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II. 연구방법
1. 연구 대상지 선정과 연구 참여자 모집
2. 데이터 수집
3. 데이터 분석
III. 연구결과 및 논의
1.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근린 건조 환경 요소
2. 거주지역별 환경-건강 경험
IV. 결론
I. 서 론
우리는 매일의 삶을 영위하는 장소들과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다양한 일상의 장소들 즉 근린환경은 단순히 우리 삶의 배경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주요한 물리적, 사회적 요소들을 포함함으로써 우리의 기분과 행동, 나아가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Cummins et al., 2007). 정신건강은 오랜 시간 동안 환경보다는 개인의 범주에서의 문제로 받아들여졌지만 (Kim, 2008), 1990년대 후반 이후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어디에 사는지’가 ‘누구인지’에 못지않게 건강에 있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Pickett & Pearl, 2001).
최근 다양한 경험적 연구들이 근린 건조환경이 거주자의 정신건강에 있어 주요한 결정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지만 (Bird et al., 2018), 많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근린 건조환경과 정신건강의 관계는 아직까지 확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현재까지 수행된 경험적 연구 중 일부는 근린 건조환경과 정신건강의 관련성을 찾아내고 있지만(Duncan et al., 2013 ; Lee & Park, 2020), 또 다른 일부는 그에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를 보고하거나 혹은 아무런 연관성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Choi & Park, 2012). 그러나 이와 같은 일관성의 부재는 근린 건조환경과 정신건강이 실제로 상호적인 관계가 없어서라기보다는, 그 맥락에 따라 모순된 결과가 도출되기 때문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근린 건조환경과 거주자의 정신건강은 하나의 보편적, 선형적인 인과관계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며, 각 지역의 고유한 맥락에 따라 그 환경-건강 관계에 있어 제각기 다른 패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Saarloos et al., 2009). 따라서 근린 건조환경과 정신건강의 관계를 밝히는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각 국가나 도시마다 특수하게 나타나는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해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Cummins et al.., 2007).
그러나 현재까지 한국에서 수행되어 온 근린 건조환경과 정신건강에 대한 연구들은 그러한 맥락적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Ko & Lee, 2012). 무엇보다도,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조환경 요소들의 이해에 있어 한계가 존재한다. 거주자의 건강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근린 건조환경 요소들을 파악하여 변수로 설정하고 그러한 요소들의 영향력을 분석하는 것은 본 연구 분야에 있어 매우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진행되어 온 국내 연구들은 연구를 위해 참고할 만한 선행 연구들이 대부분 서구권에서 진행되어 옴에 따라, 매우 다른 물리적, 사회적 환경과 맥락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서구 지역 연구에서 선택되어온 건조환경 변수들을 유사하게 차용하여 그 영향을 분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Kim et al., 2017). 이에 더하여, 상당수의 연구들이 기존에 수집되어 있는 건조환경 관련 각종 데이터를 2차 사용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어, 실제 건조환경 요소들이 지역의 고유한 맥락에서 거주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지되고,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밝혀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Table 1.
Studied Built Environmental Attributes Which Have Effects on Mental Health & Well-being
| Clusters | Attributes |
| Land use |
Industrial zoning, High-rise buildings (Park et al., 2017), Commercial zoning (Choi & Lee, 2018), Floor area ratio (Lee, 2020), Population density (Lee et al., 2019) |
|
Street environment | Walkability (Kim, 2018) |
|
Transportation infrastructure |
Public transportation service area ratio (Park et al., 2017), Number of bus stops (Choi & Kim, 2013), Transportation accessibility (Chang, 2017) |
|
Green & open space |
Park area ratio (Yu et al., 2012) Comfort from natural environment (Lee & Choi, 2014), Accessibility to open space (Kim & Kim, 2015) |
|
Neighborhood facilities |
Health facility ratio (Chang, 2017, Lee et al., 2019), School environment - overcrowding & noise (Lee & Choi, 2014), Accessibility to public facilities (Kim, 2018; Chang, 2017), Diversity of community facilities (Kim & Kim, 2015), Accessibility to retail shops (Lee & Park, 2020) |
|
Safety & order |
Perceived neighborhood disorder (Yun, 2014), Neighborhood safety (Moon et al., 2018), Noise and odor (Han & Jun, 2018) |
<Table 1>은 국내에서 현재까지 수행된 근린 건조환경과 정신건강 관련 연구에서 정신건강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진 건조환경 요소들을 정리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국내 도시 환경의 공간적/내용적 맥락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와 함께(Ko & Lee, 2012; Lee et al., 2019) 그 메커니즘은 여전히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이처럼 아직까지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국내의 근린 건조환경-정신건강 연구가 앞으로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한국의 고유한 도시 환경 맥락에서 실제로 거주자들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조환경 요소들을 보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파악 및 이해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실제로 정신 건강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누락되어 온 요소들이나, 실질적으로 큰 의미를 갖지 않지만 관행적으로 다뤄져 온 요소들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 거주자들의 일상 경험(lived experience)을 근거로 하여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조환경 요소들을 추출하고 그 안에 담긴 고유한 메커니즘을 탐색하는 연구들이 필요하다. 서구권에서는 다양한 질적 연구 방법을 이용하여 환경 요소와 메커니즘을 탐색하는 연구들이 매우 활발하게 수행되어 왔다(Day, 2008; Shmool et al., 2015). 이 과정에서 지역적 맥락에 의해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유한 환경 요소가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거주자의 성별이나 그룹 등에 따라 어떤 환경 요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더 많은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결과들이 제시된 바 있다(O’campo et al., 2009).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이처럼 질적 연구 방법을 이용하여 건조환경-정신건강 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연구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본 연구는 한국, 그 중에서도 서울이라는 고유한 도시 환경적 맥락에서, 거주자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근린 건조환경 요소들을 거주자들의 일상 경험 데이터로부터 최대한 구체적으로 파악 및 유형화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서울에 거주하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여 서술 정보와 시각 정보를 동시에 수집하는 다방법 질적 연구를 수행하였다. 본 연구가 이를 통해 알아보고자 하는 구체적인 연구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어떠한 근린 건조환경 요소들이 긍정적, 부정적인 방향으로 연구 참여자들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가?
2) 이러한 근린 건조환경 요소들이 정신건강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3) 연구 참여자의 거주 지역 특성별로 환경-건강 경험에 있어 차이가 존재하는가?
