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the Korean Housing Association. 25 October 2017. 31-39
https://doi.org/10.6107/JKHA.2017.28.5.031

ABSTRACT


MAIN

I.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 1887-1965)를 대표로 한 근대건축이 새로운 건축으로의 변모를 꾀하던 시기, 일본 또한 이를 수용하는 움직임이 형성되었다. 도쿄대 교수인 키시다 히데토(Hideto Kishida, 1899-1966)1)가 유럽에서 가져온 르 코르뷔지에의 ‘오늘의 장식예술(L’Art decoratif d'aujourd'hui, 1925)’은 마에카와 쿠니오(Kunio Maekawa, 1905-86)가 르 코르뷔지에의 문하에 들어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사카쿠라 준조(Junzo Sakakura, 1901-69), 요시자카 타카마사(Takamasa Yoshizaka, 1917-80)로 이어진 르 코르뷔지에와의 인연은 <Figure 1>과 같이 일본 건축에 영향을 미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전 세계의 문하생 중에서도 특별히 이 세명을 ‘마에·사카·타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는 일본 최초의 국립 서양미술관(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 1957)설계로 연결되었으며 대지조사 등을 이유로 1955년 방일(訪日)을 성사시켜 르 코르뷔지에를 일본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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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Genealogy of Le Corbusier’s 3 Japanese Followers

제자 3인의 방대한 작업 중에서도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건축 원리를 흡수하여 일본에 정착시킨 대표적인 용도에 대해 선행연구2)를 진행한 바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사카쿠라가 “주택은 건축이 가진 본질적인 것을 모두 가지고 있다”3)라고 언급한 바를 연구의 바탕으로 삼아 르 꼬르뷔지에와의 교감이 이들의 초기 주택에 미친 영향과 일본 근대건축에 갖는 의의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연구의 대상 및 방법

1937년 즈음, 전쟁으로 건축물의 규모와 자제를 통제하는 상황에서도 일본 특유의 ‘목조 모더니즘(木造モダニズム)’을 탄생시킨 마에카와의 자택(Maekawa House, 1942), 사카쿠라의 이이바시주택(Old Iibashi House, 1941)과 이와 달리 10년 이상이 지나 전후(戰後)를 극복하고자 한 요시자카의 자택(Yoshizaka House, 1956)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건축가로서의 고심과 해결에 대한 흔적을 찾고자 한다.

연구방법으로는 문헌고찰을 통해 르 코르뷔지에와 이들의 궤적을 살펴 상호 상관성을 찾아보고 도면·사진 및 관련자료의 분석을 바탕으로 답사를 진행하였다.

II. 르 코르뷔지에와 일본인 제자들의 관계

1. 르 코르뷔지에와 일본

1) 일본에 르 코르뷔지에의 소개

르 코르뷔지에가 일본에 소개된 것은 1922년 살롱 도톤누(Salon d’automne)의 강연에 감동한 야쿠시지 카즈에(Kazue Yakushiji, 1884-1965)4)가 잡지에 게재한 ‘구미를 둘러보다(歐米を巡りて)’라는 글을 통해서다. 여기에 서술된 젊은 건축가의 이미지는 당시의 일본 건축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외에도 이마이 켄지(Kenji Imai, 1895-1987)5) 등은 ‘건축을 향하여(Vers une Architecture, 1923)’ 등의 서적을 입수해 전파하였다.

또한 1925년 파리 국제장식예술박람회의 ‘에스프리 누보관(L’Esprit-Nouveau pavilion)’의 방문소감을 남긴 모리구치 타리(Tari Moriguchi, 1892-1984)6)에 의해 새로운 건축 조류로 거론되었을 뿐 아니라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거나 그의 건축에 대한 경험담이 전해지면서 더욱 관심이 높아져 갔다. ‘국제건축(國際建築)’7)이 1929년으로 5, 6월호 연속으로 르 코르뷔지에 특집을 내면서 그 정점을 맞았다.

키시다는 이 특집에서 “가장 현대적인 것이야말로 코르뷔지에다. 현재 코르뷔지에는 세계의 건축을 움직이는 지도적인 왕위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하였으며, 어떤 잡지에서는 ‘코르병 환자’라는 언어가 등장할 정도 그 의미가 새로운 도쿄의 풍속과 도회적이고 세련된 것임을 표현했다.

