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일제강점기 일본은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각종 관청, 은행, 철도, 학교 및 산업시설을 설립하였고, 더불어 이들 기관 종사자들을 위한 주거시설을 건립하였다. 주거시설은 성격과 건립 주체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데, 관청, 철도, 학교 등 공공기관의 주택은 관사(官舍)이며 은행, 산업시설과 같이 민간에서 건립한 주택은 사택(社宅)이라고 칭한다. 특히, 산업시설의 배후지원시설인 사택은 대규모로 건립되어 지역의 공간구조에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관사 및 금융기관의 사택은 공공 성격이 강해 기록 및 보존이 비교적 잘되어 있는 반면 민간 기업에서 건립한 사택은 기업의 매각 및 업종 변화와 같은 산업 여건과 사유재산이라는 점으로 인하여 기록 및 보존이 취약하다. 대표적 근대산업도시 장항은 일제강점기 장항제련소를 중심으로 장항선, 장항항과 함께 전략적으로 개발된 도시이다. 3대 축의 도시기반시설을 지원하는 배후 주거단지도 동시대에 형성하며 장항의 도시공간 확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장항제련소의 국유화 및 민영화 과정, 운영 주체의 전환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며, 마침내 제련소 사택단지는 매각과 철거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1989년 제련공정 폐쇄 이후 오랜 정체기를 겪고 있는 장항도 전국적으로 시행 중인 각종 재생사업이 한창이지만, 지역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이를 바탕으로 한 재생의 노력은 미진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장항제련소 사택단지의 변천을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의 도시 변천사와 연계해 살펴보고, 단지 배치 및 공간 구성을 통해 근대 주거단지의 특징을 도출해 장항제련소 사택단지가 산업도시로서의 장항에 미친 사회문화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은 노력이 현재 장항을 대상으로 진행하거나 예정된 도시재생사업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원점이 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2. 연구의 방법 및 절차
현재 장항제련소의 사택단지는 1970년대 신축된 새마을 사택 2동 4세대와 직원아파트를 제외하고 2013~14년에 걸쳐 전면 철거되었다. 현재 단지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옛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에 동원했다.
학문적 차원에서 선행연구 고찰이 이루어졌고, 지역의 향토사 자료1) 및 기업사사에서 장항제련소 사택단지 관련된 기록을 추출했다. 주로 한국광업제련(주)과 LG금속에서 각각 발행한 장항제련소 사사(社史)를2) 토대로 장항제련소의 형성과 변화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정리했다. 또한 국토지리정보원과 연동 운영하는 국토정보맵의 항공 사진과 옛 지도 자료를 년도 별로 정리해 비교 분석함으로써 사택단지의 변화와 함께 장항의 도시 발전 과정을3)확인했다. 다행히 장항제련소의 시설과에 보관 중인 장항제련소 사택 관련 도면의4) 열람 절차를 거쳐 남아있는 건축도면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사택단지의 공간적 특징과 변천에 관해 살펴봤는데, 본 연구에 참고한 장항제련소 사택단지의 주요 도면은 <Table 1>5)과 같다.
Table 1.
Existing Drawing List of Janghang Smelting Factory’s Housing Complex
연구는 진행 단계별로 2018년 10월부터 2019년 12월에 걸쳐 장항읍 주민과 장항제련소 근무했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현장 조사를 병행했고, 2019년 12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조사의 결과를 정리해 도면화하고 모형을 만들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장항제련소 사택의 단지 배치부터 공간 구성에 이르는 특징을 도출했다. 이를 단지 조성과 건축적 측면에서 각각 정리하고자 하며, 본 논문은 그 중 전편에 해당한다.
II. 선행연구 고찰 및 용어 정의
관련 주요 선행연구를 정리하면 <Table 2>와 같다. 관련 용어를 좀 더 자세히 구분해 설명하면 관공서 직원을 위한 주택은 관사이며, 일반인을 위해 관 주도로 건설된 주택인 부영주택과 영단주택을 통틀어서 관영주택이라 한다. 이와 비교해 장항제련소와 같이 일반 회사에서 직원을 위해 건립한 주택을 사택이라 한다. 관사와 사택은 일제강점기 한반도로 유입된 일본인 관료와 직원을 위한 필수 시설로6) 근대 도시주거의 출발점이 되었다.
Table 2.
