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the Korean Housing Association. 25 June 2016. 23-30
https://doi.org/10.6107/JKHA.2016.27.3.023

ABSTRACT


MAIN

I.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황룡사지 동편에 위치한 신라왕경 유적(S1E1지구)은 1987년부터 연차적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2002년1)에 조사가 일단락되었다. 이로써 문헌에 기록된 방리제(條坊制)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방(坊) 내부의 소규모 도시주택의 유구는 지금까지 삼국사기 옥사조에 의존해왔던 통일신라시대 주택의 연구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황룡사지 인근이라는 위치적 특성 때문에 살림집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방내부에는 110기가 넘는 건물지가 발굴되었고, 특히 2차조영시기는 8-9세기로 조사되어 옥사조의 반포시기(흥덕왕 9년, 834)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에 따라 정방형의 건물지가 옥사조의 실(室)과 직접적인 상관성이 있다는 연구2)가 발표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신라왕경에 존재하였던 다양한 형식의 평면유형도 분석3)되었다. 그러나 방을 구성하는 택지는 오랜 경작으로 훼손이 심하고, 주택전체의 배치를 살펴볼 수 있는 사례는 소수일 뿐이다. 또한, 경주에서 온전한 형태의 가옥이 발굴된 사례도 없어 통일신라시대 주택의 배치를 논의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2009년 발굴이 완료된 인왕동 412번지4)와2014년 약식보고서가 발간된 재매정지 유적5)은 외곽을 둘러싼 담장과 대문을 포함하는 다수의 건물지가 확인되어, 황룡사지 동편유적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주택의 배치를 분석할 수 있는 사례로 주목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출토유물의 편년을 통하여 중심연대가 8-9세기로 보고된 경주시의 신라왕경 유구 가운데, 주택의 전체구성을 확인할 수 있는 황룡사지 동편유적과 인왕동 412번지유적 그리고 재매정 유적을 중심으로 통일신라시대 주택의 배치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재매정지는 황룡사지 동편(이후 S1E1지구) 방(坊)의 1/2에 이르는 대규모 저택으로 S1E1지구의 소규모 주택유구와 비교될 수 있다.

2. 연구의 범위 및 방법

S1E1지구는 7세기 후반에 조성되어 고려시대까지 지속되었으나, 초축시의 택지분할에 따른 가옥 수는 알 수 없다. 2차 조영시기인 8-9세기에는 외곽의 방장과 함께 전면적인 개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방의 한 변에 5-6채의 주택이 배치되어 총 18개의 택지가 확인되었다. 방의 내부는 오랜 시간 농경지로 사용되어 심하게 훼손되었으며, 주택의 배치를 살펴 볼 수 있는 사례는 제2, 3, 5, 6, 7가옥 정도이다. 이들은 대문과 담장 및 주택을 구성하는 건물지가 온전하게 발굴되어 도시계획 단위인 방 내부를 구성하는 소규모 주택의 배치를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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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Relics of Silla Capital S1E1 Area Site Plan

Source. Lee, J. M. (2010) p. 243

한편, 최근 발굴이 완료된 인왕동 412번지 유적은 S1E1지구의 주택들과 유사한 대지규모로, S1E1지구를 벗어나 온전하게 발굴된 사례이며, 유구의 중심연대도 일치한다. 따라서 신라왕경 내에서 같은 시기, 같은 규모 주택의 배치특성을 분석할 수 있다. 또한 재매정지의 대지면적은 S1E1지구의 1/2에 해당하는 규모이며 유적의 중심연대가 8-9세기로 보고됨에 따라, S1E1지구 및 인왕동 412번지와 동일한 시기에 존재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경주시에서 발굴된 신라왕경 유구 가운데 외곽을 한정하는 담장 및 도로유적을 통하여 주택 전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같은 시기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확인되는 사례를 중심으로 통일신라시대 도시주택의 배치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II. 신라왕경 주택의 유적 현황6)

