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the Korean Housing Association. 25 October 2016. 73-81
https://doi.org/10.6107/JKHA.2016.27.5.073

ABSTRACT


MAIN

I.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인간의 시각은 대상을 파악하는 대표적 감각으로 동양과 달리 서양문화는 이를 바탕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Doo, 1996). 서양의 건축 역시 그 인식은 시각에 근거하며 대상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되었고 형태 위주의 양식과 유형이 순환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다. 객관적 인식은 객관화된 대상 즉, 보이는 사물만을 선호하는 한계가 있다. 또한 20세기 초에 거론된 보이지 않는 공간 역시 예술의 비물질적 지고성에 따라 그 것을 보이는 형태의 네거티브로 대응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로 들어오면서 발전된 디지털 매체의 다양성은 시각뿐 아니라 다른 감각들의 중요성도 인정하게 되고 단일지각이 아닌 복합지각을 고려한 지각의 확장을 맞게 된다.1)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는 감각도 관심대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중에서도 촉각은 시각과 달리 주체를 대상에 접근하게 하고 시각거리를 소거하며 전체에서 부분으로, 부분들에 따른 접촉의 차이에 의해 움직임 기능을 되살아나게 한다. 이를 두고 메를로퐁티와 질 들뢰즈는 몸과 표피의 분리라 하여 몸의 촉각에 의한 만지기 기능을 회복하고자 하였다(Jung, 2004). 대상과 주체 사이에 만짐이 접속됨으로써 시각보다는 몸의 존재적 사건이 생긴다는 것이다. 현상학에서의 사건적 체험은 대상이 아닌 나 자신의 체험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현상학은 주체 일상의 삶 속에 일어나는 대상간의 현상을 탐구하는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주체의 주관적인 체험이 부분들 사이에서 시작되며 부분들과의 관계에서 시선과 응시를 거쳐 최저점인 촉각에 의해 환원으로의 가능성을 재현하게 된다. 이제는 시각 위주로 대상을 파악하던 대상위주의 인식거리에서 몸이 주체가 된 촉각의 운동거리로 파악되는 구조적단계로 접어들었다.

한국의 전통건축이 지닌 가장 두드러진 구성 특징 중에 하나는 부분과 부분이 모여 부분들에 대한 주체체험을 중시하는 시간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체 형태가 선점된 다음 부분이 분할되는 서양의 완결지향의 형태건축과는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지금껏 한국의 건축은 서양의 형태 논리와 유형 방법에 따라 해석을 같이해온 것이 사실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한국의 전통건축의 특징은 부분성에 있고 부분에서 시작한다는 시간구조를 현상학의 특성과 비교하여 밝히고자 한다. 만약 대입될 현상학 특징이 한국의 전통건축과 비교하여 부합된다면 이제까지 거론되었던 서양건축의 형태기준의 틀에서 벗어나 고유의 논리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상학의 특성이 사물의 객관적 인식을 탐구하는 기존의 과학철학이나 분석철학과는 달리 인간의 삶에서 나온 현상을 다루는 과정철학이란 점에서 본 연구의 비교 검토는 가능하리라 본다.

2. 연구 방법과 범위

부분성을 사실화할 수 있는 근거는 대상을 판단하는 시각 기준보다 주체(몸)의 행동을 유발하는 촉각의 기준에서 시작함에 있다. 이에 따라 행동을 일으키는 대상의 부분적인 요인과 이에 대응하는 주체의 반복된 운동을 접근과 거리, 경계와 깊이 특성에 따라 관찰하고 분석된 특성들을 한국 전통주거건축의 구성 방법과 요소들에 대입하여 그 특성들을 현상학의 특징과 비교분석한다. 현상학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지향성, 몸과 의식, 살, 경험은 주체와 대상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분석될 것이다. 이를 위해 선정될 고건축의 연구 대상은 전체보다 부분 요소들에 주안점을 둔다. 실명과 시각 위주의 논리적 분석을 바탕으로 의도된 형태 위주의 서양건축과는 달리 공동의 작업위에 익명으로 완성하되 칸과 채의 정형한 기본단위들 이 부정형과 정형의 조합을 통해 순환적으로 완성되는 한국 고건축의 부분성 입장에 준하여 전체보다 대표성을 지닌 주거건축의 부분요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II. 이론적 배경과 적용

체험의 경우 여기에는 당연히 나와 대상, 그 사이 공간의 세 요소가 공존한다. 주체의 대상과 공간에 대한 상대적인 감응은 감각에 의해 체험되고 측정된다.2) 특히 시각이 촉각을 동반할 때 그 인식은 물론, 의식도 달라진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함께 촉각을 회복시키고 이에 따라 대상과의 거리가 좁혀지며 부분들이 살아남으로써 그 사이에 운동이 일어나 사건을 만들고 또 다른 사건의 반복에 의한 환원의 특징들이 흔적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운동의 시작은 전체보다 부분에서, 부분에서 전체로 발전하는 장소와 시간계기의 특징이 있다. 부분과 부분이 자유롭게 만날 때 그 사이에 위치한 주체의 설정은 고정되지 않으며 대상과 주체간의 상대적인 관계 방법에 따라 운동과 과정이 다양해질 수 있다. 공간 역시 체험 주체가 인간으로 바뀜으로써 시간과 운동을 동반한 변화로서의 공간이 되었고(Kim, 2009) 그래서 몸을 바탕으로 한 체험의 공간은 사회접근 속에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적극적인 공간이 된다.