2) 코르뷔지에 붐 이후의 ‘일본다움’

1930년대의 일본 건축계의 최대 주제는 ‘어떻게 일본다운 건축을 만들까’였다. 제관양식 및 서구의 건축을 그대로 도입하는 데에 날카로운 비판적 의견이 존재했을 때, 국제주의 건축을 주창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에서 일본다움을 찾고자 하였다. 야쿠시지가 ‘유럽이나 미국에서의 수입과 모방을 멈추고 동양에 뿌리를 갖는 커다란 건축예술에 태어나기를 희망한다’라고 남긴 메시지가 다시 각광을 받으며 일본건축에서 자부심을 찾으며 르 코르뷔지에 붐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1939년에 단케 켄조(Kenzo Tange, 1913-2005)가 ‘미켈란젤로-르 코르뷔지에론으로의 서론으로서(Michelangelo頌-Le Corbusie論への序說として, 현대건축, 1939. 12)’를 발표8)했다. 전전(戰前) 최후의 르 코르뷔지에론으로 자신이 르 코르뷔지에와 같이 사명을 띠고 건축을 하고자 하는 각오를 표명했다. 이는 많은 건축가가 르 코르뷔지에를 잊고 있었을 때, 다시금 르 코르뷔지에를 되돌아보게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건축계에서는 건설이 중단되고 잡지들도 잇달아 휴간했다. 전후(戰後) 다시 그의 작품이 알려지면서 형태적으로 변모의 시대에 접어든 그에게 크게 놀랐다.9) 또한 제자들의 활약이 시작되면서 그들의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일본다움과 르 코르뷔지에에게서 흡수한 근대건축의 흔적에 열광하게 되었다.

1955년 11월 2일부터 9일까지 서양미술관의 부지조사를 위해 방일한 르 코르뷔지에는 제자들의 작품 및 일본 고건축 둘러보았다. 그러나 고건축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직접 실측할 정도로 흥미를 가진 곳은 <Figure 2>와 같은 교토 뒷골목의 밀집한 상점과 이곳의 휴먼스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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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Pontochou, Kyoto

2. 일본인 제자 3인의 궤적

1920년대 말에 르 코르뷔지에의 곁으로 간 마에카와, 1930년대 초의 사카쿠라, 전후 프랑스 유학이 재개된 1950년에 건너간 요시자카는 각각 다른 시기의 르 코르뷔지에를 가까이서 경험했고, 자신들이 타고난 기질과 지향성을 겹쳐가며 전혀 다른 건축사상과 작품을 추구하였다.

일본인 제자 3인의 작품 및 건축가로서의 궤적은 ‘르 코르뷔지에 백색시대를 곁에서 지켜보며 CIAM의 최소주거를 담당하면서 근대건축의 원리를 믿고 일본에 정착시키고자 한 마에카와, 도시계획의 시대를 함께 보내면서 근대 건축의 명석공간을 실천한 사카쿠라, 그리고 브루탈리즘으로 변모의 시대를 지켜보며 근대건축의 장래를 기대하며 생활의 형태를 쫓은 요시자카’10)로 평가된다. 여기서 그들이 무엇을 받아들이고 원하고 남겼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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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Kunio. M

1) 마에카와 쿠니오(前川國男, 1905-1986)

1925년 도쿄제국대학 건축학과에 입학해 키시다 교수를 통해 접한 르 코르뷔지에의 ‘오늘의 장식예술’에 감명을 받아 대학 졸업식 날 바로 파리로 건너가 1928년 4월에서 1930년 4월까지 르 코르뷔지에의 아뜰리에에 근무하였다. 당시 르 코르뷔지에는 ‘국제연맹 공모전(Palace of the League of Nations, 1927)’에서 1위로 입상했으나 아카데미파의 심사에 의해 실현이 막혀, 그에 항의해 정리한 저서 ‘주택과 궁궐(Une Maison Un Palais, 1928)’을 발표한 즈음이었다. 또한 ClAM을 조직하는 등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마에카와가 담당한 것은 1929년 ClAM 제2회 대회에 제출된 ‘최소한 주택계획안’11)으로 1914년에 발표한 ‘돔이노(Dom-ino)’에 그 뿌리가 있는 공업화주택의 프로토 타입이었다.12)

귀국 직전인 1929년에 응모한 <Figure 4>의 ‘나고야시청사’부터 공모전에 연속해서 도전한 것도 르 코르뷔지에의 투쟁정신을 본받아 새로운 시대에 맞는 건축을 요구하고 싶은 건축가로서의 소망이 응축되어 있었다. 1930년 귀국 후, 1935년까지 안토닌 레이몬드(A. Raymond, 1888-1976)13) 사무실에서의 실무는 일본의 목구조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는 자택계획의 큰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1935년에 건축사무소를 설립했지만 전쟁으로 작업은 중단되었으며 자재통제에 의한 기술의 정체나 근대화의 지연이이라는 어려운 상황과도 맞서야 했다. 전후에는 스승의 ‘스테인주택(Villa Stain, 1927)’과 유사한 건축적 요소를 찾아 볼 수 있는 <Figure 5>의 ‘키무라 산업연구소(1935)’, 자유로운 입면·평면을 자신의 언어로 해석한 ‘일필휘지(一筆揮之)’의 개념을 적용한 <Figure 6>의 ‘카나가와 현립 도서관·음악당(1954)’ 등을 시작으로 공공건축을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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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Nagoya City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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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5.

