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1. 연구배경 및 목적
휘주(徽州)는 중국 안휘성의 남부에 위치한 양자강 아래 남쪽 지역을 지칭한다. 이 지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황산을 중심으로 한 산간지역이다. 휘주의 전통적 주거는 중국의 주택이 공유하는 보편적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강남지방 특유의 정취를 함께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독특한 주거문화를 형성하고 있다1). 휘주 지역은 주거문화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독특한 특성과 차별을 지니므로 ‘휘파’, ‘휘문화’라고도 지칭된다.
휘주지역 중에서 명대와 청대에 건립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전통주거가 많이 남아있는 대표적인 마을은 서체촌(西遞村)과 굉촌(宏村)2)이다. 이 두 마을은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휘주의 전통주택은 195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중국 건축사 연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학자 유돈정(劉敦楨)에 의해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 후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1980년대 이후였다3). 이러한 휘주 지역 전통주택에 대한 중국의 연구나 학술서는 대부분 개괄적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많으며 주공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연구의 수는 비교적 미미한 편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휘주 전통주택을 대표하는 이 두개 마을을 통하여 휘주 주거의 특성을 나타내는 공간적 기본 특성과 요소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휘주 주택의 실내 평면과 입면 구성을 고찰하고 주공간을 구성하는 기본적 접근 및 그 안에 내재된 공간 문화 특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2. 연구방법 및 범위
연구는 현지조사를 통한 내용분석의 질적 방법이다. 조사를 위해 서체촌과 굉촌에 단기 체류하여 마을에 잘 보존되어 있는 주택 중 외부에 개방되고 실측이 허용된 주택을 대상으로 하였다. 서체촌에서는 광고제(廣古齊), 서옥정(瑞玉庭), 응복당(膺福堂), 이복당(履福堂), 상덕당(尙德堂), 앙고당(仰高堂), 도리원(桃李圓), 대부제(大夫第)의 8개 주택, 굉촌에서는 6개 주택(승지당(承志堂), 수인당(樹人堂), 도원거(桃園居), 경수당(敬修堂), 벽원(碧園), 숭지당(崇支堂)) 등, 총 14개 가옥을 대상으로 하였다. 주택의 실측은 2015년 8월 16일에서 8월 20일까지 시행되었으며 분석을 위한 사진 촬영과 일부 거주자 면담이 병행되었다. 한편 조사 대상 주택들은 오랜 세월 이어오면서 변화되었으나 그러한 사적 과정의 분석은 자료의 한계상 배제하였으며 본 연구에서는 현재의 공간 현황에 대해서만 파악하고자 하였다<Figures 1, 2, 3>.
II. 휘주지역과 전통주택
휘주는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곳이다. 진대에 이미 독립된 행정구역이었으나 한족의 본격적인 거주는 한대 후반이었다. 즉, 당시의 많은 관리와 귀족들이 정치적혼란을 피해 이주하기 시작했으며 당대에 가장 활발하였다. 휘주의 지리적 특성은 중앙의 정치적인 변화와 혼란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아 독자적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4). 이러한 휘주의 문화는 장족의 문화인 장학, 돈황 연구의 돈황학과 더불어 중국 3대 지방현학으로 일컬어진다5). 이 후 명·청대에는 휘주 주택과 촌락이 가장 번성하였다. 휘주는 연평균 기온이 섭씨 15도에서 16도이며 겨울에도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다만 한여름에는 40도를 넘기도 하며 연중 강우량이 1,200~1,700 mm가 되는 습윤하고 온화한 아열대성 몬순기후를 지닌다.