1. 황룡사지 동편(S1E1지구) 유적현황

1) 제2가옥

제2가옥에서는 문지를 포함하여 9기의 건물지가 2차조영기로 보고되었다. 대지의 중앙에 중심건물이 있으며, 그 외의 건물은 대문이 위치한 남쪽 담장을 제외하고 서, 북, 동측의 외곽담장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대지의 북편에 정확한 기능을 알 수 없는 석조유구 3개가 밀집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2개가 5건물지 내에 위치한다. 또한 대지의 동편에 위치한 6건물지에서는 다량의 불에 탄 흙이 발굴되어 부엌일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대호편이 출토된 7건물지는 인접한 우물 및 8건물지와의 위치관계로 보아 곡물저장 창고 등으로 추정되었다. 즉, 6, 7, 8건물지는 대지의 동측에 주로 가족들의 식생활을 위한 기능의 서비스영역을 구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대지의 서편에 배치된 2건물지는 소형담장(間墻)으로 대문의 진입영역과 분할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3건물지는 2건물지와 마찬가지로 1건물지에 구성된 소형담장으로 주택의 중심영역과 분할되어 별도의 영역을 구성하며, 2, 3건물지는 대지의 북편 및 동편에 배치된 부속건물에 비해 측면칸의 규모가 비교적 크다. 따라서 대지의 서측에 배치된 동향의 2, 3건물지는 기거용 건물인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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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Site Plan of Silla Capita Relics

2) 제3가옥

제3가옥에는 형태나 주칸 등이 파악되는 7동의 단위건물지와 석축우물, 수혈유구, 소형담장 등이 시기차를 두고 중복된 채 노출되었다. 2건물지는 가옥의 남단에서 문지와 근거리에 배치되어 문간채의 성격을 띠는데, 2차 조영시기에 담장이 개축되면서. 1차 문지가 폐기되고 2차 문지와 2건물지로 개축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문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지들이 대지의 북반부에 밀집, 분포되었으며 담장과 4, 5건물지의 중복관계로부터 2차 조영시기 중심건물은 3건물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중심건물의 후면은 소형 부속건물 외에 적심을 확인할 수 없다.

3) 제5가옥

제5가옥은 S1E1지구의 동남쪽 모서리에 위치하므로 남쪽과 동쪽 외곽에 각각 도로가 접해 있으며, 대지의 북측은 경계를 확인하기 어렵다. 대지의 남면도로에 접한 대문의 정면에 우물이 있으며, 우물의 좌우로 비슷한 규모의 1, 2건물지가 배치되어 있다. 1, 2건물지는 모두 중복된 적심유구의 흔적이 없으므로 초축부터 제5가옥의 모든 기간 동안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1건물지는 북쪽 칸보다 남쪽 칸이 넓으며 신방석이 설치되어있고, 2건물지는 내부와 남측외부공간에 걸쳐 부석이 시설되어있다.

1건물지의 북편으로 마당을 두고 중심건물이 있으며, 동측으로 5건물지가 배치되어 있다. 5건물지가 폐기된 후 석조유구 및 대호가 유기적으로 노출된 6건물지가 축조되었다. 중심건물을 제외하고 유구의 상황만으로 부속건물의 기능을 단정하기 어려우나, 각 건물지의 위치관계 및 석조유구, 부석시설, 신방석 등으로 보아 1건물지는 중심건물과 함께 기거용 시설이었을 것으로 판단되며, 2 및 5건물지가 창고 등의 부속건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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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Site Plan of Silla Capital Relics

4) 제6가옥

제6가옥은 S1E1지구의 서편에 동서로 긴 장방형의 형태로 구획되었다. 정면2칸 측면1칸의 문지는 서편 남북도로에 면하고 있으며, 정면3칸 측면2칸의 남향 중심건물이 대문에 인접하여 배치되었다. 중심건물의 후면에 우물과 정면2칸 측면1칸의 2건물지가 있다. 2건물지는 담장축의 변화에 따라 대지전면의 중심건물 및 담장과 다른 축을 갖는데 중복된 적심 및 개축의 흔적이 전혀 없으므로, 제6가옥이 조성될 당시 축조되어 중심건물인 1건물이 개축된 이후에도 계속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제6가옥은 356m2(108평)의 비교적 작은 면적으로 건물지 2동이 전후로 남향배치되어 있으며, 불필요한 공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불규칙한 담장에 건물을 밀착하므로 효율적인 공간을 구성하였다.