Kimura Industrial Labora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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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6.

Kanagawa Public Library· Prefecture Ongaku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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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7.

Junzo. S

2) 사카쿠라 준조(坂倉準三, 1904-1969)

1927년에 도쿄제국대학 미술사과를 졸업하였으나 재학 중에 건축에 뜻을 두고 1931년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 들어갔다. 르 코르뷔지에는 1931년 ‘사보아주택(Villa Savoye)’으로 백색의 기하학적 추상과 건축적 산책로인 슬로프를 명쾌한 형태로 실현하면서 세계적인 건축가로 부각되었다. 사카쿠라는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일본관(Japanese Pavilion, Paris World Exposition)’에서 사보아주택의 건축적 수법을 적용하였다. 사카쿠라가 담당한 ‘마데주택(Villa Mathes, 1935)’에서는 일본전통의 목구조 기법의 디테일을 적용해 1930년대 토착적인 것의 가치를 재발견해 자연소재를 도입하고자 한 지역주의 건축에 관심을 둔 르 코르뷔지에를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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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8.

The Museum of Modern Art, Kamak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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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9.

Institute France-Japanese of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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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0.

Sinjuku Project

1939년 귀국하여 사카쿠라 건축연구소를 개설해 ‘카나가와 현립 근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Kamakura, 1951), 도쿄 일불학원(Institute France-Japanese of Tokyo, 1951), 도쿄 문화회관(The International House of Japan, 1956)’ 등을 선보였다. 특히 귀국 전날까지 열정을 쏟은 ‘빛나는 도시(La Ville Radieuse, 1935)’안은 도시를 합리적으로 재편성하고 고층빌딩과 광장이 건강한 생활공간으로 창조되는 이미지가 그려졌다. 이는 이후 ‘하시마 도시계획(Hashima Project, 1961)’, ‘신주쿠 서출구 광장(Sinjuku Project, 1966)’ 등의 도시적인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3) 요시자카 타카마사(吉坂隆正, 1917-1980)

국제파 관료였던 아버지로 인해 유년기를 스위스에서 보냈다. 1941년에 와세다 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수 및 강사를 거쳐서 1947년에 조교수(1959년부터 다시 교수)로 근무하였다. 1950년에 제1회 프랑스 국비유학생으로 도시계획을 배우기 위해서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 근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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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1.

Takamasa. Y

마에카와와 사카쿠라가 근대건축 형성기의 르 코르뷔지에를 경험한 것에 비해 요시자카가 소속된 1950년부터 2년간의 그는 모듈러(Modulor, 1948)를 완성시켰으며, ‘롱샹성당(Ronchamp, 1950-54)’, ‘샹디갈 도시계획(Chandigarh Capitol Complex, 1950)’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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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2.

Athenee Franc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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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3.

Inter-University Seminar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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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4.

Sendai Project

1952년에 귀국 후 1955년에 설계조직인 ‘요시자카 연구실(1964년 이후 U연구실)’을 설립하여 ‘자택(1955),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Japanese Pavilion, Venice Biennale, 1956), 아테네 프랑세(Athenee Francais, 1962), 대학 세미나하우스(Inter-University Seminar House, 1965)’ 등을 선보였다. 그는 건축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프로세스에 관심을 두고 르 코르뷔지에의 시선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방일한 르 코르뷔지를 최대한 동행하려던 것도 형태가 생겨나는 순간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비유럽권, 특히 인도를 통해 크게 작풍이 변환하는 데에 영향을 받아 대학 세미나하우스의 설계 중에 ‘유형학’이론을 내놓았다. 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맡으며 ‘센다이 계획(Sendai Project, 1973)’ 등 새로운 시대의 도시 디자인을 지휘했다.

III. 제자 3인의 초기주택의 개요와 특징

1. 제자 3인의 초기주택의 개요

1) 마에카와 자택의 개요(前川 自邸, 1942)

도쿄 시나가와의 자택은 대지면적 494 m2, 건축면적 94 m2의 목조 2층으로 준공되었다. 건축면적 100 m2 이하, 자재통제라는 규제 속에서 서양식 생활방식을 적용한 풍부한 거주공간이 실현된 상당히 선구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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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5.

Maekawa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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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6.

Office in Maekawa House

1945년 3월, 도쿄 대공습으로 긴자의 사무소가 소실되자 자택이 약 10년간 마에카와의 활동거점이 되었다. 동쪽부분을 부부의 사적인 생활공간, 나머지 과반 이상을 사무소로 사용했다. 거실과 중2층의 서재를 입체적으로 연결한 보이드의 극적인 공간연출은 츠지우라 카메키(Kameki Tsuchiura, 1897-1996)14)의 자택에서 영향을 받는 등 여러 건축가와 관계성을 맺은 결과이다.