서체촌의 최초 시조는 당나라 황제의 아들이었다. 전쟁을 피하여 들어 왔다가 후손들이 정착하여 만든 서체촌은 명대에 크게 확대되었고 청대에는 학자와 관료, 그리고 뛰어난 상인들이 배출되었다6). 서체촌 역시 모든 집의 담장 아래로 수로가 만들어져 있어 중요한 일상적 생활용수는 물론 화재시 방화용수로도 사용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주민들은 야채를 씻거나 빨래를 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굉촌은 왕씨(汪氏) 성 가문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즉, 남송시대(1131)에 전란으로 화재가 나면서 왕씨 가문은 몇 번의 이주 후 굉촌을 택하여 정착하였으며 이 후 오랜 세월 큰 마을로 확대되었다. 굉촌의 선택은 풍수지리에 의한 것이었으며 정착지의 선택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릉지와 물이었다. 중국에서 물은 부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물이라는 자원을 항상 확실하게 지닐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였다. 즉, 흐르는 물이 있다는 것은 마을 생활을 정신적이고 안정적인 생활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7). 굉촌의 인공저수지인 월소(月沼)가 이미 명나라(1403~1423)대에 건설되었고 이와 연결된 수로는 굉촌의 모든 집 옆으로 흐르며 순환되고 있었는데 이는 명대의 유명한 여성 수로설비자가 계획하여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8).
이와 같이 굉촌과 서체촌의 형성에는 무엇보다 수로체계가 중요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완비는 마을의 집과 촌락적 기능이 수백년간 유지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 전통주택의 외형적 특성
휘주 주택의 외형적 형태가 지닌 기본적인 특성은 첫째, 매우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폐쇄적 구조이다. 내부는 2층이나 3층 구조로 되어 있지만 집 내부는 물론 지붕조차도 넘는 높은 담으로 봉쇄되어 있다. 이 담장 상부의 형상이 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마두벽(馬頭壁)이라고 한다. 담장은 백색의 칠로 마감되었으며 검은 기와를 입힌 담장의 최상부는 몇 가지의 반복적 유형을 띠고 있어 흰 벽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마을 경관의 중요한 미적 측면을 담당하고 있다<Figure 4>.
둘째, 출입은 오로지 대문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엌이나 마당 등 에서 골목으로 출입 가능한 아주 작은 쌍여닫이 후문 뿐이다. 대문은 상부(門樓)에 반드시 화려한 조각 장식물을 부착하므로써 높은 담장과 벽이 만들어낸 지루한 폐쇄감을 상쇄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대조적으로 대문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주택 구조는 목조와 석조가 혼합된 구조인데 외부는 석재로, 내부는 수직적 목구조로 형성된 독특한 건축문화를 지닌다. 이러한 휘주 전통주택의 형성에 대한 배경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고 있는데, 하나는 휘주 지역의 가장들이 대부분 상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장기간 먼 외지에 나가 있게 되므로 남아있는 부인과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외부에 대한 방호적인 설계가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화재 방지였다. 휘주 주택은 외부는 석재 담이지만 내부는 목조 주택이다. 그러므로 집의 경계를 석재 담으로 구분하여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마두벽의 탄생은 명대 휘주 태수가 벽의 설치를 법률로 규정(1503)하면서 확산되었고 이후에도 이 규정은 철저하게 이행되었다9). 목조주택의 화재로 큰 피해를 보게 되자 만들어낸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명·청대 시작된 휘주의 마을 형성은 매우 오래되었지만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과정 중 많은 집들이 훼손되고 변형되었다. 아울러 오랜 세월 노후된 목재는 중간에 지속된 수리과정도 있었음이 눈에 많이 띄고 있었다.
2. 전통주택 공간구성 특성
휘주 지역 전통주택의 원형은 중원문화의 합원식 건축과 산월문화의 간란식 건축에 있다10). 북방의 뜰은 산간지역의 협소한 주택 내에 축소되어 들어 왔고 간란식의 누거형식은 좁은 택지에 효율적이었던 것이다.