II. 연구방법
1. 연구 대상지 선정과 연구 참여자 모집
동네의 사회경제적 수준은 일반적으로 근린환경의 특성 및 그로 인한 건강에의 영향에 있어 큰 의미를 갖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Stafford & Marmot, 2003), 본 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수준을 가진 지역의 거주자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상의 선정은,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나타나는 근린 건조환경-건강 경험을 단순 비교하는 것 보다는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맥락에서의 거주자의 일상 경험을 수집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른 지역 선택은 서울시의 25개 자치구별 기초생활수급자 비율(2018년)과 지역박탈지수(2015년) 데이터를 기준으로 하였다. 서구에서 수행된 연구들에서는 지역별 소득 격차가 사회경제적 상황을 반영하는 변수로 활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연구대상지인 서울의 경우 사회 갈등에 대한 우려로 인하여 이러한 자료가 공공에 제공되고 있지 않으므로(Kim & Cho, 2008) 이와 같은 데이터를 활용하였다. 이를 통해 서울의 행정구역(구) 중 기초생활수급자 비율과 지역박탈지수가 공통적으로 가장 낮은 두 지역(A,B)과, 두 가지 지수가 공통적으로 가장 높게 나타나는 두 지역 (C,D)의 거주자를 연구의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연구 참여자 모집에 있어서는 중도에 참여를 그만둘 수 있는 경우를 고려하여 각 지역 당 약 10인의 참여자를 모집하여 20-25% 정도의 탈락률을 보일지라도 지역당 7-8명, 총합 30명 이상의 연구대상자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산출 근거는 질적연구 방법을 이용하여 근린환경의 경험을 탐색한 유사 선행연구들의 기준에 따른 것으로, 일반적인 근린 건조환경의 경험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최소 4인, 폭넓은 경험자를 대상으로 할 때는 8인 정도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Goodwin, 2011; Lee, 2018).
연구참여자의 모집은 각 지역별 온라인 지역사회 커뮤니티(모두 네이버 카페) 게시판을 이용하였다.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만 19세-49세의 거주자가 게시판에 게시된 연구참여 모집글을 보고 참여를 원하는 경우 첨부된 구글폼 링크로 직접 신청하는 방식을 택했으며, 구글폼 링크에 포함된 간단한 설문을 통해 선정 기준에 맞는지 확인 작업을 거치도록 하였다. 최종적으로 총 37명이 연구 참여 신청을 하였으며, 이 중 선정기준(해당 지역에서 1년 이상 거주, 일평균 주택 내부를 제외한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 30분 이상, 모바일 기기로 사진 촬영과 공유 가능 등)에 맞지 않은 5인을 제외하고 32명이 연구에 참여하였다. 최종적으로는 연구 과정 중도에 탈락한 2인을 제외한 30명(A,B 지역과 C,D 지역 각 15인씩)의 데이터를 수집하였다. 각 지역별 연구참여자의 특성을 정리한 내용은 <Table 2>과 같다.
Table 2.
Characteristics of the Interview Participants
2. 데이터 수집
본 연구는 연구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시각 정보와 서술 정보를 모두 수집하는 다방법 질적 연구의 방식을 채택하여, 사진 유도(Photo-elicitation)와 심층 면접(in-depth conversational interview)이 결합된 형태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모든 연구자의 인터뷰는 사전과 사후 2회로 수행되었으며, 코로나 19 팬데믹의 지속 및 심화로 인해 모두 줌(zoom)을 이용한 비대면 인터뷰로 진행하였다.
사전 인터뷰에서는 이미 인터뷰 전 연구참여 동의서를 통해 설명된 바 있는 연구의 목적과 과정을 구두로 다시 한 번 설명하고, 연구참여자의 동네 이용과 관련된 생활 패턴, 현재 동네 건조환경에 대한 만족도, 본인의 건강과 삶에 영향을 준다고 느끼는 요소들, 긍정적/부정적 환경 경험들, 현재의 정신적 건강상태 등에 대하여 반구조적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사전인터뷰 이후 일주일동안 수행하게 될 시각정보 수집(사진 촬영)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 또한 사전인터뷰 중 이루어졌다.
연구 참여자들은 사전인터뷰 이후 일주일동안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가운데, 본인의 거주지역(동네) 안에서 본인에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정신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지되는 근린 건조환경 요소를 개인 소유의 휴대폰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촬영하도록 요청되었다. 사진의 장수는 제한되지 않았으나, 최소 하루 한 장 이상의 사진을 찍을 것을 요청하였다. 연구 참여자는 본인이 찍은 사진들을 직접 지정한 중간 날짜 한 번과 마지막 날 카카오톡 메신저 혹은 문자 메시지를 사용하여 연구자에게 공유하였으며, 사진 공유시 왜 그 요소가 본인에게 긍정적,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느꼈는지 간단한 메모를 덧붙이게 하였다. Helmich et al. (2018)에 의하면, 이렇게 언어가 아닌 시각적 방법 등으로 자기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는 질적 연구 방법은 단어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정서나 감정을 전달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특히 개인의 건강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는데 있어 효과적이다.
연구참여자가 직접 수집한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진행된 사후인터뷰에서는, 인터뷰 진행 전 미리 모두 전달받은 디지털 사진 자료를 줌(zoom) 화면 공유 기능을 이용하여 함께 확인하며 각각의 환경요소들이 참여자들에게 왜, 어떠한 방식으로 긍정적/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했는지 심층적인 대화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연구참여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은 개인의 경험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역할을 하였다(Carlsson, 2001). 특히, 사진으로 제시된 각각의 건조환경 요소들이 단순히 그 물리적 특징에 의한 것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회경제문화적 맥락을 통하여 긍정적/부정적인 경험을 유도했는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듣고자 하였다.
A, B, C, D 네 지역의 인터뷰는 총 5개월(2021년 9월~2022년 1월)에 걸쳐 진행되었다. 각각의 사전인터뷰는 45분에서 1시간 정도로 진행되었으며, 사후인터뷰는 최소 1시간에서 최대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모든 인터뷰가 연구참여자의 동의를 얻은 이후 줌(zoom) 화면 녹화 기능을 이용하여 녹화되었으며, 본인의 모습이 녹화되길 원치 않는 참여자의 경우에는 처음에 인사를 나눈 이후 카메라 화면을 끄고 목소리와 사진자료만 녹화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사전, 사후인터뷰 및 시각 정보 자료 전달을 모두 수행한 연구참여자들은 연구 참여 후 소정의 연구참여비를 지급받았다.
한편, 본 연구의 가장 중심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근린 건조환경’과 ‘정신건강’은 개인에 따라 매우 다른 맥락적 정의를 가질 수 있는 개념들로서, 본 연구에서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기 위하여 미리 규정된 구체적인 정의를 이용하는 대신 연구 참여자가 갖고 있는 고유한 인식에 따라 두 개념을 사용하게 하였다(Teedon et al., 2014). 그러나 동시에 불필요한 혼란을 막기 위하여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자 하였으며, 이에 근린 건조환경은 ‘거주자가 일상적으로 머물고 활동하는 생활 지역 안에 존재하는 물리적 환경 요소’로, 정신 건강은 ‘단순히 의학적 질병의 범주가 아니라 한 개인이 느끼는 정신적으로 안녕한 상태’로 설명되었다.