정면2칸의 대문은 우측칸에 3단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좌측칸은 자갈이 경사지게 깔려있어 사람과 우마차의 출입을 별도로 구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5) 제7가옥

제7가옥은 동서방향으로 긴 장방형 대지이다. 내부에는 주칸이 확인되는 단위건물 14기가 세 번의 조영시기에 걸쳐 시기차를 두고 조성되었으며, 출입시설은 서편 남북담장에 부속되어 있다. 5건물지가 문간채 및 창고의 기능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인접한 6, 9, 10건물지 역시 평면형식 및 규모 등으로 보아 부속건물들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중앙에 배치된 2건물지가 전면마당 및 대문 등의 위치로 보아 중심건물로 판단되며, 후면의 13건물지는 전면에 넓은 마당이 있는 남향 건물지로, 2건물지와는 다른 용도의 기거용 건물로 보여진다. 따라서 제7가옥에는 두 개의 중심건물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바깥마당의 하부 자갈층에서는 타원형을 띠는 연못형태의 수혈 2개소가 노출되었는데, 바닥과 경사면에 자갈을 인위적으로 깔아 다진 것으로 보이지만, 깊이가 30 cm에도 미치지 못하고 규모도 작아 연못일 가능성은 희박하며 그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각 건물군은 여러 차례 개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배치양상은 변하지 않고 지속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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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Site Plan of Silla Capital Relics

2. 인왕동 412번지 유적 현황

유적은 북측도로를 갖는 남북이 긴 장방형의 대지로 북편담장 서측 모서리에서 대문이 확인되었다. 가옥 내에서 조사된 건물지는 총3기이며, 대문에 인접한 1건물지가 중심건물로 비교적 큰 적심이 평면의 네모서리와 중앙에 배치되고, 그 사이에 비교적 작은 적심이 배치되어, 정면4칸 측면3칸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적심의 배치양상을 S1E1지구 중심건물들의 평면형식과 비교해 보면, 사방 1칸 규모 주실(主室)에 전면3칸의 전퇴가 부가된 형식의 평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뿐만 아니라 3건물지와 1건물지의 위치 및 마당과의 관계 등으로 보아도 중심건물은 전퇴를 갖는 남향건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건물지는 담장을 따라 변형된 형태의 장방형평면으로, 바닥에 설치된 2기의 대호 및 서편 우물 등을 근거로 부엌 내지는 저장을 위한 건물지로 추정된다. 3건물지에서는 2기의 적심이 조사되어 평면을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편 문지의 남측으로 담장석열이 노출되었는데, 이는 도로측에서 가옥의 내부공간으로 시선을 차단하기 위한 내외담으로 보고되었으나, 1건물지의 북측 기단열 양상을 고려하면 가옥이 확장되기 이전의 담장이었을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3. 재매정 유적 현황

재매정 유적은 김유신장군의 생가 또는 종택에 있던 우물7)이라고 전해오며, 신라 35금입택 중 유일하게 위치가 전승되는 곳이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1차 발굴조사8)를 실시하였으며,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신라문화연구원에서 2차 조사를 실시하였다. 1차 조사에서 재매정 주변 19동의 건물지가 발굴되었으며, 2차 조사에서는 건물지 23동과 함께 도로 담장, 우물, 석축유구 등이 발굴됨에 따라 재매정택의 영역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총 42동의 적심건물지는 교란이 심하며 적심석의 중복이 심하고 간격도 일정하지 않아, 건축물의 형태와 건축물간의 동시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로 보고되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약식보고서만 발간된 상태이므로, 유적의 면밀한 검토가 진행되면 좀 더 정확한 현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구 현황 <Figure 5, 6>을 보면 오랜 시간 다수의 건물이 신축되거나 증개축 되었음에도, 배치양상은 큰 변화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우물은 3곳으로 떨어져 분포하고 있으며, 우물 주변에는 회랑형 건물지가 ㄷ자 또는 ㅁ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그 속에 장방형의 중심건물지가 존재하는 양상이다. <Figure 5>에서 주택의 외곽은 담장 및 행각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Figure 6>에서는 모두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심건물의 규모가 확대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외에 주택의 공간구성은 큰 변화없이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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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5.

