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II. 이론적 배경
1. 선행연구 분석
2. 챗방, 찬방, 찻방, 찬마루
III. 챗방의 분포와 유형
1. 분석 대상 및 방법
2. 제주 민가에서 챗방의 비율 및 지역별 분포
3. 챗방의 유형과 기능
IV. 챗방의 형성 배경과 근대적 특징
1. 제주의 유교 문화와 챗방 형성의 연관성
2. 근대적 공간분화로서 챗방
V. 결 론
I. 서 론
챗방은 제주 민가의 ‘전통적인 제주 살림집에 존재하는 특별한 공간요소로, 주로 정지(부엌)과 상방(마루)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 일반적으로 ‘식사공간’이라고 간단히 말하지만, 챗방의 정체가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적은 없었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내에 재현된 제주 민가를 보면 챗방이라는 단어 옆에 “Dining room”이라고 간략히 적혀 있다<Figure 1>. 그러나 챗방을 단순히 식당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정확해 보이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한국 주거사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주거사적 의미로 식당은 ‘가족의 정규적 식사가 행해지는 장소’를 말하는데(Joo, 2002), 한국주거에서는 전통적으로 식사만을 위한 공간이 별도로 발달하지 않았다(Do, 2020). 무려 왕이 거주하는 궁궐에도 별도의 식당이 없었을 정도로, 식사장소에 한국의 전통주거문화는 독특한 측면을 보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챗방을 단순히 식당으로만 정의하는 것은 훨씬 명확한 연구를 요한다. 선행연구에서 챗방을 주목하지 않았던 것은 사례조사의 개수가 많지 않았던 때문이기도 하다. 민가 연구로 많은 업적을 남긴 선행연구 중에서도 제주도 사례는 Jang(1981) 50개, Kim(1988) 7개, Jo(1983) 12개, Joo(1987) 5개에 그쳤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한국의 민가 연구가 전국을 대상으로 하였던 만큼 방, 마루, 부엌 등 개별적 공간에 대한 고찰보다 주택 전체의 평면 분석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는 이유도 들 수 있다.
그러던 차에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로부터 건축가 김홍식의 1971~2001년 민가조사자료 일체를 제공받아 현재까지의 민가조사 중 가장 많은 사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2) 그중 제주도 자료는 1972~1984년에 조사된 총 254개로 집계된다. 배치도, 평면도, 민가조사표,3) 사진, 스케치, 마을조사 등 민속학 조사법에 따른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한국 전통민가의 옛 모습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었던 1970~80년대의 조사라는 점에서도 귀중하다. 이 중 일부는 1992년 출간된 한국의 민가나 1974년과 1985년에 발행된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에도 사용되었지만, 일부만 소개되었을 뿐 나머지는 공개되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특히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중에서 김홍식의 조사에 대해서는 2011년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국민속학회에 의해 자료의 공신력과 중요성이 재차 조명된 바 있다(Lim, 2011). 이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제주 민가의 ‘챗방’ 기능과 정의를 규명하고 주거사적 의미를 도출하고자 한다.
II. 이론적 배경
1. 선행연구 분석
그동안 챗방만을 다룬 연구는 제주도 정지와 관련한 챗방에 대한 언급을 약간 살펴볼 수 있는 정도였다. 예외적으로 제주 정지에 관한 연구 중 비교적 챗방을 비중있게 다룬 Lee and Song(1999)을 참고할 수 있다. 총 70채의 민가 사례를 바탕으로 주민 인터뷰를 병행하였고, 제주 정지와 챗방의 관계에 대한 공간적・생활사적 특징을 살폈다는 점에서 중요한 참고자료로 판단된다. 그외 ‘제주민가의 가사노동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정지와 챗방의 관계를 분석한 선행연구도 있으나(Lee & Kim, 2001), 사례 수가 10개에 불과하고 와가(瓦家)에 한정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챗방에 대한 선행연구의 해석은 연구자마다 다소 상이함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챗방이 ‘제주도의 살림집에만 있는 공간이며 마루가 설치된 전형적인 식사공간’(Kim, 1992)이라 설명한 것에 반해, ‘부녀자들의 취사준비, 밥상준비, 맷돌질, 식사 등을 한다’(Jang, 1981)는 설명도 볼 수 있다. 