3. 데이터 분석
수집된 데이터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분석되었다. 먼저, 사전/사후 인터뷰의 서술 정보를 모두 전사하는 과정이 이루어졌다. 녹취과정 초기에는 Google Chrome의 Voicememo와 Transkriptor 등 유무료 녹취(Transcription) 프로그램을 활용하였으나, 전사된 자료의 정확성 부족과 화자 구분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당초 목표했던 연구 시간 단축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아, 연구자가 처음부터 직접 녹취하는 방법으로 수정하여 진행하였다.
녹취된 내용은 질적 인터뷰 자료의 분석에서 주로 사용되는 질적 내용 분석(Qualitative content analysis)의 방법으로 분석되었다(Mayring, 2004). 먼저, 연구자가 전사된 인터뷰 자료를 여러 번 읽으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근린 건조환경 요소와 관련 세부 내용의 목록을 빠짐없이 구성하였으며, 이를 그룹화/재그룹화 하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이 과정에서, 30인의 연구참여자로부터 수집된 총 485장(A, B 지역 264장, C, D 지역 221장)의 사진은, 서술정보와 분리된 자료로 취급하지 않고 서술정보를 구체화하여 보여주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분석 결과,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근린 건조환경은 크게 3개의 영역 및 그에 속한 하위 영역들로 유형화되었다. 이는 구체적으로 1) 각종 인프라(보육 및 교육, 생활, 자연, 교통, 가로환경), 2) 질서와 미, 그리고 관리 (안전 및 치안, 심미적 요소, 혐오시설, 관리와 운영), 3) 밀도이다. 동시에 이 3개 영역에 속하는 세부 근린 건조환경 요소들이 거주자들의 정신건강에 있어 긍정적/부정적 방향 중 어느 쪽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분류하였다.
또한, 왜/어떻게 각각의 근린 건조환경 요소들이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인식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최대한 파악 및 서술하고자 하였다. 추가적으로, 분석 과정에서 거주지역별로 서로 다른 건조환경 요소가 거주자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나타나는지, 혹은 같은/유사한 건조환경 요소일지라도 지역이나 사회경제적 맥락에 따라 건강 경험이 차별적으로 나타나는지를 비교하였다.
이렇게 분석된 결과는 연구자 개인의 편견이나 해석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질적 연구 경험이 많은 동료 연구자 1인과의 검정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건조환경 요소들이 최종적으로 포함/제외되어야 하며, 특히 원 자료를 유형화한 내용 및 결과가 적절한지에 대해 3회에 걸친 토의 및 수정이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연구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연구참여자 및 참여자에 의해 수집된 데이터는 모두 익명화하여 다루어졌으며, 모든 연구 과정은 울산대학교 IRB의 승인 후에 진행되었다.
III. 연구결과 및 논의
1.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근린 건조 환경 요소
각 영역에 포함된 세부 건조환경의 요소와, 그 요소들이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분류한 내용은 <Table 3>과 같다.
Table 3.
Clusters of Neighborhood Built Environmental Attributes Which Can Have Effects on Residents’ Mental Health & Well-being
1) 각종 인프라
(1) 자녀 보육/교육 관련 인프라
미취학/취학 자녀가 있는 연구참여자의 경우 자녀의 보육 및 교육 관련 환경 인프라가 본인들의 삶의 질 및 정신적인 건강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하였다. 이 영역에서는 거주지에서 도보로 도달할 수 있는 어린이집/유치원/학교 등 보육/교육 기관의 수가 많은지, 그 외에도 학원이나 놀이터, 키즈까페, 문화센터 등 자녀들의 보육과 교육 관련된 인프라가 충분한지 등 양적 측면이 중요한 요소로 이야기되었다. 참여자들은 이러한 시설이 충분하지 않거나 혹은 이러한 시설들이 동네에 있더라도 그 질적인 측면이 우수하지 않을 때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는 것으로 보여졌다. 다른 모든 부분에서 동네에 만족할지라도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 것 때문에 추후 이사까지 고려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이러한 상황은 정서적인 측면에 있어 연구참여자가 현재의 삶을 온전히 누리기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 관찰된다.
“...초중고가 다 단지 안에 있어서... 단지 안에서 안전하게 다닐 수 있고. 학원 같은 경우도 00동이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니까 그런 면에서도 좋고. 또 내년에 영어유치원을 보내기로 결정했는데, 그 옵션도 많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어디로 가야되는 게 아니라 선택권이 다양하게 있다는 게 정말 좋고요...” (A&B)
“동네에 있는 학교를 가려면 한 20분 정도 상당히 좋지 않은 환경의 길을 걸어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여기 초등학교가 고학년이 되면 전학률이 높은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 현재는 만족스럽고, 살면서 힐링도 되고 그런 좋은 곳이지만 아이 교육을 생각하면 계속 있고 싶은 곳은 아니죠...” (C&D)
국내에서 지역 내 학교와 같은 교육시설과 학교주변 유해환경 등은 거주자의 전반적인 삶의 질과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지속적으로 파악되어져 왔으며(Lim, 2012; Kim et al., 2017), 특히 보육시설은 부모의 일상생활과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 충족을 돕는다는 점에서 도시의 다양한 인프라 중 그 중요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Cho & Lee, 2014). 서구권의 선행연구들 또한 이와 유사하게, 거주 지역 내의 보육 및 교육환경의 수나 접근성과 같은 양적인 특성들을 거주자의 정신건강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요소로 파악하고 있다(Pearce et al., 2006).
그러나 위에서 밝힌 것과 같이 연구 참여자들과의 인터뷰 결과, 교육 및 보육환경의 양적인 측면 외에도 질적인 특성이 그들의 정신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학교 등 교육시설의 경우, 물리적 인프라로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그곳에서 제공되는 교육의 수준 등 질적 측면에 대한 만족이 거주자의 정신적인 건강에 있어 중요한 부분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동네 혹은 주거지를 논할 때 이러한 교육환경, 조금 더 직접적인 단어로 학군이 갖는 중요성은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현상이다. Yu & Lim(2002)은 한·일간의 주거만족도를 분석한 연구에서 한국에서는 교육환경의 만족도가 주거 만족도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나 일본에서는 그 영향이 미미함을 보인 바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사회적 특수성과 관련된 결과로 보인다(Ogino, 2004). 이렇듯 주거지에서 교육환경의 중요성이나 그로 인한 이동 등은 어느 정도 사회적 이해가 이루어진 현상이지만, 이와 관련하여 거주자의 심리나 건강에의 영향에 대해서 깊이 있게 분석한 연구는 아직까지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본 연구에서 교육 인프라는 다른 건조 환경 요소들과 달리 거주 지역(A&B <> C&D)에 따라 거주자의 환경-건강 경험이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에 대한 논의는 뒤에서 다시 이어가고자 한다.
