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경주시의 신라왕경에 관한 연구는 1920년대 일본 학자들로부터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한국 학자들에 의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는 경주시의 고고학적 발굴조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신라왕경의 도로 및 건물유구에 관한 자료가 축적되었으며, 고고학 및 역사·도시에 관한 연구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특히, 2002년1)에는 1987년부터 십여 년에 걸쳐 연차적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던 황룡사지 동편(S1E1지구)의 조사가 완료됨으로 그동안 도시구조의 복원안을 제시하는데 집중되었던 신라왕경의 연구에 새로운 국면을 제시하였다. 그동안 『三國史記』「屋舍」條의 해석에 의존해 온 통일신라시대 주택의 연구에서 황룡사지 동편유구는 문헌사료와 실제 유구의 비교분석이 가능한 자료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2).
황룡사지 동편은 고려시대에 건물지를 제외하고 크게 2차에 걸쳐 전면적인 개축이 있었으며, 8-9세기(2차조영시기)로 편년되는 17개 가옥이 확인되었다. 담장으로 구획된 가옥들은 대부분 택지의 중앙에 큰 규모의 건물이 있으며, 담장을 따라 행랑형의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택지 중앙에 배치된 대규모 건물지는 몇 가지 형식의 평면으로 분류되는데, 경주시의 다른 왕경유적에서 유사한 평면이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다.
본 연구는 황룡사지 동편유적에 관한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1990년대 이후 축적된 경주시의 왕경유구 발굴성과 중 특히 주택 중심건물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건물지를 선정하여 평면의 유형 및 특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현재 왕경유적의 중심연대는 대부분 전성기 통일신라(8-9세기)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유구가 없는 통일신라시대 주택의 복원 및 『삼국사기』「옥사」조의 해석을 위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2. 연구의 범위 및 방법
현재 경주시에서 이루어지는 고고학적 발굴은 대부분 새로운 도로 및 건축사업의 일환으로, 단위 건물지 1~2기를 포함하는 도로 및 담장의 일부분 등 단편적인 현황이 확인될 뿐이다. 황룡사지 동편과 같이 대문과 담장 및 중심건물과 부속건물 등 가옥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거의 없으므로, 많은 발굴성과가 축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형식 및 기능 등 건축적 측면에 관하여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왕경유구는 대부분 중심연대가 8-9세기로 알려져 지역적 범위 및 시간적 범위가 일치하므로, 황룡사지 동편유구에 관한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발굴된 왕경유구의 평면분석을 진행하고자 한다.
황룡사지 동편유구에 관한 연구3)에 따르면 방(坊)내에서 확인된 17개의 가옥 중앙에는 측면(보칸)이 2칸 이상인 대형 건물지가 1기 혹은 2기 배치되어 있으며, 그 외의 주변 건물지는 모두 측면이 단칸임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가옥의 중심에 배치된 측면2칸의 건물지를『삼국사기』「옥사」조에 기록된 실(室) 즉, 가옥의 중심건물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경주시에서 발굴된 주택관련 유구 가운데 측면 칸수가 2칸 이상이거나, 단칸의 규모가 4 m 이상인 건물지를 주택의 중심건물(室)로 규정하고 평면의 유형을 분석하고자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현재 경주시의 왕경유구는 유물의 분석을 통하여 대부분 8-9세기로 알려져 있으므로,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통일신라시대가 될 것이며, 지역적 범위는 경주시내로 한정한다. 따라서 연구의 대상은 황룡사지 동편유구(이후 S1E1지구)와 재매정지4), 인왕동 412번지5), 첨성대 남편 건물지6)와 동천동 792-3번지7), 동천동 72번지8), 인왕동 왕경유적II9), 인왕동 557번지 유적10) 중 측면 2칸 혹은 칸의 규모가 4 m 이상인 대규모 건물지를 중심으로 평면의 유형을 분석하고, 통일신라시대 주택 중심건물(室)의 건축적 특징을 고찰하고자 한다.