전자가 챗방을 식당으로 정의하였던 것에 반해 후자의 해석은 부엌부속 공간으로 규정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 두 차이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서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국주거에는 전통적으로 식당이라는 공간이 별도로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챗방이 정말 식당으로만 기능했는가에 대한 명확한 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작은 구들에 종적으로나 횡적으로 위치하며, 바닥은 흙바닥 또는 마루바닥, 정지와의 사이에는 보통 벽이나 출입문이 없는 경우가 많고, 상방보다 정지 쪽에 가까운 공간’(Jang, 1981), ‘부엌과 상방 사이의 식사 공간. 작은 방이 없는 3칸집의 부엌에 있던 식사공간이 위생상 기능적으로 분화하여 하나의 방을 이룬 곳. 주로 4칸집에서 발견’(Cho, 1983), ‘식사와 상차리기를 하는 공간으로 가사노동공간과 단란공간 사이에 있는 완충공간’(Kang, 1985), ‘식사를 하는 공간으로 주부의 가사노동 절감과 식사공간의 위생적 성격이며 사회적 생활공간인 상방으로부터 공간분화를 한 것’(Yang, 1989), ‘식사 전용 공간. 챗방은 정지로 통하는데 한 칸 전부를 차지하는 넓은 면적에 해당’(Kim, 1996), ‘정지와 상방 사이에, 또 구들 뒤 혹은 앞에 위치한 정지로 트인 작은 공간’(Lee & Song, 1999), ‘정지거리 챗방에서는 주로 하인들이 식사하였으며, 정지의 보조기능, 챗방이 정지보다 넓은 면적을 점유하는 경우도 있음’(Lee & Kim, 2001), ‘챗방은 대부분 마룻바닥이며, 식사 또는 배선공간으로 사용. 4칸집이 되면 보통 챗방을 마련하지만 일반적인 민가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공간으로서, 육지에서는 찬방이라고 부름’(Yang, 2007), ‘제주도 초가에서만 마련된 특이한 식사 공간, 사회적 생활공간으로인 상방으로부터 공간분화를 한 것’(Lee, 2012)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상을 종합하면 챗방의 선행연구는 크게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챗방은 주로 4칸집에서 마련되고 1칸 규모의 마루바닥 공간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흙바닥이라는 설명도 찾아볼 수 있어 ‘챗방=마루바닥’이라는 점을 단언하기 힘들다. 둘째, 챗방을 상방에서 분화한 공간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컸다. 반면 부엌에서 분화한 공간이라는 의견도 있어, 이에 대한 추가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셋째, 챗방을 식사공간으로 보는 경향이 컸으나 연구자에 따라서는 ‘여성의 식사공간’이나 ‘배선공간’과 같은 복합적 기능공간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간혹 챗방을 찬방과 같다고 본 연구도 있었으나 이 또한 면밀히 밝힐 필요가 있다. 넷째, 챗방 외에도 ‘찻방, 천방, 첨방’ 등의 용어도 사용한다는 설명을 볼 수 있다.
이상은 챗방에 대한 선행연구를 최대한 종합한 것으로 그 이외의 구체적인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까지는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규정하고 있듯이 ‘식당’이라는 정의가 통용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본 자료를 제공한 김홍식도 한국의 민가를 통해 ‘챗방은 향후 보다 전문적인 연구가 요망된다’고 일찍이 언급하였다(Kim, 1992). 김홍식의 민가조사자료는 민속학적인 조사방법인 거주자 면담자료를 포함하고 있어 건축도면만으로 확인할 수 없는 공간과 실생활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며, 이 자료를 통해 가장 많은 사례를 근거로 챗방을 규명한다는 연구의 차별성이 기대된다.
2. 챗방, 찬방, 찻방, 찬마루
일부 선행연구에 나타난 바와 같이 챗방이 부엌 옆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챗방은 한국 전통주택에 있었던 ‘찬방’이나 ‘찻방’과 유사하게 볼 수도 있다. 본 연구의 원자료 저자인 김홍식도 처음에는 챗방과 찬방의 유사성을 언급하였다. 하지만 그의 견해는 한국의 민가를 집필하던 도중에 바뀐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민가 1권에서는 챗방이 ‘찻방’이라고도 불린다는 점을 들어 양반가옥의 ‘차방, 다방(茶房)’과 관련된다고 피력했던 것에 반해(Kim, 1992), 2권에서는 ‘찬방은 음식보관의 기능이 강조된다는 점, 그리고 찻방은 일종의 제사공간이라는 점’을 들어 ‘챗방-찻방-다방-찬방’의 관련성을 부인하였기 때문이다.
