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서울 도심의 핵심부에 위치한 낙원상가는 1969년 준공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50년의 세월동안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왔다. 건물 내부의 변화를 보면 악기상가라는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수용한 후 상점의 세부 업종과 분포가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건물 외부의 형태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낙원상가 위치의 도시적 의미는 크게 변했다. 60년대 후반에는 종로 일대가 한옥주거지였고, 15층의 거대한 현대식 건물인 낙원상가는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지금의 낙원상가 위치는 인사동과 종묘를 연결하는 접점으로서 전통문화 컨텐츠를 담는 서울의 대표적인 공간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종로구는 낙원상가 인근지역에 대해서 기존의 도심개발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지역 재생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낙원상가 동측 블록의 익선동은 1920년대 도시 중산층들을 대상으로 지어진 도시형 한옥 밀집지역이다. 이 일대는 도시환경정비사업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해제가 논의되고 있다.1) 1950~60년대의 흔적이 보존되어 있어 디자이너와 문화 관광 사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고 워크샵, 화랑, 카페가 늘어나고 있다.
악기상가라는 고유한 컨텐츠는 낙원상가가 경기의 부침 및 도심 재개발의 영향에 크게 휩쓸리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유지해 오는데 내부적 영향력 중심적으로 역할을 수행 했다. 그러나 건물의 위치가 갖는 도시적 의미는 분명히 50여 년 전과는 현격히 다르고, 건물 인근의 블록들은 현재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고유한 컨텐츠인 음악산업도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피아노, 밴드, 노래방, 등 하드웨어 기반의 공유 문화였지만 현재는 음원파일과 온라인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개인적인 문화로 변했다. 지역적 연계가 높지 않는 낙원상가가 어떻게 변화하는 21세기의 서울 안에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지,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본 연구를 시작한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선행연구와 신문기사 등의 문헌 조사를 통해서 낙원상가의 형성과 변화 과정 속에 독특한 사회적 가치가 내재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앞으로의 변화 또한 제안할 수 있다고 본다.
본 연구는 건축물을 보존 및 활용하기 전에 건축물에 내재된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 인식하기 위해 건축물에 대한 기초 현황의 조사를 통해 낙원상가에 대한 고유한 사회적 가치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2. 연구방법 및 절차
본 연구는 낙원상가 건축물의 형태 형성과 그 변화가 관련 주체들의 권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관찰하고자 했다. 기초적인 자료 수집을 위해 문헌 조사와 함께 관계자 인터뷰를 수행했다.
Table 1.
Study Content
낙원상가의 형태를 크게 외부와 내부로 대별했고, 외부에 대해서는 건물 매스의 형성 배경, 그리고 지층에 도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조사 분석했다. 건물의 매스가 결정되는 과정에는 1960년대 서울의 급격한 도시화와 도심 재개발이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낙원상가의 내부 형태는 상점의 변화가 활발한 2층, 3층을 중심으로 내부동선, 수직동선, 그리고 상가 형태와 크기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낙원상가의 내부 공간 변화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비슷한 시기의 거대구조물인 대림상가의 내부 형태와 비교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내·외부적 형태에서 나타나는 관련 주체들의 권리가 변화하는 것을 살펴봄으로써 건축물의 형태에 나타나는 사회적 가치를 도출했다. 또한 건물의 형태 형성과 변화에 대하여 관련 주체들의 관계를 판단했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 방식은 낙원상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근대건축물의 보전 방향을 제안하는데 재적용 될 수 있다. 즉, 낙원상가와 비슷한 시기에 건설되어진 한국 근현대 건축물에 대한 보존 및 진화에 대한 논의에 앞서 건축물의 사회적 가치가 무엇을 논의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3. 연구의 필요성
낙원상가에 관련한 연구는 주변과의 연계, 도심 재생 및 활성화 계획 등을 중심으로 향후 낙원상가의 리모델링 및 주변 지역과 연계를 통한 재개발 기초자료, 설계 계획 및 설계 논문, 현재 낙원상가의 실태조사를 통한 연구가 있다. 대부분은 낙원상가에 대해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건축물이 건립된 후 50여년이 지난 현재에 건축물의 장소성, 역사성을 부각시켜 건축적 재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는 낙원상가의 노후화 및 부정적인 시각으로 단일건축물의 문제가 도시문제로 확대되어 해석하는 경향도 있었다.