II. 통일신라시대 주택 중심건물(室)의 평면유형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은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의 저택으로 알려져 있는 맹씨행단이다. 맹씨 행단은 부속건물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전체의 모습을 살펴볼 수 없으나, 고려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시대 주택이다. 맹씨행단의 평면은 가운데 정면2칸의 대청과 좌우로 3칸 크기의 온돌방이 구성되는 형식으로, 6칸 대청의 좌우로 안방과 건넌방이 있는 조선시대 주택과 거의 유사하다. <Figure 1>에서 보는 것처럼 주요 생활공간인 몸채는 정면(도리방향)의 폭이 길고, 측면(보방향)이 짧은 형식으로, 주택을 포함한 현존하는 대부분의 전통건축은 이와 같은 장방형의 평면이다. 통일신라시대 사찰의 몇몇 건물지를 제외하고, 정방형의 평면을 볼 수 없는 건축 환경으로부터 「옥사」조의 연구에서 단위건물(室)의 정면과 측면을 같은 크기(長廣)로 규제하는 것에 관한 오랜 논쟁이 시작되었다.「옥사」조에 관한 연구는 Kim(1977), Joo(1987), Park(1987), Shin(1984, 1986), Lee(1995)11)에 의해 다루어졌으며,「옥사」조의 반포시기와 동시대의 주택의 유구가 전무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목구조 구조상의 제약 및 현존하는 목조건축물의 사례를 근거로 室의 형태를 장방형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2년 황룡사지 동편 S1E1 지구에 관한 『신라왕경』보고서가 발간된 이후 많은 발굴성과가 축적되었으며,「옥사」조와의 관련성이 엿보이는 정방형의 건물지도 다수 발굴되었다.
<Table 1>은 S1E1지구 건물 규모에 관한 비교표이다. 표에서와 같이 정면은 모두 3칸 미만이며, 측면은 대부분 1칸으로 제7, 8가옥과 제14가옥을 제외하면 측면 2칸의 건물은 가옥별로 1동임을 알 수 있다. 즉, 가옥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이들은 대부분 남향이다. 따라서 S1E1지구에 관한 선행연구에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지를「옥사」조의 규제 대상인 실(室)로 분석하였다.
Table 1.
List of Second time Bdg. in S1E1 Housing12)
현재 신라왕경 유구는 S1E1지구를 제외하고 가옥 전체의 배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거의 없다. 따라서 선행연구에서 분석된 중심건물의 건축형식은 단일 건물지로 발굴되는 유구의 의미 파악을 위한 지침이 될 수 있으며, 인왕동과 동천동 그리고 첨성대 남편 등의 왕경유적에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지를 중심건물 즉, 실(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S1E1지구에 관한 선행연구에서는 중심건물의 평면형식을 기둥의 배열에 따라 내외부의 기둥열이 격자형으로 배열되어 있는 정치형(定置形)과 내부의 기둥이 생략되고 외부에만 기둥이 배치되는 외주형(外柱形) 그리고 중심건물 몸체에 퇴칸을 구성한 전퇴부가형의 세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14). 본 연구는 선행연구의 분석유형을 따르고 있으나, 황룡사지 동편지구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유형의 평면이 다수 확인됨에 따라, 전퇴형 평면에 다양한 유형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통일신라시대 중심건물의 평면유형은 정치형, 외주형, 전퇴형으로 새롭게 구분하였으며, 특히 전퇴형 평면은 전퇴정치형, 전퇴부가형, 전퇴부가 외주형 으로 세분하였다.
1. 정치형 평면
정치형의 중심건물은 대부분 S1E1지구에서 볼 수 있으며, 재매정 17번건물지와 인왕동557번지는 보칸이 1칸이지만, 4.5 m와 4.0 m의 주칸거리로 다른 부속건물보다 규모가 큰 중심건물로 확인된다15).
S1E1지구 정치형 평면의 중심건물들은 격자형의 기둥배열을 이루고 있으나, 그 위치가 약간 조정되어 보칸 혹은 도리칸의 기둥열을 이동하여 실내공간의 규모를 조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실내공간을 넓히기 위해 기둥열을 조정하는 이주법은 외부기둥은 고정하고 실내의 기둥만 이동하는 방식이지만, <Figure 2>에서는 내외부의 모든 기둥열이 필요에 따라 이동되어 있는 양상이다. 이는 격자형 기둥배열에서 감주법과 이주법에 의한 공간확장 이전의 구조형식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매 칸마다 기둥과 보로 결구가 가능하므로 규모가 크더라도 구조적인 제약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보칸 크기가 4 m 이상인 것은 재매정과 인왕동 557번지 뿐이며, 그 외에는 도리칸 보칸 모두 3.8 m가 최대 크기이고, 2칸으로 구성되는 측면의 총 길이는 7.5 m를 넘지 않는다.