Main Literature Research
이런 이유로 선행연구는 대부분 초기 관사와 사택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이나 사료를 통해서 일제강점기 사택의 형성 과정과 건축적 특징에 대한 조사 및 연구가 주를 이루며, 시기적으로 해방 이후 사택에 집중한 연구는 제한적이다. 선행연구 중 김태영과 이연경외 1인의 논문에서 다룬 일제강점기 산업시설 사택단지를 배치계획 비교 시 주로 참고했다. 주거문화의 변화에 따른 사택의 주거 유형 변화를 중심으로 본 연구는 1930년대 중반 건립 후 산업체의 변천과 함께 75년에 걸쳐 지원시설 역할을 해낸 장항제련소 사택의 단지계획에 집중해 그 변천 및 공간적 특성을 살피고자 한다.
III. 장항제련소와 사택단지의 건립배경
1920년대 장항은 갈대밭이 무성한 인구 1,000여 명의 작은 마을이었다. 일본의 산미(産米)증식계획으로 서천수리조합이 결성되고 매립에 의해 1923~27년 사이 농토가 개척되었다. 1929년 시가지 매립이 시작되면서 1931년 장항선 개통, 1932년 장항항 축항식이 이루어졌다. 도시기반시설 건설로 경기 이남과 충남의 미곡은 장항으로 집결해 일제 수탈의 본거지가 되었다. 추가로 1936년 일본의 산금(産金)정책7)의 일환으로 조선제련주식회사의 장항제련소가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근대산업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 급성장한 장항은 1938년 행정구역상 읍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식산은행은 1934년 장항제련소 건립을 발표하였고8) 1935년 조선제련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35년 건축공사가 시작되었으며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의 비철금속 제련시설인 장항공장이 준공되었다. 동일한 시기인 1935년 직원합숙소가 준공되었고, 1941년까지 3동의 합숙소와 60동 153호의 사택을 건설하였다. 금제련이 주였던 장항제련소는 1941년 중반까지 호황을 누렸으나,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에 따른 원료 수급 봉쇄와 국제 결제수단인 금의 효용가치 하락으로 총독부의 정책은 군수용 비철금속인 구리 생산으로 전환되었다. 장항제련소는 총독부의 권고로 1943년 삼성광업주식회사에 양도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 직할업체로 관리를 거쳐 1948년 대한민국 상공부 직할 삼성광업회사로 전환되었다. 1950년대 유엔 운크라(UNKRA)9)의 원조로 시설 현대화를 거쳐 1962년 한국광업제련공사로 전환 이후 본격적으로 재가동했다. 1971년 장항제련소는 한국광업제련 주식회사로 민영화와 전성기를 누렸으나, 1980년대 럭키금성그룹으로의 편입과 함께 환경오염으로 인해 1989년 제련공정이 폐쇄되었다. 이후 LG, LS로의 전환 및 일본 Nikko와의 합병을 거쳐 동관 생산 기능만 유지한 채 현재에 이른다.
장항제련소의 직원 수 증가와 사택 건립 호수를 년도 별로 나타낸 <Figure 1>의 그래프와10) 같이 근로자들과 함께 흥망성쇠를 겪어낸 장항제련소의 기업사는 그 배후 지원시설인 사택단지의 구성과 매우 밀접하며, 한 지방도시의 생성과 쇠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IV. 장항제련소 사택단지의 형성과 변천
장항은 대규모 제련소 중심 산업도시이자 일제강점기 건조환경(Built Environment)으로 식민도시의 경험을 반영한 도시계획을 보여준다.11,12) 제련소의 배후지원시설인 사택은 근대 도시주거 유형이자 공동주택의 출현이고, 군집된 단지는 근대 주택단지의 초기 사례이다.13)
<Figure 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위치에 따라 장항제련소 사택단지는 제련소와 인접한 전망산 자락 장암리에 위치한 장암리 사택단지와 화천리에 대규모로14) 자리잡은 화천리 사택단지가 있다. 본 논문에서 이를 줄여서 장암(長岩)단지와 화천(和泉)단지로 구분해서 지칭한다. 또한 시기별 사택의 명칭 변화도 파악되는데, 1950년대 전체적인 호칭이 백마, 무궁, 계룡 등으로 변경되어 장기간 불렸으므로 이 명칭을 사용한다. 전체적으로 신축, 증축 및 철거 등 사택단지의 건설에 따른 시기는 장항제련소의 기업사를 반영해 조성기-재건기-확장기-전환기-쇠퇴기로 구분해서 분석한다. 장항 도시사와 연계해 시기별 사택단지의 변천을 정리하면 <Table 3>과 같다.