일본의 목조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작인 자택은 귀국 후 레이몬드 사무실에서 접한 ‘카루이자와주택(夏の家, 1933)’ 등을 통해 목조를 다룬 경험이 자재통재라는 시대적 상황과 운명처럼 맞물려 얻게 된 결과일 것이다. 이후 근대건축의 작품성을 인정받아 DOCOMOMO에 선정되어 1996년 에도 건축박물관으로 이축되어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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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7.

Iibashi House

2) 사카쿠라의 이이바시주택의 개요(I日飯箸邸, 1941)

1940년에 사무소를 설립한 이듬해인 41년, 태평양전쟁의 시작 직전에 완성한 최초의 작품이다. 건축주는 도쿄제국대학 미술사과 시절의 은사였던 단 이노(Ino Dan, 1898-1973)15)였다. 도쿄 세타가야의 조용한 주택지에 대지면적 492 m2, 건축면적 99 m2의 목조 2층으로 준공되었다. 남북으로 세장한 부지 중앙에 건물을 배치시켜 남북 측에 넓은 정원을 계획하였다. 장방형의 매스에 박공지붕이 얹어진 단순한 구성이지만 남측면에 큰 개구부를 중심에 두고 계획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얀 외벽, 날렵한 처마의 박공지붕, 그 아래의 수평차양과 큰 개구부, 악센트가 되는 난로의 굴뚝과 나비모양의 환기창 등의 뛰어난 구성이 긴장감 있는 입면으로 참신하고 근대성이 돋보이는 목조 모더니즘이 실현되었다.

사카쿠라는 준공 당시 이 주택을 ‘일본 소주택(一日本小住宅)’이라고 명하고 잡지에 발표하였다. 거기에는 르 코르뷔지에에게서 배운 명확한 모더니즘정신에 따라 부분이 잘 만들어지면 전체의 조화가 따라온다는 일본민가의 전통과도 통하는 국민주거(國民住居)를 실현하고자 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2007년 해체의 위기 속에서 일부가 카루이자와(Karuizawa)로 옮겨져 레스토랑으로 재생되었으며16) 작품성을 인정받아 DOCOMOMO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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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8.

Yoshizaka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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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9.

Unites d’habitation,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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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0.

Yoshizaka

3) 요시자카의 자택의 개요(吉坂 自邸, 1955)

요시자카는 르 코르뷔지에부터 ‘형태로 제안할 용기’를 배웠다. 그 최초의 표현이 1955년 신주쿠에 건설한 연면적 72 m2의 철근콘크리트조 3층 규모의 자택이다. 도쿄 대공습으로 불에 타버린 신주쿠 옛 자택의 흔적은 새로운 주택과 도시로의 구상을 현실화 시킬 장소가 되었다. 1946년 기록17)을 시작으로 1947년에는 주택에 대한 스케치를 시도하였다. 이의 구체화는 파리 유학시절에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건축 원리인 필로티와 옥상정원 및 돔이노 시스템을 수용하면서 씨트로앙주택(Citrohan, 1922)과 유사한 형태를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인공대지’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하나의 프로토 타입을 실험하고자 하였다. ‘미래 고층주택의 원형으로서의 구상으로 유틸리티 중심의 계획’으로 성장하는 주택의 개념을 도입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Figure 19, 20>처럼 유니테 다비따시옹의 개념과 같다. 자금문제로 구옥의 이축·개조와 작은 서재의 건설만으로 끝났지만 실제 공사를 할 때는 대출을 받아 먼저 골조를 세우고 이어서 자금을 확보하여 외벽, 창, 내벽을 차례로 완성시켜 나갔다. 골조만 세운 곳에서 맥주파티를 하는 등 돔이노 시스템과 공정의 과정을 즐기며 건설했었다.

2. 제자 3인 초기주택의 건축적 특성

1) 배치 및 진입체계

마에카와와 사카쿠라의 주택은 남북에 정원을 넓게 두고 부지 가운데에 매스를 배치하는 동일성을 보인다. 당시 건축면적의 규제로 부지를 최대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의 특징으로 보인다. 마에카와 자택은 다양하게 계획한 창호의 개폐로 남북의 정원과 실내를 관통하도록 하였다. 반면 이이바시주택은 남쪽 정원을 향해 비정상적으로 큰 개구부를 만든데 비해 북쪽은 면으로 처리하여 마에카와와 상반된 특징을 가진다. 두 작품 모두 도로쪽의 주 출입과 정원을 통한 부출입을 두고 있다. 진입 시에 수목에 의해 시선을 차단하고 지역의 돌 등을 다듬어 벽을 만들어 의도적으로 동선 및 시선을 회유하고 있다.