Table 4.
Education Facilities Attributes Which Are Perceived To Have Positive/Negative Effects on Mental Health
|
Positive health effects -related attributes |
Negative health effects -related attributes |
![]() | ![]() |
| Safe roads which connect a school and a housing complex | Empty buildings located next to a neighborhood school |
(2) 다양한 생활 인프라
일상생활에서 이용하는 다양한 생활 인프라, 즉 마트, 편의점, 시장, 각종 소매상점 등의 상업 시설, 식당이나 카페, 도서관이나 경찰서 등의 공공/행정시설, 병원 및 의료시설 등의 다양성과 질 또한 연구 참여자들의 정신적으로 건강한 하루하루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다. 이용하기 좋은 생활 인프라들이 근거리에 존재하는 것은 연구 참여자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작용하였으며, 동시에 이런 공간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런 인프라들을 실질적으로 일상에서 자주 이용하지 않을지라도, 원하면 언제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이야기 되었다. 반대로 이러한 인프라들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경우, 특히 자주 이용하게 되고 중요성이 큰 장소(병원, 마트 등)들이 부족한 경우에는 삶의 질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으로 받아들여졌다.
적절한 근린 생활인프라의 제공이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이미 다양한 국내외 연구결과에서 밝혀진 바이며(Duncan et al., 2013; Lee & Park, 2020), 이러한 공간들의 이용이 실제로 빈번하지 않을지라도 접근성이 확보되는 것 자체가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이전의 연구들에서 제시된 바 있다(Bird et al., 2018). 본 연구의 분석 결과 이러한 인프라들은 앞에서 설명된 교육/보육 인프라와 마찬가지로 그 양적인 측면 외에도 질적인 특성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즉, 동네를 벗어나서 멀리까지 외출하지 않고도 본인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질 좋은 시설들(각종 카페나 식당, 예술문화시설 등)을 누릴 수 있는지 여부는 건강한 삶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관찰된다.
“...걸어서 5분 안에 웬만한 건 다 있는 것 같아요. 먹을 곳도 많고, 운동할 곳도 많고, 병원도 많고. 몇 발자국 가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게 많아서. 그런 게 마음이 편하거든요. 정말 편안해요... 전에 살던 곳하고 또 비교가 많이 되거든요. 거기는 상가도 활성화되어있지 않고 그래서 늘 차를 가지고 다녀야 했어요. 여기는 그럴 일이 없는데 그게 정말 삶의 질을 많이 높여주었다는 생각을 해요.” (C&D)
(3) 자연과의 접촉
연구 참여자들의 삶의 질, 정신적인 건강에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조환경 요소로 무엇보다 자주 이야기된 것은 자연요소와의 접촉에 대한 부분이다. 자연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물리적 환경요소들, 즉 산, 숲, 강이나 내천, 호수, 공원, 광장, 절, 산책로 등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이야기되었다. 또한 꼭 이렇게 잘 조성된 공간이 아닐지라도,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길가의 나무와 꽃들, 아파트 단지 내의 조경 요소들, 혹은 집 안에서 내다 볼 수 있는 자연 경관 등도 모두 매우 의미 있는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참여자들은 자연 요소를 일상에서 접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서적으로 재충전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으며, 이러한 재충전은 자연의 변화를 통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 동식물과의 교감, 맑은 공기를 쐬는 것 등 다양한 행위들을 통해 일어난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자연의 아름다움 자체가 큰 기쁨을 주기도 하고, 공원이나 내천 등의 공간에서 행하게 되는 다양한 운동이나 활동도 신체적으로 활기찬 생활을 도와, 결과적으로 정신적 건강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다.
“재택 근무를 하고 있는데... 답답하기 때문에 꼭 밖에 나갔다 와야 해요. 근처에 00천이 있어요. 거기를 매일 꼭 가요. 거길 정말 사랑해요. 제가 제일 사랑하는 곳이고, 거길 가야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을 얻고. 물이 흐르는 풍경을 보는 것이 너무 좋고. 자연에서 위안을 얻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그런 것 같아요. 00천이 없다면 제 삶이 너무 달라질 것 같아요...” (C&D)
이러한 자연 요소의 힘은 외출이나 실내 활동이 상당히 제한되어 온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반대의 측면에서 자연 요소를 일상에서 충분히 누릴 수 없는 동네에서 거주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매우 답답하고 불편한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다양한 자연 요소들은 대부분 존재하는 것 자체로 긍정적인 것으로 이야기되었지만, 이러한 환경 즉 공원 등이 이용하기 불편하거나 질적으로 우수하지 못할 경우 많은 아쉬움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자연 요소와의 접촉이 가져올 수 있는 정신건강에의 긍정적인 영향은 서구에서 Kaplan & Kaplan(1989)의 연구를 필두로 아주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어 온 바 있다. 덕분에 왜, 어떻게, 일상의 자연 요소들이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도 다른 건조환경 요소들보다 상대적으로 잘 밝혀져 있는 편이다. 메커니즘에는 스트레스 해소, 신체활동의 증진, 사회적 교류 증진 등이 포함되며, 본 연구 참여자들의 경험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 교통 인프라
교통 문제 역시 대부분의 연구 참여자들이 삶의 질과 정신적인 건강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치는 부분으로 이야기한 영역이다. 먼저 대중교통, 즉 지하철이나 버스의 이용 편리성은 일상생활에서의 이동에 대한 부담을 많이 낮춰주어 삶의 질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 반대로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것은 일상에서의 스트레스 레벨을 높이는 요소로 이야기되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외에도 서울시 자전거 시스템인 따릉이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지도 많은 참여자들에게 중요한 요소로 이야기 되었으며, 따릉이를 대여할 수 있는 장소가 가깝고 자전거 도로가 잘 구축되어 있는 경우 일상에서의 편의성이 강화됨과 동시에 신체적으로도 건강한 습관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보여졌다. 이외에도 차량을 운전하여 타 지역에 가는 것이 편리한지, 혹은 도로 시스템이나 관련 교통체증 등으로 이동이 어려운지도 정신적 건강 상태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다. 또한, 현 주거지에서 주차가 쉬운 것 또한 삶의 질과 건강에 주요한 요소로 이야기되었다.