“챗방은 제주도의 살림집에만 있는 공간으로, 마루가 설치된 전형적인 식사공간인 바, 접객공간인 상방과 부엌공간을 잇는 위치에 놓인다. 이와 비슷한 용도로서 육지의 양반집에서 과상방, 찻방, 찬방 등이 있는데, 이들은 각각 웃방 뒤나 혹은 대청 건너에 놓이며 일종의 수납공간과 함께 이용되었으나 제주도만큼은 이것이 부엌 곁에 배치되어 식사전용공간으로 쓰인다. 챗방은 찬방의 와전으로 보는 이도 있으나 기능면에서 볼 때 찬방은 음식 보관 기능이 강조된다. 찻방은 일종의 제삿공간이고 과상방은 큰일 때 임시로 설정하는 공간이며 붙박이 기능을 갖는 것은 아니다.” (Kim, 1992)
이처럼 챗방에 관한 혼란은 그만큼 제주 챗방의 기원이나 쓰임에 관해 충분한 설명이나 선행연구가 부족했던 점을 드러낸다. 첫째, 챗방과 찬방은 이용대상이 서로 다르다. 찬방은 찬간, 혹은 밥청이라고도 하는데 상류주택의 부엌부속 공간이자 하인의 식사공간이었다. 한국 민가 연구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지리학자 장보웅은 챗방이 “육지부 민가의 찬방에 해당되는 방”이라고 보았지만(Jang, 1981), 한국주택사 연구의 권위자 주남철의 경우 “찬방은 노비와 같은 아랫사람의 식사공간이지 일상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밝힌 점(Joo, 1987)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이에 챗방은 육지 상류주택의 찬방이나 찻방과 동일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제주 민가 고유의 생활방식과 기후 및 문화를 기반으로 재고찰할 여지를 보인다.
둘째, 찬마루와 챗방은 등장시기가 다르다. 찬마루는 1920~30년대 부엌개량론의 결과물로서, 부엌 옆에 상차림을 위한 배선공간을 별도로 두자는 주장에 따라 등장한 것을 말한다(Do, 2020)<Figure 2>. ‘부엌 옆의 마루방 공간’이라는 점에서 보면 챗방과 찬마루는 일견 유사해 보이지만, 찬마루가 20세기 새롭게 등장한 공간요소였던 반면, 챗방은 제주 지역에 전통적으로 존재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20세기 초 부엌개량론에서 찬마루 도입이 논의되었던 것은 부엌과 안방 사이의 배선동선을 단축하자는 의도였다. 전통적으로 한국부엌은 부엌에서 상을 차려 부엌 밖으로 들고 나와 다시 마당을 돌아 각 방으로 상을 옮겨야 하는 생활방식이었기에, 그 불편함을 개선하고자 한 것이다. 찬마루를 식당공간으로 쓰자는 주장도 이 시기에 일어났는데, 식구들이 부엌 가까이에 모여 함께 식사하는 생활방식을 합리적 생활로 보았기 때문이었다(Do, 2020). 부엌과 안방 사이에 작은 문을 두어 배선 동선을 단축하자는 주장이 등장한 것도 같은 시기의 일이다. 이에 비해 챗방은 제주 민가에 이미 존재한 공간이었다. 제주 민가에서 챗방이 없는 경우와 있는 경우의 차이는 대표적으로 <Table1>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III. 챗방의 분포와 유형
1. 분석 대상 및 방법
김홍식의 제주 민가 조사는 총 279개 사례로, 북제주군(산북)의 114개, 남제주군(산남)의 165개 마을과 민가에 대한 정보이며, 시기적으로는 1972~74년, 1978년, 1984년으로 나눠져 있다. 다만 현재 지명과 다른 경우도 있어, 본 연구에서는 조사 당시 시점인 구(舊) 주소를 기준으로 산정하였다. 이 279개 자료 중에는 마을의 기본적 개요 정보만 기록된 것, 그리고 향교나 마을회관처럼 주택이 아닌 경우도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서 주택에 해당하는 자료만 추리면 254개이지만, 챗방의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도면 자료를 갖춘 최종적인 분석대상은 233개로 집계되었다. 지역별 분포를 보면 북제주군(산북)에서는 한림읍이 51개로 가장 많고, 남제주군(산남)에서는 안덕면이 31개로 다음을 이룬다(<Table 2> 참조). 이들 사례는 실측도면, 사진, 민가조사표, 전통가옥조사서 등의 정보를 담고 있어 건축뿐 아니라 생활사적 고찰도 가능하다. 다만 분석 대상의 모든 도면과 민가조사표의 정확도가 완벽하게 일정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김홍식 교수의 민가조사에는 대학원생들도 동원되었기에, 실측 도면의 정밀도나 민가조사표 및 스케치의 정확도 등에서 조사자에 따른 개인차를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이것은 당시 조사환경에 따른 부득이한 한계로 보인다.
분석방법은 정량적・정성적 분석을 병행한다. 정량적 분석은 안거리, 밖거리, 정지거리 등에서 정지, 상방, 큰구들, 고팡 등의 공간의 존재유무를 계량적으로 구분한 것이다. 정성적 분석은 챗방의 크기, 바닥재질, 위치 등을 기준으로 유형을 분류하였다. 제주 챗방에서도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간 선행연구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Table 2.
