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the Korean Housing Association. 25 February 2016. 31-40
https://doi.org/10.6107/JKHA.2016.27.1.031

ABSTRACT


MAIN

I. 서 론

국가지정문화재인 동춘당(同春堂, 보물 제209호)과 더불어, 동춘당이 위치한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宋村洞)은 조선 성리학 기호학파의 핵심세력인 은진송씨(恩津宋氏)의 씨족마을로서 17세기 이후의 대표적인 대전지역 문화경관 중 하나로 꼽혔다. 하지만 1995년 시행된『송촌택지개발사업』은 송촌동 일대 약 1,000,000 m2에 이르는 경관을 짧은 시간에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자연취락 형태의 씨족마을은 아파트 단지들로 이루어진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여 인근에 산재해 있는 몇몇 유적들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은진송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문화재 보호 명목으로 보존된 건축문화재들이 몇몇 남아있긴 하지만, 모두 개별 건물 단위의 문화재 보호에 그쳐 있고 보존되어야 할 지역문화가 개발과정에서 상당부분 훼손되었다.

대전시에서 문화재 보호를 목적으로 80년대 이미 기지정한 보존지역의 대부분은 택지개발과정에서 근린생활공원 형태로 조성되었으며, 동춘당공원도 그 중 하나이다. 동춘당공원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예학자인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의 별당인 동춘당(同春堂)과 그의 종가인 동춘고택(同春古宅,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3호), 그리고 그 인근에 송준길의 둘째 손자가 분가한 소종가(小宗家)인 송용억가옥(宋容億家屋, 대전시 민속문화재 제2호)이 위치해 있다. 동춘당공원은 애초에 동춘당이나 동춘고택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고려해서 계획되기 보다는 보존되어야 할 문화재를 포함시켜 개발계획의 일부로 공원을 조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당시 지정된 문화재의 경계를 근거로 보존의 범위가 정해졌으며, 이외의 장소는 일제히 철거되고 절토·성토되어 진정한 의미에서 동춘당과 그 일대 지역이 지녔던 문화재적인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이는 인근 중리동의 쌍청당(雙淸堂)이나 읍내동의 제월당(齊月堂)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처럼 도심에 위치한 많은 문화재들이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던 도시계획에 의해 진정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훼손된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현재 국민 주거수준이 일정수준에 도달하여 과거와 같은 양적인 국토개발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과거 문화유산이 지닌 부가가치 및 주변 도심환경에 끼치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조명되면서 각 지역이 지닌 문화재의 가치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으며, 단순한 복원·보전이 아닌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동춘당공원의 동춘고택도 2014년 12월에 중수(重修)를 마쳤으며, 송용억가옥은 2014년 4월에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위탁관리하게 되어 향후 공공 용도로 활용될 예정이다.

송용억가옥의 보수정비에 앞서 건축적 가치와 역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동춘당공원의 현황과는 상이한 송용억가옥과 동춘고택의 공간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동춘당공원이 지니고 있는 문화재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훼손된 원형경관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현 도시조직 내에서 보존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II. 연구의 배경 및 방법