“...여기는 다니기가 너무 애매해요. 버스를 타기에도 안 타기에도. 그래서 스쿠터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이사 올 때 전세대란이라 선택권이 별로 없었는데, 막상 와보니 아이 등하원이 정말 너무 힘든 거에요. 내가 너무 힘에 부치니까 뭐라도 사야겠다... 그래서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데, 이것도 힘들죠...” (C&D)
“... 교통이 정말 편리한데 그게 너무 좋아요. 여기가 도로도 일자로 되어 있어서 어디든 이동하기가 편하고, 자전거 도로도 너무 잘 되어 있어서 평소에 혼자 다닐 때는 따릉이로 다니니까 너무 좋더라구요...” (A&B)
교통인프라의 정신 건강에의 영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연구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 온 부분으로, 현재까지 본 연구의 결과와 거의 유사하게 다양한 교통 인프라, 대중교통 이용의 편리성, 주차와 도로 환경 등이 주요한 변수로 다뤄지고 있다(Kim et al., 2017; Bird et al., 2018). 이러한 연구의 결과는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확정적인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데, 정신건강에 이러한 교통인프라가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지는 연구들과(Park et al., 2017) 그렇지 않은 연구들(Sung, 2011; Duncan et al., 2013)이 혼재한다. 본 연구의 결과, 교통 인프라는 정신 건강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보여지며, 앞으로의 연구들을 통해 건강을 지원하는 인프라들을 구체화하고 이를 확충해 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
(5) 가로 환경
일상생활에서 걸어 다니는 길가, 가로의 구조나 형태와 그것과 관련된 안전성의 문제 또한 대부분의 참여자들에게서 중요하게 이야기 된 부분이었다. 거주하는 동네의 상황에 따라 그 강도는 다르지만, 가로가 마음 편히 걸어 다닐 수 있는 형태인지 아닌지는 일상에서의 스트레스 혹은 안정감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여졌다. 구체적으로, 차와 사람이 같이 이용하도록 되어 있는 보차혼용 이면도로는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참여자들의 일상에서 상당한 스트레스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반대로, 보차분리가 잘 이루어져 있는 가로 시스템, 더 나아가 최근 지어진 아파트 단지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지상 공간의 공원화는 쾌적한 삶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보차분리/혼용 외에도, 가로 주변의 공사장, 도로의 질적인 상태 즉 비포장, 울퉁불퉁한 표면, 길의 청결 관리 상태 등도 연구 참여자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으며, 그 외에도 이동이 어려운 좁은 골목길, 경사지대, 도로의 단절 등도 스트레스의 요소로 이야기되었다.
“...이렇게 길이 잘 되어 있는 게 작은 것 같아도 정말 중요한 요소에요. 부모에게는. 만약 동네가 위험하고, 차들도 막 지나다니고 그러면 걱정이 많았을텐데. 항상 아이와 함께 모든 걸 다 해줄 수는 없는데 아이들끼리 나갈 수 있는 게 저의 자유를 확보해주는 것이기도 해서. 그렇지 않았다면 많이 우울했을 것 같아요.” (C&D)
“...차도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공사차량도 너무 많이 다니니까 아이가 잠시라도 제 손을 잡지 않으면 너무 불안한 거죠... 매번 밖에 나갈 때 마다 그걸 많이 느끼니까... 즐겁게 나가고 해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높아져요. 아이가 혼자 나간다고 할 때도 그걸 허락해주기가 어렵고.” (C&D)
Table 5.
Street Environment Attributes Which Are Perceived To Have Positive/Negative Effects on Mental Health
가로환경의 특성 역시 그 세부적인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신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한 변수로 다뤄지고 있다. 보행과 관련하여 가로의 안전성과 접근성은 특히 보편적으로 주요하게 여겨지는 요소이다. Lim(2015)는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주거 환경 요소들을 탐색한 연구에서 자동차 중심의 도로 환경보다는 보행 환경이 잘 조성되었을 때 주거환경의 질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힌 바 있는데, 본 연구의 참여자들 또한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가로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위에 인용한 인터뷰 내용과 같이 어린 자녀가 있는 참여자들의 경우 가로 환경의 영향이 상당히 큰 것으로 관찰되었는데, 사고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매일의 삶을 보내는 공간이 스트레스를 강하게 유발하는 것으로 이해 가능하다.
2) 질서와 미, 그리고 관리
(1) 동네의 치안 인식
실제로 범죄가 얼마나 일어나느냐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동네의 물리적 환경 요소가 얼마나 안전한 느낌을 자아내는지는 일상에서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기에 정신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역은 크게 두 가지의 측면으로 나누어서 이야기 되었는데, 그 첫 번째는 도로나 골목길이 일상, 특히 밤에 걸어 다니기에 ‘충분히 밝고 안전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것이었으며 두 번째는 도로와 길을 포함한 다양한 공공 공간들, 공원, 광장, 천변 등에 ‘충분한 사람들이 있어 서로를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길가가 충분히 밝고 안전하여 밤에도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환경의 가치가 매우 크다는 것을 참여자들은 인지하고 있었으며, 반대의 경우 일상생활을 이어나가는데 있어서 상당한 불편과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다. 특히 여성 연구 참여자들은 이 부분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상당했는데, 치안에 대한 문제로 인해 밤 시간에 외출 자체를 포기하거나, 길을 우회해서 이용하고, 혹은 길을 항상 뛰어다니며 불안을 낮추려는 등의 행위가 관찰되기도 하였다.
“... 밤에 길을 혼자서 갈 때는 (무서워서) 항상 막 뛰어 다녀요...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 많은데, 그 중에서 지름길이 특히 어두워서. 그래도, 굳이 돌아가기 보다는 지름길로 갈 때가 있는데... 거기가 좀 무섭고 오싹해서 뛰어가요... 가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아 여기가 바로 할렘가 같네...” (C&D)
동네에서의 안전(에 대한 인식)과 거주자의 정신건강은 보편적으로 연구되어 온 주제이지만, 그것이 근린 건조환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Lorenc et al.(2012)은 실제 범죄율, 치안에 대한 인식, 지역의 물리적/사회적 환경, 거주자의 건강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들을 종합 분석하여 내재되어 있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정리하고자 하였으며, 그 결과 실제 범죄 발생과 상관없이 동네에서의 범죄에 대한 두려움 자체가 거주자들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두려움은 방치되어 있거나 쇠퇴한 건조환경으로부터 기인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정리한 바 있다.
국내에서 수행된 연구들 중 동네 환경의 전반적인 무질서함이 정신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루고 있는 연구들(Yun, 2014; Lee & Choi, 2014)은 존재하나, 근린 건조환경의 구체적인 특성과 그것으로 인한 두려움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있는 연구는 찾기 어렵다. 한편, 대전과 충남 지역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주거환경이 우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아본 Jeong(2012)의 연구에서 지역의 안전성에 대한 인식은 정신건강과 유의한 관계를 가지지 않는데, 이는 실제로 안전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연구대상자들이 지역의 안전성이 매우 좋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 연구 결과에서 볼 수 있듯, 안전과 관련하여 국내 도시의 환경 수준 등은 서구권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환경 요소들의 개선이 필요한지를 찾아가야 한다.