현상학의 기본원리 중 하나는 주관으로서의 의식과 객관으로서의 대상을 하나로 연결하는 지향성의 원리이다. 이 지향성은 대상에 대한 의식 방향이라 할 수 있고 의식과 그 대상인 세계는 실체적으로 분리된 두 항이 아니라 지향성이라는 동일한 하나의 연관 속에 두 계기라 할 수 있다.3) 그러므로 지향은 실제로는 체험을 말하며 이 체험 속에서 의식은 구체화되고 명확해진다. 지향된 대상으로서의 존재는 그것을 지향하는 체험이 주관적으로 구성되는 지향적 체험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지향성은 존재 자체와 동시에 지향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주객 사이의 동적인 생산과정에서 관찰된 접근과 거리로 규정될 수 있다.

퐁티는 주객의 관계를 감각과 반응사이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두었다. 감각과 반응의 주체인 몸은 그 자체가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객체와 관련된 행위 안에서의 몸이므로 감각의 주체와 감각의 작용들, 그리고 감각대상들은 서로 내밀하게 소통 관계하며 결합되어 있다고 보았다(Lee, 2013). 이러한 주체와 객체의 동등한 관계조건 아래서 현상은 존재하는 틈(살)에서 발생하며 이 살을 통해 현상적 경험을 하게 된다(Lyu, 2008). ‘살(틈)’이란 의식의 합리적 조작으로 규정된 사물이나 그러한 사물들의 총합이 아니라 그러한 사물들이 귀속되는 장소인 감각의 세계이다. 그것은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공간이므로 살은 물질만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며 실체도 아니다. 시각과 촉각을 동등하게 하는 살의 측면에서 본다면 대상과 주체가 이루는 관계 맺음은 틈 가운데 존재하며 그러한 의미에서 이 살은 주객을 잇는 경계이자 주체를 움직이는 깊이로 작용하게 된다(Choi, 2009).

현상학은 드러나는 현상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기 보다 개인의 경험과 고유성을 과제로 의식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경험적 학문이다(Lee, 2009). 주체는 건축이라는 대상을 통해 지각하며 주체의 움직임에 따라 공간적 감성을 주고받는다. 지향성에의해 대상에 접근한 주체는 거리가 소거되면서 대상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접근이 계속되면서 주체는 대상의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과 사이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깊이와 경계에 의해서이며 부분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장소는 실존적 공간으로서의 살이다. 깊이와 살은 몸의 운동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현상에 대한 경험은 사물에 대한 지각은 물론 주체의 움직임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간에 표현되고 이에 따른 반응은 시간 안에 체험으로 이어진다.4)

Table 1.

Architectural Partiality of the Phenomenology

Phenomenology
characteristics
Conceptual partialityArchitectural partiality
IntentionalityDirection: Consciousness stretching out towards its objectApproach & Distance: Roughness, Asymmetry
Body and IntuitionRelationboundary: Transition, Transparence
(Void & Opacity)
Perception
(Chair)
IntervalDepth: Repetition, Superposition
ExperienceEmotionMovement: Stop, Turn, Rotate

1. 접근과 거리

본다는 것은 객관적 인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감각 행위로서 봄을 통해 설정되는 나와 대상 사이의 거리이고 내가 인식가능하게 하는 최적의 거리를 말한다(Park, 2007) 그 거리를 전제로 우리는 사물의 속성과 동일성과 차이들을 지각에 의해 파악하게 되는데 여기서 퐁티는 촉각의 가역성을 들어 이를 시각과 호환가능하게 보았다. 시각은 촉각과 상호변역이 가능하고 시각에서 주객관계는 촉각에서처럼 가역적이기 때문이다(Kim, 2012). 그래서 퐁티에게 본다는 행위는 거리두기와 내면화하기보다는 그 바로 전의 사물을 쓰다듬는 것이라고 하였다.5) 시각을 통해 인지된 대상은 감각간의 전이에 따라 촉각의 형태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가시적으로 표현된 시각적 촉각요소들은 감각 양식간의 전이에 의해 거리를 최소화한 촉각 경험을 가능케 한다. 사물을 포착하고 소유하기 보다 사물과의 만남과 접촉을 가능케 하는 거리인 것이다. 사물은 하나의 표상으로 응집되어 명사화되기 이전에 보는 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동사화에 의해 자신을 드러낸다. 만약 사물과 보는 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동사적 사건(시간)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보이는 것마저도 내면에 표상으로 고정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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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Korean Traditional Wall