택지개발에 의한 급격한 경관 조작은 자연스럽게 연속성을 지니며 형성되어 온 지역 경관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동춘당공원의 경우 이러한 변화는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는 건물 일부와 그 건물들이 놓인 주변 환경의 괴리로 드러났다. 동춘당공원은 조성 과정에서 공원내 보전건물들과 주변 공공공간과의 새로운 관계정립에 실패하였으며, 본래 지니고 있던 조선 성리학 기호학파의 중심세거지라는 문화·지리적 가치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도시계획적 오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택지개발에 의해 훼손된 원형경관에 대한 조사를 통해 대상 장소가 유지하고 있었어야 할 경관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원형경관의 복원에 관한 기존 국내 연구 자료를 통해 원형경관 조사방법과 다양한 경우의 보전계획 수립방법 등을 조사·분석하였다. 특히,「조선-일제강점기 동래읍성 경관변화 연구(Kim and Kim, 2002)」,「근·현대 한민촌의 경관 변화와 장소성의 전개(Jeon, 2005)」,「일제강점기 조선시대 강원도 읍치의 중심 원주와 강원감영 일대 도시구조와 역사경관변화 연구(Han, 2007)」등은 특정 대상 지역의 경관변화에 관한 연구 방법론이 비교적 상세히 상술되어 있고,「남한산성 마을경관의 복원방향에 관한 연구(Kim, 2007)」, 「전라감영의 의미와 복원사업의 기본방향(Won, 2008)」, 「경남 산청군 남사예담촌 원형경관 보전기본계획(Min et al., 2011)」등의 연구에서는 일반적인 방법론을 거쳐 얻은 자료들이 각 특정지역의 특수해일 수 있는 경관보전계획에 적용되는 과정을 참고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원형경관복원에 관한 연구가 지리학·조경학·민속학 분야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도시 계획학·건축학 관점에서의 적극적인 논의가 미흡한 실정이다. 그리고 기존의 경관복원에 관한 연구 대부분이 ① 광역적 범위를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② 원형 경관의 보전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지역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본 연구처럼 ① 도심지 한가운데 상대적으로 작은 범위의 영역에서 명확한 형태와 경계를 지니고 있으며, ② 경관복원의 가장 큰 근거가 되는 “현재 특정한 분포범위를 가지는 물질 문화 경관(Jeon, 2006)”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경우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기존 원형경관에 관한 통상적인 연구 방법론을 참고하는 한편, 인문사회적인 자료의 추가와 거주자 인터뷰를 통해 미흡한 자료를 보완하였다. 객관적인 자료의 분석은 1) 지역의 일반적인 인문·지리적 특징을 조사하는 한편, 2) 택지개발 이전의 항공사진(1974년), 3) 구한말 토지이용상황과 소유관계·면적 등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지적원도(회덕면송촌리원도, 1/2,000, 1913년)와 택지개발 이전의 지적상황이 명시된 폐쇄지적도(1993년), 4) 지형도(대전군유성면, 1/50,000, 1919년) 5) 거주자 인터뷰 내용과 토지대장, 동춘당 일가에 관한 일부 문헌자료와 소대헌종가 족보를 토대로 이루어졌다. 경관추정에 대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 기존 보존건물의 공간적 분석을 통한 원형경관에 대한 추정을 병행하였다.

III. 복원적 경관자료 및 가옥 공간구조 분석

1. 송촌동(宋村洞)의 역사적 배경 및 송촌택지개발

조선 중기 이후 훈구파에 대항하며 새로운 사회지배세력으로 출현한 사림(士林)은 사회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지닌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그 중 ‘호서사림파(湖西士林派)는 연산(連山, 現논산지역)과 회덕(懷德)지방에서 광산김씨(光山金氏)와 은진송씨(恩津宋氏)를 위시하여 조선 성리학 기호학파의 중심세력으로 그 세를 떨쳤다. 퇴계(退溪)의 영남학파(嶺南學派)와는 달리 율곡(栗谷)의 지역적 기반이 뚜렷치 않아 ‘비영남(非嶺南)’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던 ‘기호(畿湖)’라는 표현이 이들에 의해 연산과 회덕지방을 중심으로 그 지역적 정초를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호서사림파와 그 세거지인 회덕지방이 갖는 의미는 크다(Jeon, 2003).

고려 말, 은진송씨는 처가인 회덕황씨(懷德黃氏)의 도움으로 회덕에 정착하게 되고 조선 초 쌍청당 송유(雙淸堂宋愉)이래 회덕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게 된다. 은진송씨는 삼송(三宋)으로 칭송받는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제월당 송규렴(霽月堂 宋奎濂)을 비롯한 12 산림(山林)을 배출한 걸출한 집안으로 조선중기에 이르러서 그들이 거주하던 백달촌(現중리동)이 그들의 성을 따, 송촌(宋村)으로 불릴 만큼 회덕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지대했다(Lee, 2010). 18세기 해동지도에 표현된 회덕현 부분을 보면<Figure 1> 이러한 은진송씨의 영향력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산세와 주요 건물들이 표현된 이 지도에서 은진송씨와 관련된 건물들인 동춘당, 제월당, 쌍청당, 비래암(飛來庵), 남간정(南澗亭), 읍호정(揖灝亭), 기국정(杞菊亭)을 찾아볼 수 있다. 해동지도에 표현된 건물 중 관청과 향교, 사찰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건물이 은진송씨 가문과 연관된 건물이라는 점에서 당시 회덕 지역에 은진송씨 가문이 형성한 물리적·심리적 경관이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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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Map of Hoedeok-Hyun

『HaedongJido (海東地圖)』, 18C, (source: Kyujanggak), (1. Dongchungdang (同春堂), 2. Jewoldang (霽月堂), 3. Ssangchungdang (雙淸堂), 4. Biraearm (飛來庵), 5. Namganjung (南澗亭) 6. Euphojung (揖灝亭), 7. Gikukjung (杞菊亭))