Relics of Jaemaejeong Haenggag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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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6.

Relics of Jaemaejeong Haenglang Times

신라왕경의 방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방의 규모는 동서 140-184 m, 남북 120-168 m 내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발굴된 재매정의 규모는 동서 110 m, 남북 80 m로 약 9,000 m2 (약300평)이다. 외곽담장이 모두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북측은 동서도로가 남측은 남천이 흐르고 있으므로, 남북방향으로는 더 이상 확장될 여지가 없다. 또한 현재의 발굴범위가 동서측으로도 110 m에 이르므로, 기존의 연구 성과를 고려하면 재매정이 다른 가옥과 하나의 방을 구성하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현재 발굴된 동측의 남북방향 담장은 가옥내에서 영역을 구분하는 내부담장으로 판단되다. 행랑형 건물로 분할되는 다른 영역과 명확한 기능의 구분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III. 규모로 본 신라왕경 주택의 배치형식

<Table 1>에서 보는바와 같이 인왕동 412번지의 대지면적은 약 106평으로 S1E1지구 내에서 가장 작은 제6가옥과 유사하다. 반면, 재매정지는 현재 거주자가 확인된 유일한 사례이며, 약 2,990평의 대지면적이 확인되었다. 이는 S1E1지구 전체면적 18,710 m2 (약5,660평)의 1/2에 해당하며, 방(坊)을 구성하는 주택의 대지 면적을 평균 200평으로 보면 15배에 이른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재매정을 대규모 주택으로, 그 외의 연구대상을 소규모 주택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배치특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특히 거주자의 신분이 확인되는 재매정의 배치는 통시적 측면에서 한국전통 상류주택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Table 1.

Plottage

SiteHousePlottage
Small Size
House
Relics of Silla Capital
(S1E1 Area)
No. 2 House704 m2 (≒213PY)
No. 3 House741 m2 (≒224PY)
No. 5 House-
No. 6 House356 m2 (≒108PY)
No. 7 House575 m2 (≒174PY)
Inwangdong 412351 m2 (≒106PY)
Big Size HouseJaemaejeong9,888 m2 (≒ 2,990PY)

1. 소규모 주택의 배치 특성

선행연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S1E1지구의 2차조영시기 중심건물은 대부분 보칸이 2칸 이상인 반면, 부속건물의 보칸은 단칸이다. 현재 발굴된 신라왕경 유구는 적심만 잔존하는 경우가 많으며, 유적현황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부분 비슷한 위치에서 1, 2, 3차 조영시기 건물적심의 중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특정한 시기 가옥에 존재하였던 건물의 수를 정확히 상정하기 어려우나, 가옥의 존속기간 동안 공간구성은 큰 변화가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 본 각 주택의 유적현황을 보면, 중심건물은 택지의 중앙 혹은 전면에 대문과 밀접한 관계로 배치되어 있다. 도로에 면하는 폭이 짧은 장방형 대지에서 중심건물의 위치는 주택의 내부공간구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1) 중심건물 중앙 배치형

S1E1지구의 제5가옥과 제7가옥의 중심건물은 대지의 중앙에서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부속건물은 서측 담장 측에만 배치되어 있으며, 중심건물은 동측으로 치우쳐 있다. 이러한 배치로 주택은 중심건물을 기점으로 전후면 영역으로 분할되며, 특히 제7가옥의 후면에는 부석이 깔린 마당과 우물을 갖춘 비교적 큰 건물지가 발굴되어, 소규모 주택에서 기능이 다른 두 개의 중심건물이 배치된 사례를 볼 수 있다. 한편, S1E1지구의 제2가옥은 외곽담장을 따라 동측과 서측 그리고 북측의 삼면에 부속건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대지의 동북측 후면에 중심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남측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배치된 부속건물은 내부담장을 설치하여 영역이 구획되어 있으며, 북측에 배치된 부속건물도 대지의 동측에 치우치게 배치된 중심건물의 기단에 내부담장을 설치하여 영역을 분할하고 있다. 즉, 주택의 중심영역을 중앙에 두고 각각의 부속영역을 담장으로 구획하고 있으나, 생활 서비스 영역이 중심건물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은 다른 주택의 배치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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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7.