휘주 주거의 내부 공간을 구성하는 특질은 첫째, 천정(天井, Skylight)이라고 하는 지붕 상부가 개방된 중정공간이 실 내부에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천정<Figure 5>은 내향적인 휘주 전통주거의 핵심이 된다. 천정의 개방된 공간은 실내에 매우 우수한 채광을 제공하며 우수나 눈 등은 일상의 생활용수로 이용된다. 따라서 우수를 받는 태평지(太平池)를 두거나 화재진압용 용수를 담는 태평항(太平缸)을 비치한다11). 천정 바닥은 이러한 외기에 대응하도록 당보다 낮게 시공되고 배수처리가 되어 있다. 천정은 실내와 실외의 공기 대류를 끊임없이 순환하도록하여 실내 환기에도 매우 유리하다. 둘째, 실내의 구성에서 당과 양측의 대칭적 침실 배치 원리는 사합원과 같다. 그러나 사합원과 달리 휘주 주택은 천정이 매우 중요한 평면구성의 기본 요소이다. 그러므로 당과 양측의 침실, 그리고 당의 전면에 위치되는 천정이 기본적인 주거 평면의 유닛으로 구성되었다. 이와 같이 휘주 주택은 기본적 유닛을 한 단위로 한 기본형과 일부 변형 및 중첩된 다양한 평면 유형<Figure 6>12)을 갖게 되었다. 또한 주택 내부는 대부분 2층 이상의 수직적 공간을 구성하였다. 개방된 천정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2층은 천정을 만들어내는 면에 난간과 복도를 구성하므로써 당의 공간을 관찰하고 동선의 순환을 촉진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물론 주택에 따라서 2층 역시 다양한 평면 구성이 존재하였다13). 세째, 공간 내부의 목재나 석재에 많은 조각장식을 하여 왔다. 휘주는 예로부터 벽돌, 석재, 목재에 대한 조각 장식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주택 내외부에도 이러한 장식이 많이 가미되어 있었다.
III. 결과 및 분석
휘주지역 2개 마을의 조사 대상 대부분의 주택은 외부인들에게 개방이나 접근이 되지 않았으며 특히 개방된 주택의 경우에도 2층 이상은 그 연한이 1, 2백년 이상이 된 아주 오래된 낡은 목구조이므로 위험을 이유로 절대 출입이 금지되었다. 거주자들 역시 대부분 1층에서만 살고 있었다. 또한 당 안측 역시 공개되지 않았다. 서체촌에 비하여 굉촌의 경우 일부의 주택들은 게스트하우스, 혹은 식당으로 상당부분이 변형되었고 낡은 빈 집으로 방치된 경우도 있었다. 거주자가 살고 있는 집들이라도 당에 책이나 기념품, 혹은 조각장식품 등 여러 상품을 놓고 판매하는 집들이 많았으며 부엌이나 화장실 같이 당의 개방된 공간이 아닌 안쪽 공간들은 생활의 편리성을 위해 개축한 집도 많았다. 일부의 주택들은 특히 문화혁명 때 화재가 나거나 하여 파손도 많았고 이 후 대문의 위치나 당의 용도도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14).
1. 주택 일반사항
<Table 1>에서와 같이 주택들은 모두 명대와 청대에 건립되어 굉촌에서는 벽원이 1607년, 서체촌의 상덕당은 1620년에 건립되어 3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집이 유지되고 있었다. 건축면적은 서체촌에서 가장 작은 대부제가 118 m2였으며 굉촌은 큰 정원을 지닌 벽원이 700 m2, 그리고 승지당이 가장 큰 면적인 2,100 m2의 규모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집의 층고는 3층인 앙고당을 제외하고 모두 2층이었다. 전반적으로 굉촌보다 서체촌에 건축년한이 오래된 집들이 많았다.
Table 1.
Construction Time & Size of Houses
2. 주택의 공간구성
1) 실내 진입 구성
휘주 주택의 봉쇄적 공간구조는 오로지 대문을 통한 실내 진입뿐인데 그 연결 동선이 독특하다. 모든 주택은 공통적으로 도로측에 면한 대문은 모두 쌍여닫이문으로 도로와 평행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일부는 굉촌의 수인당처럼 팔자문(八字門)이라고 하여 도로보다 안측으로 일부 후퇴해서 대문을 조성한 경우가 있었다<Figure 8>.
실내의 진입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다.