이에 본 연구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낙원상가가 독립적인 존재이기 보다 주변 환경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형성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누적된 도시공간의 흐름이 건축물 내부의 연속적 흐름으로 연계되어 물리적 기능 및 형태가 낙원상가의 사회적 가치를 필연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따른 결과를 통해서 낙원상가와 같은 근대건축물의 발전과 진화에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II. 사회적 가치의 이론적 고찰
가치(value)란 대상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쓸모를 뜻하고 어떠한 대상을 두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가치를 세분화해 보면 감정적 가치, 사회적 가치, 기능적 가치로 분류될 수 있다(Sweeny & Soutar, 2001). 여기에서 사회적 가치는 일반적으로 공동체의 편익과 관심을 지향한다는 의미의 사회적인 것과 개인이 갖고 있는 주관적인 선호를 대상에 부여하는 것의 가치가 결합된 개념이다. 사회적 가치는 보편적인 것과 비보편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유, 평등, 정의, 공익 등의 보편적 가치와 참여, 경제, 문화, 환경 등의 비보편적 가치이다(Kim, 2010). 즉, 사회적 가치는 객관적 관점과 주관적 관점으로 구분된다.
건축물에 대한 가치의 연구는 문화재, 상징적 의미 등의 건축물에 대한 연구2)가 대부분이다. 즉, 건축물 속에 내재된 역사적, 장소적, 상징적 의미 등 기본적으로 오래된 건축물을 대상으로 가치를 평가한다. 여기서 오래된 건축물은 내재된 가치가 물질적 변화를 통해 표현된다. 즉, 역사적 의미나 시대적 희소성을 가진 오래된 건물들은 물질적 실체로서 존재하지만, 그에 대한 사회적 가치는 하나의 역사와 문화의 흐름에서 성립하고 그 존재를 부각시킨다. 즉, 건축물에 대한 사회적 가치는 비보편적 가치인 주관적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Giddens)는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사회학적으로 정의를 내렸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고유한 역사를 만들 듯이 자신의 고유한 지리학을 만든다(Giddens 1992: 422). 즉, 인간이라는 형태적 존재가 고유한 기록을 만들면서 고유한 흔적을 남긴다.
이렇듯 사회적 가치는 공간, 시간, 흔적의 결합을 통해 나타난다. 즉, 사회적 가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물리적 공간 속에 담아 그 속에서 또 다른 사회를 형성하고 변화한 현상을 시간과 결합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낙원상가의 사회적 가치를 외부의 사회적 현상(도시조직의 변화, 사회적 현상 및 이슈)이 낙원상가라는 물리적 공간을 형성하고 사회 변화에 필요한 대상을 내부의 고유한 프로그램, 상점들의 배치, 동선의 세분화가 형태화를 통해 도출하고자 한다.
III. 낙원상가의 외부 형태
1. 1960년대 도심재개발
한국전쟁과 해방을 거치면서 서울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늘어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도시 인프라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당시 서울의 나대지들은 서민 주거를 위한 판자촌으로 채워졌다. 파고다 공원 일대 소개공지3)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교통이 좋은 시내한 가운데에 위치한 내밀한 판자촌에는 소위 ‘종삼(鐘三)’이라 불리는 사창가가 형성되었다.
1967년에 서울시는 도심부의 환경정비를 위하여 도심부 불량주택지대의 재개발을 주요한 시정계획 중 하나로 수립했다. 파고다 아케이드와 낙원상가의 건립은 이러한 불량주택지의 재개발 사업의 일환이었다. 1967년에는 파고다공원 서남측에 있던 시립 종로도서관을 철거하고 파고다 아케이드가 축조됐고, 1968년에는 사창지대를 철거하여, 1969년에 낙원상가가 건립됐다.
1. 1960년대 도심재개발
1) 도로의 변화
1950년대 서울의 도시계획은 ‘전재복구계획4)’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52년의 ‘전재복구계획’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지구에 대한 토지구획 정리사업과 도로확장 계획 및 용도지역계획에 관한 것으로, 이를 시작으로 현재와 같은 가로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Figure 3.
