바우는 건축전시 이상의 여러 사회적·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국제현상의 추진에는 동독의 건축과 경쟁하려는 의도와 동시에 새로운 구조 기술과 재료의 적용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적 진보를 과시하는 목표가 있었다. 즉 건축 외적 요인이 특정 건축미학을 추구하는 것보다 우선시 된 것이다. 또한 이 전시는 서구 세계 건축의 이데올로기를 명쾌하게 선언한 것으로서, 모던 어바니즘(modern urbanism)에 따른 적절한 주거타입을 제시하여 미래 시대를 위한 도시를 지향했다. 국제적 건축가들이 초빙된 것은 국제도시로서의 베를린의 위상을 되찾고, ‘국제적 관점들을 총체적으로 종합’해보고자 하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인터바우 주최측은 자유 세계 전역에서 모인 건축의 첨단 사례들이 그 표현의 다양성을 확보하도록 장려하는 것을 주요 주제로 삼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디자인의 자유’가 전시의 주요 목표가 되었으며, 이는 냉전의 시대에 ‘서구의 자유에 대한 은유(metaphor for western freedom)1)’가 되었다. 나아가 다양한 디자인은 서구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또한 인터바우 전시는 주거의 내부 설비 등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쇼로서, 건축양식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 경제와 소비문화에 있어서의 국제 모더니즘 속성을 드러낸다고도 해석된다(Castillo, 2000).
현상설계는 건축 설계가 주요 작업이 아니라, 공정하게 각각의 사유지에 대한 소유권 이전을 수월하게 하는 대지 계획의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즉 세분되어 있는 패치워크(patchwork)들을 통합하고 새 건물 부지로 재할당하는 작업이었다. 현상설계의 당선자들은 크로이어, 욥스트, 슐리서(Kreuer, Jobst, Schließer)였다. 이들은 “개방된 자연에서 재배분된 이곳 대지 위의 개별 건축물들이 독재적 요구에 의해 강제적으로 배치되어 설계된 건물이 아니라, 이에 대한 명백한 반대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Castillo, 2000)”라고 제안했다.2)
이것이 1차 세계대전 후 바이마르 시대 건설된 주택전시인 바이센호프 주거단지와 가장 차별되는 점이었다.
주거단지는 용적율 90% 정도의 저밀도로 계획되었고, 기존의 도시맥락과는 무관한 새로운 유형의 분산된 배치를 기본으로 하였다(Flagge, 1999). 여기에는 전체 단지에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도시설계적 개념보다는 하나하나의 건물 유형이 중요하였다. 이에 따라 각 건축가가 독자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었다. 한자지구에서는 국제주의 건축의 이념을 계승하면서도 외형적으로는 다양한 유형과 다채로운 디자인의 건축물들이 등장했다. 때문에 이 전시회는 시행 당시부터 역사적 도시에 대한 개념 없이 각각의 건축물들이 산만하게 존재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미국에서 TAC건축사무소를 세워 활동하던 그로피우스는 여기에 10층의 아파트 블록을, 알토도 9층의 아파트 블록을 설계하였다. 두 건물 모두 전체 마스터플랜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세워졌다.
2. 집합주택 디자인에 대한 그로피우스와 알토의 생각
독일 건축가 그로피우스의 건축적 사상의 뿌리는 바우하우스의 이념으로, 그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변혁을 초래하는 기술시대에 건축 역시 역사적 양식으로부터 탈피하여 그 시대의 새로운 기술에 대해 정직해야 한다고 여겼다. 즉 새로운 건축에서 드러나는 형태는 그 시대의 정신적, 사회적, 기술적 조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발전된 것이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가졌다(Lampugnani, 2000).
그로피우스는 1차 세계대전 이후 1923년 바우하우스 전시에서 ‘규격형 조립주택’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주택을 대량생산하는 방식을 제안하였다. 이때 ‘정확히 재단된 형태, 여러가지의 단순함, 기능에 따른 구성, 전형적인 기본형태로의 제한, 그리고 그것들의 연속과 반복’3)이라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이렇게 출발한 거주단위를 기본으로 주거의 복제와 집합화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개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의 거주수요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필요성이 증대되면서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다(Kim & Kim, 2008).