첫째, 대문과 중문이 이어져 있는 집이다. 중문을 지나서야 실내에 진입하는데 바로 천정공간이 면해 있는 구성이다<Figure 7>. 이 천정공간을 대응하는 중심이 ‘당(Tang)’이다. 둘째, 대문을 들어서면 안뜰이 구성된 경우이다. 안뜰에서는 다시 외부에 면한 것과 같은 형태의 마두벽, 즉 실내 외벽과 공유하는 담이 형성되고 여기에 실내 진입의 중문이 별도로 구성된다<Figure 8>. 이 경우는 대부분 천정공간의 중심에 바로 진입하므로 당을 향한 정면 동선이 되고 있다. 2개 마을 중 서체촌의 주택은 서옥정, 응복당, 도리원 등 세 채가 안뜰이 있었고 그 외는 모두 대문과 중문이 연이어져 있었다. 이에 비하여 굉촌 지역 주택 6채는 모두 안뜰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고 모두 당을 향한 정면 출입이었다. 다만 서체촌의 서옥정은 천정의 중앙이 아닌 좌측에 출입구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휘주 주택의 평면구성은 안뜰의 존재여부, 천정의 위치와 출입문과의 관계에 대한 나름의 규범이 안착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와 같이 실내를 대문과 중문, 대문과 안뜰+중문이라는 2단계의 진입은 사합원에서 볼 수 있는 대문과 수화문의 관계처럼 외부와 내부에 대한 중국인들의 공간배치 규범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 실내 평면구성 특성
조사주택의 당의 배치에 따른 평면구성은 대부분 기본적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붕이 삼면을 구성하고 나머지 한 면이 마두벽의 구성으로 되는 가장 기본적인 경우는 대개 당과 양 침실만 배치된다. 그런데 지붕 자체가 4면을 구성하는 경우는 천정이 중앙에 위치하고 그 아래에 침실이 더 부속됨을 의미한다. 즉, 당에 부속된 공간 규모가 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의 주택들은 마두벽이 실내의 한 벽을 이루어 ‘
’자평면이 되는데 비하여 지붕이 4면을 이루는 경우는 천정이 실 중앙쪽으로 위치하면서 ‘
’자형을 이루게 된다. 결과적으로 14채 주택을 출입문의 위치와 연관시킨 유형 차이는 총 6가지 유형으로 나타났으며, 건축년한이 오래된 집이 많은 서체촌은 측면의 진입이 많았고 보다 후대에 건립된 굉촌은 모두 안뜰을 통한 정면 진입이 많았다<Figures 9, 10>.
그리고 조사지역 주택의 모든 당은 천정공간과 대응하는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 당을 중심으로 그 양측에 침실이 대칭적으로 배치하고 있는데 이는 주택 뿐만 아니라 마을에 위치한 사당이나 서원도 같은 형식을 띠고 있었다. 이러한 대칭과 중축선은 중국 고전건축의 기본적인 사상이자 설계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형식으로 사합원은 물론 모든 건축물에 적용되어 왔다15). 휘주의 전통주택들도 이 원칙에 충실히 부합된 공간구성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1) 당의 평면 크기와 목조 기둥
중심에 위치한 당은 모두 천정공간을 향해 개방되어 있다. 당의 크기는 주택마다 차이가 있었다. 당의 전면은 큰 폭의 한 칸이며 침실에 면한 양 측면은 크기는 다르지만 어느 집이나 3칸의 깊이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의 크기는 폭이 앙고당의 3,250 mm에서 가장 넓은 도리원의 6,000 mm까지, 당의 깊이는 가장 작은 이복당의 3,800 mm에서 가장 큰 승지당의 7,800 mm까지 전반적으로 오늘날 현대주택의 거실에 충분히 부응할만한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당의 바닥재료는 모두 석재였다. 대부분 일반 화강석이었으나 굉촌의 경우 몇집이 이현에서 출토되는 검은 석재로 마감되었다.