Reginal Housing Data Status of Kim’s Survey in Jeju
2. 제주 민가에서 챗방의 비율 및 지역별 분포
계량적 분석은 다음의 두 단계로 진행하였다. 첫째 배치도를 기준으로 안거리, 밖거리, 모커리, 정지거리, 쇠막 등 부속거리 등 엑셀로 조사한 각 장을 구분하였다. 둘째 각 채의 평면도를 기준으로 정지, 정지, 상방, 큰구들, 고팡 등 공간요소의 유무를 추가 항목으로 두어, 이들 각 요소의 존재 유무를 ‘0과 1’로 분류하여 엑셀에 기입하였다. 비고란에는 방의 바닥 재질 차이(흙, 시멘트, 마루바닥 등)을 표기하였다.
이에 따른 정량적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체 분석 대상 233개 중 챗방이 존재하는 경우는 59개로서, 약 25.3%로 나타났다. 즉 챗방의 존재 비율은 제주 전통가옥의 약 1/4 정도에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 제주 챗방의 보편성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선행연구에서 언급되었던 ‘4칸 이상의 주로 큰 규모의 제주 가옥에 나타나는 공간 요소’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결과라 판단된다.
다만 특징적인 것은 챗방의 유무가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남제주군(산남)보다는 북제주군(산북)이, 동부보다는 서부가 챗방의 존재 비율이 높게 드러났다. 제주 북부는 38.2%, 남부는 15.3%로 조사되었는데, 같은 북부 내에서도 동부보다 서부가, 남부 지역 내에서도 동부보다 서부가 챗방이 많았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즉 북동(23.3%)보다 북서(45.7%)가, 남동(4.9%)보다 남서(54%)지역의 챗방 비율이 훨씬 더 큰 것이 확인된다. 전체적으로 제주 동부지역보다 서부지역의 민가에 챗방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Table 3> 참조).
Table 3.
Ratio of Exsistence of Chat-bang and Distribution by Region
3. 챗방의 유형과 기능
챗방의 유형은 크기와 바닥재 질의 차이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김홍식의 조사자료를 검토한 결과, 챗방은 집에 따라 크기가 반칸에서 한칸 반 정도로 다양하며, 바닥재질도 마루, 흙바닥, 시멘트바닥 등으로 서로 달랐다. 이를 유형적 특징으로 분류함에 따라 크게 툇마루형, 마루방형, 흙바닥형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툇마루형’은 2칸집에서 발견되는 작은 유형으로, 정지 공간 내에 툇마루 형식을 말한다. 비록 직접적으로 ‘챗방’이라고 표기하지는 않았지만, 부엌부속 공간으로 사용하였던 영역이다. 김홍식의 자료 중 <Figure 3>을 대표로 들 수 있으며, 정지와 방 사이에 ‘부엌마리’라 표기한 것을 볼 수 있다. ‘마리(마루)’와 ‘부엌’을 붙여 부름으로써 온돌방보다는 부엌 용도에 더욱 가까운 공간임을 지시한다. 부엌(정지)과 주생활공간(온돌방) 사이에 전이영역으로서 챗방과 같은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둘째 ‘마루방형’은 4칸집 이상에서 발견되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제주도 챗방이라 할 수 있다. 정지와 상방 사이에 챗방이 위치하고 크기는 반칸 혹은 한칸 정도로 다양하다. 챗방이 아주 넓은 집은 한 칸 반짜리도 있었으나. 유의미한 비중은 아니었다. <Figure 4>는 김홍식의 조사 중 1칸짜리 마루방형 챗방의 대표사례이다.
마지막으로 ‘흙바닥형’은 마루가 깔리지 않은 챗방을 말한다. 상방은 반드시 마루 공간인 것에 반해 챗방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 사례로 <Figure 5>의 ‘남제주군 안덕면 창천리의 오성진씨 가옥을 들 수 있다. ‘챗방’이라 적혀있지만 마루결이 표현되어 있어 마루가 깔리지 않은 챗방도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챗방이 있었던 집들의 민가조사표를 보면 ’향후 형편이 좋아지면 챗방을 마루방으로 바꿀 의향이 있다‘고 밝혀 아직까지는 흙바닥 혹은 시멘트바닥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챗방의 기능을 재검토하였다. 실제로 이 공간이 식당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는지를 확인하는 단계이며 본 연구의 주요 목적이기도 하다. 이 분석이 가능했던 이유는 김홍식의 1972~84년 제주 민가 자료중에 ‘민가조사표’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김홍식은 거주자 면담을 통해 가족의 직업과 일과뿐 아니라 잠자고 밥 먹는 장소에 대한 정보 등을 민가조사표로 기록하였다. 다만 모든 사례에 공통된 것은 아니어서, 챗방이 있는 사례는 총 59개 중에서 32개 사례만 민가조사표가 남아있다. 이들을 기준으로 식사장소를 분석한 결과, 챗방이 있는 민가에서도 식사장소는 계절과 상황에 따라 다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Table 4> 참조).