기능주의자의 입장에서 그로피우스는 기능과 형태, 그리고 구조를 통합시키고자 했는데, 이때 그는 기능과 구조를 결합하지만 단순히 사용의 측면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며, 기능과 형태의 총체를 모색함으로서 예술가의 속성도 갖고 있었다고(Biermann, 2003) 평가받는다. 이를 통합적 건축(integrated architecture)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이때 새로운 형태들은 개별적인 절대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공동체의 요구에 따르는 하나의 대안으로 작동되어야 함을 인식하는 것이었다(Hays, 2010). 이는 그의 대중주의적 성향을 말해주는 것이며,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미학적 요구 또한 달라짐을 받아들이는 바탕이 되었다. 즉 산업화 시대 대량생산의 혜택을 대중들도 누려야 한다는 사회적 의식도 작용한 것이다. 건축비평가 페브스너(N. Pevsner)는 그로피우스가 인터바우에서 선보인 아파트의 디자인이 이미 조형주의 건축의 한 사례이며, 이는 아파트의 평면을 기꺼이 희생시키면서 만들어진 결과(Lupfer, & Sigel, 2004)라고 평했다.
한편, 핀란드 태생의 알토는 보통 낭만적 모더니즘, 종합적 기능주의, 신 휴머니즘의 건축가로 규정되며, ‘근대건축의 또 다른 전통’의 대표주자로 평가된다. 알토 역시 근대건축 이데올로기의 영향은 받았으나, 그는 그 예술혼으로 인해 이성주의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알토의 행보는 그간 유럽을 지배했던 근대의 합리성, 평등성, 효율성을 추구하는 ‘도구화된 이성주의’4)로부터 적절하게 반론을 제기한 건축가로 평가된 근거가 되었다. 알토 역시 1929년 ‘최소주거’를 의제로 한 CIAM의 핵심 멤버였고, 근대 집합주택의 대표 개념인 표준주택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경향은 점차 변화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집합주택 디자인에서 대량생산 주택에서의 개인주의적 가능성을 모색하게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알토의 집합주택의 유형의 한계는 일반화 보편화에의 요구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신속한 대량건설에 위배되는 비효율성을 드러낸다고(Kim, 2006) 평가받기도 한다.
따라서 알토의 몇몇 집합주택 사례들을 보면, 평면 계획에 있어서의 다양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후기능주의 건축에서 거주자 계층을 ‘표준적 핵가족’으로 설정했고 같은 범주 내에서 평면의 규모 및 구성이 거의 모두 동일하게 계획되었다면, 알토의 건물에서는 거주자의 다양한 편차들을 수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그의 태생적 미학적 감수성은 집합주택 디자인 곳곳에서 조형적 형태로 드러난다. 평면구성 역시 유기적 원칙에 따라 조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역시 알토의 조형에 대한 상징적 계획 원칙을 보여준다.
이러한 두 건축가의 공통적인,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집합주택에 대한 생각들은 인터바우 전시회의 두 작품에서 ‘표준화’와 ‘조형성’ 문제를 해석한 방식에 있어서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구현되었다. 인터바우 전시지구의 전체 배치도 및 분석하고자 하는 그로피우스와 알토의 건물 위치는 <Figure 2>와 같다.

Figure 2.
Site Plan of Interbau57 and Apartment Blocks by W. Gropius and A. Aalto
Source. Braun, M. (2003), p. 170.