한국 고건축의 전통 벽은 사고석과 유난히 튀어나온 회이음매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사춤으로 인한 사고석 사이의 깊은 음각은 눈의 끌어당김을 강하게 한다. 특히, 사고석은 평평함보다 거칠은 두께로 인해 촉각적인 쓰다듬이 강조되고 거리가 소거되면서 주체는 대상으로 다가가게 된다. 서양건축의 매끈하게 빛나는 마감과는 전혀 다르다. 재료가 빛난다는 것은 반사로 인해 특성이 일정하게 정의되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서로 연결되는 동일성의 다름이 작용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그 의미와 접근도가 떨어지게 된다. 또한 재료에 비쳐지는 빛은 지시대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기표와 그에 대한 비물질적인 개념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기표와 기의의 이중적 개념으로서 부재하는 대상을 지칭하기도 한다(Jo & Lee, 2005). 즉, 대상의 부재는 재현된 기표적 요소들에 의해 나타나고 현존의 대상은 부재에 의해 설명된다. 따라서 기표와 기의의 이원적인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또 다른 기호로서의 이중적 의미를 띠게 된다. 재료에 비치는 반사는 현실과 가상 사이에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Tafuri, 1987). 결국 매끈한 재료의 빛 반사로 인해 형태보다 그 표면을 강조하면서 실재의 모습을 감추는 이중적인 막으로 작용하고 이러한 재료의 매끈함과 빛 반사 효과는 관찰자의 접근을 멈추게 한다. 바라볼 뿐이다. 반면에 표면이 거친 재료는 비추이는 빛을 흡수하여 시각은 물론 촉각의 근접을 허용하며 거칠음의 정도에 따라 그 접근의 거리와 시간도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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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Main Gate of Yunkyung Villa and Diagram of Visual Tactility

창덕궁 연경당의 주출입구인 장락문은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어 정면은 비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구나 정면 오른쪽 가마고의 입면 재료는 목재 마감인 판장벽으로 되어있어 나머지 사고석 벽 길이는 더욱 짧아 보여 오른쪽으로의 치우침이 더하다. 당연히 시선의 방향은 오른쪽으로 향하게 되고 좌우 비대칭으로 인한 균형 복원력은 긴장감으로 이어져 오른쪽으로의 운동감을 유발한다.6) 동시에 좌우 비대칭의 시각의 거리 차는 시간적인 이동으로 이어진다.7) 다시 말해 정면에서 측면으로의 이동은 시간과 운동을 연장하는 시선의 쓰다듬을 통해 일어나게 된다.

2. 경계

대상 A가 B로 접근한다고 할 때 둘 사이엔 공간과 경계가 생긴다. A와 B 사이의 관계는 떨어진 거리에 따라 설정되는데 이 관계는 각각의 중심과 주변이 확실할 때 시작되며 둘 사이의 교섭은 서로를 거부하는 단절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됨도 사실이다. B 주변으로 A가 접근을 시작할 때 그 사이엔 서로를 향하는 힘과 방향이 생기고 그 힘은 긴장으로 나타나며 두 요소를 통과시키는 매개적인 역할을 한다<Figure 3(a)>. 매개적인 역할의 또 다른 경계 방법은 A와 B 사이가 교차되는 경우이다. 그 사이는 A에 속하지만 A에 속하지 않고 B의 성격을 띠우는 동시에 B의 성격과는 별개의 애매함이 생긴다<Figure 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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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Boundary Condition Diagram

배경과 형태 측면에서 볼 때 통과의 경계에서는 투명이 형태에 대한 배경의 역할을 하는 대신 애매함의 경계에서는 투명이 중심의 역할을 함으로써 두 방법 모두 교섭의 관계를 이루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통과의 경계와 애매함의 경계 차이는 그 사이공간이 비움의 투명함으로 사용되었다 한다면 통과의 경계이며 후자의 애매함은 채움의 투명함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비움과 채움에 의한 투명함의 경계에 관해서는 한국 전통건축에 보이는 부분들의 접합 방법으로 그 예를 들 수 있다. 전통건축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이어질 때 그 사이는 항시 비우거나 채운다. 다시 말해 부재와 부재 사이는 약간 떨어져 있거나 다른 요소들로 채워져 있어 부재간 사이를 없애 일체화하여 전체를 강조하려는 서양의 접합방법과 전혀 다르다. 실제로 고택의 대청마루를 보면 귀틀과 마루 널 또는 마루 널과 마루 사이는 항상 약간씩 떨어져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Figur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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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Korean Traditional Living Floor

지붕의 암 기와와 수키와의 경우에도 그 사이를 비물질화된 공간으로 채워 투명의 경계역할을 하며 둘의 관계를 형태로서 대등하게 함으로써 요소들의 독립적인 구성을 전체로 확장시킨다. 관계는 실체를 거부한다. 그러기에 부분들 사이가 비었다 하여 완결성이 떨어지지 않으며 전체 형태 역시 뒤지지 않는다.

반면에 서양의 경우 벽면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이음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공한다. 둘 사이의 중간매체를 인정치 않기 때문이다. 전체성이 강하다. Mies van der Rohe가 설계한 Barcelona Pavilion에는 실내의 값비싼 오닉스 벽들이 있는데<Figure 5> 이 벽은 구축의 디테일을 숨긴 일체화된 장식 역할을 하고 있다. 이음의 줄눈 간격을 최소화하되 천연 문양을 대칭으로 맞추기 위한 의지는 벽이라기보다 한 폭의 벽화를 지향하며 매체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거울 이미지로 드러난다(Yook, 2014). 이를 위해서는 A와 B가 직접 만나야 하며 그에 따라 부재사이는 용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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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5.