Center Layout Type of Small Size House

2) 중심건물 전면 배치형

S1E1지구의 제3가옥과 제6가옥 그리고 인왕동 412번지 가옥은 도로에 면하는 대지의 폭이 약 10 m 내외로 중심건물 및 부속건물의 배치에 많은 제약이 있다. 특히 S1E1지구 제6가옥과 인왕동 412번지 가옥은 주택의 전면도로가 각각 서측과 북측에 위치하므로 중심건물의 진입축 설정 및 남향배치 등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대문의 좌측에 중심건물을 배치하고, 마당을 구성하며, 중심건물의 후면 영역에 창고 및 우물을 포함하는 식생활 서비스 영역이 배치되어 있다. 이때 중심건물은 모두 남향이다. 한편, S1E1지구 제3가옥의 대지면적은 소규모 주택 가운데 가장 크지만, 대지의 폭이 협소하여 건물들이 마당을 둘러싸는 형식의 배치가 어렵다. 따라서 진입의 전면에 마당과 중심건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후면에 부속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대지의 중앙에 중심건물이 위치하는 경우 부속건물이 중심건물과 함께 주택의 전면에 위치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배치형식으로부터 중심건물과 부속건물이 하나의 영역을 구성할 수 없을 때, 중심건물의 위계를 중요하게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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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8.

Front Layout Type of Small Size House

2. 대규모 주택의 배치특성

<Figure 9>는 1, 2차 발굴에서 확인된 건물지 현황이다. 외곽담장은 북측도로에서 확인되었으며, 동서측 및 남측은 현대의 도로로 인해 더 이상의 발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남북축의 건물들이 주택의 내부공간을 3개의 영역으로 분할하고 있으며, 동측에서만 내부담장이 발굴되었다. 보칸이 2칸 이상 규모인 남향의 건물이 배치된 영역이 주택의 중심영역으로 판단된다. 서측 문지에 인접한 중심건물은 동일한 위치에서 몇차례 증개축이 있었으며, 전면에 넓은 마당이 있는 남향 건물로 대문을 들어서면 직접 배면이 보이게 된다. 전면으로 넓은 대지가 펼쳐져 있음에도, 대문에 근접하여 중심건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진입으로부터 중심건물을 차단하는 부속건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배치된 부속건물의 정형성이 없다. 한편, 대지의 중앙에 행랑형 부속건물들로 에워싸여 있는 중심건물은 남천 쪽으로의 정면은 조망이 확보되지만, 좌우측면은 부속건물이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특히 북측 동서도로에서 16칸 규모의 행각과 담장 및 8칸 규모의 행랑이 중복되어, 주택이 존재하던 모든 시기에 도로에서 가옥의 중심구역으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하고자 계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소규모 주택의 영역 분할에는 대부분 내부담장이 사용되었으나 재매정에서는 영역을 분할하는 내부담장이 발굴되지 않은 것이 주목되며, 부속건물이 영역간의 경계요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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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9.

Status of the excavation in Relics of Jaemaejeong9)

앞으로 재매정지와 유사한 규모의 주택이 발굴되고, 대문 등의 출입시설이 확인되어 신라왕경 상류주택의 배치 질서가 명확해 지기를 기대한다.

