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1. 연구배경 및 목적
조선족은 한반도에서 이주해간 과계민족(過界民族)으로써 중국에서 150년의 이주역사를 가지고 있다. 수차례의 이주 및 재이주 과정을 거쳐 현재 중국 동북지역의 조선족은 함경도 출신 조선족, 평안도 출신 조선족, 그리고 경상도 출신 조선족을 위주로 다양한 원적을 가진 조선족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주거문화 또한 원적에 따라 다양한 지역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2007년부터 시작된 중국 신농촌 건설 사업에서 정부의 획일적인 개발방식으로 인해 지역별 원적(原籍)에 따른 주택의 차별성이 점차 소실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선족 농촌주거의 개량, 개발사업에 있어서 원적별 조선족 농촌주거의 지역적 특징과 그 변천과정에 대해 판단할 자료가 필요하나, 이에 대응한 연구는 미비한 실정이다.
과거 조선족 농촌주거에 관한 연구(Im et al., 1995; Yang, 1997)는 대부분 사회, 역사적 측면이나 개별 특징적인 마을, 주거를 대상으로 이루어져 지역별, 원적별 다양한 체계화된 주택 모델을 제안하는데 제약이 있다. 비록 일부 연구(Kim et al., 1996; Kim, 2000)에서는 중국 동북 3성을 범위로 조선족 농촌주거의 공간구성형태와 분포특징에 대해 분석하고 있으나, 정적인 관점에서 주거의 원형을 대상으로 평면을 유형화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었으며, 조선족 농촌주거의 시대적 변천과 지역적 특성을 외면한 점에서 연구의 미비를 보이고 있다. 이 외에 조선족 농촌주거의 변천에 관한 연구로서 이문화의 갈등과 동화속에서의 조선족 농촌주거의 주공간의 변천에 관한 연구(Kim, 2004), 부엌 공간 및 도구의 변용과 식생활의 변화에 관한 연구(Mitsuhashi et al., 2004; Lee, 2006; Kim & Park, 2010)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연구들은 내용과 범위에서 개별적인 사례와 주생활의 일부분 내용만을 고찰한 점에서 연구의 제한성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조선족 농촌주거의 다원적성과 다양한 지역적 특성에 주목하여, 그 중 한 부류인 함경도 출신의 조선족 농촌주거를 대상으로, 공간구성형태의 지역적 특징과 그 변천과정을 파악하는데 목적을 둔다. 각 지역에 있는 함경도 출신의 조선족 농촌주거가 어떠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이주역사 및 경로에 따라 이들의 공간구성형태 및 주생활 양식이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으며, 변화의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분석, 연구하고자 한다. 연구를 통해 지역에 따른 함경도 출신 조선족 농촌주거의 다양한 평면형태와 그 변화 특징을 파악함으로써 향후의 신농촌 건설에서 조선족 농촌주거의 지역적 특성을 살려 생활기반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 연구 범위 및 방법
본 연구는 동북3성에 거주하고 있는 함경도 출신의 조선족 농촌주거를 연구대상으로, 조선족 집거지역의 전통주거의 지속과 다민족 융합지역의 주문화의 변천에 대해 고찰하였다. 따라서 연구대상의 선정에 있어서 함경도 출신 조선족이 직접 건축한 주택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재이주와 함께 각 지역에서 신축, 개축된 특징적인 주택 사례도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연구의 방법은 조사 분석을 토대로 하였다. 문헌조사와 인터뷰조사를 통해 함경도출신 조선족의 이주역사와 분포 특징에 대해 고찰하고, 공간구성형태에 대한 실측조사와 가구의 배치상황, 생활방식 및 동선에 대한 스케치, 관찰조사를 통해 이들의 주생활 양식에 대해 고찰하였다.