<Table 4>에 따르면 제주 민가에서 식사 공간은 상방, 챗방, 작은 구들, 큰구들의 순서인 것을 알 수 있다. 챗방이 있는 집이라 할 지라도 식사장소로는 오히려 상방이 더 자주 사용되었음을 의미하며, 추운 겨울에는 작은구들을 많이 이용하였다. 작은구들은 정지 옆에 있는 온돌방으로서 큰구들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배선동선이 짧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챗방의 식사공간으로서의 기능은 주부에 국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홍식의 민가조사표 중 ‘주부 일과’를 기록한 내용에 따르면 낮시간의 주부가 간단한 식사를 할 때는 챗방에서 한다는 답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챗방은 처음부터 상방의 위계에 가까운 식당이었다기보다 정지 한편의 부엌부속 공간으로 발달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Table 4.
Reginal Housing Data Status of Kim’s Survey in Jeju
| Dining Space | Ordibary Day | Farming Season | Winter | Subtotal |
| Chat-bang | 11 | 6 | 6 | 23 |
| Sang-bang | 17 | 17 | 3 | 37 |
| Large Gudeul | 3 | 1 | 7 | 11 |
| Small Gudeul | 2 | 1 | 15 | 18 |
| Outdoor | 0 | 7 | 0 | 7 |
이상의 분석에 따르자면 챗방을 단순히 ‘식당(Dining room)’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챗방은 훨씬 더 복합적 기능의 부엌부속 공간으로서 제주 생활과 기후, 문화 등 다양한 영향관계에 기인한 고유명사로 불릴 필요가 있다.
IV. 챗방의 형성 배경과 근대적 특징
1. 제주의 유교 문화와 챗방 형성의 연관성
3장에서 분석대상 233개 중 챗방은 약 25.3%에 해당한다는 점을 밝혔다. 전술한 바와 같이, 특이할 만한 사항으로 3장 2절의 <Table 3>에서 챗방의 유무에 대한 지역별 편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주 동부지역은 서부보다 챗방이 적었다는 점인데, 이것을 정지거리 별동형의 동서 지역 차이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지거리 별동형은 부엌을 별채로 구성한 것을 말하는데, 조사 결과 동부에서 정지거리 별동형이 많았다. 이에 따른다면 제주 동부에서 챗방이 적은 이유는 정지를 안거리에 부속시키지 않고 별동으로 구성하였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지거리 별동형의 형성이 챗방의 유무에 미친 영향력도 고려대상이 된다.
일반적으로 부엌을 별도의 건물로 분리해 놓는 것은 조선시대 연경당의 반빗간이나 고구려 안학 3호분의 벽화에 등장하는 부엌 그림처럼 상류층 주택의 부엌 형태로 간주하기 쉽고, 그러한 해석의 대표적 사례로 Kim(1996)을 들 수 있다. 정지거리 별동형4)이 19세기 초・중기의 대형민가에서 나타난다고 언급했던 연구로, 창건주가 모두 지배층이나 부농 계층에 속하는 신분이며 창건 연대가 19세기 중기 이후로 내려오지 않는 비교적 고식(古式)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정지거리가 별동으로 발달한 주택의 경우 안거리의 간잡이를 삼칸(三間)으로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예제(禮制)에 따른 중심성 표현을 위한 삼간정침(三間正寢) 이념에 따랐을 것이란 주장이다. 안거리의 삼칸 형식을 지켜 창건주의 신분상의 권위와 명분을 맞추기 위해 안거리는 4칸으로 하지 않고 정지를 별동으로 만드는 방식을 택했으리라고 추정한 것이다(Kim, 1996). 이러한 설명은 동부가 서부보다 유교적 영향이 컸기 때문에 부엌을 별동으로 두어 공간 위계를 구분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이 주장에 따른다면 동부지역에서는 유교의 영향이 강해 정지를 별동으로 구분하였고, 식사는 큰구들이나 상방에서 하는 생활문화였으므로 챗방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반대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정지거리 별동형을 유교보다는 기후와 생활관습의 영향으로 해석한 선행연구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Lee and Song(1999)은 동부지역의 경우 가족이 남녀 구분 없이 정지거리 안에서 함께 식사하던 문화가 있었고 이로 인해 부엌을 별채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유교 영향과는 오히려 반대의 해석이다.
Lee and Song(1999)은 제주 지역 70개 가옥의 면담조사를 통해, 정지거리 별동형이 많은 동부지역의 경우 오히려 남녀의 식사 공간을 구분하지 않고 그 안에서 가족이 함께 식사하였음을 밝혔다. 이는 날씨의 영향에 따른 것으로, 제주 동부지역은 솜이 귀해서 겨울철을 안거리에서 지내지 못하고 봉덕불을 둔 정지거리에서 남녀가 다 함께 지냈다는 점을 들었다.