1. 해방 이전 사택단지의 조성
초기 장항제련소 근로자의 규모에 비해 주거시설은 매우 부족했다. 장항제련소 경영진은 처음부터 직원들에게 사택과 합숙소를 제공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제련공장과 함께 사택 건립 및 단지 조성 공사를 실시 하였다.
1935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일제강점기는 장항제련소 사택단지의 조성기로 장항제련소 건립과 동시에 초기 사택단지가 건설되었던 시기이다.15) 이 시기 장항제련소의 직원 규모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 기록을 통해 400명대로 추정해 볼 수 있다.16) 장항제련소 사택단지는 장암단지와 화천단지가 동시에 조성되었다. 초기 사택단지는 일본인과 한국인 거주 구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었고, 화천단지에 일본인들이 장암단지에 한국인들이 주로 거주했다.17)
제련소에 인접한 전망산 자락에 위치한 장암단지는18) 한국인 공원들을 위한 장암사택 14동 38호가 들어섰다. <Figure 3>의 도면을19) 통해서 능선을 따라 길게 남동향으로 각 동이 배치되어 선형 단지를 구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련공정에서 발생하는 오염 물질로 인해 장암단지의 주거환경은 열악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직주근접(職住近接) 원칙 하에 효율적인 공장 운영에 집중한 배후지원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암단지는 1936년부터 1937년까지 초기 건립, 1941년까지 단지 내 이전 배치가 이루어졌고, 이후 70년대 철거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비해 화천단지는 장항제련소의 대표적인 배후지원시설로서 증축 및 확장을 거듭했다. 화천리 사택군은 화천화천리 사택군은 화천리 수도산 자락과 평지로 이루어진 약 25,360 m2 (7,671.4평) 규모의 대지에 9개의 직교형 가구와 가로 체계를 갖추고 단지 북측 언덕에 이형 구역으로 조성되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의 축소판이자20) 근대 주거단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사택단지는 초기 수도산 자락 구릉지에 사택 배치 후 평지로 북에서 남측으로, 단지 경계 내 서에서 동으로 확장되는 양상을 보이며 사택단지를 형성했다. <Figure 4>와 같이 해방 직전 삼성광업(주)시기의 단지 배치도에서21) 확인할 수 있듯이 12개의 가구와 가로 체계를 적용하고자 했던 초기 계획이 제한적으로 실행됐지만, 단지화된 공동주택으로서의 사택을 확인할 수 있다. 제련소 소장사택을 포함한 직원 및 공원사택은 1936년에서 1941년 사이에 독립형과 연립형 형태로 60동 153호가 건설되었다. 사택들은 직급체계에 따라 사택명이 부여되었다. 소장을 포함한 사무직 직원용 사택 22동 38호, 생산직 공장 직두들이 거주한 사택 8동 16호, 일본인 공원용 사택 16동 61호가 건설되었다. 기사 및 중견사원급 일본인 독신자용 직원합 숙소 2동과 일본인과 한국인이 동시에 거주했던 공원합숙소 1동은 1935년부터 1936년 사이에 준공되었다. 사택단지는 근로자를 위한 배후지원시설로서 초기부터 주거 안정과 제련소의 생산력 향상에 기여한 근대 집합주거이나, 근로자의 직급, 직무체계 및 당시 지배계층인 일본인과 피지배계층인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식민지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2. 해방 이후 사택단지
해방 직후부터 1950년대의 시기는 장항제련소의 재건기로 볼 수 있다. 미군정청 직할업체 지정을 거쳐 국가기간 시설이었던 장항제련소는 1947년 국유화되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상공부 직할업체 삼성광업회사라는 공식호칭으로22)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민족자본의 결핍과 국가재정의 빈곤, 기형적 산업구조, 제한적 기술 전수 등으로 인해 제련소는 침체기를 겪었고, 한국전쟁 발발로 5년여 동안 제련공정을 중단하는 공백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장항제련소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의 복구와 재건을 위해 운크라(UNKRA: 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사업이23) 본격적으로 추진되며, 목조 생산시설과 구형 용광로를 교체하는 등 현대화에 집중했다.

Figure 5.
View of the Early Hwacheon Housing Complex (upper: Baik-ma Houses, lower: Dormitory).