조사는 예비조사와 본 조사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2014년 7월 12일~8월 25일 24개 마을에 대한 예비조사를 통하여 함경도출신 조선족의 이주역사, 분포특징, 가족구성 형태 및 공간구성형태에 대해 대략적인 파악을 진행하였다. 본 조사는 함경도 출신 조선족 마을의 농촌주거를 대상으로 두 차례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2015년 1월 16일~2월 8일의 1차 조사에서 흑룡강성의 중흥촌(해림시)과 삼차구조선족진(동녕시),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있는 하석건촌(도문시), 북대촌(도문시), 압록강 유역에 있는 이전촌(장백현) 등 5개 조선족 마을에 있는 함경도출신 조선족농촌주거에 대해 실태조사를 진행하였다. 2015년 7월 18일~7월30일의 2차 조사에서는 흑룡강성의 영려촌(계동현), 영산촌(해림시) 등 2개 마을의 함경도출신 조선족농촌주거에 대한 실태조사와 중흥촌, 하석건촌, 북대촌에 대한 보완조사를 진행하였다.
2차례의 조사를 거쳐 도합 7개 마을의 53호 조선족 농촌주거에 대해 실태조사를 진행하였다<Table 1>.
Table 1.
Villages and Households of The Investigation
본 연구는 이들 조사대상을 그들의 이주 시기, 경로에 따라 두만강 유역, 압록강 유역, 그리고 중-러 국경지역, 흑룡강성 내륙지역으로 분류하여 지역별 함경도 출신 조선족 농촌주거의 공간구성형태와 변천에 대해 연구하고자 한다.
II. 함경도 출신 조선족의 이주역사 및 분포특징
현재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함경도 출신 조선족의 주거형태를 연구함에 있어서 먼저 그들의 이주노선과 분포 특징에 대한 선행연구가 필요하다.
조선인 이주민의 최초의 정착지는 두만강과 압록강유역이었다. 청국의 ‘봉금지대’이었던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가장 가까울 뿐만 아니라 많은 옥토가 폐기되어 있고 또한 인적이 드물어 청국의 감시를 피하여 황무지를 개간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장소였다. 이 두 지역의 조선인 월경(越境)사례는 청초부터 있었으나 성격상 채삼(採蔘)과 벌목(伐木)을 목적으로 하거나 기민의 유입에 의한 일시적인 월경에 불과했다. 경작을 목적으로 한 집단적이고 대규모적인 형태의 월경은 19세기 중엽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1860년대 한반도 북부의 연년 자연재해는 이 시기 함경도 출신의 조선인 이주민을 속출시키는 주요원인으로 되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일부 조선인은 동해안을 따라 극동지역(러시아 연해주)으로 이주했다. 1860년 전후 극동지역의 조선인 이주민은 다시 중국 경내로 이주하였고 1867년에 애훈 등 지역에 정착했다. 1890년대 초 시베리아와 간도의 조선인 이주민이 대규모로 북만에 이주하면서 동녕, 영안, 해림, 목릉 등 지역에 조선인 개간민촌을 만들었다. 그들 대부분은 함경북도 출신이었다. 그 후 1917년 극동지역 정세의 불안과 1928년 구소련의 사회주의집체화정책 등 원인으로 연해주의 조선인이 선후 두 차례 중국경내로 이주하는 사례가 있었다(Xu, 1985; Zhu, 2007).
1932년 ‘위만주국(僞滿洲國)’이 건립되면서 만주농촌지역에서는 ‘안전농촌’과 ‘집단부락’의 건설방침이 제기되는데 당시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한 간도(현재 두만강, 압록강 유역) 지역으로부터 그 계획이 실행되었다.
1936년 만주의 치안이 안정됨에 따라 만선척식회사는 총독부와 영사관의 지도와 감독 하에 조선인 개척단의 강제집단이주를 실행하였다. 이 시기 함경도출신 조선인의 이주는 주로 간도지역과 동부 변경지대로의 개별이주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Xu, 1985).
또한 이 시기에 철도노선이 개통되면서 동북3성 내륙지역으로의 조선인 이주민이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 함경도 출신 조선인은 주로 청진(淸津)-도문(圖門)-목단구(牧丹口)(현 목단강) 철도선을 통해 동녕(東寧), 호두(虎頭)(현 호림)로 다시 흑룡강성 내륙지역의 목릉, 영안, 목단강 등 지역에 이주 정착하였다. 또 일부분은 청진(淸津)-조양천(朝陽川)-돈화(敦化)-법라(法拉)(현 교하) 철도선을 따라 할빈(哈爾濱), 수화(綏化)와 치치할(齊齊哈爾)로 이동하였다. 이 시기 길림성 중부지역에도 소수의 함경도출신 이주민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들의 이주 노선은 주로 집안(輯安)-통화(通化)-연하(蓮河)(현 유하)의 철도선을 따라 형성되었다(Xu, 1985).