(2) 심미적 특성
동네의 다양한 건조환경 요소들이 갖고 있는 심미적 특성 역시 연구 참여자들의 정서와 삶의 질에 있어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논해졌다. 이러한 심미적 경험에는 다양한 요소가 존재하지만, 무엇보다도 많이 이야기된 부분은 일상생활에서 늘 지나다니게 되는 길가가 깨끗한지, 시각적으로 불편함을 야기하지는 않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주택의 유형이 빌라나 주택(다가구, 다세대 포함)인 경우는 길거리나 집 앞에서 이루어지는 쓰레기 처리가 깔끔한지, 아파트 단지의 경우에는 공공 쓰레기 처리 시설이 청결하고 외부로 너무 많이 드러나 있지 않은지에 대해 주로 이야기 되었으며, 이러한 부분에서 시각적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또한, 동네에 나대지(비어있는 땅)가 방치되어 있거나, 폐건물, 비어있는 상가 등이 존재하는 경우 이러한 공간들 역시 연구 참여자들에게 아름답지 않으면서 동시에 불안감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건물을 방치를 하니까... 비둘기가 모이고. 여기 벽화(그라피티)도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많이 있으면 음산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좀 있잖아요. 건물이 비어 있다 보니까 새들이 잔뜩 모여 들었는데... 여기 신호등을 건널 때마다 위에 새들이 잔뜩 있으니 너무 불안해요. 너무 무섭고, 보기 싫고.” (C&D)
이외에는 동네의 다양한 주택, 건물, 시설들이 너무 노후한 경우도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했으나, 청결도의 문제가 크게 없다면 노후한 것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경우도 많이 있었다. 이렇듯 심미성에 대한 인식이나 반응은 비슷한 환경 요소라고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주관적인 부분도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Table 6.
Aesthetical Attributes Which Are Perceived To Have Positive/Negative Effects on Mental Health
|
Positive health effects -related attributes |
Negative health effects -related attributes |
![]() | ![]() |
| Neighborhood plaza which are always used by many people | An empty and neglected building with many birds |
한편, 물리적 건조 환경 요소 외에도 ‘사람들의 모습 자체’가 중요한 심미적 요인으로 이야기 되었는데, 공원 등 다양한 장소에 사람들이 모여서 웃고 이야기하고 활동하는 모습은 참여자 본인이 그 안에 있지 않더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요인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건조환경의 심미적 특성이 갖는 정신건강에의 영향은, 환경-건강 연구를 더 오랫동안 진행해 온 서구에서도 아직까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즉 건조환경의 미학적 경험 자체에 대해서는 상당한 연구가 축적되어 오고 있지만, 그것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경험적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이해할 수 있다(Evans, 2003). 현재까지 이루어진 연구들도 주로 자연의 심미성이 야기할 수 있는 긍정적인 정신 건강에의 영향에 국한되어 있으며(de Vries et al., 2013), 자연 요소 외의 건축/디자인적 아름다움 역시 이와 유사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이론적 추측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Abraham, 2010). 국내에서는 더더욱, 근린환경의 쾌적성에 대한 인식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Moon et al., 2018) 정도로 심미성이 매우 간접적으로만 다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본 연구의 결과에서도 나타나듯, 근린 건조환경의 심미적 측면은 주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보다 물리적 무질서(길가의 쓰레기, 방치된 건물 등)로 인해 ‘아름답지 않음’을 느끼는 것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Abraham, 2010). 이러한 맥락에서 ‘미’를 ‘질서’로 보고, 심미성을 별도로 논하기보다는 앞서 다룬 치안의 영역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많으며, 실제로 이들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3) 혐오 시설 및 요소
혐오에 관련된 부분은 심미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지만 심미라는 개념 안에 온전히 포함된다고 보기에는 어려워 별도로 분류하였다.
다민족 사회로 빠르게 변화해가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다른 문화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은 쉽게 극복하게 어려운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서 동네에 타민족들이 밀집해서 살고 있거나 외국어 간판 등이 많이 보일 때, 연구 참여자들의 혐오나 불편함은 상당히 큰 것으로 보여졌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 직접 만나는 사람들 자체에 대해 실질적인 불편함을 느낀다기보다는, 타민족 사람들에 대한 편견/스테레오 타입에서 기인하는 두려움, 혹은 거주하는 지역 사회의 정체성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부정적인 경험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술집이나 클럽과 같은 유흥업소의 존재나 그러한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네에서의 삶의 질을 상당히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꼽는 부분이었다. 또한 시각적으로 정돈되지 않은 노점이나 포장마차의 모습, 우시장 등도 많은 연구 참여자들에게 정서적으로 불편함을 주고 있었다.
다양한 건조 환경 요소 외에도, 사람들의 모습 자체가 혐오감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앞서 심미성에서 설명했었던 부분과 맥락이 같지만 그 세부적인 내용은 반대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노인들이 모여 앉아 술, 담배, 화투 등을 하거나 싸우는 경우, 비행청소년들이 모여 거칠게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 등은 상당한 불쾌감과 혐오감, 동네에 대한 불만족을 불러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 여기 중국어 간판이 너무 보기 싫어서 찍었어요. 간판이 이렇게 곳곳에 많이 있더라구요. 전에 이 시장이 있는 쪽에 살았거든요. 전에는 이러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 하나 둘 들어왔고 저는 그게 불편하더라구요. 그냥 한국 사회에선 중국인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안 좋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눈에 띄는 게 싫고. 더 불편한 건 이게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거. 제가 여기 오래 살았다보니 그 변화가 보이는 거죠.” (C&D)
2000년대 이후 국내에 이주민 공동체가 곳곳에 생겨나면서 이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그러한 내용을 다루는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본 연구의 내용과 관련하여서는 이주민 공동체와 관련하여 지역의 치안,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된 연구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두려움을 근거 없는 것으로 일축할 수는 없겠으나(Kim et al., 2013)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가 존재하는 측면도 있다(Park, 2017).