“남자든 여자든 정지에서 근 20시간을 보냈수다.”(동부, 송당리, 남 70세), “작은 부엌에서 자도 밥도 부엌에서 먹고 어떵 마루에 가 먹어?”(동부, 하도리, 여 55세), “여기는 다 정지에서, 밥을 정지에서 벅었지. 별도로 마루하고 정지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먹지는 않았어.”(동부, 하도리, 남 69세), “옛날에는 남자들하고 여자들하고 따로 먹었습니다. 우리 집은 옛날부터 양반의 집으로 불편해도 그렇게 먹었습니다. 다른 집은 그런데가(정지에서 남녀가 다 함께) 많고, 같이 어우렁 정지에서, 우리 집은 경 않하였수다.”(동부, 신흥리, 여 60세)(Lee & Song, 1999)
또한 Lee and Song(1999)은 챗방이 많이 발달한 서부지역에서 오히려 남녀의 식사장소를 구분했음을 확인하였는데, 주민 면담을 통해 여성은 챗방, 남성은 상방에서 식사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남자들은 방이나 마루서, 여자들은 부엌이나 청방에서 먹었죠. 찻방이라고도 하고. 남자는 양반집이 어떻게 해서 남자가 부엌에서 밥을 먹느냐 해가지고 따로 먹었죠.”(서부, 명월리, 남50), “찻방은 음식 차리고 대개 거기서 음식을 먹죠. 여자들만. 남자들은 상방에 앉아서 먹고. 여자들이 차려서 갖다주죠. 남자들은 양반이었죠. 옛날에는 겸상이 드물죠.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서부, 유수암리, 남 76세), “식솔이 많으믄 복잡해서 남자는 남자대로 상방에다 따로 갖다놓고 여자는 부엌 안에서 먹고.”(서부, 동일리, 여 83세), “옛날에 남자들은 마루(상방)에서 먹었고 여자하고 애들은 부엌에서 먹었주게. 아주 오랜 옛날에는 제창문이라고 있어서 마루에 제일 어른이 앉아서 식사도 독상 채려서 드리고 하였주.”(서부 창천리, 남 57세)(Lee & Song, 1999)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챗방의 등장과 발달은 유교의 영향보다 기후나 남녀공동의 식사 관습에 더욱 영향을 받은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5) 정지거리가 별동으로 구성된 것을 반드시 유교의 영향이라 볼 수 없다는 점을 방증한다.6) 반대로 제주 동부에서는 정지거리가 안거리와 분리되었기 때문에 안거리에서 정지와 상방 사이에 전이공간을 만들 필요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챗방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것은 챗방의 발달과 제주 여성의 지위를 연관시켜 해석하는 점에서 중요한 참고사항이 된다. 만약 동부지역의 유교적 영향이 서부보다 컸다는 주장에 따른다면(Kim, 1996), 챗방이 기능적으로 발달한 서부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Lee and Song(1999)과 같이 제주 동부의 민가에서는 정지거리 안에서 남녀가 함께 식사하였다고 분석하였므로, 동부지역의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오히려 서부지역에서 챗방이 발달한 것이 여성과 남성의 식사공간을 구분하는 차별적 장치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챗방의 발달을 두고 유교적 영향을 논하는 것은 동서부 지역의 단순한 비교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한편 정지거리 별동형의 발달을 전통적 관점이 아닌 근대적 생활변화 경향으로 보는 견해도 주목할 만하다. Kim et al.(1996)은 정지거리가 별동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을 위생의 개념으로 해석한 바 있다. 챗방이 유교적 영향이나 겨울 추위의 문제보다 위생상의 이유가 중요해지는 근대적 현상의 반영이라는 분석이다. 1920년대 생활개선운동7)에 따라 부엌과 변소의 개량이 일어났는데 대표적으로 정의골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졌다는 주장이다. 이때 부자집일수록 정지거리를 별도로 독립시켰고, 이는 면적상・경제적 여유가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는 챗방을 20세기 이후에 등장한 것으로 간주한 해석으로, 실제로 챗방이 제주 민가에 등장한 정확한 시점을 밝혀야만 타당성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한계가 엿보인다. 챗방에 대한 전통적, 근대적 영향관계는 현존하는 도면 조사 사례로만 단언할 수 없다는 현실적 제약이 있지만, 향후 다학제적 심화연구를 통해 보다 면밀한 관찰을 요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2. 근대적 공간분화로서 챗방
이상을 살펴보면 챗방은 상방과 정지 사이의 중간영역이자 전이공간으로서,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식사장소로 옯기는 배선동선을 단축하도록 발달된 제주민가 공간요소이다. 한국 부엌은 전통적으로 방이나 마루 등 다른 실내공간과 단절된 반외부 공간이었으며, 이러한 불편함을 고치고자 등장한 것이 1920~30년대 부엌개량론을 통해 논의된 찬마루나 ‘부엌과 안방 사이 작은 문’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챗방을 통한 배선동선의 단축은 ‘전통민가에 존재한 근대적 장치’라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보인다.