Comparison of Jongno streets in 1912 and 2002 (light line; cadastral map in 1912, dark line; cadastral map in 2002)
Source. Sim, K. M. (2009), 76
1940년대 후반 서울의 교통량을 실시한 바에 따르면 전차의 수는 감소한데 비해 자동차는 약 6배가 증가하였다.5) 전차의 감소와 자동차 수의 급증으로 도로계획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1952년 도로계획6)으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남북방향으로 도로의 폭이 확장된다. 그리고 남북방향 중 가장 두드러진 도로 확장은 현재의 낙원상가가 위치한 삼일대로이다. 이 도로는 처음에는 40 m 도로로 계획 되었지만, 1966년 50 m로 도로로 확장되었다. 뿐만 아니라, 종로 일대의 도로는 대폭적으로 확장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도로계획은 기본적으로 직선화하는 방향으로 계획되어졌는데, 이 또한 자동차의 급증을 수용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1960년대(김현옥 서울시장 취임기간, 1966. 3. 31~1970. 4. 15) 지하보도, 고가도로, 강변도로가 일시에 준공되었고, 도심의 지상에 자동차를 위한 도로가 준공되었다.
하지만, 당시 낙원상가 하부의 도로인 삼일대로를 내기 위해서는 대지를 소유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 필요했다. 낙원상가가 도로 위의 보상대지를 입체적으로 건립하기 위해 길 위에 지어진다. <Figure 4>의 낙원상가 인근 가로형성과정을 통해 현재의 삼일로와 인사동길을 주축으로 여러 개의 가로망이 생겨나면서 현재의 낙원상가 일대 지역이 블록화 및 세분화되었고, 세 번째에서 네 번째로 넘어가면서 삼일로의 확장과 함께 인사동길로 휘어지면서 직선화 도로가 낙원상가의 위치와 형태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삼일대로의 가건물 409가구 중 185가구는 개발주체에게 지분을 팔고 상계동으로 이주했고, 잔존한 220여 가구는 연고권을 인정받았다. 이들은 낙원상가 건립에 소요되는 비용을 일부 부담하는 조건으로 낙원상가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데, 이들이 현재의 낙원상가 지하와 2층 일부를 소유하는 상인 조직인 낙원상가 주식회사를 구성한다.
도로와 같은 도시 인프라를 건설하는 일은 당시 사회가 당면한 과제였다. 낙원상가는 구도심에 차를 위한 도로를 구축하기 위하여 신규 도로 위에 입체적으로 올려진 거대구조물로써 1960년대 서울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건립되었다.
2) 입체도로제도와 구조물 사례
낙원상가와 같이 건물과 도로를 함께 개발하는 사례는 일본과 독일에 다수 있다. 이러한 복합개발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나라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유형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국내에는 1999년에 입체도로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적용 사례는 드물다. 시행착오를 통해 다듬어진 제도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큰 골격을 우선 도입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건물과 토지의 권원(權原)에 대한 협의는 도로와 건물이 일체형인지 분리구조인지를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도로일체형은 건물이 도로를 직접적으로 받치고 있는 형태로서 건물이 붕괴되면 도로 역시 붕괴되는 구조를 말한다. 토지에 대해서 도로주체도 건물주체와 함께 공유지분을 갖고, 건물에 대해서 도로주체는 건물 측으로부터 사용권을 취득한다. 건물의 소유권은 물론 건물 주체에게 있다. 이와 다르게 분리구조형은 도로를 받치고 있는 부분이 건물에서 독립적으로 설치된 형태다. 건물과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모두 건물주체가 가지며 토지에 대해 도로주체는 구분지상권을 설정하는 것으로 권원을 분리한다. 국내와의 차이점은 국내의 입체도로 권리는 토지에 대한 공유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의 제도가 경우에 따라 대지지분을 공유할 수 있도록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7) 낙원상가는 국내 기준에 의하면 도로 측에 대한 구분지상권을 설정할 수 있는 상황이고, 일본의 기준에 의하면 분리구조에 해당하여 역시 대지에 대한 구분지상권을 설정하여 권원을 분리할 수 있다. 그러나 입체도로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것은 1999년으로 낙원상가가 준공된 지 50여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낙원상가는 도로점용과 관련하여 서울시·종로구와 1974년부터 1996년까지 10여 차례의 소송을 치렀고, 결론적으로 협의된 요율에 따라 도로점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낙원상가의 평면 형태는 1960년대 종로3가 일대에 자동차를 위한 격자형 도로망이 만들어 지면서 결정됐다. 그리고 지층의 기존 지분을 낙원상가의 저층부로 투영되어 건물의 소유 주체를 복합적으로 구성하는 계기가 된다. 도심재개발의 절차가 제도화되기 전에 이뤄진 사회적 합의의 결과였다.