Source. 60 Years’ History of LG Metal
대내외적인 격동기에 사택단지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1953년 직원합숙소가 장항제련소부속병원으로 용도 변경 후 1990년대까지 이용되었다. 공간적 측면에서 합숙소의 개인실이 병실로 전용되었고 일부 수술장을 별동으로 증축했다. 이후 제련소 근무자들에게 주로 발생하는 화상사고의 전문 치료 병원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정확한 시점 확인은 기록의 부재로 어렵지만, 50년대 후반 사택의 명칭을 철거 전까지 사용하던 백마(白馬)-무궁(無窮)-계룡(鷄龍) 등으로 개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까지는 직급, 직위와 직무 체계를 반영해 건물을 칭했고, 전후 육군 운영지원 파견단이 운영하며 군사문화가 주도하던 사회상을 사택단지 명칭에 남겼다.24)
3. 사택단지의 확장
재건 이후 1960년부터 1980년대 말에 이르는 기간은 장항제련소의 확장기로 생산 규모와 근로자 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그에 걸맞게 사택단지의 현대화와 대규모 증축이 병행되었다. 50년대 후반부터 정부 직할기업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고자 장항제련소는 1961년 한국광업제련공사법 제정과 함께 1962년 한국광업제련공사 발족에 이른다. 동과 연제련에 주력하다 1971년 한국광업제련주식회사로 민영화되었다. 생산 설비뿐만 아니라 장항제련소의 상징인 굴뚝이 1979년에 재건축되었다. 10여 년간의 한국광업제련 시기를 보낸 후 1982년 장항제련소는 럭키 금성그룹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일제강점기 이후 신축이나 증축이 전혀 없었던 사택단지는 마침내 1968년 화천단지에 계룡사택 5동 10호 신축하였다. 1976년 노후화된 장암사택을 전면 철거하고, 같은 해 화천단지에 새마을사택 25동 50호를 신축하며 4개년 연차사업이 진행됐다. 1977년 백마사택 12동 24호, 1980년 노후화된 계룡사택 16동 61호를 철거하고 새마을사택 24동 48호를 신축하였다. 또한, 독신자 직원들을 위한 신합숙소는 1967년부터 1972년에 걸쳐 신축되었고, 1977년 제련소 소장사택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2층 188평 12실의 현대식 아파트형 간부숙소를 신축하였다. 화천단지의 사택은 단지 밀도를 높이며 전면적인 변화를 수용했고, 기업의 직원 복지 확대 정책으로 직급에 따른 거주 제한도 사라졌다.25)
사택단지의 증축만으로 이 시기 종업원의 주거수요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했다. 일반 민간건설업자와 연계한 장항읍 내 대규모 국민주택 조합에 참여해 주거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사택의 개념이 단지에 국한되지 않고 장항읍 중심지로 확장된다.26)
4. 사택단지의 전환 및 쇠퇴
제련공정이 폐쇄된 1989년부터 1992년 직원아파트 신축 전까지 장항제련소의 화천단지는 94동 182호의 사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시기 제련소의 운영 주체는 LS-Nikko동제련으로 현재에 이른다.
Table 4.
Change of Janghang Smelting Factory’s Housing Complex
1990년 장항제련소 부속병원과 신합숙소가 철거되고 같은 위치에 각각 2층과 3층 규모로 기숙사가 건설되었다. 1992에서 1996년 사이 백마사택은 철거되고 같은 위치에 5동 120호 규모로 아파트가 건축되었다. 장항제련소의 쇠퇴기인 1990년대에는 아파트를 선호하는 주거문화의 보편화로 인해 기존 사택에서 실질적인 주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마침내 아파트 부지를 제외한 화천단지는 개발업자에게 2010년 매각되었고, 이후 빈집인 새마을사택 2동 4호를 제외하고 모두 철거된채 현재는 빈 땅으로 남아있다. 또한 70년대 철거한 장암단지는 2009년 제련소 주변 토양오염 개선 대책 수립후, 2016년부터 토지정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V. 장항제련소 사택단지의 공간적 특징
장항제련소 사택단지의 변천은 시간적으로 장항제련소가 건립되던 1935년부터 현재까지, 공간적으로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화천리와 장암리 일대에서 일어났다. 장항제련소 사택단지는 사택의 신축과 증축, 철거의 과정을 통해서 사택단지의 조성부터 확장, 쇠퇴에 이르는 주거단지로서의 생애주기를 겪었다. 