요시자카가 자택을 건설할 당시에는 규모나 자제통제가 끝난 후로 최소한의 주거를 실험하였다. 주거가 2층부터 시작되므로 일명 ‘플라잉 계단’을 통해 인공대지로 동선을 연결하고 있다. 거실과 이어지는 테라스를 정원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3층에서 사다리로 옥상을 올라 이 또한 정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Table 1>의 요시자카의 배치도는 1982년의 현황으로 차남이 도면을 그렸다. 서쪽에 자택이 있으며 북측의 1층에는 연구실인 U-LAB과 2층에는 장남부부의 주택을 두고 남측에는 서재가 있다.

Table 1.

Characteristics of Spatial Com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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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간 구성

마에카와 자택과 사카쿠라의 이이바시주택은 공간의 중심에 공용공간인 거실이 위치하고 있다. 입체적으로는 목조주택의 특징인 박공지붕을 활용한 중2층을 계획하였다. 면적제한이 있던 시기라서 마에카와의 경우에 준공심사를 받을 때에는 중2층이 없는 도면을 제출한 후, 심사 통과 후 시공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이바시주택 또한 2층 면적까지 계산해 보면 같은 방법으로 심사를 받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중앙의 거실은 박공지붕의 높은 천장과 입체적으로 연계하여 극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남북의 정원과 연계되어 작은 규모를 느낄 수 없도록 내외부의 적극적인 확장성을 꾀한 수법인 것이다.

요시자카의 자택은 한 층이 약 23 m2의 실험주거로 1층은 필로티와 보일러실, 2층부터 주거로 공용공간(LDK), 3층의 부부와 자녀침실로 구성되어있다. 이를 입체적으로 해석하면 앞의 두 작품과 같이 공간의 중심에 공용공간이 계획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옥상정원으로 해석되는 테라스의 입체적 정원과도 연결지어볼 수 있다.

IV. 르 코르뷔지에와 세 건축가의 초기주택의 관계성

1. 근대건축과의 상관성과 전개

1) 르 코르뷔지에와의 교감

사카쿠라가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서 마지막으로 담당한 작품은 목조별장인 마데주택이었다. 대서양에 면한 소나무 숲 속의 별장지로 바다에 면한 서쪽은 강풍에 대비해 현지 자연석을 쌓아 벽면을 만들었고, 숲에 면한 동쪽은 목조의 골조를 드러내고 있다. 목재 접합부 처리, 모서리의 면처리 등의 수법과 툇마루 같은 반옥외 공간에서 일본 목조문화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조적조에 익숙한 기술자를 설득하여 디테일한 목조를 조화시킨 사카쿠라의 역량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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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1.

Villa Les Mathes

요시자카는 아틀리에 재직 중에 자택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Figure 22>과 같이 1952년의 최초 스케치에서는 이미 필로티와 외부계단이 보이고 있다. 이후 차례로 외부계단으로 특징되는 르 코르뷔지에의 스테인주택과 쇼단주택(Villa Shodhan, 1951)이 연상되는 강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지만 실제로 준공된 자택은 최초의 러프한 스케치에 가깝다. 이후 빌라 쿠쿠(Villa Cou Cou, 1957)에서는 라툴레트 수도원(La Tourette, 1957)과 롱샹성당의 영향이 명확하게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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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2.

Sketch of Yoshizaka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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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3.

Villa Cou Cou

마에카와의 경우는 자택의 계획에 있어 사카쿠라와 요시자카처럼 르 꼬르뷔지에의 직접적인 영향의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다. 이는 프랑스에서 돌아와 실무를 배웠던 레이몬드의 목조건축을 경험한 바가 크기에 상대적으로 그 흔적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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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4.

Exhibition of Modern Wooden Structure

2) 목조 모더니즘의 탄생과 근대건축의 수용

2008년 4월 ‘사카쿠라 준조·마에카와 쿠니오의 목조 모더니즘 전(坂倉準三·前川國男の木造モダニズム展)’이 개최되었다. 목조 모더니즘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건축수법이다. 1920년 이후의 모더니즘 건축은 철·유리·콘크리트로 대표되는데 일본에서는 전쟁을 위한 자재통재로 이러한 재료의 사용을 제한하는 모순된 상황이었다. 즉, 일본 내에서는 목조의 소규모 건물 밖에 세울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일생을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공공건축’을 주제로 한 마에카와지만 목조를 통한 모더니즘 건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자택은 그러한 시도가 결실을 맺은 것으로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흡수한 모더니즘과 레이몬드를 통해 경험한 일본다움을 관통하는 조화를 꾀한 것이다.