낙원상가와 비슷한 시기의 국내 건물 중 도로나 하천을 점용하여 지어진 건물은 청계상가, 신촌상가, 유진상가가 있다. 이 건물들은 도로와 하천에 대한 점용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 지어진 건물들로 이후 점용료 지불에 관하여 낙원상가와 마찬가지로 서울시와의 법적 분쟁을 겪었으며, 토지에 대한 권원의 부재로 현재 노후화 된 건물을 철거할 시 입주자들의 권리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건물이 국내에 최초에 등장한 시기는 1960년대에 도시 공간에 ‘도시재개발사업’이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도심 내 지하도, 육교, 고가도로, 도로 신설 및 확장 등의 개발을 하였다. 그 중 민자유치사업으로 1967년에 도시 내의 새로운 도시공간을 계획하여 불법적으로 점유하여 상부에 건물을 짓는 건축물이 많았다. 특히 이러한 형태는 ‘상가아파트’라 불리는 복합용도건축물에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 최초의 입체도시공간인 세운상가를 들 수 있다. 세운상가는 국내 최초의 입체도시공간계획의 사례로써, 1967년에 서울 도심지에 도심재개발사업으로 건립되었다. 준공 후, 건물 3층 데크 하부의 도로는 서울시에 기부채납 하고 건물은 소유하지만 도로 점용료를 서울시에 납부하는 구조를 가진다.8) 하지만 2014년 초 철거계획이 취소되면서 청계천 복원할 당시 철거하였던 세운가동상가와 청계상가 간의 공중보행로를 계획중이며, 1960년대의 무차별적인 도심재개발이 아닌 상점의 종사자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세운상가 활성화계획은 낙후, 노후화, 유령상가, 음지 등의 시각적 표현에서 벗어나 건축물의 재생을 통해 과거 서울의 랜드마크(landmark)를 재해석하며 한국 근대건축물의 문제점을 철거가 아닌 새로운 해결방안을 제시하여 한국 근대건축의 가치성을 높일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

Figure 8.
The Activating Plan of Sewoon Building’s example
Source. 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50224113549630&ts=134801
IV. 낙원상가의 내부 형태
1. 상가의 변화 및 형태
낙원상가는 삼일로의 준공에 대한 보상대지로써 건립된 건축물이다. 건축물 지하층에는 낙원시장이, 지상 포디움(2-5층)에는 악기상가 및 사무실이 있으며, 지상 6층에서 15층은 주거시설로 이루어져있다. 이 중 준공 후 50여년 동안 사회적 변화에 가장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형태적 변화를 보여주는 공간은 악기상가가 있는 지상 2층과 3층의 공간이다.
특히, 낙원상가의 구조는 철근콘크리트 라멘조로 각 상가들의 영역을 나누는 칸막이에 하중이 전달되지 않는다. <Figure 9>와 같이 상가를 사이에 두고 넓은 중앙 통로를 배치하였던 초기의 2층 평면은 1983년 파고다 아케이드 철거로 인해 다수의 악기상가들이 낙원상가로 입주하게 되면서 상가의 수요가 증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초기의 중앙 통로가 세분화 되면서 경계가 모호해진 현재의 상가 배치가 되었다. 이러한 경계로 개별 상점의 크기 및 형태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Figure 10>은 낙원상가 2층의 상가 변화를 각 연도별로 업종에 색을 지정하여 세분화되어지는 과정을 나열해 놓았다. <Figure 9>의 변화가 (a)에서 (b)로 넘어가는 시기이며, 상가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세분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a)에서 종로3가 방향의 건반악기 상점 분포는 당시 파고다 아케이드의 피아노 상점에 가까이 위치한다. (a)도면의 좌측 영역은 낙원상가 고층부의 주거 입주민을 위한 식자재 판매 공간이고 익선동 방향은 사무공간으로 초기 낙원상가 2층이 현재보다 단순한 부대시설로의 역할을 가졌다. (b)는 (a)에 나타나있는 사무공간의 크기가 세분화되어 작아지면서 수가 줄어들었고, 대부분 음향기기 상점이 2층 중앙에 집중되어져있으며, (c)로 넘어오면서 악세사리 상점이 늘어나고 집중되었던 음향기기 상점이 중앙에서 익선동 방향으로 대부분 옮겨갔다. 그리고 기타류 상가의 수가 증가하면서 2층 공간 중앙에 길게 집중되어있으며 (d)는 (c)에서의 악세사리 상점이 증가하면서 2층 공간에 분산배치 되어있다.