은진송씨는 쌍청당이 위치한 중리동(中里洞) 일대에 처음 정착하였다. 이후 누대에 걸쳐 걸출한 인물들이 분가하면서 현재 송촌동(宋村洞)으로 확장했으며, 중리동은 ‘아랫송촌’, 송촌동은 넆~뭫릛뢼뛺‘윗송촌’으로 불리며 그 세를 넓혀갔다. 특히 동춘당 송준길이 분가한 동춘고택은 중리동에 있는 대종가(大宗家)인 원일당(源一堂)에서 분가한 소종가(小宗家)이지만 후에 가문과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한다. 이는 은진송씨를 중심으로 이 지역 거주민들의 행동강령으로 정한 ‘회덕향약’의 관장과 모임이 동춘당에서 이루어진 점과 동춘당 송준길이 부조지전(不?之典)에 모셔진 점, 세력이 어느 정도 쌓인 이후 은진송씨들이 정착한 송촌동 일대가 중리동 보다 전통지리 관점에서 더 양호한 점 등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Kwon, 2007).

조선시대 이래 한국전쟁 이후까지 지속된 송촌일대 은진송씨의 영향력은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의 건설과 1995년 시행된 송촌택지개발에 의해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경부고속도로에 의해 지세가 끊기고 주요교통로에 변화가 생긴다. 계족산에서부터 내려와 송촌동의 배산으로 자리 잡은 응봉산의 지세는 완전히 단절되고,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송촌과 비래골은 고속도로 아래를 관통하는 터널에 의해서만 왕래가 가능하게 되었다<Figur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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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Aerial Photo of Songchon-dong (1974)

이러한 주요 지형 변화가 있긴 하였으나 1974년 촬영된 항공사진을 보면 고속도로 건설 이후에도 송촌동 주변은 여전히 기존의 지형과 취락 분포를 일정부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일대에 시행된 택지 개발은 송촌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중리동과 법동이 차례로 택지개발이 되면서 주변지역들이 차츰 바둑판 식 가로패턴으로 바뀌게 되고, 1995년, 급기야 송촌택지개발에 의해 송촌동 일대도 현재의 모습으로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Figure 3>. 택지개발에 의해 응봉산이 깎이고 오정천은 복개되었으며 경부고속도로 이남지역은 바둑판식 가로 체계로 모두 바뀌었다. 일대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했던 은진송씨들은 타지로 이주하고, 송촌동은 아파트 단지와 주거밀집지역으로 개발되면서 과거 씨족마을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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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Songchon district plan

Source. Songchon Land Development Detailed Plan, 1998

2. 기초 경관자료의 분석

택지개발과정에서 훼손된 원형경관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기초경관자료를 분석하였다.

1974년에 촬영된 동춘당 주변 항공사진을 살펴보면, 동춘당공원 내 별개의 건물로 떨어져 있는 현황과는 달리 많은 가옥들과 주변 지형에 어우러져 배치되어 있는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의 북측을 길게 가로지르는 담장이 있으며 두 가옥 사이에는 담장이나 건물에 의한 경계구획의 흔적이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Figur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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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Dongchungdang·Dongchungoteak·Yongurk Song's House (1974)

뿐만 아니라, 일제에 의해 1915년에 측량되고 1919년에 간행된 50,000분의 1 축척 대전군유성면 지도<Figure 5>에 표현된 송촌리 일대를 살펴보면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의 북측에 ‘완공장(土完工牆)’이라는 범례로 기다란 담장이 표현된 것을 알 수 있다. 50,000분의 1이라는 축척으로 대한민국 전국이 722매의 지형도로 제작됐던 지도에서 일개 주택의 담장이 표현됐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그만큼 이 지역 종가집으로 동춘고택의 입지가 높았다는 점과 단일영역을 지닌 건물군으로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이 강하게 인식되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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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5.

The map of Songchon-ri (1919)

이 담장의 연혁과 관련하여 두 가옥의 지목 변경사항을 조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현재 동춘당공원은 대덕구 송촌동 463번지 ‘공원’으로 지목(地目) 지정되어 있고 그 안의 동춘당·동춘고택은 송촌동 192번지, 송용억가옥은 198-3~4번지 ‘대지’로 지정되어 있다. 택지개발에 의해 주변 지목들이 모두 463번지 공원 지목으로 합필·변경된 것이다.