1945년 광복을 맞이하면서 만주지역에 있는 50만 명의 조선인이 한반도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중국 국적에 가입하였다. 그 후 각 지역 조선족의 원적 상황은 큰 변함이 없었다.
III. 주거의 공간구성형태 분석
1. 조사대상의 지역분류 및 기초사항
본 연구는 함경도 출신 조선족의 이주역사 및 분포특징에 따라 조사대상을 두만강유역, 압록강유역, 중-러 국경지역, 흑룡강성 내륙지역 등 4개의 지역으로 분류하였다. 조사대상 마을은 함경도 출신 조선족을 위주로 지역에 따라 다양한 민족적 융합 현상을 나타냈다. 두만강 유역의 하석건촌과 북대촌은 초기 함경도 이주민의 정착지로서 현재 여전히 조선족 주민들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압록강 유역의 이전촌과 중-러 국경지역의 영려촌, 삼차구진은 90년대 초부터 노무수출과 도시진출로 인해 마을 조선족 주민이 감소되면서 주변지역 극소수의 한족이 마을에 입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으며, 흑룡강성 내륙지역의 영산촌, 중흥촌 등 마을은 조선인 개척민 등 강제이주의 역사적 배경 하에 이주 초기부터 조선족과 만족, 한족 등 다민족 주문화의 융합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지역별 이들 평면의 기초사항에 대해 정리하면 <Table 2>와 같다. 지역분포에서 53개 조사사례 중 두만강 유역에 16개, 압록강 유역에 8개, 중-러 국경지역에 16개, 흑룡강성 내륙지역에 13개 사례가 분포된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년도에서 1949년 이전의 주택은 대부분 두만강과 압록강유역에 분포되어 있었고, 건축면적 또한 두만강과 압록강유역이 기타 지역에 비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구조에서 1960년 이전의 주택은 대부분 흙조 또는 목조주택으로 구성되었으며, 60년대 이후의 주택은 벽돌조 주택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족구성에서 대부분 지역은 노인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Table 2.
The Summary of The Surveys of all Regions
| Region | Number | Age | Area (m2) | Structure | Family members1) |
|---|---|---|---|---|---|
| The Coast of Tumen River | T-SJ01 | 1984 | 72.5 | Brick | α74, β72 |
| T-SJ02 | 1966 | 57.6 | Wood | α82, β81 | |
| T-SJ04 | 1890 | 78.5 | Wood | - | |
| T-SJ07 | 1984 | 84.1 | Brick | M68, F65, β89 | |
| T-SJ08 | 1982 | 77.5 | Brick | M42, F35 | |
| T-SJ11 | 1982 | 81.2 | Brick | α71, β67 | |
| T-SJ12 | 1983 | 104.7 | Brick | M50, F50 | |
| T-SJ15 | 1999 | 61.6 | Brick | M39, β64 | |
| H-BD01 | Not quite clear | 67.4 | Wood | F67, m39 | |
| H-BD02 | 1940 | 61.2 | Wood | F68 | |
| H-BD05 | 1940 | 44.8 | Wood | M44, F43 | |
| H-BD06 | Not quite clear | 50.1 | Wood | α64 | |
| H-BD07 | 1940 | 47.2 | Wood | M35, β70 | |
| H-BD14 | 1950 | 47.7 | Wood M57 | ||
| H-BD16 | 1967 | 53.5 | Wood | α78, β74 | |
| H-BD23 | Not quite clear | 59.5 | Wood | M57, F53 | |
| The Coast of Yalu River | C-LT01 | 1927 | 54.4 | Wood | M54, F44, m23 |
| C-LT06 | 1920 | 48.4 | Wood | 한족 거주 | |
| C-LT08 | 1958 | 34.3 | Wood | M46, F44, α81 | |
| C-LT09 | 1967 | 31.6 | Wood | M56, F53 | |