3. 집합주택 디자인의 표준화와 조형성 논의
건축에 있어서 조형성이란 시각적으로 형태를 지각하는 것을 말한다. 반복적인 것으로부터 변화된 비례는 더욱 분명한 시각적 구분을 안겨준다(Hosselgren, 1994). 따라서 그 비례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표준화와 규격화와는 거리가 있다. 또한 조형이란 특정 형태를 만들기 위한 인위적 개입이며, 이때 기하학적, 또는 유기적 형상을 의도적으로 재현한다. 또한 조형성은 형태뿐만 아니라, 색채, 빛의 음영, 텍스쳐, 등의 변화로 생성되며, 그 기능과 생산방식, 재료 등을 표현한다. 하지만 집합주택 디자인에 있어서 대량생산을 전제로 한 표준화, 그리고 건물의 공공재적 성격을 염두에 둔 조형성의 추구는 서로 상충적이며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존재해 왔고 항상 논의의 대상이었다. 특히 대량생산의 패러다임이 지속되는 중에는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집합주택은 단독주택과는 달리, 동질적 성향을 갖는 개별 단위세대의 조합을 통해 전체적인 형태를 구성한다는 특성을 가진다. 즉, 각각의 사적 공간이 독립성을 갖는 동시에 이들이 조합되기 때문에 집합체라는 의미가 강하게 부각되며, 전체적인 통일성을 추구하게 된다. 즉 개별 단위세대의 부분과 전체를 아우르는 집합주택의 일관성 있는 조화가 필요함을 의미한다(Kim & Jun, 2010). 규격화, 표준화의 개념 하에서도 단위세대의 다양한 조합으로 획일적이지 않게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주거건축에서의 조형성은 파사드 및 매스, 그리고 입면의 디자인을 통해 형성되며, 건축 형태는 기술을 통해서 적절하게 계획된 매스가 둘러싸는 종합에 의해 발생한다. 이때 같은 요소를 병렬하는 단순한 연속성은 전체가 없다면 단순한 리듬의 정렬인데, 정렬이란 단순화된 배열로서 미적 질서를 충분히 창조하지 못한다. 이에 따르면 반복성을 전제로 한 표준화 및 규격화의 근대 모더니즘의 논리는 생산성을 위해 부재를 복제한 결과이며, 충분한 조형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적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부분이 전체에 통합되도록 요소들의 변화가 있어야 하며, 지배적 요소와 종속적 요소가 전체적으로 잘 조화되어야 하는 것이다(Michelis, 2002). 즉 근대 모더니즘으로부터의 탈피는 경직된 반복성으로부터 탈피하여 조형에 있어서의 변화를 추구하고, 공간 내부적으로도 풍부한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건축의 미적·질적 향상에 대한 요구가 증대한 1950년대 이후, 건축가들은 주거건축에서 새로운 형태와 조형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파사드는 더이상 벽과 개구부가 구성하는 단순하고 밋밋한 표면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닌,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했다. 특히 발코니는 구조시스템에 부가된 새로운 표피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을 선구적으로 선보인 인터바우의 건축에 대해 1950년대의 비평가들은 상반된 견해를 피력하였다. 예를 들어 비평가 오스터발트(K. Osterwalt)는 이전시회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국제주의 성향에 대해 주목한 반면, 베를린의 도시건축위원이었던 바그너(M. Wagner)는 이 전시회 건축물들의 비싼 건축비 -당시 베를린 평균 건축비의 2배- 를 예로 들어, 계획의 다양한 시도들에 대해 어릿광대극(Harlekinade) 같은 시도(Flagge, 1999)라고 혹독히 비판하였다. 또한 다양한 형태들 역시 사치스런 시도라고 평가되기도 하였다. 결국 인터바우는 합리적 원칙을 따르는 기능주의 주거건축으로부터는 멀어졌다고 여겨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논쟁은 그동안의 기능주의에서 통용되었던 ‘평균적인 거주자를 위한’ 모델이 이 시대에 계속 유효한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오게 되었다.
III. 인터바우57 국제건축전시회지구 내 그로피우스와 알토의 집합주택 사례분석
1. 단위세대 평면의 복제 및 변형
그로피우스의 아파트 블록은 총 67호의 단위세대로 이루어져 있다. 옥상층의 예외적인 3개의 평면을 제외하면 8층에 걸쳐 모두 3과1/2R 타입의 약 77 m2 규모의 단위세대로 구성되었는데, 이 평면들은 발코니의 위치에 따라 3개 타입으로 변형되었다. 여기서 내부공간의 구성은 그로피우스가 이전 시기 설계한 지멘스슈타트나 칼스루헤 담머스톡 주거단지에서의 평면구성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현관을 들어서면 가운데 복도를 중심으로 전면에는 거실 및 식당, 그리고 독립적인 부엌 및 부부침실이, 후면에는 개인 침실이 배치되어 있다. 1930년대 즈음부터 독일 중산층을 위한 전형적 평면으로 널리 채택된 보수적 평면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의 동일한 평면이 반복된 형식은 다음과 같다.