구한말의 토지이용상황과 경계, 면적, 소유관계 등의 정보를 제공해 주는 지적원도<Figure 6>는 공원 내 타 지번들이 합필되기 이전의 상황을 보여준다. 동춘당과 동춘고택이 위치한 대덕구 송촌리 192번지와 송용억가옥이 위치한 198번지는 현재와는 다른 경계를 보이며 각각 동춘당 종가의 24세손과 소대헌 종가의 23세손1)이 소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74년 항공사진에서 확인된 담장의 경계와 유사한 토지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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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6.

The first cadastral map (1913)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의 토지이용 연혁은, 현재는 말소되었으나 택지개발 이전의 지적 정보를 보여주는 폐쇄 지적도와 토지대장과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동춘당과 동춘고택의 대지(192번지)는 현황과 거의 차이가 없지만 송용억가옥의 대지(198번지)는 현재 대지경계와 상당 부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커다란 필지였던 198번지는 1974년에 198-1~198-9번지로 분할된 것이다.

각 필지는 다음과 같은 지목변경과정을 거친다<Figure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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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7.

The superceded cadastral map (1993)

198-1번지: 1978년에 일가친척에 소유권 이전

198-2번지: 1981년에 일가친척에 소유권 이전

198-10번지: 1979년에 198-2번지에서 분할, 타인에게 소유권 이전

198번지의 토지 분할 및 소유권 이전 후 송용억가옥은 1989년 3월, 당시 호주였던 송용억옹(翁)의 이름을 따 송용억옹이 소유하고 있던 198-3번지와 198-4번지가 대전광역시 민속문화재 제2호에 지정된 것이다. 택지개발이 진행된 1995년에는 문화재 및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동춘당·동춘고택, 송용억가옥은 해당 필지를 경계로 오늘날까지 보전·정비되었으며, 나머지 지목은 모두 멸실되어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이처럼 지적원도와 폐쇄지적도, 토지대장의 비교 분석을 통해 현황과는 다르게 인접한 형태로 두 대지가 사용되었고 두 가옥이 동일 담장으로 구획된 영역에 함께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동춘당 송준길이 17세기 인물임을 감안하면, 송용억가옥이 소종가로 분가한 시점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두 가옥 간에 공간적 연계가 지속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3. 동춘당종가와 소대헌종가의 계보

인간 생활의 복합적인 결과물인 도시·경관·건물을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상황의 분석만으로 그 형성 원인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이 하나의 대저택과 같은 형상을 이루었던 상황도 단순히 지리적이고 외형적인 자료만으로 풀이하기는 어렵다. 이에 두 저택에 각각 기거하는 소대헌종가와 동춘당종가의 계보는 이에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송준길은 동춘고택에서 그의 손자들과 함께 기거했었다. 후에 둘째 손자 송병하(宋炳夏)가 분가하게 되고, 그의 둘째 아들인 소대헌 송요화(小大軒 宋堯和)가 조선시대 여류시인으로 유명한 호연재 김씨(浩然齋 金氏)와 혼인한 후 법천(法川)에 살다가 다시 송촌으로 돌아오면서 동춘당의 동북쪽으로 100보 가량 떨어져 있던 김씨네 집(현 송용억가옥)을 사서 들어오게 된다(Heo, 2003). <Table 1>은 두 가문의 족보를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표의 상단은 동춘당 종가(동춘고택 집안)의 계보이며 하단은 소대헌 종가(송용억가옥 집안)의 계보이다. 송준길의 맏손자 송병문(宋炳文)은 그의 동생 송병하의 장자인 요경(堯卿, 16世)을 양자로 맞는다. 동춘고택의 북동측에 위치한 송용억가옥을 매입하고 처음 입주한 송요화는 동춘고택에 양자된 요경의 친동생인 셈이고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은 일반적인 대종가와 소종가의 관계보다는 혈연적·공간적으로 더 긴밀한 관계에서 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Table 1.

The Family Tree of Jungil Song’s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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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yu Y. H. et al. (2010)

이후에도 동춘당 종가의 20세손 경희(敬熙), 21세손 석노(錫老), 23세손 도순(道淳), 24세손 낙빈(洛彬)도 소대헌 종가에서 양자하였다. 이처럼 두 가문은 각자의 사당을 모시는 별개의 종가이지만 몇 세대에 거쳐 실질적으로는 사촌 내지 친형제지간의 긴밀한 혈연관계로 지속적으로 얽혀 있어 공간적인 긴밀함이 오랜 세월 유지할 수 있었다.