| C-LT11 | 1960 | 54.5 | Rammed earth | M46, F42 | |
| C-LT12 | 1960 | 54.0 | Rammed earth | M48 | |
| C-LT18 | 1988 | 81.1 | Brick | M56, F53, α90 | |
| C-LT19 | 1960 | 47.9 | Wood | F38, β64 | |
| The Sino Russian Border | J-YL02 | 1964 | 74.3 | Brick | M51, F48 |
| J-YL05 | 1960 | 36.6 | Wood | M63, F60 | |
| J-YL07 | 1958 | 48.8 | Wood | α76, β72 | |
| J-YL08 | 1950 | 41.0 | Wood | α76, β76 | |
| J-YL11 | 1951 | 58.3 | Wood | M47, F45 | |
| J-YL14 | 1953 | 46.2 | Wood | α81, β78 | |
| J-YL16 | 1950 | 47.8 | Wood | β86 | |
| J-YL17 | 1950 | 36.6 | Wood | M55, β78 | |
| D-SC01 | 1965 | 45.3 | Brick | β70 | |
| D-SC03 | Not quite clear | 54.5 | Brick | β61 | |
| D-SC05 | 1973 | 87.3 | Brick | α70, β67 | |
| D-SC06 | 1965 | 64.5 | Brick | α73, β70 | |
| D-SC07 | 1965 | 64.5 | Brick | - | |
| D-SC09 | 1965 | 88.2 | Brick | α65, β63 | |
| D-SC12 | Not quite clear | 58.0 | Brick | - | |
| D-SC13 | Not quite clear | 44.4 | Wood | - | |
| Heilongiiang Province | N-YS05 | 1969 | 51.4 | Wood | α71, β67, M46 |
| N-YS08 | 1950 | 51.3 | Wood | M46, β73 | |
| N-YS10 | 1940 | 34.7 | Wood | β74 | |
| N-YS11 | 1950 | 47.9 | Wood | β69 | |
| N-YS12 | 1950 | 42.0 | Wood | M63, β83 | |
| N-YS14 | 1950 | 46.2 | Wood | M32, β69 | |
| N-YS15 | 1950 | 42.8 | Wood | M50, F50 | |
| N-YS18 | 1940 | 47.0 | Wood | M56, F54 | |
| N-YS19 | 1940 | 47.9 | Wood | β86 | |
| N-YS20 | 1950 | 53.7 | Wood | M52 | |
| H-ZX01 | 1960 | 65.4 | Rammed earth | M40, β84 | |
| H-ZX02 | 1997 | 62.3 | Brick | M43, F40, m20 | |
| H-ZX04 | Not quite clear | 66.5 | Rammed earth | M57, F49 |
2. 실의 명칭과 용도
1) 정지방 (Jeongjibang)
함경도 출신의 조선족 농촌주거에서 정지방은 부엌에 인접하여 배치된 온돌방을 가리킨다. 부엌과 하나의 통합된 공간을 구성하며, 기능적으로 취침, 식사, 단란, 접객, 가사노동 등 다양한 행위가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2) 부스깨 (Buseukkae)
함경도 출신의 조선족 농촌주거에서는 부엌을 ‘부스깨’라 한다. 보통 아궁이를 바닥보다 15-30 cm 좌우 낮게 설치하고 위에 널빤지를 깔아 먼지를 막는 동시에 작업 공간을 확장한다. 한족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일부 함경도 출신의 조선족은 전통 부엌공간의 개조와 함께 ‘부스깨’ 대신 ‘부엌’ 또는 ‘추팡’ 등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3) 바당(Badang), 띠실(Dishi)
두만강 압록강 유역 및 중-러 국경지역의 함경도 출신 조선족은 실내의 바닥을 ‘바당’이라 부른다. 그들의 주거에서 ‘바당’은 보통 ‘부스깨’와 입구사이에 배치된 공간을 가리키며, 일부 개량주택에서는 온돌방 전면에 개조된 바닥공간까지 포함하여 ‘바당’1)이라 칭하고 있다.
흑룡강성 내륙지역의 함경도 출신 조선족은 한족 또는 만족의 영향을 받아 주거 내에 바당보다 큰 면적의 바닥 공간을 두고 있으며, 거실, 띠실 또는 바당 세가지 용어로 혼용하고 있다.