• A-1형(부엌과 침실 전면에 발코니가 배치된 유형): 한 개 층에 8세대를 반복하여 2, 5, 6, 9층에 배치, 총 32호
• B-1형(부부침실 전면에 발코니가 배치된 유형): 양 끝단을 제외하고 한 개 층에 6세대를 3, 4, 7, 8층에 배치, 총 24호
• B-2형(부부침실 측면에 발코니가 배치된 유형): 3, 4, 7, 8층 양 끝단에 배치, 총 8호
• 예외형: 옥상층의 C-1, C-2, 그리고 D형 각각 1호
이러한 비슷한 유형의 반복은 블록 유닛(Block Unit)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공업생산을 위한 표준화, 산업화를 바탕으로 한 실험적이면 합리적인 유닛 개발의 결과인 것이다. 또한 공장생산품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우수한 품질을 가진 최고 수준의 원형(原型)(프로토타입: protptype)을 말하며, 조립식 공법을 일컫는다. 또한 기본적으로 각 유닛들이 수평, 수직 또는 수평+수직의 중첩과 확장의 방식으로 구성 가능한 속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Kim & Kim, 2009). 따라서 이러한 원칙 하에서는 동일한 평면의 치수가 균일하게 적용되어 결과적으로 평면의 획일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알토의 아파트 블록은 총 78호의 단위세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35 m2의 1R 타입의 소형부터 83~90 m2의 규모에 이르는 4R 및 5R 타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평면의 기본형은 공용의 거실을 중심으로 침실, 그리고 부엌 및 식사공간이 환상(環狀)으로 배치된 형식이다. 이때 전후 새로운 가족형태에 걸맞는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는 공간구성을 취하였다. 벽체도 그리드를 벗어나 자유롭게 구성하였다. 또한 여유로운 주거면적을 확보하였다. 평면의 어떠한 특정 유형이 지배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유형이 분포되어 있다. 또한 서로 다른 평면들 사이의 구성의 편차도 크다. 한편, 평면은 다양하더라도 거실 및 발코니의 폭 등에서 각각의 공간을 구성하는 치수들이 같은 치수로 적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동일한 평면이 반복된 형식은 다음과 같다.
• A-1형(전면에 침실, 거실, 식당이 있고 거실 전면에 발코니가 배치되었으며, 평면의 깊이 방향으로 3개의 침실이 있는 유형): 1층부터 8층의 남단에 2호, 북단에 1호 배치, 총 24호
• A-2형(A-1형으로부터 평면의 깊이 치수가 줄어든 유형): 1층부터 8층의 남측 클러스터 동측에 1호 배치, 총 8호
• B-1형(전면에 침실, 거실, 식당이 있고 거실 전면에 발코니가 배치되었으며, 후면에 2개의 침실이 있는 유형): 2층부터 8층까지 7개층의 중앙에 각 1호씩 배치 총 7호
• B-2형(B-1형에서 식당 부분이 셋백된 유형): 1층부터 8층까지 7개층의 중앙에 각 1호씩 배치 총 7호
• C형(전면에 침실, 거실, 식당이 있고 거실 전면에 발코니가 배치되었으며, 평면의 깊이 방향으로 2개의 침실이 있는 유형): 1층부터 8층의 북측 클러스터 동측에 1호 배치, 총 8호
• D형(거실과 침실에; 전면에 2베이를 구성한 유형): 1층부터 8층까지 7개층의 양 클러스터에 각각 1호씩 배치 총 16호
• E형(최소한의 1R 유형): 1층부터 8층의 북측 클러스터에 1호 배치, 총 8호
알토는 수평적으로는 다양한 평면을 배치하고 이를 수직적으로 전 층에 걸쳐 단순 적층식으로 반복한 것이 특징이다.