당에 설치된 목조 기둥은 원형과 사각으로 구분되었는데 명대 건립 주택은 네모기둥이었다가 청대에는 모두 원형기둥을 사용했다고 한다16). 이러한 설을 뒷받침하듯이 서체촌의 명대 건립 주택인 광고제, 앙고당은 모두 네모기둥이었고 대부제는 네모와 원형이 혼재되어 있었다. 기둥의 폭은 보통 1,800~2,200 mm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범주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 당의 크기에 따라서 기둥이 대부분 명대에 건립되었다 하더라도 후대로 오면서 많은 수리와 중수가 이루어졌을 것이고 그 과정 중에 변형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굉촌의 주택은 모두 원형기둥이었으나 승지당은 당의 전면 중심판벽에 네모 기둥을 사용하였다. 당의 실내는 양측 침실이 인접한 곳과 후면부 천정 모두 목재 마감이며 바닥은 석재였는데 이 점은 서체촌이나 굉촌 모두 동일하였다. 또한 서체촌이나 굉촌의 주택 모두 당의 크기가 건축 년한이나 마을의 차이 보다는 개별적인 집의 공간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되어진다.
3) 실내 입면구성 특성
천정은 휘주 주거의 실내에 반드시 형성된 상부 개방된 천장이자 그 아래 바닥까지 연결된 수직 공간으로 실내 입면의 가장 큰 특성이다. 이는 또한 휘주인들의 주거생활을 영위하는 핵이라고 할 수 있다. 앞뜰과 상관없이 당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천정공간은 휘주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매우 기능적인 독특한 공간구성이다.
(1) 천정의 크기와 배치
천정이 있는 당의 실내는 채광이 있는 낮 동안, 거주자들 모두 현대적 조명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생활하고 있을만큼 충분히 밝았다<Figure 11>. 천정의 하부 바닥은 천정이 구성하는 크기 이상으로 빗물 등을 비롯한 외기 자연의 요소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당과 인접한 천정 하부는 단 차를 두거나 석재에 경사를 두어 마감하였으며, 우수를 받는 태평지나 태평항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바닥은 충분히 배수가 잘되도록 석재들 마감 사이에 틈새들이 있었다.
이러한 바닥의 넓이와 폭은 천정의 크기와 똑 같지 않았는데 폭이 최소한 당의 폭과 같거나 크게 하고 전면을 전체 연결한 경우도 있었다.<Table 2> 천정은 주택의 규모가 클수록 그 수도 많아서 승지당의 경우 외부공간 천정까지 포함하면 6개나 되었다. 굉촌에서 가장 대표적인 주택인 승지당은 그 규모는 물론 실내의 구조 장식 등이 매우 화려하고 웅장한 집이다. 일반적으로 마을 우물 외에 집 안에 우물이 없는 데에 비하여 승지당은 주택 내에 우물도 2개나 있다. 이에 비하여 벽원은 최초 건축은 명대였으나 청대에 중수하며 집의 많은 부분이 변형되었고 조사한 당에 천정이 없는 것도 이 공간이 본래 당이라기보다는 후원에 위치한 별도의 공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17)<Table 3>. 조사 주택의 천정에 대한 특성은 마을 간 공통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 천정의 하부 바닥은 서체촌이 모두 검은 석재인 반면 굉촌은 일반 화강석으로 마감하였다.
Table 2.
Size of 'Tang' and Order's Shape
Table 3.
Floor Size Beneath a Skylight and Finished Materials
(2) 실내입면과 벽면 장식
전술한 바와 같이 당의 개방적인 공간은 중심에 위치하고 그 양 측면은 상방으로 칭하는 침실이며 이 공간은 판벽으로 독립적인 공간이다. 당은 침실의 판벽과 당 전면의 중심 판벽, 그리고 앞에 면한 천정의 하부에 둘러싸여 있다. 침실의 바닥은 목재 마감이며 그 높이는 당에 면한 기둥의 초석 상부에 맞추어져 있다. 그 높이는 대부분의 조사주택이 약 300 mm 정도에 속해 있었다. 당의 중심은 사합원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부에 편액이 걸려있으며 그 아래에 족자가 여러 개 걸려 있다. 중심 가구인 콘솔탁자 위에는 각종 장식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이 앞에는 탁자와 의자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정형화된 형태였다. 침실에 면한 판벽에는 집집마다 개성에 맞게 다양한 족자나 그림 등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기둥에는 대부분 주련이 부착되어 있었다. 판재나 기둥은 대부분 어두운 갈색이었으며 최근 새롭게 보수한 자재는 원목색도 눈에 띄었다. 승지당의 경우는 어두운 주색칠을 하여 본래 매우 화려한 실내였음을 추정케 한다.