이렇듯 시대별 상가의 역할이 변하고 거대 프레임 내부의 변화가 상가들의 물리적 경계뿐만 아니라 업종의 변화에도 나타난다. 또한 초기의 낙원상가는 고층부 아파트 주민을 위한 부대시설의 의미가 컸으며 대형 슈퍼마켓을 위주로 몇몇의 악기상가 및 다양한 업종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 후에 현재의 단일 업종 건물인 ‘낙원악기상가’로의 정착은 <Figure 10(b)>에서 나타나듯 당시 정부의 정책으로 풍금과 피아노가 보급되면서 파고다아케이드에 피아노 악기상가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담장정비사업으로 인해 아케이드를 허물면서 그 자리에 있던 악기상가들이 낙원상가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는 각종 제품들이 디스플레이 되어있는 대형 슈퍼마켓에 비해 악기상가는 주로 한 종류의 악기를 판매하며 진열된 악기 외에는 건물 내부나 외부의 창고에 보관함으로 인해 공간을 사용하는 비율이 비교적 낮으며 열린 상점9)의 경우에는 각각의 공간간에 간이벽 혹은 진열된 악기로써 경계를 두기 때문에 내부 구조의 변화가 쉬워서 자유로운 내부 변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내부 공간 변화는 당시의 사회적 변화와 상관관계를 갖으며 이에 따라 <Table 2>에 ‘당시 사회적 이슈 및 현상’이 낙원상가 내부 변화에 영향을 끼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80년대의 유흥업소 규제 완화로 업소 내의 라이브 밴드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85년도에 음향기기와 같은 스피커, 엠프 등의 점포 비율이 높다. 반면에 90년대의 유흥업소 영업시간 규제로 인해 01년에서 14년도의 음향기기의 비율이 급격히 감소한다. 그리고 2000년대에 대학의 실용음악학과 개설과 인터넷 보급으로 기타류의 업종이 증가한다.10) 그리고 인터넷 보급의 확대로 온라인 매매가 가능하게 되어 한정된 지역 및 소비자가 아닌 일반인들의 수요가 커지면서 그에 따른 창고형사무실이 증가한다. 즉, <Figure 10>과 <Table 3>을 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악기의 수리점 및 소모품 업종이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온라인 판매의 증가로 넓은 오프라인 공간이 없어도 소비자에게 최소한의 시간으로 상품을 전달할 수 있고, 업종의 기능은 다르지만 좁은 공간에서도 판매 가능한 업종 비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현재에 가까울수록 상가의 크기와 형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피가 작은 기타류 및 악기의 소모품 업종의 비율이 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공간의 제약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Table 3.
Relationship between Social Change and Nakwon Building Change
이렇듯 공간의 세분화는 유통시간과 비용이 감소되면서 상점 내부의 저장의 기능이 분리되어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간략화 되었다11)라고 볼 수 있다.
내부공간의 세분화와 더불어 한정된 건물 내에 상가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상가 형태가 다양화 된다.12) 여러가지 상가 형태는 낙원상가 주변의 도시적 변화로 인한 상가 내 업종의 변화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내부 상가의 형태는 세분화되었지만 코어 주변의 이형적 상가를 제외하고는 정형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정형적인 형태에 비해 증가한 상가의 수요는 다양한 상가 규모가 오히려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던 세운상가와 비교를 통해 주변 도시적 변화가 내부공간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도 알 수 있다.
Table 4.
The proportion of musical instruments per period in market (%)
| Type | 2nd floor | 3rd floor | ||||
|---|---|---|---|---|---|---|
| ‘85 | ‘01 | ‘14 | ‘85* | ‘01 | ‘14 | |
| Key | 26.3 | 19.6 | 11.2 | - | 25.0 | 30.3 |
| String | 12.6 | 21.0 | 25.2 | - | 25.0 | 21.2 |
| Wind | 9.3 | 10.2 | 13.5 | - | 6.1 | 13.3 |
| Percussion | 5.6 | 3.7 | 1.4 | - | 8.1 | 13.3 |
| Sound system | 34.0 | 31.5 | 19.1 | - | 16.6 | 6.0 |
| etc.13) | 8.8 | 14.0 | 29.6 | - | 19.2 | 15.9 |
Table 5.