더욱이 <Figure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c) 인왕동 557번지의 경우 기둥 사이에 보조기둥 적심을 두어 구조를 보강하고 있으므로, b) 재매정 17번 건물과는 차이가 있다. 단정하기 어려우나 재매정과 같이 커다란 부재를 구할 수 있는 경제력의 상류계층 주택이 아닌 경우 칸의 규모를 확장하기 위하여 인왕동 557번지와 같이 보조적심을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관하여는 더 많은 사례의 수집을 통한 분석이 필요하다.
2. 외주형 평면
<Table 2>에서 보는바와 같이 외주형 평면은 S1E1지구의 제2, 12가옥과 첨성대남편의 14, 15의 중복된 건물지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내부공간에 기둥이 없으며, 주칸 사이에 소형기둥 및 줄기초적심이 있다. <Figure 3> a)의 S1E1지구 제2가옥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지만 내부기둥을 생략하고 외곽에 줄기초적심이 있으며, 제12가옥 역시 내부기둥이 없으며 외곽에 소형초석과 줄기초적심이 발굴되었다. b)의 첨성대 남편의 건물지는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이지만, 정면 6.6 m 측면 5.5 m의 대형 건물지로 사면에 줄기초적심이 있다. 이들은 모두 정방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옥사」조는 실(室)의 규모를 장광(長廣) 즉, 전면과 측면의 크기를 동시에 규제하므로 외주형의 정방형 평면은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이들의 상부구조에 관하여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S1E1지구의 제2가옥은 보칸 규모가 5 m이므로 감주형의 가구식구조일 가능성이 크며, 제12가옥과 첨성대 남편 건물지는 정방형의 평면에 주기둥과 보조기둥의 구성 및 줄기초 등의 구조형식이 백제 벽주(壁柱)건물16)과 유사한 형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백제의 벽주건물은 대부분 굴립주 형식으로 <Figure 4>의 b)와 같이 벽에 기둥이 촘촘히 박혀 있거나, 초석이 있는 형식에서도 기둥배치의 규칙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왕경유적은 2개 이상의 소형기둥이 확인된 사례가 아직은 없으며 기둥과 줄기초 및 소형적심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기둥배열의 규칙성이 확인되므로 가구식 구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첨성대 남편 건물지와 같이 한칸 크기의 줄기초적심이 있는 대형 건물지는 내력벽구조로 판단되며, 고구려 및 백제의 벽주건물과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Table 2.
List of Silla's capital remains main Bdg. Size (m)
| Housing | Bdg. | Plane Type | Size | Span | |||
|---|---|---|---|---|---|---|---|
| Wide | Depth | Wide | Depth (D)13) | ||||
| S1E1 Area | No. 2 | 1 | OC | 5.2 | 5.0 | 1.6,1.8,1.8 | 1.7,1.6,1.7 |
| No. 3 | 3 | G | 9.5 | 5.5 | 3.5,3.3,2.7 | 2.2,3.3(1.1) | |
| No. 4 | 6 | G | 8.4 | 6.8 | 3.0,3.0,2.4 | 3.8,3.0(0.8) | |
| No. 5 | 3 | G | 6.8 | 4.3 | 2.3,2.0,2.5 | 2.5,1.8(0.9) | |
| No. 6 | 1 | V-A | 10.3 | 6.3 | 3.4,3.5,3.4 | 1.9,4.4(2.5) | |
| No. 7 | 2 | V-G | 9.1 | 5.7 | 3.0,3.0,3.1 | 1.8,3.9(2.1) | |
| 13 | G | 8.3 | 3.7 | 2.3,3.0,3.0 | 1.4,2.3(0.9) | ||
| No. 8 | 2 | G | 6.2 | 5.2 | 2.4,3.8 | 3.1,2.1(1.0) | |
| 4 | V-G | 6.8 | 7.1 | 3.5,3.3 | 1.8,5.3(3.5) | ||
| No. 12 | 3 | OC | 4.7 | 3.5 | 4.7 | 3.5 | |
| No. 14 | 1 | V-G | 9.6 | 7.5 | 5.2,4.4 | 2.0,5.5(3.5) | |
| No. 17 | 2 | V-A | 5.5 | 5.7 | 2.5,3.0 | 2.2,3.5(1.3) | |