IV. 신라왕경 도시주택의 배치특성10)

1. 담장(垣, 墻)의 구축: 내외부 공간의 경계형식

왕경유구는 대부분 건물지와 인접하여 담장이 발굴되었다. 삼국사기 옥사조에는 신분에 따라 담장의 높이 및 형식을 규제하고 있는데, 발굴유구와 문헌사료를 통하여 신라왕경의 주택은 건축군의 경계로 담장을 두르는 형식이 보편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발굴성과가 거의 없던 시기, 선학들은 담장(垣墻)에 도리(棟)와 보(梁)의 시설을 금하는 옥사조의 규제를 행각(廊) 및 회랑의 금지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현재 신라왕경의 방을 구획하는 담장들은 2-3차례 개축된 것이 확인되며, 개축된 담장을 따라 건축물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재매정의 경우 16칸의 행각건물지 위에 8칸의 행랑지가 중복되어있으며, 행랑지와 담장의 배치축이 일치하므로 행각의 존재시기가 담장보다 빠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S1E1지구의 2차조영시기 및 신라왕경유구의 중심연대는 대부분 8-9세기로 알려져 있는데, 도시계획시설인 방장(坊墻)의 조영시기 및 재매정지 행각 및 행랑과 담장의 중복양상 등과 함께 김유신의 생몰연대를 고려하면, 통일신라 이전의 대저택은 행각이 외곽의 경계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관하여는 더 많은 자료의 축적이 이루어진 이후에 논의되어야 하겠으나, 도시계획적 차원에서 방장이 정비되면서 재매정의 행각이 폐기되고, 신라왕경의 모든 주택외곽은 담장으로 구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통일신라시대 주택의 담장에 관하여 일본의 율령 집인 연희식(延喜式, 927)과 중국의 영조법식(營造法式, 1103)에 기록된 담장관련 규정을 옥사조와 비교한 연구11)에서는 통일신라 담장의 높이와 폭은 일정한 비례관계에 있으므로, 높이를 규제함으로 폭도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또한 보와 도리방향의 부재로 상부구조를 결구하고 기와를 올리거나, 보방향의 부재만 결구하고 기와를 올리는 형식, 혹은 상부구조 없이 기와만 올리는 담장 등 신분에 따른 담장의 형식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경주지역에서 발굴된 담장 유구는 중복이 심하여 정확한 너비의 확인이 어렵다. 다만, 신라왕경 유구의 중심 시기인 8-9세기 도시주택의 외곽담장은 모두 폭 1 m 내외의 기초위에 모두 기와를 올린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Figure 10>은 돈황석굴에 묘사된 당대(618-907)의 주택관련 회화로 회랑 및 담장으로 둘러싼 가옥의 내부가 몇 개의 영역으로 분할되어 있다. 중심건물들은 당시의 건축형식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행각과 담장을 구분하기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내부공간에 사람이 묘사되어 있다거나, 깊이감이 표현되어 있고, 살창형식의창이 묘사되어 있는 경우 행각으로 볼 수 있는데, 성당(盛唐) 시기의 저택을 묘사하고 있는 b)에서만 담장이 주택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으며, 하인들의 영역으로 보이는 전면 마당을 둘러싼 담장은 기와를 올리지 않은 형식이다. 즉, 회화자료에 나타난 중국의 상류제택은 행각을 경계로 집주인의 거처와 하인의 거처인 진입공간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으며, 여기에 담장이 둘러쳐진 가축의 공간이 부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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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0.

Tunhuang Mogao Cave (晩唐, 9C)

Source. Hou, Y., & Li, W. (2004) p. 63

재매정지는 <Figure 10>의 대저택과 비교할 수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현재 모든 외곽담장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방장(坊墻)과 함께 개축된 행랑 및 대지의 현황으로 볼 때, 재매정의 외곽은 모두 기와를 올린 판축담장이었을 가능성을 쉽게 상정할 수 있다.

또한 <Figure 10>의 a)를 보면 아래쪽의 지붕이 없는 담장으로 구획된 곳에 말이 그려져 있는 영역을 볼 수 있으며, 주택과는 별도로 출입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재매정지에서 유일하게 내부 담장으로 구획된 동측영역 또한 말과 하인들을 위한 영역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재매정지를 포함한 S1E1지구 주택의 경우 대부분 담장을 따라 장축의 건물지가 발굴되었으나, 재매정지의 동측영역은 남향의 건물지만 발굴되었다. 이러한 건물배치는 동쪽영역이 재매정의 일곽으로 내부담장 외에 더 이상의 경계가 필요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S1E1지구의 가옥들은 대부분 200평 내외로 동서, 남북 도로에 접한 담장이 방장의 역할을 겸하고 있으며, 인왕동 412번지 가옥도 북측담장의 전면에 동서도로와 배수로가 발굴되어 S1E1지구와 동일한 가로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신라왕경12) 보고서에 따르면 가옥 내부의 곳곳에 내부담장(間墻)이 발굴되었다. <Figure 11>은 S1E1지구 가옥의 내부담장 사례이다. a) 제2가옥은 대문을 들어서면 우측 우물 주위로 담장이 있으며, 좌측은 건물을 둘러싸고 내부담장이 시설되어 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또한 중심건물 기단 좌측과 우측의 전면에도 내부담장이 있다. 내부담장은 인접한 건물 및 기단과의 배치, 길이 등에서 유기적 관계를 확인할 수 있으며, 외곽담장보다 폭이 작다. b) 제7가옥의 내부담장은 북서측에 배치된 건물에 인접된 한 개소에서 확인된다. 담장이 시설된 건물은 가옥의 후면에서 별도의 영역을 구성하는데, 후면 영역으로 진입할 때 건물의 측면이 보이게 배치되어 프라이버시가 확보되었음에도 내부담장으로 명확한 영역구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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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1.