4. 가옥 공간구조 분석

택지개발에 의해 보전가옥 이외의 영역은 거의 전부 멸실되었기 때문에 현재 확보 가능한 자료의 분석만으로 동춘당공원의 원형 공간구조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이에 현재 남아있는 두 가옥의 공간구조 파악은 멸실된 부분의 공간구조를 추정하기에 주효하다.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은 가옥의 구성에 있어서도 유사성을 보여준다. 안채영역과 사랑영역, 사당영역으로 이루어진 튼 ㅁ자 형을 지니고 있으며, 두 가옥 모두 정사(精舍)에 해당하는 큰 사랑채를 별도로 두어 가장이 기거하며 예학자의 강학과 수신을 위한 공간으로 삼았다2). 현재 행랑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송요화 시절 노비의 수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는 1724년 호구단자(戶口單子)에 의하면 송용억가옥에만 30여명이 넘는 노비가 있었으며, “동춘당 넓은 뜰에 다 들어올 수가 없어서 두세번이나 나눠서 들어와 인사”(Heo, 2002)할 정도로 노비의 숫자가 많았다는 사실에서 현재 남아있는 건물 이외에도 어딘가에 노비들이 거주했던 행랑채와 그 외 부속건물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위치나 규모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전해지지 않는다.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의 주요 공간요소를 간략하게 표현하면 <Table 2>와 같다. 채의 배치는 전체적으로 횡적인 배치를 띠고 있다. 사랑마당-정사/사랑채-안채마당-안채-뒷마당 순으로 남측에서 북측으로, 공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공간으로, 남성공간에서 여성공간으로 전이된다. 각 영역과 영역 사이에는 사랑채나 안채가 위치하여 각 채에서 각 마당으로의 진입을 강하게 통제한다. 진입순서 또한 일련적이다. 안채까지 진입하기 위해서는 사랑마당을 거쳐 사랑채 가장 서측에 나 있는 중문칸을 통해서만 진입하도록 되어 있고 안채마당을 거쳐 뒷마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안채의 마루나 부엌, 혹은 안방의 툇마루를 거쳐서 들어가게끔 되어 있다. 이처럼 진입상의 통제가 강하게 이루어지는 면과 대조적으로 가옥 전체적으로 유동성이 높은 것이 특징적이다.3)

Table 2.

Analysis of Dongchungoteak and Yongurk Song's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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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동춘일곽 원형경관 추정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송용억가옥에서 1960년부터 1995년까지 거주한 27세손 송○진(宋○鎭)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하여 택지개발 이전의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의 원형경관을 분석하면 <Figure 8>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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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8.

The Interpretation of Dongchun Enclosure

  • 1) 동춘당과 송용억가옥의 주진입동선은 ⓐ와 같이 분리되어있다. 중간에 가로지르는 길이 있으나 주로 지인들이나 가족구성원에 의해 이용되었고, 외부인들이 주로 사용했던 접근로는 ⓐ와 같이 독립적으로 사용되었다(송○진씨 인터뷰).

  • 2) 두 가옥을 둘러싸는 일곽 내 공간은 사랑채들(ⓑ)과 중간 담장에 의해 크게 사랑영역과 안채영역으로 나뉘며, 안채로의 진입은 사랑채 중 한 칸(중문칸)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 부분은 항공사진에서 사랑채의 존재는 관찰되지 않으나, 담장과 지반의 모양 그리고 전체 가옥 공간구조를 고려했을 때 사랑채의 존재가 추정된다.

  • 3)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 사이 경계의 평탄부에는 동춘고택의 사당 동측 담에 의해 구분되나 그 북측 경사부(ⓒ)는 담이 아닌 나무 식재에 의해 경계 지어져 있다(송○진씨 인터뷰). 두 가옥의 안채영역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고 연속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4)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에 의해 서측과 동측의 경계는 담장으로 구획이 되어 있는 반면, 두 가옥 사이의 사랑마당에 해당되는 영역에는 담장이 없이 경작지와 가립집(ⓓ)들에 의해 점유되어 공간을 정의하고 있다. 안채영역과 유사한 연속성이 사랑마당에서도 읽힌다.

  • 5) 가옥ⓔ에는 송용억옹의 동생과 일가친척이 거주하고 있었다(송○진씨 인터뷰).

이상을 근거로 추정되는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 건물군의 가옥의 원형 공간구조를 주요 공간요소별로 정리하면 <Table 3>과 같다.

Table 3.