기본적으로 장항제련소 사택단지는 기업의 운영 및 시대별 주거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보이며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장항제련소 사택단지는 도시적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공간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화천단지는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의 축소판으로 약 25,360 m2 (약 7,671평) 규모의 대지에 12개의 직교형 가구와 가로 체계, 단지 북측 언덕에 위치한 이형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동서로 긴 장방형 가구는 99*45m, 88*45m 내외 2가지 유형이 있었고, 가로는 차량 통행을 고려하지 않은 3~5m의 폭원이었다. 수평형 연립주택 형태의 사택 동 대부분은 남향 배치이나, 주향의 결정이 어려운 소규모 단위세대의 주동은 출입구의 가로 배치를 우선시하기도 했다. <Figure 7>의 계룡사택에서 도시적 측면을 강조한 주동 배치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장항제련소와 1.2 km 정도 거리에 직주근접의 환경을 제공하는 사택단지는 근로자의 주거와 복지를 담당하는 산업시설의 배후지원단지로서의 순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 사택단지는 근로자들에게 주거공간과 함께 부대복리시설을 제공함으로써, 사택단지의 거주는 생활편익을 누릴 수 있는 차별화된 공동체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단지 내 주요 복리시설은 <Figure 7>과 같이 공동목욕탕, 제련소부속병원, 구판장, 마을금고 및 테니스코트와 운동장 등 옥외 체육공간 등이다. 특히 단지 조성 초기인 1941년에 만들어진 공동목욕탕은 제련소 작업 환경을 반영한 부대복리시설로 기능직 집단거주지인 계룡사택촌 중앙에 60평 규모로 설치했고, 나중에 마을 구판장으로 전용되었다.27) 이후 도시 발전으로 장항읍이 생활편의시설을 갖추면서 사택단지의 복지 기능은 점차 사라지고 주거 기능만 남게 된다. 셋째, 장항제련소 사택단지는 산업시설의 직급 체계 및 식민지 시대 지배구조를 반영해 사택 배치와 위계를 형성한 공간이다. 제련소 근로자는 직급에 따라 크게 소장>간부>일반사원으로, 직무에 따라 사무직 직원과 생산직 공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단지 조성기에는 식민지배계층 일본인과 피지배계층 한국인의 구분도 뚜렷했다. 근대의 계급 개념은 거주지의 배치와 개별 사택의 면적 규모 설정 등에 영향을 미쳐 공간 서열화로 나타났다. 이러한 기준의 적용은 <Figure 8>과 같이 사택 배치의 단면, 사택별 방의 개수 및 실 구성의 차별화에 따른 평면 구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화천단지 내 소장사택은 단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단지 북측 구릉지에 위치했다. 이는 동해에 위치한 삼척개발 사택단지나 부평 미쓰비시 사택단지에서도28)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다. 사택의 규모에 따라 백마사택>무궁사택>계룡사택으로, 주택의 유형은 단독주택>2호 연립주택>4호 연립주택>개인실로 전개되며, 직급별로 거주 가능한 사택이 정해졌다. 직급별 거주공간의 군집 배치로 소규모 공동체를 형성하며, 화천단지 내에서 백마사택촌, 계룡사택촌 등으로 구별해 불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성기 생산직 공원 대부분은 한국인들로 구성되었으며, 화천단지 공원숙소 일부와 주거환경이 열악한 장암단지 사택에 거주했다. 사택단지 내 거주 영역의 구분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가구별 현황은 기혼 또는 미혼 여부, 다인가구 또는 독신자가구로만 단순화해서 사택을 배정하는 게 보편화되었다. 1976~1980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건립된 새마을사택은 직급 구분 없이 전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공급되었다. 사택단지 조성기로부터 40여 년 후 비로소 근로자 개별 가구의 상황을 고려한 셈이다. 장항제련소 사택단지는 단지 형태의 근대 주거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실제 거주 대상인 근로자 개개인의 상황은 제한적으로 고려될 뿐, 근대 기업의 서열과 식민지 시대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는 데 이용한 아픈 역사의 산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넷째, 장항제련소 사택단지는 장항제련소 및 장항과 운명공동체로 기업의 운영과 생산구조의 변화를 그대로 수용하며 변화를 거듭했고, 이는 곧 장항의 흥망성쇠와도 직결된다. 사택단지는 일제강점기, 공사 시기, 민영화 시기별 장항제련소의 운영 주체 변화에 따른 근로자 수 증감 및 고용구조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공간적으로 신축, 증축 및 철거 등의 과정을 거쳤다. 