Inside Fence in Small Scale House

지금까지 살펴 본바와 같이 대지규모 및 신분에 관계없이 통일신라시대 도시주택의 외곽은 담장으로 한정되지만, 주택 규모에 따라 내부공간의 경계요소는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규모 저택인 재매정의 경우 가족의 생활공간은 부속건물을 경계로 영역을 분할하고, 가축 및 하인의 거주영역은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다. 반면 소규모 주택은 내부담장으로 영역을 분할하는데, 이때 외부를 둘러싸는 담장보다 다소 폭이 작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2. 외부공간 중심의 배치: 기능에 따른 마당의 구성

앞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재매정은 보방향이 1칸인 행랑형 건물들이 비워진 마당을 위요하며, 적어도 3개 이상의 영역을 구성하고 있다. 측면이 단칸인 부속건물들은 대지 내에서 동서와 남북의 배치로 중심영역의 경계를 형성한다. 이때 내부담장은 볼 수 없다. 이렇게 행랑형의 부속건물로 구획된 영역의 중심은 마당으로 비워져 있으며, 마당의 북편에 남향의 중심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결국 중심건물과 부속건물이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비워진 마당을 위요하는 형식이 된다.

소규모 주택 역시, 외곽담장을 따라 배치된 부속건물이 중심건물과 함께 마당을 위요하는 배치형식이다. 다만 두 개의 중심건물로 영역이 분할되는 경우 택지규모 및 경제상의 제약으로 다수의 부속건물을 배치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S1E1지구의 주택에는 대부분 내부담장이 있으며, 부속건물과 함께 마당을 위요하고 영역을 구획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건축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기능의 건물과 함께 구성되는 외부공간 즉, 마당이다. 반면 일본 나라시대(奈良時代) 8세기 헤이죠쿄(平城京) 상류주택의 발굴유구 <Figure 12>를 보면, 나무 울타리(柵)로 주택의 내부영역이 분할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재매정지와 같은 시기인 b)는 일본의 고대주택 유구 가운데 거주자가 확인된 유일한 사례로 일본건축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비워진 외부공간, 마당을 중심으로 각 영역이 행랑채로 분할되는 재매정지와 건물이 중심이 되는 영역을 담장으로 분할하는 일본주택의 차이점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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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2.

Urban House Relics in lAte Time of Nara Period

Source. Toshiaki, O. (2008) pp. 149-151

V. 결 론

신라왕경 도시주택의 택지규모와 신분의 관계에 관한 것은 아직까지 확인할 수 없으나, 비슷한 시기 일본의 도성은 신분별 택지분급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경주시에서 발굴된 신라왕경 유구 가운데 가옥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방(坊)의 1/2를 점유하는 재매정과 1방(坊)이 18개의 택지로 분할된 S1E1지구의 다섯 가옥 및 인왕동 412번지 유적이다. 재매정은 유일하게 거주자가 알려져 있으며, 택지규모가 다른 가옥들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통일신라에서도 신분에 따라 택지의 규모를 제한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본 연구는 연구대상의 대지규모에 따라 대규모 주택과 소규모 주택으로 구분하여 배치특성을 분석하였다.