Mies Van der Rohe, Barcelona Pavilion, 1929

반면에 한국 전통건축의 궁궐이나 사찰에 보이는 공포는 그 어느 부재보다 화려함에 놀라게 된다<Figure 6>. 기둥과 지붕이 직접 맞닿은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오방색 화려함으로 실체화하여 둘 사이를 이어준다. 이런 경우는 전술한 전통 담을 이루는 사고석 사이의 과장된 이음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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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6.

Gong-Po of SuTa Temple, Hong Chun, 1674

이와 같이 둘 사이를 비우거나 가득 채워 경계를 강조한 수법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출한 이음 방법이다. 한국의 고건축의 요소들에 나타나는 경계는 서양의 형태구조와 달리 너와 나, 사이를 인정하는 시간구조로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차이를 주어 사이를 강조하되 전체를 향해 서로를 이어주고 너를 통해 우리라는 통과적인 관계로 발전시킨다.

3. 깊이

퐁티는 현상의 얽힘과 겹침을 깊이라 하였다. 고정되지 않고 사이에 있으면서 차원들의 가역반응을 하게하며 모든 것의 존재가 ‘여기’에 있는 존재가 깊이인 것이다. 깊이를 갖기 위해서는 위치(원근법)가 깨져야 한다. 시각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그 위치가 주체에서 대상으로 혹은 그 반대로 되어도 요구된 거리에 의해 인식은 변하지 않는다. 깊이는 2차원의 평면이 아닌 3차원의 공간을 개시하는, 그래서 주체가 감각내용이 아닌 사물을 지각하게끔 하는 가장 근원적인 차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분으로의 접근은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의 연계를 제공하며 측면에 의한 깊이로 이어진다. 접근의 위치가 부분과 부분 사이, 혹은 부분들로 이어진 장소가 될 경우 그 합에 의한 운동이 생기게 되며 운동은 시간과 함께 몸의 지속적인 시간 경험으로 이어진다.

폴 세잔느의 정물화에는 여러 시점에서의 모습들을 동시적으로 고정되게 표현하여 관찰하는 주체의 입장에서 움직임이 일어나도록 하는 다시점 수법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동시적이란 몸의 움직임을 생략한 결과이므로 관찰자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시간이 동반된다. <Figure 7>과 같이 관찰자가 바라본 과일들의 서로 다른 시선 높이와 위치에 따라 거리를 상쇄하기 위한 동시성이 나타나며 사물의 중첩에 따라 같은 시선의 방향에서의 깊이를 보이고 있다. 시각 프레임이 복수화되고 공간과 공간의 겹침을 통한 동시와 다중의 시점, 상대적 거리와 크기 차이를 통해 깊이가 재확인된다. 사선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한 시선 축은 시야의 폭을 달리하며 그 차에 의해 관찰자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이동시킨다. 관찰자는 대상들 사이에 위치하게 되고 대상들 간의 시선차이는 움직임을 반복하게 한다. 윤곽의 명확함보다는 윤곽을 깨고 선은 통합된 색을 통해 나타내며 색과 면들을 통해 깊이를 주어 공간을 가시화한다. 세잔느는 사물과의 동사적 사건을 흔적처럼 색과 면 위에 남겨두었다. 사물과 보는 자 사이에 한쪽이 주체로 서고 다른 쪽이 대상으로 남기 이전에 서로가 서로에게 시선을 던지고 받는 감각적 사건 자체를 묘사한 것이다. 주체와 대상간의 직접 부딪치는 시선이 아니라 대상측면에서 배경을 내어준 응시적인 대응이다. 주체는 대상을 시각의 깊이 방향으로 접근함은 물론 배경 틀에 부딪힌 시간을 간섭한다. 이 간섭에 의해 시각은 깊이 방향으로 고정되지만 좌우로의 시촉각이 작용하며 배경 틀에 의한 반복적인 시간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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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7.

Paul Cezanne, Still Life with Fruit Basket, 1886

한국 고건축의 주거형식에서 진입부인 문은 비대칭 배치와 중첩의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연경당 사랑마당으로 가는 둘째문인 장양문은 첫째 문(장락문)과 동일한 형식으로 비대칭으로 중첩시키되 사선상에 배치되어 같은 시각에 시간을 따라 보이게 되어있다. 따라서 처음 장락문을 향해 진입하였던 깊이와 두 번째 문의 깊이로 인해 촉각적 경험이 반복해 일어난다. 진행공간을 명시하는 두 틀의 깊이로서 간섭을 하게 됨은 대문의 반복 사용 때문이며 이로 인하여 생기는 촉각 체험은 반복에 의한 시간의 연장으로서 진행방향 좌우로 계속된다. 행랑마당을 통과할 때 사선 축을 기준으로 오른쪽 공간은 장양문으로 향하는 진입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놓여있어 진입공간으로 편입된 반면, 좌측의 공간은 가로로 길게 놓여 진입방향과 직교하게 된다. 진입 방향이 설정된 후 오른쪽에 비해 왼쪽으로 펼쳐지는 행랑방 외벽의 시촉각 거리 차이는 시각적인 만짐을 유도하고 시간의 분절로 인한 좌로 뻗은 행랑마당은 공간의 확장으로 이어진다<Figure 8 평면>. 따라서 진입을 유도하는 A공간과 시각의 방향과 크기를 달리하는 B공간의 차이는 주체로 하여금 진행방향으로의 깊이를 느끼는 동시에 그 다음으로의 연결을 선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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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8.