2. 매스의 정형성 및 비정형성
그로피우스의 아파트 블록은 철근콘크리트 기둥식과 내력벽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구조로서, 총 길이가 80m에 이르는 건물이다. 그동안의 주거건축물이 지녔던 통념상의 스케일을 뛰어 넘는 커다란 규모다. 계획의 주안점은 고층건물이 주는 매스의 중압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는데, 선형의 판상형의 긴 매스는 미세한 절곡으로 휘어져서 판상형의 지루함과 위암감을 상쇄한다.

Figure 4.
Facade and Rear View of Gropius' Apartment Block
Source. https://hansaviertel.berlin (left) and Author (right)
1층은 설비실 및 엘리베이터홀로 구성되었으며, 최상층에는 변형된 평면이 배치되어 변화를 주었다. 필로티로 띄워 올려진 건물들은 기술력과 구조 발달의 결과이며, 무거운 건물의 매스가 부유하는 느낌을 주게끔 의도된 것이었다. 기준층에서 평면을 대칭 배치하고 복제한 결과는 건물 매스의 대칭성과 기하학적 질서로 표출된다. 매스의 곡면과 함께 그로피우스 아파트의 조형성은 건물 양 측면의 조형적 요소를 부가한데서 찾을 수 있다. 양 끝단의 평면형에서 발코니를 측벽 부분에 배치하여 이를 조형 요소로 활용하여 변화를 주었다. 평면을 선형으로 일렬 배치했을 때 생기는 측벽의 지루함을 없애고자 한 의도다.
이 아파트 블록은 기본적으로 선형의(linear) 일자형 건물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전면과 후면의 구분이 뚜렷하다. 후면에는 4개의 엘리베이터 타워가 배치되어 수직적인 매스를 강조한다.
알토의 아파트 블록은 매스의 양 끝단이 부풀려지고 가운데 깊이가 좁은 ㄷ자 형태의 건물이다. 이러한 볼륨감 있는 매스는 블록플랜상에 있어서 건물의 남측과 북측 양끝단에 클러스터 형식으로 단위세대를 배치란 결과다. 그리드를 벗어난 평면 배치 역시 매스에 변화감을 주는 요인이 된다. 또한 북측 클러스터의 공용부분을 돌출시킴으로서 부분적으로 빈 여백을 만들고 매스의 변화감을 유도하였다. 이러한 변형 요소는 수직적으로는 반복, 확장되어 적층(積層)되었다.
구조는 콘크리트 벽식구조이며 펀치창이 있는 외벽이 내력벽 역할을 한다. 매스는 깊이 방향으로는 4도씩 틀어져 있으며, 길이 방향으로는 8도가 틀어져 있다(Jun, 2000). 매스는 정형적인 축에서 벗어나서 비틀어지고 꺾임으로서 기하학적 질서로부터 일탈한 자유로운 형상을 취한다. 알토 역시 한자지구 내 흔히 볼 수 있는 필로티 방식을 채택하여 1층의 일부를 비워두고 기둥을 배치함으로써 볼륨을 가볍게 처리하였다. 1층을 제외하고 층별 변화는 없으며 전체 건물에 의도적으로 부가된 조형 요소 역시 찾아볼 수 없다. 즉 그로피우스와 달리, 조형성을 위해 내부공간의 배치를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는 방식은 취하지 않았다.

Figure 7.
Assymetrical Form and Mass Articulation of Aaltos' Apartment Block
Source. https://flic.kr/p/SR3Avg (left) and Author (right)
3. 기준층 블록플랜의 선형 조합 및 유기적 조합
그로피우스의 아파트 블록은 계단실 및 엘리베이터홀을 중심으로 한 단위세대의 2호 조합 유닛이 기본이다. 단위 세대 평면은 대칭으로 미러링(mirroring)되어 복제되었다. 이것이 다시 2, 5, 6 ,9층에서는 4번 복제된 형식이다. 3, 4, 7, 8 층 역시 기본적으로 4번 복제되는데, 이때 양 끝단의 단위세대에는 발코니의 위치가 변경된 평면이 배치되었다. 이러한 두 종류의 기준층 평면은 1개 층, 혹은 2개 층마다 교차로 배열되면서 변화감있는 외관을 조성한다.