그런데 함경도의 정주간이나 강원도・경북 민가의 봉당처럼, 부엌과 실내공간(방, 마루)사이에 벽이 없이 개방된 사례가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Jang, 1981). 이들 또한 챗방처럼 배선동선을 단축하는 기능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챗방은 정지(부엌)과 상방(마루)사이에 분명한 명칭을 가진 뚜렷한 중간영역이라는 점에서 봉당이나 정주간과는 다르다. 챗방과 같은 구성이 가능했던 이유로는 첫째 제주도 정지의 독특한 아궁이 형식을 들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제주도 정지는 부엌 옆 온돌방을 마주하는 아궁이・부뚜막이 아니라 취사전용의 ‘솥덕’을 사용한다. 솥덕은 바닥에 나지막하게 돌을 모아 솥을 걸 수 있도록 만든 취사 전용 아궁이를 말한다<Figure 6>.8)제주 민가의 난방은 굴묵9)을 통해 구들을 떼는 방식이므로, 자연스럽게 부엌에서는 취사와 난방이 분리되었다. 따라서 정지에서 상방으로 식사를 옮길 때 마당 쪽으로 나가지 않고 바로 챗방을 통해 실내로 들어갈 수 있으므로, 부엌일의 동선을 고려한 합리적인 공간구성을 취할 수 있었다.
챗방이 분화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로는 제주도의 독특한 식사문화도 들 수 있다. 앞서 Lee and Song(1999)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전통적으로 제주도에서는 정지 한편의 바닥에 상을 마련하고 가족이 함께 식사하였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Kim, 1992). 이것은 챗방이 형성되기 이전의 제주 가옥 내 정지 사용법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챗방의 초기 발달을 보여주는 중요한 흔적으로 판단된다<Figure 7>.
“제주에서는 정지 안의 봉당 공간이 흔히 식사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식사 때는 새끼를 꼬아 만든 방석을 깔고 앉아서 상을 놓고 흙바닥에서 식사를 한다. 따라서 제주의 부엌 살림은 대체로 다리가 높게 만들어진다.”(Kim, 1992)
정리하자면 챗방은 본래 전통적으로 부엌 한편에서 짚자리를 깔고 식사하던 문화와 관련되지만, 점차 가족내 서열이나 신분에 따른 공간 구분이 발생하면서 최종적으로는 부엌부속 공간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즉 가족의 공식적인 식사공간은 상방이나 구들로 이동하고, 챗방은 여성들이나 하인의 식사공간으로 남게 되면서 수납과 배선대를 겸한 공간으로 정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챗방이 마루바닥의 재질이라고 하여도 상방의 공간분화가 아닌 정지 공간이 분화한 것이며, 이는 선행연구의 해석과는 대치된다. 챗방과 정지사이에는 문이 없이 개방적인 반면, 챗방과 상방 사이에는 양여닫이 판문을 달아 구획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챗방의 공간적 유사성은 상방보다 정지에 더 가깝다는 것을 지시한다.
이와 같은 챗방의 공간적 분화는 제주 민가의 평면이 매우 기능적으로 발달하였음을 보여준다. 챗방의 이러한 특징을 가리켜 Kang(2001)은 ‘근대적 공간분화’라 평가한 바 있다.10) 동일한 주장으로서, 김홍식 또한 1984년 경향신문의 인터뷰를 통해 “제주 챗방은 가장 근대적 주방”임을 강조하였다(Kunghayang Shinmun, 1984.05.15.). 여기서 ‘근대적’이라 함은 근대기 동서양의 부엌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인 ‘효율성’을 의미한다(Do, 2020). 부엌계획을 효율적 동선에 기준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20세기 이후의 변화였다.11) 근대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부엌 내에 ‘찬마루’와 같은 배선 및 식사공간을 두자는 주장이 일어났던 것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공간이 제주 민가에서 이미 존재하였던 것은 제주 정지의 효율적 공간구성이 다른 지역보다 빨랐음을 의미한다. 식(食)공간 운영에 있어 제주 민가는 일찍이 근대적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전통부엌에 대한 연구는 주로 불을 사용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연구되었기에, 온돌과 직접 결부되지 않은 제주 정지는 육지만큼 발달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기 쉬웠다. 그러나 ‘동선’이라는 부엌 사용자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오히려 육지 민가의 부엌보다 제주도에서 합리적 특징이 돋보인다. 결론적으로 챗방은 제주 전통가옥의 정지에서 여러 번의 공간분화가 필요하였을 정도로 주거공간 내 부엌의 비중이 높았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부엌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여성의 활동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여성의 활동량이 많고 노동의 범위가 넓었음을 드러낸다. 전통적으로 제주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가정을 부양하는 어머니’로 기획되었으며, 여성은 가사노동뿐 아니라 경제활동을 통해 가정을 지켜왔다(Jung, 2010). “과중한 외부노동과 가중되는 가사노동을 모두 주부가 담당해야 하므로 자연히 기능적 공간을 마련하게 된다”(Kim, 1992)라는 해석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제주 민가에서 챗방이 발달한 것은 유교적 영향이나 날씨 등 여러 가지 형성원인을 추정할 수 있겠으나, 전통적으로 여성의 과중한 노동에 따른 적극적인 부엌 발달의 결과물이라는 해석이 우선적이다.