목재나 석재 창호 등의 마감재에 대한 장식은 집집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기하문, 꽃과 식물문, 동물문, 문자문, 정물 등에 대한 조각 장식이 많았다. 특별한 조각장식으로는 서체촌의 경우, 응복당에서는 마상 전투를 하는 인물의 모습이, 도리원에서는 빙렬문에 매화를 조화시킨 아름다운 장식이 돋보였다. 굉촌에서는 도원거와 경수당에서 금도금 장식을 한 보의 문양이 돋보였으며 벽원에서는 당의 외부벽에 청시대 석판조각이 여전히 잘 보존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승지당의 조각장식이 주칠 목재와 더불어 채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하면서도 공간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V. 결론 및 제언
휘주의 전통주택이 지닌 공간 구성을 살펴 본 결과 휘주 지역 전통주거는 매우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공간 구성에 반영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지속적 삶을 위한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공간 계획은 전통 주거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 즉 단순한 시대적제약이나 자연환경에 대한 수동적 적용이라는 보편적 담론을 넘어 선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었다. 휘주 주택의 공간구성 특성을 고찰하여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휘주 전통주택의 기본적 특징인 마두벽은 외부에 대한 방어와 방범, 화재의 방지라는 일차적 기능을 통하여 마을 전체의 안전에 더욱 우선한 계획이었다. 이러한 기반시설은 휘주 전통주택의 외형적 특성을 나타내주는 일차적 요소가 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주택의 평면 구성을 위한 실내 진입 유형은 외부에서 내부로의 긴밀한 동선과 아울러 프라이버시에 대한 중국인들의 강한 구분이 있음을 보여준다. 가족들의 사적 보호를 하면서도 집의 배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규범을 우선시 하고 있었다.
셋째, 휘주 전통주택의 실내 평면 안에 도입된 천정이라는 개방공간은 다른 문화권에서 보기 어려운 공간구성이었다. 이는 채광을 통한 실내의 밝음 뿐만 아니라 축소된 안뜰로써 자연 기후의 상태를 일상적으로 공유하며 생활했다는 점에서 매우 자연친화적 평면 구성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친환경 주거설계의 우수이용이 이미 휘주 주택에서는 일상적인 삶의 지혜였던 것이다. 이는 기능과 낭만이 절충된 휘주 주거의 가장 특징적인 공간구성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실내의 공간 구성이 주택 축의 중심과 대칭을 이루는 사합원의 공간 질서와 규범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인들의 공통적 주거관을 엿볼 수 있었다. 아울러 당 중심의 기본적인 평면 유닛을 구성하고 이를 주택의 상황에 맞게 변형하거나 중첩하여 나타난 평면 계획은 그 자체가 모듈이라는 법칙을 적용한 셈이다. 이는 휘주인들의 주택 계획이 매우 기능적이고 합리적 접근을 중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섯째, 휘주 주택의 실내공간 입면을 구성하는 창호나 목재에 많은 조각 장식을 가미하여 폐쇄적인 주거생활을 하는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아름다움과 미를 제공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주거의 질적 쾌적성에 기여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섬세하게 조각된 다양한 문양과 패턴들은 가족들의 행복과 장수를 기원하며 일심의 공동체가 되는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주련에 부착된 많은 문구들 역시 가족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것이다.
종합적으로 휘주의 전통주택은 휘주 문화를 대별하는 독자적인 특징과 요소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산간지역의 어려운 자연적 조건을 해결하기 위한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요소를 적극 주택 계획에 반영하여 다른 주택에서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주거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휘주의 대표적인 전통주택 유산을 지닌 서체촌과 굉촌의 주거 연구는 앞으로도 더 많은 과제를 담고 있다고 보여 진다. 본 과제는 주어진 최소한의 조건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휘주 지역 전통주택이 지닌 문화적 관점에서 더욱 심층 깊은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들은 오늘날 현대주택의 공간계획에도 적용할만한 지혜를 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