| Jaemaejeong | 17 | G | 11.1 | 4.5 | 3.7,3.7,3.7 | 4.5 | |
| 18 | V-G | 10.5 | 6.3 | 3.5,3.5,3.5 | 4.2,2.1(2.1) | ||
| Inwangdon 412 | 1-1 | V-A | 5.4 | 6.9 | 5.4,1.5(3.9) | ||
| Cheomseongdae south Area | 10 | V-A (OC) | 4.5 | 4.5 | 2.0,2.0,2.0(V) | 2.0(V) | |
| 14 | OC | 6.0 | 5.5 | 6.0 | 5.5 | ||
| 15 | OC | 6.0 | 5.5 | 6.0 | 5.5 | ||
| 20 | V-A (OC) | 7.2 | 7.2 | 3.0,3.0,3.0(V) | 2.2(V) | ||
| 21 | V-A | 9.8 | 6.8 | 3.2,3.2,3.4 | 1.7,5.1(3.4) | ||
| Dongcheondong 792-3 | 1 | V-A (OC) | 7.2 | 7.9 | 2.9,3.0,3.0(V) | 2.2(V) | |
| Dongcheondong 72 | 1 | V-G | 9.0 | 5.6 | 3.0,3.0,3.0 | 1.7,3.9(2.2) | |
| Inwangdon Silla's capital remains | 6 | V-A | 9.6 | 7.1 | 3.3,3.0,3.3 | 4.8,2.3(2.5) | |
| Inwangdon 557 | 2 | G | 7.2 | 4.0 | 3.6,3.6 | 4.0 | |
3. 전퇴형 평면
1) 전퇴 정치형 평면
전퇴정치형 평면은 측면2칸 규모의 정치형 평면 가운데, <Figure 5>와 같이 주실인 후면을 넓게 확장하고 전면에 퇴칸을 구성하는 형식18)이다. 정치형평면의 중앙에 위치한 기둥열을 조정하므로 기둥열은 생략되거나 더해짐 없이 본래의 형식이 유지되며, 전면 퇴칸의 보칸 크기는 약 2 m 후면 주실은 약 4-5 m 크기로 구성되어 있다. <Figure 5>에서 보는바와 같이 c)의 재매정을 제외한 모든 가옥에서 주실을 구성하는 기둥사이에 소형기둥 혹은 줄기초적 심이 시설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S1E1지구의 제8가옥과 14가옥은 실내공간에도 줄기초 및 소형기둥 적심으로 벽체를 설치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정면3칸의 동천동 72번지도 유구현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측칸에 소형기둥을 초석이 발굴됨으로 벽체를 설치하여 실내공간을 분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즉, 전퇴정치형 평면은 주실과 퇴칸의 크기차가 분명하며, 퇴칸은 개방적이고 주실은 벽체를 설치하여 폐쇄적이고, 내부벽체로 실내공간을 분할하기도 한다.
그러나 <Figure 5>에서 c)재매정 중심건물의 보칸은 퇴칸이 2.1 m, 주실 4.2 m19)로 배 이상의 크기 차이를 보이지만 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보조기둥을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재매정의 중심건물은 <Figure 2>의 b)와 같이 정면3칸 측면1칸의 건물지에서 c)와 같은 전퇴정치형 건물로 개축되어 실내공간이 확장되었으나, <Figure 5>의 다른 건물들과는 실내 공간구성 및 구조형식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재매정은 퇴칸을 포함하는 단일한 실내공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실내공간의 분할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전퇴정치형의 이른 시기 사례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2) 전퇴부가형 평면
현재 경주지역에서 발굴되는 건물지의 평면을 살펴보면 정치 혹은 감주나 이주로 설명할 수 없는 형식을 볼 수 있다. <Figure 6>의 a) S1E1지구 제6가옥은 전퇴는 정면 3칸이지만 후면 주실은 정면 2칸이며, 제17가옥은 전퇴는 정면 2칸이고 후면 주실은 정면 3칸이다. 모두 전면에 개방된 퇴가 있으며, 후면의 기둥열에 줄기초적심이 있어 폐쇄적인 실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Figure 5>의 평면과 유사하지만, 전퇴정치형 평면의 기둥열은 보칸의 크기변화만 있을 뿐 이주하거나 감주하지 않는 반면, <Figure 6>의 경우 퇴칸과 주실의 기둥열이 일치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주나 감주는 정치형의 기둥배열로부터 변화된 형식이지만, <Figure 6>의 평면을 구성하는 기둥열은 격자배열의 기본형식을 볼 수 없다.