Main Entrance of Yunkyung Villa

4. 운동과 시간

형태와 공간에 대한 인간의 첫 번째 반응은 그것을 파악하는 눈에 의해서이고 다른 감각의 도움을 받는 것이 그 다음이다.8) 두 번째 반응은 그 느낌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지각의 단계로서 보이지 않는 인식의 것을 보이도록 표현한 운동의 과정이 뒤따른다. 최종적으로 이 모든 결과에 따라 감동받는 예술적 단계는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표현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감동의 단계에 도달하고 반복됨을 말한다. 여기에 주체가 되는 인간은 공간과 형태 사이에서 감각, 지각, 운동을 경험하며 특히 보이는 운동의 역할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간과 시간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운동이 생겼다면 거기엔 운동주체가 존재하고 운동의 상대적 요인과 조건을 생각할 수 있다. 주체의 중심, 방향, 거리로 대변되는 힘의 원리가 현상의 내재적 주체요인이라 한다면 주체의 대상에 대한 반응적인 조건운동을 현상의 외재적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대상을 보고 무엇인가를 느꼈다고 한다면 그것은 주체에 내재된 의식의 힘 때문이며 이로 인해 주체는 대상 사이에서 운동을 일으키게 된다.9) 주체의 내재적 운동이라 함은 다음의 세 가지 기본적인 유형을 말하는데 ‘서다, 가다, 돌다’가 그것이다.10) 첫째로 ‘서다’는 기본적인 내재적 운동으로 움직임이 없다든가 멈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심에 아무런 방해가 없는 경우이다. 이 경우 주체는 먼저 공간이나 시간보다 중심에 대한 영역을 필요로 한다. 만약 주체와 대상이 서로 정면으로 보게 될 경우, 시각은 공간과 시간 안에서 정반사되어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는다. 개입된 공간과 시간에 따른 거리 차가 없어 외재적운동이 생겼지만 주체는 정면으로 서있다고 볼 수 있다<Figure 9(a)>. 그 결과 정면으로 향한 시선은 대상을 형태로 인식하게 되며 이미지화한다. 시간보다는 대상과 시선 간의 거리를 고려한 공간의 평면화 작업이다. 이것이 대상에 대한 주체의 외재적 운동이다. 두 번째로 ‘간다’는 것은 움직임 특히, 방향성을 띤 운동의 유형으로 대상이 시각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위치한다면 현상의 내재적 운동에 의해 한 방향으로의 움직임을 가속시키며 시각적인 막힘이 없다<Figure 9(b) A>. 만약 대상 측면에 미설정된 공간과 시간의 부재가 생긴다면 주체는 이동하며 대상의 발전에 따라 이동에 대한 간섭을 받게 되어 주체의 외재적 운동은 다양하게 일어난다.<Figure 9(b) B> 마지막으로 ‘돌다’는 주체의 방향 전환으로 ‘서다’와 ‘가다’의 두 요소가 대상의 역할에 따라 상호 작용을 한 2차적 결과이다. 현상학에서 대상이란 의식이 향하는 바의 것을 가리키는데 이 같은 의식의 지향성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대상의 개념도 변화한다. 대상을 이루는 형태 요소들이 충돌하면서 이를 보고 의식한 주체가 운동을 일으키는 것인데 예를 들어 <Figure 9(c)>에서 A라는 독립적 대상은 중심과 크기에 걸맞은 균일한 영역을 가지며 움직임이 없다. 내재적 요인의 ‘돌기’이다. 그러나 일정한 힘과 방향을 가진 B라는 대상이 개입될 경우 A의 균질한 영역은 B로 인해 파괴되고 이를 복원하기 위한 A는 복원 방향으로 회전하게 된다. 즉, 구심적인 영역의 힘이 방향성을 가진 회전운동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A와 B의 충돌 결과에 따라 부체는 ‘돌다’와 ‘가다’의 합성인 ‘돌아가다’라는 운동감을 느끼게 된다. 이로써 공간 안에서 주체의 움직임은 방향과 거리의 장단에 따라 영역을 가진 내재적 운동이 대상들의 복합적인 움직임 요소들과의 만남을 통해 공간과 시간을 경험하는 외재적 운동을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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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9.