3. 평면유형분류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함경도 출신 조선족 농촌주거를 이들의 진입방식 및 공간의 연결성에 따라 분류하면, <Table 3>과 같이 J형(정지중심형)과 J-C형(정지-복도형) 2개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Table 3.
Classification of Plane

1) J형(정지중심형)
J형은 외부에서 정지(BD+JR+K') 공간을 거쳐 방으로 진입하는 공간구성형태이다.
J형을 공간의 연결방식에 따라 J1~J5 다섯 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J1은 부스깨-바당, 정지방, 안방으로 구성된 2칸-3칸형 평면형태이고, J2는 부스깨를 사이 두고 정지방 맞은편에 창고 또는 기타 공간을 배치한 평면 형태이다. J3, J4는 J1, J2에서 개량된 평면형태로서 온돌방 남쪽에 개량형 바당(BD')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 중 J3은 기존의 정지(BD+JR+K') 공간이 보존되어 있고 J4는 부스깨와 온돌방 사이에 미닫이로 된 칸막이가 설치되어 부엌 공간의 개실화를 확보한다. J5는 J1, J2에서 전면에 툇마루가 설치된 평면형태로서 전형적인 함경도형 평면형태이다.
조사사례를 유형 별 그 지역적 분포에 대해 살펴보면 <Figure 1>과 같이 J5는 주로 두만강 유역에 분포되어 있었고, J1, J2는 두만강, 압록강 유역과 중-러 국경지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으며, 개량형 평면 J3, J4는 주로 중-러 국경지역과 흑룡강성 내륙지역, 그리고 일부 압록강유역에 분포되어 있었다.
4. 평면유형별 생활실태분석
함경도원적을 가진 조선족 농촌주거에서 취침, 단란, 식사, 출입 등 공간의 구성 및 이용실태에 대해 정리하면 <Table 4>와 같다.
Table 4.
Space Composition and Use Patterns1)
| WR (KR) | JR | BD | K | BD' (DS, L) | C | S(CS) | |
|---|---|---|---|---|---|---|---|
| J1 | ●■△ | ●■◆△▲ | △ | - | - | - | |
| J2 | ●■△ | ●■◆△▲ | △ | - | - | △ | |
| J3 | ●■△ | ●■◆△▲ | △ | ○□◇ | - | △ | |
| J4 | ●■△ | ●■◆△▲ | △ | ○□◇ | - | △ | |
| J5 | ●■△ | ●■◆△▲ | △ | - | - | △ | |
| J-C | ●◆ | - | - | △ | ○□◇ | ▲ | △ |
1) 취침
함경도 출신 조선족 농촌주거에서 취침공간은 온돌방(WR), 정지방(JR), 캉(KR), 띠캉(DR), 거실(L), 바당(BD'), 일반실(R)등 공간형태로 구성된다.
취침공간의 개수는 평면유형에 따라 1~5개로 나타나는데 그 중 2~3개의 취침공간을 가진 사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5개의 취침공간을 가진 사례는 J4형에서만 나타났다. 또한 취침공간의 사용 현황에 대해 분석해보았을 때, 여유의 취침공간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그들의 가족형태와 관계된다. 함경도원적을 가진 조선족 농촌주거에서 가족형태는 젊은 부부나 노부부로 구성된 2인 가족과 그들 중 한명으로 구성된 1인가족의 형태가 비교적 많은데, 이는 대부분 자녀가 외지에서 일을 하거나 공부하고 있으므로 부모와 같이 생활하는 경우가 적은 것으로 판단된다.