Comparison of Spatial Character
세운상가는 거대한 건물군으로 ‘도시 내의 도시’14) 개념으로 시작되어진 최초의 주상복합계획으로 건물 내에 다양한 상업시설로 이루어져있는 최고급 아파트였다. 하지만 상층부의 거주계층의 변화와 상권의 약화로 주요 업종이 전기 및 전자 제품으로 변화되지만 1980년대의 급변하는 전자산업의 속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낙후하게 된다. 그리고 상층부의 주거시설은 대부분 업무용도로 변하게 된다.15) 즉, 시대에 발맞춘 변화하기보다는 낙후에 따른 퇴행적 변화라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낙원상가는 주변 도시적 변화를 수용하고 능동적으로 변화해왔다. 비록, 상층부의 주거시설이 설립 당시의 낙원상가 아파트와 같이 활성화되어있지는 않지만 낙원상가 주변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임대를 주는 방식16)으로 초기 용도만은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주변 일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고정된 공간과 대조되어지는 다양한 공간의 변화를 표출하고 있다.
2. 내부동선과 수직동선
앞서 말한바와 같이 낙원상가의 내부 형태는 상가의 세분화를 통해 다양한 공간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가의 세분화로 인해 하나의 중앙 통로에서 상가 수요의 증가와 함께 내부 동선도 세분화되어졌다. 특히 낙원상가의 2층 상가 배치는 건물 북측에서 남측으로 연결된 주요 동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주요 동선은 건물 1층 필로티 공간을 지나는 삼일대로와 일치하며, 다양한 동선의 폭<Table 4>을 가지고 있고 각 상가들의 칸막이 및 진열된 악기 진열대와 경계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는 건물 외부적 요소가 내부로 들어와 낙원상가만의 상가 배치로써 건축적 특징을 내부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Figure 14>에 표시된 주요 축들의 동선에서 벗어난 낙원상가 동측 구역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므로 <Figure 15>에서 보여주듯 중심축의 동선이 흐르는 구역에 비해 환산 보증금이 낮으며, 시대의 비선호 악기업종이 주로 위치해 있다. 하지만 이형 상점 및 코어 주변의 상점은 환산 보증금이 높으며, 부피가 작은 기타류 등의 악기 업종들이 배치되어있다. 거대한 단일건물로서 단일프로그램으로 출발했지만 이렇듯 그 내부에는 여러 동선에 의해 다양한 내부 구역이 만들어지고 시간의 흐름을 통해 각각의 공간이 자체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Figure 16>에서는 낙원상가 3층은 상가의 배치 변화를 통한 동선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상가의 수와 크기에는 뚜렷한 변화가 없지만, 삼각홀17)이 위치한 수직동선을 중심으로 상가의 배치가 변화한다. 건물의 횡방향(↕)으로 배치되었던 상가들이 종방향(↔)으로 집중 배치되었는데, 이는 삼각홀에서 반출입되는 상가의 물품들의 이동경로를 효율적으로 이동시키기 위함이라 보여진다. 이런 이동경로는 인터넷 보급의 증가와 함께 온라인 매매 비율의 증가가 상가의 물동량의 증가에 영향을 미쳐, 물품운반에 더 효율적인 동선으로 상가의 재배치가 이루어졌다.
건물 내 수직동선은 총 8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 건물외벽을 따라 2층에 직출입되는 외부계단을 제외하고는 상층부로 통하는 수직동선을 가지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배치되어진 수직동선은 화물용, 승객용, 입주민용으로 정확한 용도가 분리되어있는데, 이는 용도에 따른 수직 공간의 기능의 세분화로 동선을 분리시켰다. 동선의 분리를 통해 낙원상가의 변화가 주변 도시적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내부적으로는 분리 및 분배가 이루어지고 외부적으로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공유가 이루어졌다.