The Analysis of Dongchun Enclo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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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은 전반적으로 응봉산 산세가 시작되는 부분 경사면을 따라 경사에 따라 횡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지의 레벨이 높아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안채 영역이 강한 프라이버시를 갖게 되고, 외부에서 보았을 때, 지역 대표 종가로서 위엄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넓은 배치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을 하나의 영역으로 구획하는 담장이며, 그 영역내에서 중간담장이 사랑영역과 안채영역을 구획한다. 사랑영역에는 정사에 해당하는 별당과 사랑채가 있으며, 사랑채는 중간담장과 동일한 선상에 배치되어 안채로의 동선을 통제한다. 안채영역에서는 안채를 기준으로 안마당과 뒷마당이 나뉘게 되며 각 저택 개별적인 안마당과 달리 뒷마당은 저택과 저택 사이에 공유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각 저택의 사당은 가례집1람에 따라 각 가옥 청사의 동측에 배치하였다.

V. 동춘당공원의 현황 및 동춘일곽 재구성

이상 기초경관자료와 두 가문의 계보를 조사하고 현존 가옥의 공간구조를 분석한 자료와 거주자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의 원형 공간구조를 추정하였다. 다음의 현황에 대한 분석은 현재 동춘당공원이 많은 오류를 지닌 채 조성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1. 동춘당공원의 현황 및 오류

『송촌택지개발사업 상세계획』(1998)에 따르면, “주변의 계족산 등 자연경관과 연계체계를 도모”하고 “특히 본 사업지구 중심에 제척시설인 동춘당, 송용억가옥, 제월당, 옥오제 주변을 근린공원으로 지정하여 역사문화와 연계된 근린공원 공간을 조성”6)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 취지로 계획된 것이 ‘송촌지구단위계획 결정도<Figure 3>’와 ‘동춘당공원 조성계획도<Figure 9>’이다. 택지개발 이전에 『대전도시재정비계획』에서 동춘당지구는 4,880 m2의 면적이 보존지구로 지정되었다.7) 송촌택지개발에서 그 면적은 55,579.3 m2로 크게 늘어나고 이러한 보존지구의 면적 증가는 송촌택지개발이 문화경관을 보존했다는 가장 큰 명분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동춘당공원의 현황에서 이 장소의 문화재적 가치 보존에 대한 세밀한 고려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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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9.

Dongchundang park plan

Source. Daejeon-si, 1998

이런 관점에서 현재 조성된 동춘당공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오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직교체계 가로와 주거블록 사이에 위치한 약 240 m×230 m의 녹지 블록 안에 이질적인 향과 형태를 지닌 동춘당·동춘고택·송용억가옥의 배치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장소의 개별성과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효율성과 획일성을 추구한 계획은 송촌동이 지니고 있었던 지세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고 대상 건축문화재가 포함된 일정 면적의 사각형 구획을 근린공원으로 지정했다. 물론 개발과정에서 넓은 범위의 도시환경을 보전의 원칙만을 고수하여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유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보존 대상으로서 당시 설정된 동춘당공원 경계는 기존 마을의 지세, 가로 및 취락분포와는 무관해 보이며 송촌택지개발이 지니고 있는 몰개성의 문제점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둘째, 가로체계의 변화는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으로 진입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은진송씨의 종가 중 하나인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은 마을의 가장 안쪽인 응봉산 자락에 위치했다. 이 가옥으로 진입하려면 법동이나 중리동을 통해 진입하였으며 일련 동선의 가장 끝에 종가가 위치했다. 하지만, 현재 직교가로체계 가운데 위치하여 모든 방향에서 진입과 조망이 가능케 되었다. 이러한 진입체계의 변화는, 마치 사방에 접안시설이 마련된 섬처럼, 일련의 동선을 거치지 않고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가옥의 입지를 설정해버림으로써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이 지니고 있었던 주변 컨텍스트와의 일련적 관계를 와해해 버렸다. 전체 가로체계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더라도 공원 내부의 동선구성에서 고려했어야 했던 사항이다.