선형으로 배열된 평면들은 모두 한 방향을 취한다. 또한 내부의 벽체들은 라인업(line up)된 규칙적인 선상에 일렬로 배열되어 있지만, 계단실의 중심선에서 직각을 벗어난 축의 변형을 볼 수 있다. 이로써 매스의 변화감을 유도했음을 알 수 있는데, 공업 생산을 전제로 하는 평면상의 규칙성과 합리성에 더해 형태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평면의 질서에 변화를 준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알토의 아파트 블록은 비대칭성을 큰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원칙적으로 하나의 주거동 공용공간, 즉 엘리베이터 및 계단실을 5호의 단위세대가 사용하도록 계획된 클러스터형 배치에 기인한다. 공용공간에는 벤치와 같은 여유공간을 두어 공간의 구심적 역할을 하도록 했다. 동일한 A형 및 그 변형(단위세대 평면분석 참조)이 기준층에 4개씩 배치되었지만, 이들은 단순한 나열방식을 벗어나 서로 맞물리면서 분산되어 배치되었고, 사이사이 전혀 다른 유형의 평면들이 삽입되었다. 또한 전체 기준층 평면에서 벽체의 배치는 그리드상을 벗어나 계획되었다. 또한 동일한 평면이 90도씩 방향을 변경하면서 반복됨을 볼 수 있다. 즉 평면은 복제되었으나. 구축방식에 있어서의 합리성 및 규칙성은 배제되었고 자유롭게 배치된 것이다.
이러한 블록플랜상의 전략으로 평면은 한 방향이 아닌, 동서남북의 모든 방위를 향한다. 따라서 건물은 전면, 후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며, 사방으로 열려있고 측벽을 구성하지 않는다.
4. 입체적 입면 구성 요소의 반복 및 변화
그로피우스의 아파트 블록에서 입면을 구성하는 주요요소는 발코니다. 발코니의 위치를 달리한 평면형을 수평적으로는 대칭적으로, 수직적으로는 엇갈리도록 배치함으로서 입면의 변화를 꾀하였다.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입면으로부터 탈피한 경향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전체 건물의 전면, 후면의 입면은 대칭성이 강하게 드러나고, 기하학적인 원칙이 지배적이다. 즉 평면상의 질서가 입면에 투영되어 그리드상의 면 구성을 보여준다.
발코니는 건물에 요철감 및 음영감을 주는 요소로서 건물이 입체적으로 보이게끔 한다. 즉 모더니즘 시대의 밋밋한 표면으로부터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이때 발코니 난간을 곡면으로 변형하여 조형성을 더하였다. 하지만 창과 벽의 대조적 표면이 교차하면서 만드는 패턴은 규칙적인 합리성을 보인다. 건물의 후면은 투명한 창과 노출콘크리트의 가로 벽체가 그리드를 이루며 단순하게 구성되었고, 여기에 수직 엘리베이터홀의 육중한 요소가 입면의 분절을 이룬다.
알토의 아파트 블록은 동일한 기준층 플랜을 2층부터 최상층까지 적층, 반복함으로써 수직적으로는 변화가 없는 반면, 내부공간의 변화있는 배치로부터 도출된 수평적 입면 요소들이 리듬감을 형성한다. 특히 평면상 한 면이 셋백되도록 구성한 발코니들은 그 측면이 동일 치수로 구성됨으로써 규칙적인 통일감이 부여되었다. 이로써 거대한 하나의 매스로 인식되는 건물에 매스를 분절시키며 무게감을 파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Jun, 2000).
전체 파사드는 콘크리트 슬래브의 반복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 건물에서는 건축요소인 창과 문, 창틀의 디테일에 따라 모듈화된 유닛에 의해 마감재의 줄눈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선에 의한 격자형 패턴이 특징이다. 알토는 기능주의 건축개념인 단순성과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단일 색채 사용으로 더욱 강조하고 있다(Lee, 2019). 공장생산된 규격화된 외장재, 즉 콘크리트 프리패브 판넬을 건물 파사드에 적용할 때 부재들의 치수룰 통일시키고 이를 입면에서 조합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외관디자인에서 전체 매스를 뒤덮는 패턴이 되며, 밋밋한 표면의 지루함을 상쇄한다. 규격화된 패널의 적용에 따라 배치된 펀치창의 크기 역시 규격화된 동일한 크기를 유지한다.