개량형 평면 J3, J4, J-C형에서 취침공간은 계절에 따라 여름 취침공간과 겨울 취침공간으로 분리되는데, 온돌방 전면의 바당이나 띠실, 거실은 대부분 난방이 되어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침대를 두어 여름 취침공간으로 사용되고, 온돌방은 겨울 취침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2) 단란
함경도 출신 조선족 농촌주거에서 단란 공간은 대부분 주요 취침공간과 통합되어 있었으며, 정지방 또는 온돌방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일부 개량형 주택에서는 여름 취침공간에 대응하여 여름 단란 공간이 나타나는데, J-C형의 경우 띠실(DS) 또는 거실을 중심으로, J3, J4형의 경우에는 온돌방 전면의 바당을 중심으로 여름 단란 공간이 이루어져 있었다. 여름 단란 행위는 난방이 되어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간의 계절성 이용을 강조하는데, 주로 띠실이나 거실 위에 놓여 있는 침대를 통한 입식과 온돌방 전면의 바닥보다 높은 바당 공간에서의 좌식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3) 식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함경도 출신 조선족 농촌주거에서 식사공간은 주로 온돌방(WR), 정지방(JR), 부스깨(K') 등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중 정지방(JR)을 주요 식사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부스깨(K')는 가족 수가 적을 때 부뚜막에서 간단히 식사하는 경우로만 나타났다.
4) 출입
함경도 출신 조선족 농촌주거에서 출입구의 개수는 1~7개로 평면유형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J-C형의 경우 대부분 주택은 1~2개의 출입구를 가지며, J형에서는 2개 이상의 출입구를 설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출입구의 위치를 살펴보면, J-C형 평면에서 주출입구는 대부분 복도 쪽에 설치되어 있었고, J형 평면에서는 바당에 설치되어 있었다. 부출입구는 J-C형 평면일 경우 평면 뒤쪽에 있는 부엌 또는 창고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비교적 많았고, J형 평면에서는 방마다 각자의 출입구를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J5형의 평면일 경우 7개의 부출입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개량형 평면 J3, J4형에서는 온돌방 전면에 바당 또는 띠실, 거실 등 다용도 공간이 형성되면서 통로기능이 강화되어 온돌방 전면의 출입문이 폐쇄되는 경우가 비교적 많았다.
IV. 주거의 변천
1. 함경도 전통민가의 공간적 특성
함경도 전통민가는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남녀 공간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J5형의 전통 주택을 대상으로 공간적 특성을 분석하면 <Figure 2>과 같다.
전면에 있는 웃방과 굽방은 남성영역으로서 그들의 취침, 식사 등 행위는 모두 각자의 방에서 진행된다. 각각의 공간은 정해진 명칭을 가지고 있는데, 정지방과 인접한 방을 ‘웃방’이라 하고, 안쪽에 배치된 방을 ‘굽방’이라한다. ‘웃방’은 보통 가장이 기거하는 공간으로서 ‘할아버지 방’이라고도 한다. 굽방은 젊은 가장이 기거하는 공간이며 ‘웃방’과 더불어 남성적 영역을 이루면서 장유(長幼) 관계에 따른 공간적 분리를 보여주고 있다. 후면에 있는 안방, 고방은 정지방, 부엌 등 공간과 함께 여성전용공간으로 사용되며 외부사람들의 진입이 금지되어 있다. ‘고방’은 본래 곡식을 저장하는 공간이며. 딸이 장성하면 ‘고방’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여자와 곡물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안쪽에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안방’은 보통 신혼부부가 사용하며, 곡식창고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자녀들은 성장기동안 할머니와 '정지방’에서 기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웃방’은 주거 내에서 위계가 가장 높은 공간으로서 가정예의의 중심적인 장소로 이용된다. 혼례 시 신부집에서 함을 받고, 신랑의 상을 받는 곳이 바로 ‘웃방’이다. 신혼부부의 신방도 이 방에서 차리며, 신방 3일 후에 고방으로 옮긴다. 또한 장례 시에 시신을 안치하는 곳이나 제례 시 제상을 차리는 곳도 역시 ‘웃방’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모두 정지 공간을 통하지 않고 ‘웃방’문을 통해 외부와 연결된다. 정지는 생활공간의 중심으로서 취침, 단란, 접객(여성), 취사, 식사 등 복합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단주 사용자는 주부로서 여성영역으로 정의되고 있다.