Diagram of Internal and External Movement

연경당의 사랑마당에는 네 개의 부분요소(안행랑채와 사랑채,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하는 낮게 꺾은 담, 선향제)가 비정형하게 배치되어있다. 이들은 각각의 다른 만남에 의해 다양한 움직임들을 동시에 담고 있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처음 시선은 전면 사랑채를 따라 오른쪽 누마루에 걸린다. 또한 진입 시작이 사각형사랑마당을 좌측에서 이루어져<Figure 10 평면> 대각선 방향인 우측 선향제로 이어진 시각은 중앙 전면 진입의 경우보다 길어서 더 넓은 공간으로 인식하게 하고 이에 따른 시간차는 주체를 머물게 하며 다음 방향이 어디인지를 감지케 한다. 안채와 사랑채를 나누는 중앙의 낮은 담은 주체의 시선과 같은 방향으로 배치되어 사랑채까지 진행하되 벽 재료의 거칠음과 낮은 높이의 꺾인 배치에 의해 느린 진행과 가능성을 주고 사랑채로의 주 시선을 간섭하여 깊이방향으로의 진행을 겸한다. 또한 사랑채 오른쪽으로의 시각 흐름은 사랑채 누마루와 약간 기울여 직교하는 선향제와 이어지며 선향제의 일렬 반복기둥들은 다음 공간인 뒷마당으로 시선을 회전시킨다. 정면에 배치된 사랑채의 가로로 긴 입면은 일련의 수직 기둥들과 그 상부의 지붕과 처마의 수평선으로 인해 시각의 부딪침과 사랑채 내부로의 시각적 깊이가 생긴다. 그러나 사랑채 하부의 기단은 사랑채로의 진입을 멈추게 하는 촉각적인 부딪힘이어서 시각의 깊이와 촉각의 부딪힘은 주체로 하여금 사랑마당을 한 번 더 뒤돌아보게 한다. 진입부와 같은 선상에 위치한 안 행랑채 역시 선향제와 함께 마당을 닫아주는 역할을 하여 시각의 흐름을 억제하며 머물게 한다. 이와 같이 마당에서의 멈춤은 사랑채의 정면성으로, 뒷마당으로의 연속된 움직임은 선향제의 방향성으로, 낮은 담과 안채가 중첩되면서 나타나는 잠재성과 사랑채의 막힘과 트임의 상대적인 깊이는 대상에 접근과 반복의 힘이 있어 마당이란 한 장소에 무위적11) 움직임이 숨어있다. 그리하여 연경당의 사랑마당에는 부분요소들의 특징과 구성에 따라 주체를 운동하게 하고 다양한 행위의 기회를 제공하며 그 것들을 담는 장소가 되게 한다. 시간의 분절이 중복되어 있어 한 번에 하나를 선택하는 단일 시간이 아닌 한 번에 여럿을 병행하는 다원적인 시간구조가 되며 하나의 공간 안에서 다양함과 선택적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는 동적 공간이 된다.12) 사랑마당에서의 움직임은 형태 변화에 의한 은유적 움직임보다는 몸에 의한 직접적인 움직임에 영향을 받으며 이러한 움직임들은 특히, 부분과 부분이 모인 사이에서 발생하고 반복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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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0.

Main Court in Yunkyung Villa

5. 부분성

인간의 움직임은 애초에 한 점에서 시작하고 전체적 흐름의 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전체를 미리 정해놓은 경우 부분은 전체로 인해 절대적 성격에 종속되며 부분과 부분사이의 흐름이 끊길 수 있고 관계 역시 전체로 인해 자유롭지 못하고 제한된다. 반면에 부분과 부분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전체의 경우 의도되지 않은 결과로서 다양함을 가져올 수 있다. 선결된 절대적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부분의 합은 전체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분들은 물론 전체의 변함을 허용하기도 한다.

다양함에는 필연성과 우연성의 특성도 있다. 전체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만을 결정하고 그 외의 것들은 사용자에게 남겨놓을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부분들 사이에 생각지도 않은 우연한 공간이나 program이 생기다는 것이다.13) 이는 일상에서 나온 특별한 장점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전체를 우선시한 경우에는 부분이 결정되기 전에 전체를 결정하였기 때문에 전체는 닫혀있고 필연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어 시간의 특징인 변화와 우연을 기대하기 힘들다.

한국의 전통건축 특히, 주거건축의 경우, 정형한 기본 Unit가 정형과 비정형을 수시로 반복하면서 집이라는 전체를 향하여 가되 그 전체가 미리 정해져 있지 않고 다양하다. 다시 말해 칸(間)이라는 정형한 기본단위가 내부 기능과 공간을 수용하면서 실들을 비정형하게 배치하게 되면 이를 이루는 하나의 채는 정형하게 완성된다. 계속해서 정형한 채들은 다른 채들과 비정형하게 어우러지고 이들로 인해 우연하게 생기는 각각의 외부공간들은 다시 정형한 장소를 생성케 한다. 이들을 따라가는 시간의 경험들은 비정형하게 이어져 결과적으로 전체 배치는 비정형하게 보이지만 전체 형태는 비정형과 정형함을 반복한 요소들의 조합에 따라 제각기 다른 결과를 지니게 된다. 전체를 우선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 역시 선택적이다. 부분과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각 부분들의 위치의 차이에 따라 우연과 반복의 공간이 나타나고 주체는 이를 자유로 선택한다. 연경당의 경우, 서로 다른 부분들(행랑채, 사랑채, 선향제, 농수정, 안채, 안행랑채, 반빗간)이 서로 다른 만남의 형식으로 순차적인 조합을 하고 있다<Figure 11>. 정형과 비정형 방식을 반복하는 채들의 배치에 따라 일곱 마당의 우연한 외부공간이 생긴다. 바깥마당, 행랑마당, 사랑마당, 선향제 앞마당, 뒷마당, 안채뒷마당, 안마당의 일곱 마당은 부분들의 조합에 따라 내부도 아닌 외부의 공간으로 서로 이어지되 차이를 띠고 시간의 전이에 따라 성격을 달리하며 각기 다른 시간적 경험을 하게 되는데 주체는 지속과 반복적인 시간 경험에 따라 이들을 선택된 장소로 기억한다. 이러한 장소들 은 전체에 의해서가 아닌 부분들의 정형과 비정형적인 합에 의해 가능하다. 부분은 그 부분이 만나는 전후요소와의 관계에 강하기 때문에 만약 그 부분이 생략되어도 전체성에 직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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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1.