V. 결 론
본 연구는 제주 민가의 챗방을 자세히 규명하기 위한 연구로서, 김홍식의 1972~84년 제주 민가조사자료 254개중 도면분석이 가능한 233개를 재정리하여 정량적・정성적으로 분석하였다. 다음의 결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전체 분석 대상 233개 중 챗방의 비율은 약 25.3%로서, 약 1/4의 비율로 존재한다. 둘째 크기와 바닥 재질로 보았을 때 크게 툇마루형, 마루방형, 흙바닥형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는 챗방이 ‘한칸짜리의 마루방’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보충하며, 챗방이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어 왔음을 규명한다. 셋째 챗방의 유무에 있어서는 지역적 차이도 드러났다. 제주 남부지역보다는 북부지역이, 동부지역보다는 서부지역의 챗방 존재 비율이 높았고, 특히 동부와 서부의 차이가 뚜렷하였다. 넷째 챗방은 정지에서 분화한 공간으로서 상방보다 정지와 더 밀접한 관계이다. 다섯째 챗방은 가족의 정규적 식사가 이뤄지는 식당이라기보다 부엌부속 공간에 가깝다. 챗방의 식당으로서 기능은 여성에 국한되었다. 챗방은 과거 제주지역에서 정지 한편에 짚자리를 깔고 식사하던 문화와도 연관되지만, 식사공간은 점차 상방으로 이동해 가고 ‘챗방’이라는 다용도의 부엌부속 공간으로 정착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섯째 챗방은 정지와 상방 사이의 전이공간이자 중간영역으로서, 한국의 일반적인 전통주택 가사공간의 불합리성으로 지적되는 긴 가사노동 동선을 단축할 수 있는 기능적 공간이었다. 부엌에서 실내주거공간으로 이어지는 가사동선의 해결 논의는 20세기 부엌개량론에서부터 시작해 1950~60년대까지 지속되었던 것이나, 제주 민가의 경우에는 그러한 근대적 현상이 타지역보다 일찍이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일곱째, 결론적으로 챗방의 성립과 발달의 환경문화적 요인은 매우 복합적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지거리 별동형이 발달한 제주 동부지역 민가에서 챗방 비율이 낮았던 것을 유교적 영향으로 거론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영향관계를 증명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가조사표에서도 식당으로서의 챗방 사용 빈도는 상방보다 낮았다. 다만 이 같은 해석이 더욱 근거를 갖기 위해서는 타지역의 유사사례와 심화비교 분석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점이 본 연구의 한계로 판단된다.
아모스 라포포트가 지적하였듯이 ‘주거형태는 단순히 문리적인 힘이나 혹은 어느 하나의 우연한 요소의 결과가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본 포괄적인 범위의 사회문화 요소의 산물’ (Rappoprt, 1985)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건축에서 토속건축을 해석할 때 주로 기후결정론을 중시한다고 하였지만, 동시에 문화지리학 분야에서는 그에 대한 반론도 제기된다는 사실을 경고한 바 있다(Rappoprt, 1985).
이에, 챗방과 같은 독특한 주거요소의 형성은 기후 이외에도 다양한 영향관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건축에서 간과되기 쉬웠던 여성사적 관점이 그러하다. 제주 챗방은 가내노동과 생산노동이 안팎으로 과중하였던 제주의 특별한 여성사를 반영한 독특한 주거공간요소로 간주되며, 한국 부엌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사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챗방이 발달하였다는 것은 주택 내에서 여러 번의 분화를 요할 만큼 정지의 쓰임새가 많았던 점을 지시한다. 특히 향후 주거공간 계획에 있어 실질적인 가사노동 공간에 대한 배려가 더욱 요구된다고 볼 때, 챗방 연구의 현대적 가치를 기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