이러한 형식은 <Figure 7>의 S1E1지구 제1가옥의 1차 및 3차 조영시기의 중심건물에서도 확인된다. 두 건물 모두 전면 퇴칸은 3칸이지만 후면의 주실은 정면 2칸으로 기둥 사이에 줄기초적심이 있다. 그러나 a)의 1차조영시기 평면은 정방형의 외주형 평면에 전퇴가 부가된 형식이라면, b)의 3차조영시기 평면은 장방형으로 확장된 실내공간이 분할된 주실의 전면에 개방형 전퇴가 부가된 형식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이와 같이 제1가옥의 사례를 통하여 내부공간의 분할이라는 평면의 변천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도 변함없이 개방된 전퇴가 중심건물의 평면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전퇴부가 외주형 평면
전퇴부가형 평면은 몸체와 퇴칸의 기둥열이 일치하지 않는 형식으로, 퇴칸은 정면 3칸이지만 몸체는 대부분 정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퇴부가 외주형 평면은 전퇴부가형평면과 유사한 형식으로 외주형 평면의 몸체에 정면3칸의 퇴칸이 부가된 형식이다.
그러나 <Figure 8>에서 보는바와 같이 전퇴부가 외주형 평면은 전면의 퇴칸이 주실보다 길어서, 1칸×1칸의 정방형 평면 주실과 3칸×1칸 평면의 퇴칸이 조합된 것처럼 보인다. a), b), c) 모두 주실은 1칸1칸의 외주형 평면으로 기둥사이에 줄기초적심이 있다. 첨성대 남편 10번건물지의 경우 주실의 규모가 4.5 m×4.5 m로 S1E1지구의 외주형 평면과 유사한 규모이지만, 첨성대 남편 20번 건물지와 동천동 729-3번지의 건물지는 정면과 측면의 길이가 모두 7 m를 넘는 대규모 평면이다. 특히 동천동 729-3번지 유구는 출토된 토기류의 문양구성과 시문기법, 수막새 등을 볼 때 유적의 중심연대를 8세기 전후로 추정하고 있으며, 녹유수막새 및 다수의 와전류를 근거로 귀족주택으로 판단하고 있다20). 이는 경주에서 발굴된 여러 건물지 가운데 가장 세부적으로 연대가 편년된 주거 건물지로, 흥덕왕 9(834)년으로 알려져 있는 「옥사」조의 반포 시기보다 다소 앞서있다. 그러나 전퇴를 제외한 후면 실의 규모가 7.2m×7.9m로 진골의 실은 24척을 넘지 않는다는 규제와의 연관성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규모이다. 뿐만 아니라 동천동 유적과 함께 첨성대 남편 유구 등에서도 유사한 평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전인용사지의 통일신라시대 유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다수의 평면을 볼 수 있다.
인용사지는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624-694)의 원찰로 알려져 있으며, 김인문의 생몰연대로 볼 때 7세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찰관련 유구 분석으로는 8세기 말을 상한으로 보고 있다21). <Figure 9>의 건물지 10은 금당지 하부에 위치하여 사찰 이전의 유구로 분류되는 전퇴부가형 평면이며, 건물지 6과 8은 <Figure 8>의 전퇴부가 외주형 평면과 동일한 유형으로 1칸×1칸의 주실 전후에 3칸×1칸의 퇴칸이 부가되어 있다. 이들은 서회랑 밖에 위치한 사찰이전 시기로 분석된 건물지 17도 동일한 형식으로 보고되었다. 따라서 사찰 조영 이전의 건물지인 <Figure 9>의 전퇴부가형 평면들은 모두 8세기말에 존재하였으며, <Figure 8>의 c)동천동 792-3번지와 동일한 시기이다. 이들은「옥사」조가 반포되기 직전에 신라왕경에 분포되어 있었으며, 평면 형태 및 규모 등에서 「옥사」조의 제정과 밀접한 관계성이 엿보이는 평면 유형이다.