Plan of Yunkyung Villa,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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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2.

Le Corbusier 2nd. floor, Villa Savoye, 1932

이에 비해 서양건축은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Le Corbusier의 대표적 주거작품 중에 하나인 Villa Savoye의 경우 먼저 정형한 4각형의 외부 형태를 전제로 하고 있다.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가 그의 원칙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에 따라 내부 역시 정형한 기둥 배치와 평면의 중앙을 점하고 있는 직선램프에 의해 평면의 기준점을 잡고 이 램프를 따라 각 실의 연속적인 배치와 상대적인 스케일, void와 solid, 어두움과 밝음의 대비되는 공간의 다양함을 의도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러나 내부의 복잡함보다 외부의 단순함, 또는 내부공간과 외부 표면이 별개인 관계는 주체보다 형태측면이 더 강함을 알 수 있다. 내부공간의 다양함과 는 달리 외부의 볼륨은 정제된 형태로 전면성(회전)을 강조한다. 내부의 중심이 분산되어 있으면 서도 그 본래의 결과를 부정하기 위한 계산된 직선 수직운동으로 탈착되고(promenade: 산책) 그것은 실제로 내용과는 동떨어진 기하학적 형태가 띠는 수평 회전방향을 강조한다. 또한 3분할된 수직 입면은 고전 수법인 3분할에 의한 중심을 지키면서도 필로티에 의해 중력을 상쇄한 저항된 힘을 느끼도록 한다. 결과적으로 건축의 정면을 강조했던 고전주의 입면은 Le Corbusier시대에 와서 형태를 강조하는 4면으로 발전하고 이것은 건축의 독립성을 강조하게 되며 이에 따른 내외부의 소통관계를 대입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게 된다.14) 결국 외부형태를 보여주기 의도는 사용자 측면이라기보다 작가의 주장이 돋보이며 이로 인한 의도된 전체성은 부분들과의 관계를 장악하고 우연성보다 필연성을 강조한다.

구례 운조루(1776)의 경우 안채의 오른쪽 날개부분에는 부엌과 작은방, 다락이 배치되었다. 이 세 공간을 담는 외부 입면<Figure 13>은 수직기둥으로 구분되는데 한 칸의 기본적인 정형함에서 시작한 세부분의 벽들은 각각의 내부 필요에 따라 한계와 관계의 방법으로 비정형한 입면을 나타낸다. 방을 위한 문과 쪽마루, 부엌을 위한 문, 반침에서 나오는 2층 난간은 전체 입면 형식에 맞추어 정렬된 요소들이 아니다. 이렇게 비정형의 입면 요소들은 지면의 기단선과 하늘의 지붕 처마 선으로 수평 정형화된다. 전체가 부분들의 합으로 이루어져 전체 이상의 의미를 나타낸다. 경험하는 과정은 전체가 아닌 부분에서 시작하므로 전체 형태나 배치를 일시에 경험한다는 것은 인간의 경험과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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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3.

Un Jo Ru, Gu Rye, 1776

III. 결 론

이상에서 밝힌 한국 전통건축의 부분성 특징은 현상학의 특성들에 비교될 수 있다. 즉, 현상학이 기본적으로 다루는 촉각을 통한 대상으로의 지향성은 한국 전통 주거건축에서 다루는 재료와 부분 요소들에 의한 주체의 접근과 거리소거로 나타난다. 고건축의 부분 구성요소로써 채와 채의 비정형한 배치는 통과와 투명의 경계특성에 의해 나타내며 이로 인한 깊이 생성은 현상에서 거론하는 몸과 살(Chair)의 그것이다. 부분들이 모여 생긴 우연의 외부공간들은 주체를 움직이게 하고 사건이 일어나게 하는데 이는 삶을 다루는 현상학의 과정이다.

결국 한국 전통 주거건축의 부분들의 속성은 현상학이 내세우는 논제들을 공유하고 그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한국 전통건축의 특성은 시각보다 촉각, 형태보다 부분, 단절보다 관계, 공간보다 시간을 동반하는 운동에 있으며 이러한 특징들은 전체성보다 부분성에 근거함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건축의 형태구성이 현대사회를 나타내는 능동적인 표면효과로 이해되면서 표면을 우선시하는 시각위주의 작업으로 선회하였다. 현상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시각에서 촉각을 동원한 인간의 감각이 대상과 직면하기 때문에 전체보다는 부분과의 대응이 절실함에도 지금의 건축은 보여주기 형태를 중시하며 그로 인한 표면 치중은 과정이나 결과에서도 부분들의 내용이 전가된, 내부와 무관한 외부우선의 형태가 우선시되고 있다. 특히, 분석적인 과학철학과 맞물린 해체주의 형태는 변형에 의한 표면작업으로 부분들의 역할을 쓸모없게 만들고 있다.15)

이제는 건축을 형태와 공간의 대상 측면으로 보기보다 현상에 근거한 주체와 관계 측면으로 보아야할 때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 연구가 한국 전통건축을 현상적 측면에서 파악하고자 하였다는 데에 그 의미를 둔다. 접근과 체험의 주관적 특성을 건축의 객관화 작업으로 완성하기까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한국건축을 대하는 판단기준에 변화가 필요하다.