이이바시주택 또한 당연히 목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외관에서 적극적으로 목구조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다실부분은 일본 전통의 민가와 같은 공간과 입면을 유지하고 있다. 즉 근대적인 외관을 가질 수 있도록 계획함과 동시에 전통공간이 이질적이지 않도록 접목시킨 수법이 매우 인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면 요시자카의 자택은 르 코르뷔지에의 돔이노, 근대건축 5원칙이 실현된 실험적인 작품으로 씨트로앙주택을 차용해 투박한 여섯 개의 기둥이 지지하는 슬라브 사이에 쌓은 콘크리트 블록이 실내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그대로 외관에 드러나는 입면의 과감함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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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5.

Composed of Citrohan and Yoshizaka House

2. 일본 건축수법의 수용과 정체성의 구현

1) 전통건축의 차용과 적용

마에카와 자택에서는 일본 민가풍의 큰 지붕과 처마가 있는 형식으로 르 코르뷔지에에서 배운 근대건축의 공간구성과 레이몬드의 ‘일본 민가풍 디자인’의 융합을 도모하고자 하였다는 견해가 있다. 반면에 대칭형 경사지붕과 원기둥의 구성이 이세 신궁의 구성과 동일하여 이를 모티브로 했다는 시각이 크다. 이렇게 원기둥을 강조하는 수법은 이후 국립도서관 신관(1986)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Table 2.

Borrowing and Deployment of Traditional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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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쿠라의 이이바시주택에서는 경사진 대지에 부응해 필로티 구조를 차실의 일부에 사용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르 코르뷔제의 필로티 수법의 수용이 아닌 ‘역사’에 기인한 일본 고건축의 참뜻을 적확하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교토의 가츠라 별궁의 고마루 구조와 같은 표현으로 르 코르뷔제의 이론과 일본의 전통을 교묘하게 융합한 사카쿠라의 역량으로 볼 수 있다. 이는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일본관의 구조로도 사용한 수법이었다.

2) 다양한 창호수법의 전개

일본은 장지문, 판자문 등의 탈부착 및 겹문의 조합을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마에카와는 <Table 3>에서와 같이 겹문을 활용하여 그 개폐에 의해 다양한 입면구성과 개방성 및 폐쇄성을 취하고 있다. 이는 앞뒤의 마당과 연계되어 환기 및 조망에 큰 역할을 함과 동시에 평면과 입면의 특징이 된다. 실내의 큰문은 축을 중심으로 개폐시의 공간의 확산성과 완결성이 대비된다. 그러나 이는 이이바시주택에서 먼저 선보인 것으로 큰 규격의 문이 가지는 효과를 차용한 것으로 고찰해볼 수 있다.

Table 3.

Deployment of Window and D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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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쿠라의 이이바시주택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히는 축으로 지지되는 남면에 폭 3.0 m×1장, 1.8 m×1장, l.5 m×2 장의 문은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1903-99)이 리조트호텔 계획에서 선보인 것과 같다. 최대폭 3.0 m의 회전문은 자체무게를 견디도록 턴버클로 비스듬하게 끌어당기고 있고 아래에는 자연석을 놓아 지지하고 있다. 유리 부분은 분리식으로 망창이나 장지문을 붙이거나 판자문으로 교환하여 계절에 맞춰 변화를 줄 수 있도록 하였다.

1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기술의 발달과 일본 내부 사정의 변화로 요시자카가 자택을 건설할 때는 자유로운 입면에 의한 다양한 창의 구현이 가능해 졌다. ‘실험주거’라는 주제로 인공토지로 삼은 테라스를 향한 파사드를 형성하는 전면 창, 가로로 긴 고측창, 작은 정사각형의 창, 화장실 쪽의 독특한 형태의 창 등은 재미를 더함과 동시에 철저히 씨트로앙을 분석해 적용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3) 일본식 생활과 근대식 공간의 조화로운 창출

세 건축가 모두 일본식과 서양식의 구분을 넘어 근대 주택의 창출을 모색하면서도 미와 더불어 필연적으로 그 근본에 생활의 편리가 바탕이 되어야 했다. 세 주택 모두 입식생활의 편리함과 일본식의 다다미실이 공존하고 있다.

마에카와는 처음부터 서양식 생활의 입식을 고수하였다. 이러한 계획은 이후 자택을 사무실로 수월하게 사용 및 증축 가능한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정부실인 3조의 다다미실은 일본식 공간에 익숙한 사용자를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마에카와주택이 모던함으로 대표되는 것은 큰 박공지붕의 대칭형에서 오는 목조의 완고함이 실내의 생활에 익숙한 입식에서 오는 일상감과 더불어 가구들에도 마에카와의 고민과 손길 더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이바시주택은 가정부실과 차실의 두 곳에서 다다미 실이 확인된다. 거실은 2개층 높이의 보이드를 구성해 전면의 큰 축문과 연계하여 개방감 있는 거실을 만들고 있으며 여기에는 벽난로를 설치하여 마룻바닥의 패턴과 함께 당시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을 구현하였다.

Table 4.