따라서 사택단지의 변화는 제련소 사사에 근거해 조성기(1936~45년)-재건기(1945~1960년)-확장기(1961~1980년대 후반)-전환기(1989년~2000년)-쇠퇴기(2001년~현재)로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장항중심지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장항제련소와 사택단지는 장항이 근대산업도시로 성장하게 된 동력이었다. 제련소에 인접해 근린생활시설이 군집한 황금정마을과 화송길의 활성화와 함께 도시 공간의 확장과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제련공정의 폐쇄는 인구의 급감으로 장항을 쇠퇴기로 접어들게 했고, 단지의 매각과 사택의 철거를 초래했다. 마지막으로, 사택단지는 한국 주거문화의 시대적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일본식 주거의 영향을 받은 사택에서 출발해 서양식 근대건축, 한국식 공동주택으로 변화를 거듭해왔다. 구체적으로 사택단지를 구성했던 주택 유형은 조성기 단독주택과 수평형 연립주택이 주를 이뤘고, 확장기에는 국민주택 조합 참여로 사택의 공급 형식이 다변화되었고, 1990년대 들어서 아파트로 전환되었다.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를 기반으로 분석한 <Figure 9> 주택의 유형 분포 그래프는 1995년 아파트가 3,455,000호로 전체 주택의 37.5%를 차지하며 급증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양상은 90년대 초부터 입주가 시작된 1기 신도시의29) 영향으로 일반인들에게 아파트 선호 주거문화를 확산시키는 기점이기도 했다. 이와 동일한 아파트 선호 양상이 장항제련소 사택단지에도 반영되어 1992~96년에 걸쳐 사택의 유형은 아파트로 전환되었다. 사택단지는 결국 대표적인 한국 주거 유형인 아파트 5동과 기숙사 1동 120호만 남아, 장항의 산업단지 근로자들에게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VI. 결 론
사택(社宅)은 산업시설이나 기업과 같은 민간기관이 종사자들을 위해 건립한 주택으로, 관사(官舍)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일제강점기 1936년 장항제련소의 가동과 함께 1941년까지 장항읍 장암리와 화천리 일대에 60동 153호 대규모 사택단지가 조성되었다. 해방 이후 재건기를 거쳐, 제련소의 전성기인 7~80년대에 노후화된 사택의 현대화 및 94동 182호 규모의 증축이 일어났다. 1989년 제련 공정의 폐쇄로 인해 제련소 사택단지도 배후지원시설로서의 원기능을 상실한 채, 1990년대 축소된 직원 규모에 따른 아파트형 사택으로 전환되었다. 장항제련소 사택단지를 대표하는 화천단지는 2010년 매각 후 사택군이 전면 철거되었고, 현재 새마을사택 2동과 사원아파트 5동만 잔존하고 있다.
장항제련소 사택단지는 근대 집합주거 단지의 전형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과 가치를 지닌다. 첫째,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직교형 가구와 가로 체계를 갖춘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의 축소판이다. 동서 방향의 장방형 가구는 99*45 m, 88*45 m 내외 2가지 유형이 있었고, 가로는 3~5 m의 폭원이었다. 둘째, 기능적 측면에서 장항제련소와 1.2 km 정도 거리에 직주근접의 환경을 제공하는 사택단지는 근로자의 주거와 복지를 담당하는 산업시설의 배후지원시설로서 순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 셋째, 장항제련소 사택단지는 산업시설의 직급 체계 및 일본인 관리직과 한국인 생산직을 고착화한 식민지 시대 지배구조를 반영해 사택 배치와 평면 및 단면 구성의 공간 위계를 형성했다. 넷째, 장항제련소 사택단지는 장항제련소 및 장항과 운명공동체로 기업의 운영과 생산구조의 변화를 그대로 수용하며 변화를 거듭했고, 이는 곧 근대산업도시 장항의 흥망성쇠와도 직결된다. 조성기-재건기-확장기-전환기-쇠퇴기로 구분해서 접근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사택단지는 시대적 주거문화를 포용하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조성기 일본식 단독주택과 수평형 연립주택이 주를 이룬 사택단지에서, 확장기에는 국민주택 조합 참여로 사택의 공급 형식이 다변화되었고, 1990년대 들어서 한국의 보편적 주거유형인 아파트로 전환되었다.
장항제련소 사택단지의 변천을 통해 근대산업사와 장항이라는 한 지역의 도시사를 통찰할 수 있으며, 근대주거 단지의 공간 구성 특징을 도출할 수 있다는 의의를 지닌다. 본 연구가 각종 도시재생사업을 진행 중인 장항이 근대도시의 원점이었던 장항제련소와 사택단지의 장소기억을 통해 지역정체성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이 시대의 공간 수요를 반영해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사택 유형별 건축적 접근은 후속 연구로 더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