Notes

[1] 1) ‘현대의 기계적 세계는 오관이 가동될 때마다 시각은 촉각에게 그의 우위를 양보한다.... 세계와의 원근법적 관계에서 생기는 거리는 객관적 근접성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다....감촉성과 근접성은 좋은 시력과 비판의식을 대체해 버렸다.’ Kim. D. L. (2009). Walter benjamin. Seoul: Seokwang Publishing, pp. 145-147.

[2] 2) Merleau-Ponty는 ‘나의 감각은 단지 시각과 촉각 그리고 주어진 청각의 종합이 아니다. 나는 나의 존재에 의해 종합적으로 인지한다.’라고 하였다. 사물의 구조를 신체의 지각 즉 감각의 종합적 경험으로서 인지하였고 감각의 상호작용에 의해 경험의 동시성을 강조한다. Ibids, p. 55.

[3] 3) 현상학에서 의식은 항상 어느 대상을 향하는 지향성의 특징이 있는데 거기에는 의식의 작용과 의식의 대상이 존재한다. 이때 의식의 작용을 노에시스(noesis), 의식의 대상을 노에마(noema)라 한다. 노에시스는 노에마로 하여금 대상을 지향하는 의미를 부여하고 의식으로 하여금 대상을 구성하는 역할을 하게 한다. 의식의 가장 구체적인 상관자로서 내재적이고 초월적 실재가 아닌, 지향적 객관, 지향적 대상을 노에마라 한다. 그것은 관념적이며 의미로서의 존재이다. Lyu, Y. G. (2008). The phenomenology of perception. Seoul: Moonhak & Jisung Publishing, p. 128.

[4] 4) ‘표현은 모든 지각의 범주 가운데 최후의 극점이다. 그것은 시각적 긴장(역동성)을 야기 시킴으로써 모든 지각의 범주들이 기여하는 표출이다.’ Kim, C. I. (1997). Arts and visual perception, Seoul: Kylin-Won.

[5] 5) ‘우리는 아마도 촉각적인 쓰다듬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촉각적인 쓰다듬에서는 탐문하는 자가 탐문되는 것에 더 가까이 있다. 결국 눈이 더듬는 행위는 촉각적인 쓰다듬의 특출한 변양이다.’ Ibids, p. 191.

[6] 6) Herman F. Brant는 눈의 움직임을 기록하도록 한 Eye Camera로 조사한 결과 ‘동양권의 오른손잡이 사람들은 왼쪽 사물이 눈에 잘 뜨이고 시선의 흐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인다.’라고 하였다. Lim, H. H. (1984). Study on the Efficient Layout of Newspapers Advertisement, Jungang University, Seoul: Korea, p. 21.

[7] 7) ‘수평과 수직축을 기준으로 일어나며 그 축을 벗어나면 불균형에 대한 균형보상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힘이 작용함으로서 강한 시각적 긴장이 생긴다. 시각의 선 즉 방향성을 형성하게 된다.’ Kim, C. I. (1997). Arts and visual perception, Seoul: Ki Lin-Won, p. 32.

[8] 8)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은 눈이다(80%). 나머지 20%는 다른 기관의 도움을 받는다.

[9] 9) Hilderbrand는 그의 논문 ‘Problem of Form’ (1893)에서 관찰자의 두 눈이 만들어내는 2차원 평면의 상이 운동을 통하여 3차원적 조형을 만들어 낸다고 보았다. Jung, J. W., & Ko, S. L. (1986). Space in architecture, Seoul: Gimoon-dang.

[10] 10) ‘LMA (Laban Movement Analysis)에서는 몸의 기본 동작을 열 두 가지로 제시한다. 뛰기, 정지하기, 움츠리기, 늘리기, 접기, 펴기모으기, 흩뿌리기, 무게이동하기, 지지하기, 회전하기, 이동하기이다.’ Shin, S. M., & Kim, J. L. (2010), Reading Body and Movement, Seoul: E-Wha University, p. 53.

위의 열두 가지 동작은 세 가지의 기본적인 움직임(서고, 가고, 돌고)으로 요약할 수 있다.

[11] 11) 여기에서 무위란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함을 정하지 않는다.’이다.

[12] 12) ‘공간은 시간적으로 배타적인 여러 사물들의 반복을 허용하고, 시간은 공간적으로 배타적인 여러 운동들의 반복을 허용한다.’ Lee, J. W. (1999). Life, death, destiny. Seoul: Geo Reom, p. 152.

[13] 13) 건축가 N.J. Habraken은 그의 책 ‘변화(Variation)’에서 우연성을 두고 이를 ‘Support’라고 칭한다. N.J. Habraken and Others (1976). Variation: Systematic design of supports. Cambridge: MIT, p. 95.

[14] 14) 실제 이 건물은 도시와 떨어진 외곽에 위치하며 수평 대지 위에서 있는 건물의 형태는 독립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15] 15) 국내에는 해체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로 불린다)가 있다.

Acknowledgements

이 논문은 2016년도 서울 예술대학교 연구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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