정지 공간을 중심으로 주거공간의 반대편에 생산공간이 위치한다. 주로 ‘외양간’과 ‘방앗간’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를 살림채 내에 배치한 이유는 정지공간의 열원으로 난방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둑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주거에서 출입 방식 또한 남녀공간에 따라 구분된다. ‘웃방’과 ‘굽방’은 전면의 마루 쪽으로, 고방과 안방은 후면의 뒤안 또는 정지 공간의 출입문으로 각 자 출입을 한다. 뒤안은 살림채를 통해서만 진입할 수 있는 폐쇄적인 공간으로서 실외 여성 공간 또는 농사도구와 잡곡을 저장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손님이 방문할 경우 남자 손님은 ‘웃방’과 ‘굽방’으로 진입하고, 여자 손님은 전면에 있는 정지공간으로 진입하도록 되어 있다. 손님이 투숙할 경우에도 남녀공간으로 분리되는데 남자손님은 ‘굽방’으로, 여자 손님은 '고방’으로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었다(Im et al., 1995).
2. 함경도출신 조선족농촌주거의 공간적 변화
1) 취침 공간의 변화
근대화과정에서 함경도 출신 조선족 농촌주거의 취침공간은 개실화에서 통합화로, 좌식에서 부분적인 입식으로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었다.
재래식 전통민가에서 취침공간은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남녀공간이 분리되어 개실화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으나, 현재 조선족 농촌주거는 가족 수가 급격히 줄어듦에 따라 모든 실들을 털어 하나의 큰 공간으로 통합하여 사용하는 사례가 비교적 많았다.
또한 취침방식에 있어서 과거의 온돌식을 지속화 시키는 한편 침대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경향도 찾아볼 수 있었다. 침대식 취침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기존의 온돌방 위에 침대를 설치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J3, J4, J-C형 등 개량형 주택에서 나타나는 통로 형태의 바당(BD')이나 띠실(DS), 거실(L) 등 공간에 설치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취침공간이 계절에 따라 변화하게 되는데 겨울에는 온돌방에서, 여름에는 개량형 바당이나 띠실, 거실 또는 온돌방 위에 설치되어 있는 침대에서 취침이 이루어진다<Table 5>.
2) 단란 공간의 변화
남녀공간의 위계가 사라지고, 방과 정지 사이의 칸막이가 개방됨에 따라 각자의 방에서 이루어지던 단란 행위는 하나의 공간 내에서 집합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2차례의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 첫 번째 과정은 유교사상의 소실로서 각자의 개인적인 단란 행위가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한 단란 행위로 과도하는 단계이며, 각자는 개인적인 단란 행위를 유지하는 동시에 정지방을 중심으로 한 가족 단란 행위로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두 번째 과정은 개실의 소실과 함께 가족 단란이 정착되는 과정인데, 이는 취침, 단란, 식사 등 모든 행위가 하나의 공간에서 집합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단란 공간의 변화에 있어서 우리는 각 실이 통합되기 전후의 가구의 변화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TV의 위치 변화를 살펴보면, 통합되기 전에는 정지방의 단란을 중심으로 전면 모서리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통합된 후에는 통간을 중심으로 안쪽 온돌방에 조립식 수납가구와 함께 배치되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J3, J4, JC형 등 개량형 주택에서는 TV 등 가전제품과 가구를 개량형 바당이나 띠실 또는 거실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거실에 소파나 입식테이블을 둠으로서 거실 중심형의 단란 공간으로 변화하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었다<Table 6>.
3) 식사 방식의 변화
과거 함경도 출신 조선족 농촌주거는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남녀 식사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가장과 남성은 따로 밥상을 차려야 했고, 여성과 아이들은 정지방이나 주방에서 식사를 하였다.
90년대에 들어서서 이러한 공간의 위계는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가족 수가 줄어들면서 모든 방들을 털어 하나의 큰 공간으로 통합하여 가족들이 정지방에 모여앉아 식사하는 방식으로 변하였다. 또한 찬장, 냉장고, 전기밥솥 등 도구들을 정지방에 설치되어 식사에 편리하도록 하였다<Table 7>.
4) 출입 방식의 변화
함경도형 전통 주택에서는 남녀공간이 구분되어 방마다 각자의 출입구를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현재 중국 경내의 함경도 출신 조선족 농촌주거는 유교사상의 소실, 실의 통합, 개량형 바당 공간의 형성과 함께 기존의 개실 출입기능이 점점 약화되어 가고 있었다. J3, J4, J-C형 등 개량형 주택에서는 온돌방 전면에 개량형 바당 또는 띠실, 거실 등 다용도 공간이 형성되거나 입구 쪽에 복도가 형성되면서 통로기능이 강화되어 전면의 출입문이 폐쇄되는 경우가 비교적 많았다<Table 8>.