다인종, 다문화 사람들 간의 갈등과 혐오는 국내 뿐 아니라 서구권에서도 지속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사회 문제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에서는 다문화사회로서 오랜 역사와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다양성을 통한 긍정적 경험 또한 입증되고 있다. 예를 들어, Cattell et al.(2008)은 런던의 공공장소 이용자들의 사회적 교류와 정신 건강에 대한 질적 연구에서, 길가나 시장과 같은 공간들이 서로 다른 인종 간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촉진하는 장소로 작용하며, 이러한 교류가 사람들로 하여금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정서적 경험을 하게 함을 이야기한다. 오늘날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는 필연적이기에,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계획이 국내의 도시 계획 전문가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관리 운영
앞서 다룬 치안이나 심미/혐오와 밀접한 맥락에서, 건조 환경 요소들이 지속적으로 잘 운영되고 관리되고 있는지 여부 역시 중요한 영역으로 드러났다. 즉, 동네의 질서나 안전 유지와 관련하여 다양한 환경 요소들이 주민 자생적으로든, 공공 혹은 민간에 의해서든 방치되지 않고 관리되어 이용에 불편에 없는지 여부가 정신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특히 과거에 비해 지역의 환경 인프라가 개선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동네에 대한 애정과 삶의 질이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반대로, 전반적인 환경이 훌륭할지라도 일부 시설물들이 잘 관리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면 그러한 요소들이 삶에 있어 스트레스와 불안정한 느낌을 발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 이렇게 뒤에 자전거 보관대가 함부로 되어 있어서. 관리가 잘 안 되어 있고... 아무도 케어를 하지 않는 그런 모습인데... 미관을 해치기도 하고. 아 여긴 이런 걸 방치하는 곳이구나, 관리할 생각이 없나.. 한 번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계속 눈에 거슬리고 불편하고...” (A&B)
3) 밀도
일상에서 경험하는 밀도 역시 정신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드러났는데,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밀도는 주로 인구 밀도에 대한 부분이지만 토지 이용 및 주거 밀도 또한 포함한다. 앞서 설명된 1) 각종 인프라가 건조환경 요소들의 접근성, 사용 가능성 등과 관련된 ‘양적’ 측면에서, 2) 질서와 미, 그리고 관리가 ‘질적’ 측면에서 연구 참여자들의 정신건강에 각각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밀도는 양적인 접근성의 측면과 질적 쾌적성의 측면에서 동시에 작용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연구 참여자들은 밀도와 관련하여 다양한 층위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었는데, 주거지가 적당히 한적하고 조용해서 너무 번잡한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일상의 만족도에 있어 매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여졌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전해지는 에너지 등은 앞서 치안 부분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이야기 되었다.
Table 7.
Density-Related Attributes Which Are Perceived To Have Positive/Negative Effects on Mental Health
|
Positive health effects -related attributes |
Negative health effects -related attributes |
![]() | ![]() |
| A peaceful neighborhood street with not-too-many people | A complex street with many shops and parked vehicles |
지나치게 사람들의 밀도가 높은 것은 생활 속에서 꽤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는데, 특히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러한 밀도 경험의 스트레스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즉 대형 종교시설로 인하여 주말에 동네 전반이 번잡해지거나, 공원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경우, 혹은 출퇴근 시간대에 감당이 어려울 정도의 고밀도가 형성되는 동네 지하철 역 등은 모두 일상 속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또한 자녀가 있는 연구 참여자의 경우 동네의 학교나 학원이 과밀한 환경으로 운영되는 것에 대해 많은 불안과 두려움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여기 초등학교는 다 과밀반이고요. 또 하교 시간이랑 겹치면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놀이터에서 놀 수 없어요. 놀이터가 6-7군데 있는데도... 코로나가 아니라면 사람이 많은 게 오히려 좋죠. 정겹고, 아이들 웃음소리 이런 것들. 근데 코로나 때문에 그게 무서움으로 다가오죠...” (A&B)
밀도는 소음이나 공해와 같이 도시 생활에서의 기본적인 물리적 스트레스 요인으로 오랫동안 관심을 받아온 영역이다. 따라서 서구권에서는 Wirth(1938) 등 고전적인 연구에서부터 최근의 많은 연구들(Burdette et al., 2011; Duncan et al., 2013)에 이르기까지 거주지에서의 건축 및 인구 밀도가 정신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이론적/경험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국내의 연구들 중에서도 건축 및 인구밀도를 건조환경의 한 변수로 다루고 있는 경우가 꽤 있으나(Sung, 2011; Park et al., 2017), 그것이 정신건강에 유의미한 결과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난 경우는 드물다. 예외적으로 Lee et al.(2019)에서 인구밀도가 높은 것이 정신건강에 약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결과는 높은 인구 밀도가 컴팩트 시티(compact city)로서의 물리적 특성을 반영하기에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끼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도시들은 서구권, 특히 북미 지역의 도시들에 비해 토지의 혼합 이용 정도나 인구 밀도가 훨씬 높기 때문에 이를 다룸에 있어 상당히 다른 기준의 접근이 요구된다(Park et al., 2015). 따라서, 밀도 변수와 관련하여 기존의 경험적 연구들의 결과가 유의성을 보이지 못할지라도,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지에서의 인구 및 건축 밀도를 어떻게 인지하고 그것으로 인해 어떻게 건강 관련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2. 거주지역별 환경-건강 경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선정된 A&B, C&D 지역에서 각각 수집된 데이터의 내용을 비교한 결과, 정신건강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세부적인 근린 건조환경 요소나 혹은 그 요소들의 긍정적/부정적 영향이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즉, 구 규모를 기준으로 했을 때에 환경-건강 경험은 대체적으로 유사한 패턴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결과는 뉴욕시의 5개 지역(borough)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여 스트레스를 주는 근린환경 요인을 비교한 Shmool et al.(2014)의 연구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같은 행정구 안에서 세부적으로 어디에 거주하느냐에 따라서는 연구 참여자들의 경험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평균적으로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A&B 지역 안에서도 세부적인 거주지에 따라 생활 인프라의 양적인 부족이나 질적 저하를 인지하여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 같은 결과는 행정구를 공간 범위의 기준으로 하고, 행정단위로 추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독립변수와 종속변수를 설정하여 양적으로 분석하는 기존의 연구들이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근린 건조환경-건강의 관계를 제대로 관찰 및 검증하지 못할 수 있다는 주장(Kim, 2008; Lee et al., 2019)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B 지역과 C&D 지역에서 관찰된 환경-건강 경험에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였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게 나타났던 것이 앞서 언급한 교육 인프라에 관련된 부분이다. 즉,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A&B 지역이 C&D 지역에 비하여 자녀들의 교육 환경(학교와 학원 등)과 관련하여 참여자들에게 만족스러운 주거환경을 조성하고 있었으며 이는 정신건강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Shim(2020)은 아파트 단지 개발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한국의 주거지 계획 과정에서 교육 특히 사교육을 위한 공간이 근린환경의 주요한 요소로 편성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의 근린 주거환경이 필연적으로 계층성을 지님을 설명한 바 있다. 본 연구에서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교육 환경과 관련하여 A&B, C&D 지역 거주자 간의 경험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내용을 반영하는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설명되었듯, 교육환경의 질적수준에 대한 평가는 지역의 다른 모든 부분이 만족스러워도 그 곳을 떠나 이사하는 것을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C&D 지역 연구 참여자들의 경우, 거주하는 동네에 자녀들이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물리적으로 쾌적한 교육 시설이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그것을 다른 건조 환경 요소(공원, 상업시설, 행정기관 등)처럼 ‘만족스러운’ 환경 요소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교육환경이 다른 건조환경과는 다르게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기능 뿐 아니라 계급의 유지 및 재생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에 그 질적 부족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발생시키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학군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거의 최하위죠. 이 지역이 더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학군이 크다고 생각을 해요. 일반적인 중산층 가정이 계속 자리 잡고 살려면 학군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약하다 보니 젊은 세대들이 잠깐 살다 떠나는 곳이 되지, 정착하기에는 쉽지 않은 곳이 되는 거죠. 전 5년 전부터는 이사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어요... 아이가 취학 연령층이 되면서부터는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까지는 사실상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중,고등학교부터는 좋은 학교가 없어서...” (C&D)
대조적으로, 일반적으로 좋은 학군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는 A&B 지역의 연구 참여자들은 많은 경우 이러한 부분에서 높은 만족도와 안정감을 느끼는 것으로 관찰된다. 이 같은 현상은 반드시 자녀가 있는 연구 참여자 뿐 아니라, 언젠가 자녀를 가질 수도 있는 무자녀 연구 참여자에게도 다소 추상적인 형태이지만 유사하게 나타난다.