셋째, 블록의 향과 형상, 가로체계는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결정된 사항이고 20여년 동안 새로운 도시조직으로 고착된 현재, 이에 기인한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희박하다. 이에 공원 내부로 논의의 범위를 제한해서 살펴보면, 건물 단위로 보존된 동춘당·동춘고택·송용억가옥이 주변 공원 환경에 시공간적(時空間的)으로 단절된 채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접근이 빈번할 것으로 보이는 건물군의 정면에 조형적 근거가 없는 원형 광장이 계획되어 있으며, 공원 내 산책로는 건축문화재들을 조망의 대상으로 삼아 그 주변을 따라 늘어져 있다. 가옥 배면의 상수리나무만이 보호대상으로 지정되어 기존과 동일하게 보존되어 있고 세심한 조경계획개념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법적으로 규정된 문화재 보호를 염두에 두고 건물단위의 보전에 치중하여 정작 문화재가 놓이는 배경으로서 주변 환경에 대한 고려를 가벼이 여긴 결과로 해석된다.

2. 동춘일곽의 재구성

현재 동춘당공원이 지닌 가장 큰 오류는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이 혈연공동체로서 공간을 공유하던 건물군의 모습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하나의 건물군이 두 개의 가옥으로 나눴다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 회덕지방에 중요한 가문의 한 종가가 이 지역에 거대하게 형성하였던 경관이 훼손되었음을 뜻한다. 본 연구에서 동춘당과 동춘고택, 송용억가옥을 하나로 아우르는 이 영역을 동춘일곽(同春一郭)이라고 지칭하고, 동춘일곽의 복원을 통한 동춘당공원의 장소성 회복을 제안한다. 공원조성 당시, 보상 문제나 문화재 보호에 따른 조치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에 의해 그동안 일곽의 조성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송용억가옥이 주거 용도에서 공공용도로 변경되면 송용억가옥과 연계한 일부 공원 부지 계획 변경을 통해 동춘일곽 복원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복원의 범위는 실현 가능성이 있는 동춘당공원의 범위로 제한한다. 동춘일곽의 복원과 관련하여 상기 추정된 원형경관에 기반하여 골자가 될 만한 사항을 제안하면 다음과 같다<Figure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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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0.

Proposal of the Dongchundang park

1) 일곽의 완성

일곽의 완성을 통해 동춘당공원 경관의 일차적인 회복을 꾀한다. 이는 가장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한 원형의 수복이다. 경계의 설정을 통해 현재 외부환경과 개연성 없이 배치된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은 외부환경으로서 공원과 은진송씨 종가집으로서 내부공간의 관계가 명확히 설정된다. 이러한 관계설정은 공원 성격의 규명에도 큰 도움을 준다. 단, 현재 동춘고택에 거주 중인 후손들을 고려하여 안채영역에서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 사이의 담장은 추후 동춘고택이 공공주체의 관리 하에 타용도로 사용되기 이전까지 거주인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유지하도록 한다.

2) 건물군 완성에 따른 일곽 공간구성의 완성

객관적인 자료가 명확한 담장의 복원과는 달리,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 사이에 위치하였던 가옥에 대한 자료는 없으며, 지형도 훼손되어 있어 지표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료도 없다. 하지만, 1974년 촬영된 항공사진에서도 건물의 흔적이 보이고, 과거 일가친척이 독립된 분가의 형태로 거주했다는 사실(인터뷰)에서 두 가옥과 별개인 독립가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위에서 분석한 두 가옥의 공간구조과 추정되는 원형경관에 근거하여 사랑채와 안채로 이루어진 튼 ㅁ자형 건물의 신축(①)을 제안한다. 이 중간건물의 신축으로 사랑영역과 안채영역을 경계 짓는 사랑채와 중간담장의 기능이 완성되며, 전체 가옥을 두르고 있는 동춘일곽의 공간구조도 완성된 형태를 보여준다. 이 신축건물에는 송용억가옥에서 수용 계획 중인 문화 체험(한학, 문학, 음식, 예절 등)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확장 수용하고 인접 문화재와 공원 관리를 위한 시설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3) 외부환경의 정비

동춘일곽 전면부는 동춘일곽의 진입 시퀀스를 고려한 재구성이 필요하다. 택지개발 이전의 진입로를 최대한 복원하여 두 가옥으로의 분리된 진입과 오정천을 넘어 오는 진입을 살리는 보행동선(②)을 자연석 포도로 계획한다. 비록 현재 구획된 공원 블록이 과거의 진입 시퀀스나 가로 및 지세를 수용하기 적합한 형상이 아니더라도, 현황과 같이 모든 방향으로 열려져 있는 진입이 아닌, 일반적으로 씨족마을 종가집으로 접근이 그러하듯이 통제되고 방향성을 지닌 동선을 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차적으로 과거 경작지가 있었던 곳에 갈대숲(③)과 같은 벼과식물을 이용한 습지조경을 계획하여 가옥의 정면에 경작지가 펼쳐진 것과 같고 계절변화에 민감한 경관을 연출하고 과거 가립집이 위치하여 사랑마당 영역을 규정짓던 장소에서는 낮은 담이나 벤치로 조성된 정원이나 이벤트 광장(④)을 조성하여 야외 프로그램을 수용할 것을 제안한다. 현황과 같이 단순히 넓은 외부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공원의 공공성을 끌어낼 수는 없다. 동춘당공원의 핵심 대상으로 새로이 규정되는 동춘일곽에 맞춰서 외부공간도 대상 장소로의 이동과 그 주변에서의 외부공간의 활용에 염두를 둔 재정비가 필요하다.