V. 결 론
지금까지 낙원상가의 건축 형태를 내·외부로 나누어 살펴보고 시간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에 대응해온 내부 공간의 변화와 그로 인한 여러 주체들의 공간의 분할 소유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외부 형태에 대해서는 소개공지 위 판자촌이 민간자본에 의해 재개발되어 격자형 도로망이 건설되면서 건물의 매스가 결정된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건축물 내부에서 사회적 변화에 대처하는 다양한 변화가 낙원상가만의 사회적 가치의 결과물로 남아있다.
1. 도시적 공유
낙원상가는 현재까지 제도적 한계와 주위 환경과의 부조화로 인해 철거가 논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압박에도 50여년의 시간 동안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거대구조물로써의 건축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1950년대의 서울시 도로계획에 의해 확장되어진 삼일로의 보상대지로 지어진 거대구조물로써, 가로(street)라는 도시 조직의 변화에 의해 물리적 형태를 형성하게 되었다.
도시적 측면에서 낙원상가는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매개공간으로 적합한 위치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서측의 인사동과 동측의 한옥밀집지역인 익선동18) 및 돈의동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종묘까지 연결되며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의 거리를 조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도시적 맥락에서 주변 지역의 연계를 통해 상생 효과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이와 같이 낙원상가는 도시 안에서 공간의 ‘공유’에 대한 사회적 필요에 의해 건립되었다. 지금도 그 이유로 보존의 필요성을 갖는 건물이다.
2. 공간적 분배
앞서 보았듯이 낙원상가의 내부공간은 상가 역할의 변화에 따라 소유권을 갖는 여러 주체들에 의해 세분화되었다. 상인들은 건립 당시 대지의 지분을 갖고 있고 소요되는 비용을 일부 부담하는 조건으로 상가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데, 이들이 지하층과 2층 일부를 소유하는 상인조직인 낙원상가 주식회사가 된다. 그 외에도 여러 주체19)들이 낙원상가 개발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내부공간을 분할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소유권이라는 법적 권리가 상가의 내부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소유권의 분할은 주변 일대 상권의 변화에 과감하게 대응할 수 있게 했고 상가 수요 증가로 이어졌고, 사회적 변화에 대처하는 낙원상가만의 방법이었다.
Table 6.
Sort of Landownership (1998.09)
![]() | Sort | Area |
| Total | 6,936.6 m2 | |
| Public area | 1,129.9 m2 | |
| City area | 2528.9 m2 | |
| Private area | 3,277.8 m2 | |
| Occupied street | 3,658 m2 |
Source. Studio SAK (2012)
낙원상가는 도시조직 내에서는 독립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건축물 외부의 도시조직의 흐름에 따라 내부 형태가 변화했다. 또한 낙원상가가 준공된 후, 50여년을 겪으면서 변하는 사회적 현상에 대처하며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낙원상가 내부 공간은 초기에 비해 세분화되고, 그에 따라 내부 동선도 세분화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인근 지역의 사회적 변화가 낙원상가의 형태변화에 작용하며, 그 변화가 건축물의 가치를 만든다.
낙원상가는 도심의 중심에 있는 노후화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1960년대 서울의 도시화 과정 속에서 공간의 ‘공유’에 대한 사회적 필요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낙원상가의 내부는 공간의 ‘분배’에 대한 사회적 필요에 의해 변화되어왔다. 현재도 낙원상가의 도심 재개발, 보존, 리모델링에 대한 연구 및 논의는 진행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낙원상가의 외부형태와 내부형태를 각각 구분하여 건축 형태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도출하였다. 낙원상가의 외부형태는 단순한 역사적 결과물이 아니라 낙원상가의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며, 외부형태가 내부형태를 형성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즉. 낙원상가의 외부형태는 내부형태와 별게의 요소가 아닌 각 형태를 연결시키는 상호 유기적 역할인 것이다. 또한 역사의 공간을 존중하면서 기존 도시 구조를 통해 현대의 공간 속에 내재되며 과거와 현재를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낙원상가만의 고유한 사회적 가치가 발견된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낙원상가는 그 고유한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낙원상가 뿐만 아니라 1960년대 우리나라의 근현대 건축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평가되어져야 하며, 이것이 근현대 건축물의 보존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어야 한다. 건물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건물의 공공성을 재고하고 도시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차후 연구는 근대 건축물의 역사, 공간, 남아있는 흔적의 의미를 잘 파악하여 건축물 단일형태가 아닌 도시 속에 내재된 문화유산으로써의 인식과 시각이 필요하며 건축물에 내재된 중요 요소에 대한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