5. 재료와 색채의 단순성 및 혼재성
그로피우스의 아파트 블록은 파사드에 재료 및 색채를 다채롭게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발코니 일부에 부착된 붉은색 난간벽 요소는 건물에 활기찬 액센트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재료가 사용된 건물의 전면과 단순히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한 후면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또한 건물의 파사드에서는 기본 벽과 발코니에 명확하게 색의 차이를 둠으로써 각 세대의 경계가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했고, 볼륨의 변화도 극대화되도록 하였다(Lee, 2019). 발코니 내벽 측면은 브라운색으로 대조를 이룬다. 외벽의 노출 콘크리트의 입면은 브루탈리즘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로피우스가 사용한 색채는 빛의 분해에서 얻어지는 삼원색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며, 이렇게 색채의 본질적인 요소를 사용하고, 또한 무채색 건축을 중시한 것은 합리주의를 존중하고 형식의 순수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색채의 조형적 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신조형주의 색채사용 방식으로 규정되기도 하는데, 이때 색채는 부가적 요소가 아니라, 기둥이나 벽과 같은 형태와 긴밀하게 작용하는 형태조절과 형태적 조형성을 강조하는 방식이다(Lee, 2019).
그로피우스는 공업생산된 패널들을 파사드에 적용하되, 여기에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즉 백색의 에나멜로 칠해진 철판을 곡면으로 가공하여 발코니의 입면을 부풀려진 형태로 변형한 것은 신재료의 조형성을 활용한 것이다. 적극적인 콘크리트의 사용은 전쟁 후 콘크리트의 대량생산과 보급이 가져다 준 건설재의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또한 콘크리트라는 재료의 속성이 주는 무한한 확장성 및 형태 조성의 자유로움(Jun, 2016)을 활용한 것이기도 하다.
알토의 아파트 블록은 그로피우스의 건물과 대조적으로 동일한 색채와 재료로 전체 입면을 뒤덮은 점이 특징이다. 발코니의 난간 역시 벽체와 동일한 콘크리트로 통일하였다. 얼핏 백색으로 보이는 파사드의 색채는 옅은 연회색으로 채색된 것으로서, 모더니즘 시대의 백색 건축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입면 요소의 변화 외에 색채 및 재료의 변화는 없다.
6. 사례분석 결과 및 논의
1950년대 전환의 시대에 열린 인터바우 전시 사례에서 근대 모더니즘 건축으로부터 탈피한 점, 그리고 근대 모더니즘 건축의 속성을 유지한 점을 명료하게 도출할 수 있었다. 이때 두 건축가가 집합주택 건축에 있어서 표준화와 조형성 문제를 풀어낸 방식은 서로 상이했다. 분석결과를 논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로피우스의 단위세대 평면은 이전 시기와 변함없이 정량적으로 계산된 표준형 평면을 채택한 반면, 알토 는 건축가에 의해 독창적으로 구성된 평면을 채택하였다. 알토의 아파트 블록에서 단위세대 평면들은 모듈과 규격에서 벗어나서 분할되었고, 근대건축의 합리적 평면계획에서 탈피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알토가 이성주의에서 벗어나 개인화의 요구에 치중하면서 대량생산의 시대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인터바우의 사례는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왜냐하면 평면의 배열은 자유롭게 구성되었지만 동일 평면의 반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반복과 효율적 건설을 의한 복제성을 간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알토는 평면을 복제함에 있어서 이를 단순 나열하기보다는 콜라주 기법을 활용하여 서로 맞물리도록 배치함으로써 반복성에서 오는 획일성을 감소시키고자 한 탁월한 전략을 제시하였다.
둘째, 두 아파트 블록의 매스 모두 경직된 박스형으로부터 벗어나서 조형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때 그로피우스는 기하학적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유연한 형태인 곡면 매스를 채택하였고, 수직적 변화를 주었다. 알토는 수평적으로는 자유로운 형태, 그리고 수직적으로는 입체가 단순 적층된 형태를 취한다. 알토의 경우 내부공간 구성을 그대로 표출함으로써 매스의 변화를 유도하는 순수한 방식을 택하였다.