Coexistence of Japanese and Western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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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자카는 철저히 근대화된 협소주택으로 아이들 방은 벙커형 침대를 사용할 정도로 공간을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부부침실은 다다미실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좌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바닥을 일부 높혀 다다미를 깐 구성이 앞선 두 건축가와 다른 공간 활용법이다.

V. 결 론

일본인 제자 3인은 서양의 근대건축을 흡수하기 위해 르 코르뷔지에를 찾아 건축의 기반을 다졌지만 이들의 근본은 일본에 있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일본적 건축수법이 근대건축과 조우하여 이들만의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에 초기 주택을 대상으로 이들 건축의 원점과 건축적 특성을 살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도출하였다.

먼저 근대건축과의 상관성에 있어서 사카쿠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마데주택에서 일본의 목조를 바탕으로 일익을 담당하는 직접적인 교감이 있었다. 반면 귀국 후에도 철저히 스승의 씨트로앙주택을 수용하여 돔이노 이론을 적용해 자신만의 실험주택을 실현한 요시자카가 있다. 근대건축의 수용에 있어서 마에카와와 사카쿠라는 전시 속 규제를 기회로 일본만의 독특한 목조 모더니즘을 탄생시켰다.

다음으로 근대화 과정으로 나가는 길목에서 일본 건축수법의 수용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체성을 구현한 것이다. 그 방법의 첫 번째는 이세신궁이나 가츠라리큐 등의 전통적인 건물에서 나타나는 의장적인 특징을 적극 수용한 것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이는 이후 작품에서도 연결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전통적으로 일본의 창호 구성에서 보이는 덧문 등의 다양한 조합의 수법을 근대적으로 풀어서 목조에 어울리면서도 페리앙 등의 유럽의 지인들의 작품을 탐구하여 조화롭게 적용하고 있다. 반면 요시자카는 씨트로앙의 차용을 통해 르 코뷔지에의 영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럽생활에서 편리함을 경험한 서양식의 입식생활의 공간을 우선으로 구성하였다. 그러나 가정부실이나 차실 등에는 다다미실로 계획하여 사용자를 배려하고 공간 특유의 전통성을 고려하고 있음을 파악해 볼 수 있다. 특히 요시자카의 부부침실에서는 침대처럼 3조의 다다미를 바닥면 보다 높여서 설치하는 입체적인 공간 활용을 하였다.

마에카와와 사카쿠라는 동시대인으로 프랑스에서 귀국해 사무실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요시자카는 이들과 약 20년 정도 나이차가 있고, 귀국 후 대학에 있었던 점도 이들의 작품의 차별성의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근대화 과정 속에서 서구화되고 편협한 전통의 덫에 빠진 가운데서 근대건축의 본질로 다가오는 독자적인 길을 공유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환경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간소하면서도 시대가 요구하는 공간과 건축을 지향하는 것이 이 세 명의 건축가가 가지는 귀중한 동시대성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Notes

[1] 1) 도쿄제국대학 건축학과 졸업. 1929년 도쿄대학 교수. 관동 대지진 후 도쿄대 캠퍼스 재건을 위해 야스다강당, 도서관 등의 설계에 참여. 1947 년부터 이듬해까지 일본건축학회 회장 역임.

[2] 2) ① Jun, B. K., & Kim, K. Y. (2011). A relationship between Europe’s first modern minimalist housing and Japan’s prefabrication housing. Journal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Planning & Design, 27(6), 121-130. ② Kim, K. Y., & Un, B. K. (2011).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Kunio Maekawa’s high-rise Harumi apartment and relationship with Le Corbusier’s unite d’habitation. Journal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Planning & Design, 27(8), 159-167. ③ Jun, B. K., & Kim, K. Y. (2012). Relationship between Le Corbusier’s museum of unlimited growth and Junzo Sakakura’s exhibition facilities. Journal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Planning & Design, 28(9), 105-112.

[3] 3) Terada, K. (2008). Junzo Sakakura-characteristics of his houses and his ’architectural spirit’. Kyoto: Kyoto University.

[4] 4) 1909년 도쿄제국대학 건축과 졸업 후 육군성에 근무하면서 은행설계에 참여. 1926년 은퇴 후, 오하라 미술관 본관 등의 설계.

[5] 5) 1919년 와세다대학 건축학과 졸업과 동시에 교수 취임. 1926년부터 1927년에 걸쳐 도쿄지하철 역사 설계를 위해 유럽의 지하철역을 연구했으며, 바우하우스 등 모더니즘 작품 외에도 안토니 가우디 등의 작품을 둘러보고 일본에 소개.

[6] 6) 1910년 와세다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여 재학 중 미술품의 조사를 실시. 대학 졸업 후 미술사·미술 평론에 그치지 않고 연극, 건축, 그리고 민속 등 다방면에 걸쳐 평론 활동.