“...저는 사실 저희 부부끼리만 살 거면...어디 살아도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 애가 생기고 아이가 학교에 간다 그러면.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 위해 어디로 간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어서. 아이들의 언어도 행동도 환경에 따라서 정말 많이 다르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에 노출이 되는 게 부모로서 싫을 것 같아서. 그런 마음이 강해질 것 같아요. 애들이 좋은 것만 보고 자랄 수 있게... 그래서 지금 같은 환경에 계속 살 수 있었으면 좋겠죠. 여기는 괜찮으니까...” (A&B)
이에 더하여,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세부 요소가 A&B 지역과 C&D 지역에서 거의 유사하게 나타난 반면, 부정적인 요소에 있어서는 C&D 지역에서 더 빈번하고 두드러지게 언급된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 요소들은 주로 가로환경, 치안, 심미적 특성, 혐오시설 영역에 속한 것이다. 물론 A&B 지역에서도 해당 영역에서 연구 참여자들의 정신 건강과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존재하였지만, C&D 지역 연구 참여자들이 해당 영역과 관련하여 부정적으로 인지되는 세부 요소와 그 영향력을 경험하는 정도가 더 빈번하고 선명하게 나타났다.
IV. 결론
본 연구의 결론과 한계, 시사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구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진 유도와 심층 면접을 통해 근린의 각종 인프라(보육 및 교육, 생활, 자연, 교통, 가로환경), 질서와 미, 그리고 관리 (안전, 심미적 요소, 혐오시설, 관리와 운영), 밀도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건조환경 요소들이 지역의 거주자들의 정신 건강에 긍정적,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는 방법론적 특성상, 일반화할 수 있거나 통계적 대표성을 갖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본 연구를 통해 파악 및 분석된 근린 건조환경 요소들을 선행 국내 연구들을 종합한 내용 (Table 1)과 비교한 결과, 기존에 정신 건강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갖는 것으로 논의된 주요한 환경 요소들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본 연구 결과에서는 토지이용 대신 그 세부 요소로 분류될 수 있는 밀도를 독립적인 영역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는 참여자의 주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건조환경 요소의 영향을 파악한 본 연구의 방법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즉, 토지이용이라는 변수는 그 규모의 특성상 일반 거주자들이 일상에서 그 영향력을 명확하게 인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며, 같은 맥락에서 건조환경과 건강에 대한 국내 연구들을 종합 및 분석한 Kim et al.(2017)에서도 토지이용은 다른 건조환경 변수들과 달리 주로 객관적 방법으로만 측정되고 있다. 이에 더해, 본 연구에서는 이전의 국내 연구들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교육 및 보육 시설의 질적 환경, 심미와 혐오라는 개념과 관련된 다양한 건조환경 요소들(다문화 지역 공간 등)을 새롭게 논의하고, ‘왜’, ‘어떻게’ 이러한 요인들이 정신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내러티브를 포함하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둘째, 본 연구는 크게 두 가지의 주요한 한계점을 가진다. 먼저, 온라인 지역사회 커뮤니티를 통해 연구 참여자를 모집하고 줌으로 모든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법을 택하면서 이러한 내용에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50대 이상 연령층을 연구에 포함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많은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듯(Kim & Cho, 2008), 노인은 일반적으로 근린 환경을 더 많이 이용하는 그룹이며 따라서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있어 근린 환경의 영향력은 매우 크고 중요하다. 그러므로 노인 및 장년층을 대상으로 그들의 실제 경험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연구들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큼을 명시하고자 한다. 또한, 본 연구는 다룰 수 있는 내용적 범위의 한계로 인하여 개인 특성별로 발생하는 환경-건강 경험의 차이는 본론에서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존 연구들에서 나타난 것처럼, 개인 특성에 따라 근린 환경의 경험에 있어 중요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며(O’campo et al., 2009), 나아가 어떤 그룹에게 어떤 근린 환경 계획이 필요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춘 질적 연구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본 연구는 관계자들에게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시사점을 제시한다. 먼저, 근린 건조환경-정신건강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는 후속 연구를 위한 기초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Cummins et al.(2007)은 환경-건강 분야에서 다양한 질적 연구를 통해 ‘어떻게 구체적인 환경 요소들이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강력한 통찰력과 단서를 얻을 수 있으며, 이것은 이후 그 관계의 정도를 측정하거나 일반화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양적연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본 연구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의미를 가진다. 한편, 본 연구는 교육환경의 질적 특성이 거주자의 정신건강에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그 경험과 건강에의 영향력이 거주 지역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다른 어떤 요소보다 명백하게 다르게 나타남을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환경이 갖는 강력한 영향력은 다른 건조 환경 요소의 영향력을 상쇄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을 것으로 예측되며, 이러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후속 연구를 기대해 볼 수 있겠다. 한편, 동일한 문제와 관련하여, 본 연구는 도시 정책 및 계획가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데 이는 교육 인프라 확충의 필요성에 대한 것이다. 모든 지역에 동일한 양과 질의 교육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지역적 불균형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앞서 설명된 혐오 요소와 관련하여,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도시 공간의 계획이 현재 시점에서 국내의 도시 정책 및 계획가들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안임을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