셋째, 입면의 건축 부재에 있어서 공업화 생산과 모듈화의 적용에 대한 시험적 시도가 더욱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아파트 블록의 파사드에 규격화된 외장재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치장재로서의 마감재를 풍요롭게 사용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과거의 모더니즘 건축에서 콘크리트 블록에 백색의 도장으로 마감했던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더욱 고급의 재료 사용으로 전환된 것이다. 또한 국제주의 건축의 패러다임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전의 국제주의 건축에서 공장생산된 조립식 부재가 구조체와 계단 바닥 등에 한정되었던 점과의 차이다. 특히 알토의 아파트 블록의 경우에는 파사드에 규격화된 표준부재가 그로피우스의 사례보다 더욱 합리적으로 사용되었다.
넷째, 재료 및 색채 등이 다양화되어, 건물의 외관에 다채로운 변화감을 주었다. 건축재료 생산의 산업시대가 도래한 이래 발전된 혁신적인 기술력과 재료들의 실험 무대를 연 것이었다. 이전 시기의 주거건축에서는 내부의 평면이 형태와 디자인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다. 즉 형태는 공간을 포용하고 그것을 순수하게 드러내는 것이 근대건축가들의 입장에서 ‘순수한’ 건축의 태도였다면, 1950년대 이후에는 건물의 외관을 형성하는 재료들을 내부공간과 무관하게 온전한 입면 요소로서 독자적으로 채택한 것이다. 특히 그로피우스의 경우, 마감 재료들은 건물의 내용 및 구조와 관계없이 단순히 건축가의 미적 조형 원리에 의해서 입면에 부착되었는데, 이처럼 역동적이며 풍부한 디자인은 산업시대의 신재료의 특성을 부각시키며, 새로운 미학에 대한 요구를 반영한다. 여기서 표현주의적 특성도 나타난다.
본 연구에서 그로피우스와 알토의 두 아파트 블록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요약하면 <Table 2>와 같다.
IV. 결 론
독일의 주거건축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후기 기능주의의 등장과 함께 기술 발전에 힘입어 대량 생산개념이 더욱 진보하였다. 이때 등장한 인터바우 전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주거건축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것은 더이상 저렴하고 평균적인 주거의 공급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고, 계획적 측면에서, 그리고 건축미학적 측면에서 그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었다. 즉 1950년대 이후의 주거건축이 양보다는 질적인 향상을 추구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때 생산성을 위한 기능주의적 패러다임과 다양화 및 사회의 수준 향상에 따른 디자인 혁신에 대한 요구가 서로 상충하는 경우가 많았다. 본 연구에서는 인터바우 국제건축전시지구에서의 의미있는 두 사례분석을 통해 이러한 쟁점들이 상호 보완되면서 이루어 낸 집합주택 계획의 진보적 성과를 논의해 보았다. 그로피우스와 알토는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모두 두 지점의 균형을 이루면서 목표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건축 부재와 요소들을 규격화 하면서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어 생산의 효율성과 함께 다양성을 담보하였고, 이전 시기의 차갑고 단순한 백색건축의 미학으로부터 변화하여 보다 풍요로운 감각을 표현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한편, 이때 선보인 고층의 적층형 아파트는 이후 시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는데, 본 연구를 통해 도출된 분석의 결과들은 한국의 집합주택 계획에도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그로피우스와 알토의 사례에서 보듯이 ‘표준화’ 및 ‘조형성’의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결국 집합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추구하고자 한 시도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우수한 집합주택 디자인에 있어서의 핵심 관건이라 할 수 있다. 두 건축가는 평면 구성, 매스, 주거동 블록플랜, 입면 구성, 재료 및 색채 사용 등에서 이를 위한 계획의 전략들을 선구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특히 현대 한국에서 광범위하게 건설되고 있는, 대량생산되는 획일적인 아파트 주거형식에서도 참고할만한 주요 전략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