VI. 결 론

본 연구는 대전시 대덕구 송촌동에 위치한 동춘당공원이 본연의 장소성에 부합하지 않게 계획된 현황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90년대 전국적으로 실행된 택지개발사업에 의해 송촌동의 과거 지세 및 취락분포는 바둑판식 도시조직 속에 지워져 버렸고 동춘당·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이 위치한 동춘당공원은 이 지역이 보유한, 기호지방 조선 성리학의 중심이라는 문화 가치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동춘당공원이 지녔었던 원형경관에 대한 시각자료와 문헌자료를 조사·분석하였고, 그 결과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은 별개의 종가로 존재하지만, 누대에 걸쳐 온 긴밀한 혈연관계에 의해 하나의 담장 안에서 혈연주거공동체를 유지했던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공간구조의 회복은 은진송씨 씨족마을이었던 송촌동의 대표적인 종가집이었던 동춘당 일가의 경관의 회복이며, 이는 동춘당공원이 문화적 정체성을 새롭게 지니기 위해서 가장 시급하게 회복해야 될 사안이다. 훼손된 혈연주거공동체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핵심 요소로 동춘일곽 재건이 이루어져야 하며, 일부 멸실 부분에는 현존 가옥 공간구조분석과 다양한 자료에 근거한 공간 추정을 기본으로 하여 신축을 제안한다.

통상적인 원형경관 복원적 연구의 방법을 따라 기초문헌자료를 통해 원형경관에 대한 근거자료를 수집하였고, 미시적 범위에서 오는 한계와 문화재 관리 법령의 미흡한 부분에 의해 생긴 누락 및 소실된 자료에 대해서는 현황과 기타 자료의 조사·분석으로 보충하였다. 이 과정에서 본 연구는 원형경관의 기초 조사와 멸실 부분의 제안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급격한 국토개발에 의해 훼손되고 당시의 기준에 의해 저평가되어 대상 문화재는 물론 그 주변에 대한 자료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이미 한 세대의 시간이 흘러 해당지역 거주자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 또한 급격히 줄어가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 연구의 가치는 동춘당공원의 특정한 원형 경관을 조사하였다는 측면 이외에도 통상적인 원형경관 복원에 대한 연구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 본 연구에 의해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 도시환경에 대한 논의가 추후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Notes

[2] 1) 동춘당종가의 24세손은 소대헌종가에서 양자하여 소대헌종가의 23세손과는 실제 부자지간이다<Table 1>. 이는 이미 예전부터 현재 동춘당공원 일대가 실질적으로 하나의 가문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3] 2) 동춘당이 동춘고택의 정사에 해당되며 송용억가옥의 정사는 건축 당시 가장인 송요화(宋堯和)의 호인 소대헌(小大軒)을 따 ‘소대헌’이라 한다.

[4] 3) 이러한 양면성은 영남학파에 비해 융통성 있는 학풍을 지닌 기호학파의 특징이 공간구성에 적용(Kim, 2007; Do and Han, 2003)된 동시에, 예학자로서 가례집람에 명시된 가옥구조를 철저히 따르는데서 나온 결과일 수 있다.

[5] 4) ‘父子異宮(부자이궁)-부자가 별도의 정침을 달리 한다’(Kim, 2007)

[6] 5) ‘廟在寢東(묘재침동)-묘는 청사 또는 정침의 동쪽에 둔다’(Kim, 2007). 동춘고택과 송용억가옥은 독립적인 진입동선과 각 가옥의 동북측에 각 가문의 사당을 모신 점에서 안채 영역을 공유하며 지냈으나, 외부적으로 독립적인 종가로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7] 6) 송촌택지개발사업 상세계획, 1998, p. 42

[8] 7) 『대전도시재정비계획』, 대전시, 1984. p.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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