III. 통일신라시대 중심건물(室)의 건축적 특징
1. 주실(主室)과 퇴칸의 평면형식: 개방형 전퇴의 구성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신라왕경 도시주택의 중심 건물(室) 평면형식은 정치형, 외주형, 전퇴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전퇴형은 주실과 전퇴의 구성형식에 따라 전퇴정치형과 전퇴부가형 및 전퇴부가 외주형 평면으로 세분된다. 본 연구의 대상 건물지 24기 가운데 13기의 건물지에 전퇴가 구성되어 있으므로, 개방형 전퇴의 구성은 8-9세기 신라왕경 도시주택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경주지역에서 발굴된 전퇴형 평면은 전퇴의 보칸이 약 2 m 내외이며, 주실의 보칸이 약 4-5 m 내외의 규모로 주실의 기둥사이에는 소형기둥 혹은 줄기초 적심이 시설되어 있다. 따라서 규모가 큰 후면의 주실은 벽체가 시설된 폐쇄적인 실내공간을 구성하며, 주실의 전면에 정면 3칸의 개방형 전퇴가 구성되어 있다. 많은 건물지의 전퇴가 정면 3칸 규모이며, 대부분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8C 후반이 중심연대로 알려진 <Figure 8>과 같은 전퇴부가 외주형 평면의 경우 후면 주실보다 전퇴의 전면길이가 길어서, 주실과 퇴칸이 하나의 지붕으로 결구되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이 경우 <Figure 10>과 같이 주실의 지붕과 전퇴는 별도의 구조로 중첩된 지붕의 형태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개방형 전퇴는 정면에서 보면 a)의 뵤도인처럼 중층의 건물과 같은 효과를 줄 수 있다.
최근 발굴이 완료된 분황사 동편에서도 용도를 알 수 없는 전퇴부가 외주형 평면이 발굴되었다. 분황사 동편 17번 건물지는 분황사의 전성기(8세기 중엽) 이후의 부속건물지로 보고되었다22). 주실인 외주형 평면은 5.7 m×5.7 m로 상류주택 유구로 알려진 동천동 792-3번 건물지보다 작지만, 전퇴의 보칸은 2 m로 왕경유구에서 볼 수 있는 퇴칸의 보편적인 규모이다. 특히 주실의 초석은 부정형으로 치석되지 않은 상태인 것에 비해, 퇴칸은 화강석으로 방형주좌가 잘 다듬어진 형태로 주실에 비해 격식을 갖춘 초석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초석의 치석수법에서도 당시 퇴칸의 의장적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퇴칸의 부가를 구조 및 의장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할 수는 없으나, 문헌사료가 거의 없는 현재 폐쇄적인 주실의 전면에 설치된 개방적인 퇴칸의 기능을 해석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만당의 사례인 <Figure 12> 돈황벽화 중심건물을 보면 살창이 설치된 폐쇄적인 주실의 전면에 개방적인 전퇴를 볼 수 있다. 전퇴에 놓인 상(床)에는 주인이 앉아있으며, 마당에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퇴칸에 앉은 주인에게 하인이 예를 갖추는 모습은 돈황 제12굴(晩唐) 및 제98굴(五代)에서도 볼 수 있으므로, 비슷한 시기 중국 상류주택에서 개방된 전퇴의 활용사례를 통하여, 통일신라시대 상류주택에서 전퇴의 기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2. 개방과 폐쇄의 공존: 여름용 공간과 겨울용 공간이 공존하는 평면형식
전술한 바와 같이 신라왕경의 퇴칸형 평면은 대부분 폐쇄형 주실과 개방형 퇴칸이 하나의 평면에 구성되는 특징을 갖는다. 나아가 주실이 두 개의 방으로 분화되어 있는 평면도 볼 수 있다. <Figure 13> S1E1지구의 제6, 14가옥의 중심건물은 전면 길이가 약 10 m로 거의 유사한 규모이며, 보칸은 2 m 정도의 퇴칸에 주실이 4~5 m인 대형 건물지이다. 2칸으로 구성된 주실의 기둥 사이에는 줄기초와 소형기둥 적심이 있는데, 두 가옥 모두 우측 방 전면에 벽체를 구성한 흔적이 없다. 다른 유구의 상황으로 보아 두 가옥 모두 동일한 부분의 적심만 유실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a)와 b)의 우측 방은 전면을 제외한 삼면이 벽체로 구성되어 있으나, c)인용사지의 경우 실의 구성형식은 유사하나 개방된 방에는 전혀 벽체를 시설하지 않아, 가운데 1칸×1칸의 방을 두고 마루를 구성하는 전라도 지역의 정자와 거의 흡사한 평면형식이다. 인용사지에는 이러한 평면의 건물유구가 3기 확인되었는데, 그 가운데 2기는 사찰 건물지 축조 시 폐기된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2건물지의 경우 사찰건물과 함께 존속된 것으로 보았다. 벽체가 있는 방의 규모는 3.9 m×3.6 m로 세 동의 건물 규모는 모두 동일하다. 