3. 지역별 주거변천의 상호관련성
함경도원적을 가진 평면사례는 두만강, 압록강 유역과 중-러 국경지역, 흑룡강성 내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평면유형은 J형, J-C형을 위주로 서로 다른 시기에 다양한 지역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두만강, 압록강 유역은 초기 이주민의 정착지로서 J1, J2, J5형의 재래식주택이 상대적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러한 평면들은 바당(BD), 정지방(JR) 그리고 부엌(K')이 하나의 정지 공간으로 통합된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90년대 이전 까지 이 지역의 조선족 민가는 대부분 원래의 평면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으로의 노무 수출, 도시 진출 등 원인으로 인해 가족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방을 통합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비교적 많았다. 조사사례 중 25개(두만강, 압록강 유역 조사사례의 47% 차지)의 평면이 이러한 특징을 보이고 있었다.
중-러 국경지역에 있는 함경도 출신 조선족은 연해주와 두만강, 압록강지역의 조선인들이 2차 이주하여 이곳에 정착한 것이다. 이주 초기에는 한족들의 주택을 빌려 쓰거나 2칸으로 된 최소규모의 J2형 주택을 지어 살았는데 이러한 생활 실태는 해방 전까지 계속 지속되어 있었다.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중-러 국경지역에서는 통구들을 개조하여 한족주거의 띠실 공간과 비슷한 다용도 공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J3, J4형과 같이 공간 구성에서 온돌방(WR)의 전면에 개량형 바당이나 띠실, 공간을 설치하여 진입 통로 또는 취침, 단란, 식사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었으며, J4형의 경우 정지방과 부엌사이에 또한 미닫이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흑룡강성 내륙지역에서는 한족 주문화의 영향 하에 J3형, J4형, J-C형 평면이 주류를 나타내는데, J-C형의 경우 공간구성의 변화에서 현관, 거실 등 근대적 공간의 생성과 부엌-정지방의 연쇄 구조를 가진 정지공간을 재현하려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었다. 90년대 이후 가족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비어 있는 방을 창고 등 기타 용도로 사용(J-C형)하는 사례가 많았다.
공간의 변형과 함께 이들의 주생활 양식의 변화를 살펴볼 때, 두만강, 압록강 유역은 J형 평면을 중심으로 기존의 좌식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한편, 중-러 국경지역 및 흑룡강성 내륙지역은 J3, J4형 개량형 평면과 J-C형 평면을 중심으로 온돌방의 좌식과 개량형 바당, 띠실, 거실 등 공간에서의 입식 생활을 겸하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었다<Figure 3>.
VI. 결 론
함경도 출신의 조선족은 대부분 두만강, 압록강 유역과 중-러 국경지역, 흑룡강성 내륙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그들의 주거형태 또한 지역에 따라 다양하였다. 두만강, 압록강 유역은 ‘정지중심형’의 재래식 주택(J1, J2, J5)을 중심으로, 내륙지역은 ‘정지중심형’의 개량형 주택(J3, J4)과 ‘정지-복도형’(J-C)의 벽돌조 주택을 중심으로 분포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족구성에서 대부분 지역은 젊은 세대의 감소와 함께 노인과 어린이로 구성된 가족형태의 증가가 특징으로 되고 있었다. 따라서 주택면적과 실의 수는 거주자 수에 비해 과잉현상을 나타냈고, 많은 실들이 비어 있거나 통합 또는 창고 등 기타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특히 두만강 압록강 유역의 재래식 전통주택에서는 실의 통합이 주요특징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한편 주거문화의 근대화 및 타민족문화의 영향 하에, 각 지역의 함경도 출신 조선족 민가는 또한 공간구성형태에서 각기 다양한 변화를 엿보이고 있었다. 두만강, 압록강 유역은 기존의 평면형태를 유지하는 한편, 중-러 국경지역은 온돌방 전면에 개량형 바당 공간이 형성되어 있고, 흑룡강 내륙지역은 이문화의 갈등과 동화 속에서 거실 등 새로운 주거공간을 모색하는 점에서 지역의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