먼저, 신라왕경 도시주택의 외곽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재매정의 사례로 보면 담장과 행각이 함께 사용되었던 시기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나, 행각의 위치에 담장과 행랑유구가 중복되어 있으므로, 이후 모든 주택에서 담장이 외곽의 경계요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소규모 주택에서는 내부담장으로 중심영역 및 부속영역을 분할하지만, 대규모 주택에서는 회랑형 건물들이 중심건물 및 마당을 에워싸는 형식으로 배치되어, 주택 내부의 영역을 분할한다. 특히, 재매정에서는 병렬로 위치한 중심 영역 사이에 부속영역이 배치되어 공간적인 영역분할을 볼 수 있다. 재매정의 공간구성을 대규모 저택의 보편적 특징으로 볼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은 앞으로 논의될 여지가 있으나, 중심영역의 공간분할에 내부담장이 사용되지 않는 것은 소규모주택과 구분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주택의 중심건물 전면에는 넓은 마당이 배치되어, 중심건물의 위치 및 향을 결정한다. 특히, 북측에 도로 및 대문이 위치한 주택은 대지규모와 상관없이, 대문에 인접하여 중심건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남향의 마당을 구성하기위한 계획의도라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경주의 신라왕경 유구 가운데 중심연대가 8-9세기로 추정되는 건물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비워진 마당에서는 적심이 확인되지 않지만 대부분의 건물지에 2, 3차례 중복된 적심유적이 확인되므로 오랜 시간 신라왕경 도시주택의 배치에 동일한 계획이념이 유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Notes

[1] 1) Gyeogju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2002). Excavation report on the capital remains of silla. Korea: Gyeongjusi Press.

[2] 2) Lee, J. M. (2011). A Study on the Sil in「Oksa」Chapter of 『Samguksagi』. Jouanal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Planing & Design, 27(4), 139-146.

[3] 3) Lee, J. M. (2015). A study on the plane type of house in unified silla period. Journal of the Korean Housing Association, 26(64), 139-146.

[4] 4) Silla Cultural Heritage Research Group (2009). Relics of silla capital IX-412 inwang-dong. Gyeongju: Gyeongjusi Press.

[5] 5) 신라문화유산조사단(2014). 경주 재매정 정비사업 유적 문화재 발굴조사 약식보고서

[6] 6) 신라왕경 주택의 유적현황은 각 유적의 발굴조사 보고서에서 건물지 관련 내용을 재정리하였음.

[7] 7) Samgukyusai(三國遺事)에 기록된 35 금입택(金入宅) 중 하나가 재매정택(財買井宅)이다. 그리고 Samgukyusa(三國史記)에는「庾信又不歸家晝夜練兵, 西行道過宅門, 一家男女瞻望涕泣, 公不顧而歸」(신라본기, 선덕왕 14년조)로 기록되어 있어 김유신의 저택이 월성서편에 위치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김유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천관녀(天官女)의 이름에서 유래된 천관사는 재매정지 남쪽 500 m 위치에 절터가 남아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현재의 재매정 유적이 김유신 장군의 저택인 재매정택이 있었던 곳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8] 8) Gyeogju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1996). Excavation report on the jaemaejeong site. Korea: Gyeongjusi Press.

[9] 9) Figure 5, 6, 7국립문화재연구소(1996)와 신라문화유산조사단(2014)의 재매정지 발굴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2014년의 조사는 정식보고서가 발간되기 이전으로, 각 건물지에 관한 세부사항은 추후 논의의 여지가 있다.

[10] 10) 신라왕경 주심구역 방(坊) 정비 및 활용을 위한 학술심포지엄(주최 경주시, 주관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 2015)의 일부로 발표된 내용을 재정리하였음.

[11] 11) Hyun, S. W., & Kang, H. (2015). A study on the walls of 「Oksa」in the 『Samguksagi』. Jouanal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Planing & Design, 31(2), 237-244.

[12] 12) Gyeogju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2002). Excavation report on the capital remains of silla. Korea: Gyeongjusi Press

References

1

Gyeogju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1996). Excavation report on the jaemaejeong site. Korea: Gyeongjusi Pres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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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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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Lee, J. M. (2011). A study on the sil in「Oksa」chapter of 『Samguksagi』. Jouanal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Planing & Design, 27(4), 139-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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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07/JKHA.2015.26.6.139
9

Silla Cultural Heritage Research Group (2009). Relics of silla capital IX-412 inwang-dong. Gyeongju: Gyeongjusi Press.

10

Toshiaki, O. (2008). Exploring the japanese residence the original flow. Japan: Sagami Shob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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