[7] 7) 1928년에 창간해 1940년까지 발행. 해외의 건축 소개 및 비평. 르 코르뷔지에 외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 피터 베렌스(Peter Behrens, 1868-1940) 등의 건축가 소개, 철근 콘크리트, 박물관 및 일본적 건축이라는 주제로 특집 발행. 이 시기를 대표하는 특징적인 중요한 잡지.

[8] 8) “르 코르뷔지에는 현대건축을 더욱 고양시키고 심도있는 하나의 클래식을 만들어 낸다는 사명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르 코르뷔지에는 무한의 진로를 열어두고 조형의 정도를 걷고 있다. … 그 고독한 행위를 볼 때면 독창적이면서도 조형을 지속하면서 남은 비통함에 감동한다.”/The complete works of modern Japanese architects 10-Kenzo Tange (1939. December). C. A. (Contemporary Architecture), p. 140-147.

[9] 9) Hayash, M. (2015). To know a little more about Le Corbusier. Tokyo: Tokyo Bijutsu, p. 35.

[10] 10) X-Knowledge. (2011). Le Corbusier-architecture · furniture ·human · record of all travel. Tokyo: Author

[11] 11) 페삭 공동주택안(La Cite Fruges a Pessac, 1925)을 발표할 만큼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신임을 얻어 다양한 유럽 건축가의 최소주거에 대한 수법을 익히게 되었다. 이는 마에카와가 프레모스(プレモス) 등을 통해 전후 일본 주거문제 해결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Jun and Kim (2011)

[12] 12) X-Knowledge, op. cit, p. 82.

[13] 13)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제자로 1919년 도쿄 제국호텔 건설을 위해 일본행. 1920년 라이트의 곁을 떠나서 도쿄에 사무소를 설립. 1924년 레이난자카(靈南坂)의 자택에서 겨우 “라이트식”을 버리며 입체적으로 복잡하게 조합되어 세계적으로도 시대보다 앞선 건축으로 평가 받음. 목조건축에서 일본풍토에 어울리도록 노출의 통나무 기둥과 대들보를 사용한 공간으로 독자적인 입지 확보./Fujisaki. K.(2008. July). Masters of Japanese modern. Casa Brutus, p. 41.

[14] 14) 1918년 도쿄제국대학 건축학과에 입학. 1923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사사. 1926년 귀국 후 주택을 중심으로 많은 모더니즘 건축을 남김.

[15] 15) 도쿄제국대학 미술사학과 졸업 및 하버드대학, 런던대학 및 리옹대학에서 수학. 도쿄제국대학 미술사학과 조교수를 역임. 제자인 사카쿠라에게 ‘파리 만국박람회 일본관’설계의 기회를 제안.

[16] 16) Echelle-1 (2009). Junzo Sakakura, architecture: Living in modernism: Housing, furniture and design. Tokyo: Author.

[17] 17) 1946년 5월 26이 일기에는 “오후에 비도 그쳤으니 계획대로 잿더미로 간다. (중략) 집을 세워야 할 곳을 바라보며 도시락을 먹는다. 그 집을 구상하면서 단순히 단독주택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뭔가 생활에 대한 하나의 실험으로 하고 싶다. 성장하는 집이라든지 합벽으로 하나가 되는 집단화 생활이 가능하도록 어떻게 계몽하느냐의 문제다. 지식인으로서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고...”

References

1

Bijutsu Shuppan Design Center (2006). The work of Kunio Maekawa. Tokyo: Author.

2

Echelle-1 (2009). Junzo Sakakura, architecture: Living in modernism: Housing, furniture and design, Tokyo: Author.

3

Fujisaki. K. (2008. July). Masters of Japanese modern. Casa Brutus, p.41.

4

Hayashi, M. (2015). To know a little more about Le Corbusier. Tokyo: Tokyo Bijutsu.

5

Jun, B. K., & Kim, K. Y. (2011). A relationship between Europe’s first modern minimalist housing and Japan’s prefabrication housing. Journal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Planning & Design, 27(6), 121-130.

6

Jun, B. K., & Kim, K. Y. (2012). Relationship between Le Corbusier's museum of unlimited growth and Junzo Sakakura's exhibition facilities. Journal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Planning & Design, 28(9), 105-112.

7

Kim, K. Y., & Un, B. K. (2011).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Kunio Maekawa’s high-rise Harumi apartment and relationship with Le Corbusier’s unite d'habitation. Journal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Planning & Design, 27(8), 159-167.

8

The complete works of modern Japanese architects 10-Kenzo Tange (1939. December). C.A. (Contemporary Architecture), p.140-147.

9

Terada, K. (2008). Junzo Sakakura-characteristics of his houses and his ‘architectural spirit’. Kyoto: Kyoto University.

10

X-Knowledge (2011). Le Corbusier-architecture · furniture · human · record of all travel. Tokyo: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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