이는「옥사」조 반포 이전인 8세기에 벽체가 있는 폐쇄적인 방과 기둥만 있는 개방적인 방이 공존하는 건물이 존재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미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한국주택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온돌과 마루의 공존으로, 겨울을 보내기 위한 폐쇄적인 온돌과 여름을 보내기위한 개방적인 마루가 하나의 평면에 구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평면구성상의 특징은 온돌의 보급이라는 측면에서 고려 중기 이후의 형식으로 추측되어 왔을 뿐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된 바 없다. 뿐만 아니라『삼국유사』의 사절유택(四節遊宅)23)에 관한 기록을 근거로 상류층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기 위한 별장과 같은 주택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해 왔다. 이 기록에 이어 헌강왕대(875-886) 초가집이 없이 담장이 연이어 있는 도성의 모습이 묘사된 것으로 보아, 사절유택 또한 헌강왕대 주거의 풍습이 묘사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확인된 바 없다. 다만, <Figure 13> 뿐만 아니라 <Figure 7>의 b) 등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볼 수 있으므로, 폐쇄형 공간과 개방형 공간이 공존하는 평면유형이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온돌의 시설과는 관계없이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쾌적하게 보낼 수 있는 형태로, 적어도 8세기의 신라왕경에서 활용되었던 주택평면 유형 중 하나이었음을 알 수 있다.
IV. 결 론
본 연구는 1990년대 이후 경주시에서 발굴된 8-9세기의 왕경유구 중 주택의 중심건물(室)로 판단되는 건물지를 선정하여 평면의 유형을 분류하고, 건축적 특징에 관하여 고찰하였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신라왕경 유적의 평면은 기둥 배열에 따라 정치형과 외주형 그리고 전퇴형으로 분류되며, 특히, 전퇴형 평면은 퇴칸과 주실의 구성방식에 따라 전퇴정치형과 전퇴부가형, 전퇴부가 외주형으로 세분화 된다.
먼저, 외주형 평면은 대부분 정방형의 형태이며, 지금까지 통일신라시대 주택에 관한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사료로 알려져 있는 『삼국사기』「옥사」조와의 관련성이 엿보이는 유형이다. 외곽에 위치한 네 개의 기둥사이에 소형기둥 및 줄기초 적심을 설치하고, 내부기둥이 없는 실내공간을 구성한다. 이러한 형식은 백제의 벽주건물과 유사한 구조형식으로 볼 수 있으나, 신라왕경의 외주형 평면은 가구식 구조의 감주법으로 볼 수 있는 사례도 확인되므로, 다양한 구조형식으로 동일한 형태의 평면을 구성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외주형 평면의 전면에 정면3칸 측면1칸의 개방형 퇴칸이 부가된 전퇴부가 외주형 평면은 주실보다 퇴칸의 전면길이가 크므로, 주실과 퇴칸이 하나의 지붕구조로 완성되기 어렵다. 따라서 주실의 전면에 층고를 달리하는 퇴칸을 덧붙이는 중층의 지붕을 구축하였던 것으로 판단되며, 동시대의 다양한 지붕형식을 복원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전퇴부가형 평면은 전면의 퇴칸과 후면 주실의 기둥열이 일치하지 않는 평면유형이다. 후면 주실은 칸막이벽을 설치하여 실내를 분할하며, 전면 벽체의 유무에 따라 폐쇄적인 방과 개방적인 방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개방과 폐쇄가 공존하는 평면은 한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경주지역에서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한 건물에서 보낼 수 있는 공간구조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상류주택에서 두꺼운 벽체의 온돌방과 후면은 판벽으로 마감되고 전면은 마당으로 개방된 마루의 구성형식과 거의 유사한 구조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통일신라시대 왕경의 주택은 다양한 유형의 평면이 존재하였으며, 건축구조 역시 내력벽구조와 가구식구조가 공존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고고학적 유물분석을 통한 건물지의 중심시기가 대부분 8-9세기라는 비교적 넒은 폭으로 편년되므로, 평면 및 구조의 변화양상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후 유사한 형식의 평면이 확인되는 백제 및 고구려의 건물유구와 비교분석을 통하여, 통일신라시대 주택 평면 및 구조의 변천에 관한 세부적인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