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the Korean Housing Association. 25 February 2021. 33-40
https://doi.org/10.6107/JKHA.2021.32.1.033

ABSTRACT


MAIN

I.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부산은 한국전쟁 시기에 많은 피란민들이 모여 살았던 임시 수도였다. 가마솥(釜)을 닮은 산이 많은 부산의 산기슭 곳곳의 판잣집들은 피란민들이 생존을 위해 만든 흔적들로 남아있었다. 심지어 피란민들은 하천변이나 공터는 물론 생존을 위해 소 막사나 무덤 위에도 거처를 마련할 수 밖에 없었다. 피란민들은 여러 장소에 피란마을을 형성하게 되었고, 낯선 울타리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며 새로운 이웃들과 함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강한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많은 사건과 시대를 공유하며 살아왔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고통 속에서 피란민들이 정착한 피란마을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부산만이 간직한 역사적 가치와 흔적이 깃든 생활문화자산 자체이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살아있는 현장이다. 하지만 도시개발 과정에서 생활문화사적 가치가 있는 장소들이 대부분 소멸되어 왔다. 1980년대 이후 재건축·재개발이라는 거대자본에 의한 개발 중심적인 건조 환경물들로 채워지는 연속적 과정에서 역사적 흔적은 소실되고 과거의 생활 커뮤니티나 내재되어 있었던 공간적 질서가 급격히 변화·소멸되어 장소의 정체성 파괴와 도시 공간의 획일화 현상을 공유하게 되었다. 특히 최근 고령화 시대에서 노후주택과 공·폐가의 증가, 원주민의 소멸 등으로 게이티드커뮤니티(gated community)와 같은 공동체 해체 현상이 등이 가속화되어 생활문화사적 현장들이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 연구는 피란민들의 역사적 삶이 누적되어 있는 생활문화사적 가치를 갖는 마을을 대상으로 거주민의 심상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인지적 공간과 마을의 물리적 환경, 길 등과의 인지적 관계망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거주 환경에서의 주민 인지적 공간이 마을 공간구조 상의 행위와의 공간적 관계망 분석을 통해 오래된 사회적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특성과 의미를 논증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역사적 피란마을 장소에 구축되어 있는 기억과 인지 공간을 추적하고 가시화시켜 커뮤니티 형상을 복원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 이 땅과 주민이 공유되고 있는 생활 문화적 가치를 찾는데 의미가 있다.

2. 연구의 방법과 내용

본 연구의 이론적 바탕은 케빈린치(Kevin Lynch)의 ‘이미지화(imageability)가능성’1)에 근거하고자 한다. 케빈린치는 도시 환경 이미지는 5가지 요소와 함께 대다수 주민이 공유하고 있는 심상으로 정의하였다. 심상 속에 축적되는 이미지화는 스케치맵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미지화 가능성’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동시대를 공유하며 공동체 생활을 했던 마을과 그 구성원들을 연구 대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을 주민들은 개개인이자 공동체 사회의 일원으로써 자신의 고유한 행위나 경험·의도·체험 등을 통해서 주변 환경, 장소, 경관등을 기억 속에 마을의 특정한 장소들과 밀접하게 관련시켜 오며 마을 구조를 이미지화시켜 왔다. 따라서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 장소들을 이미지화시켜 왔고, 이는 그들의 사회적 정체성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본 연구는 주민들의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은 인간 활동과정에서 창조·소멸·생성 등의 과정이 반복된 인지도와 마을 공간 간의 관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즉, 마을 주민들은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형성된 ‘사회적 관계망’이란 마치 조직화된 문화적 세포 같이 형성되어 있고, 이는 마을 주민의 정체성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관계망은 주민들의 잠재된 인지(mental)공간 속에 지문처럼 날인되어 있다는 특성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관계를 케빈 린치의 ‘이미지화’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고, 마을의 특정 공간 내에서 형성된 주민들의 인지도, 시인성과 특징 등으로 구축되어 있는 이미지를 스케치맵(sketch-map)을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사전 현장 조사를 통해 공간의 범위를 감천2동, 우암2동으로 설정하였다. 스케치맵 수집은 마을에 집들을 방문하여 최소 10년 이상 실제 거주민을 대상으로 2019년 4월부터 9월까지 총 8차례 실시하였다. 작성 시에는 주변의 관여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규제하였다. 질의응답을 통하여 마을에 거주하게 된 배경과 거주한 기간, 마을에서의 활동, 기억에 남는 축제나 사건 등에 대하여 인터뷰하였고 이를 분석 시에 참고 자료로 참조하였다.

연구 내용은 첫째 피란민들의 삶의 흔적으로써 역사적 가치를 지닌 마을을 선정하여 형성되어온 배경과 물리적 공간구조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주민들의 인지적 공간에 잠재된 환경이미지를 스케치맵을 통해 분석하여 표면적으로 들어나는 물리적 형태의 특징을 추출한다. 셋째, 주민들의 스케치맵을 종합한 집단이미지를 만들어 인지공간과 사회적 역할의 관계에 대한 의미와 그 가능성에 대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II. 피란마을의 형성배경과 물리적 환경 특성

1. 피란마을의 형성

피란시절의 독특한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마을로 사하구 감천2동 일대 경사지의 감천문화마을과 남구 우암1동 일대의 해안 변에 위치한 소막마을을 선정하였다.

먼저 감천문화마을은 태극도2)를 믿는 신도들이 이주지를 직접 선정하여 집단 이주한 마을로 종교적 신념 하에서 마을 공간계획을 구상하고 집단생활을 통해 마을을 형성시켰다. 우암동 소막마을은 일제강점기부터 수출우검역소라는 형태적 틀이 갖춰졌고 소막사라는 특정 시설 속에 피란민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근대기를 거쳐 온 마을이다.

이들 두 마을은 형성 배경이 다르지만 강한 생활력이 뿌리내려 근·현대사의 한 단면과 피란민들의 생활공간이 누적된 역사를 간직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막마을은 1970년대 경제 부흥기를 맞이하고 도시화의 이면 속에 점차 낙후되어 갔지만, 감천문화마을은 산복도로르네상스 사업으로 3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명소이고 우암 마을은 생활개선 및 문화재 복구 사업 등이 진행 중에 있다. 이 마을은 피란민들이 정착해 온 공통점과 함께 마을 형성 배경과 지형적인 차이가 있어 비교를 통해 주민의 마을 인지도 차이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2. 감천 문화 마을

한국전쟁 당시 중구 보수동에 임시본부를 두었던 태극도 교단은 정부의 허가를 받고 1955년 7월부터 약 4천여명 신앙인들의 집단 이주3)가 이루어 졌다. 황무지였던 감천의 터에 신도들은 질서정연하게 마을을 조성해 나갔다.

마을의 동남쪽, 서북쪽에 본부와 태극도를 상징하는 능소를 설치하고 중심 구역과 팔도를 형상하는 1감부터 9감을 주거지를 형성시켜 구궁구곡(九宮九曲) 형으로 계획된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Figure 1-1>. 9감의 구역 안에 신도들을 같은 고향출신으로 우선 배치하였고 산 능선을 따라 경사지에 집들이 형성되었다. 주택 규모는 3평에서 7평 미만의 규모로 각 지붕을 낮게 건설4)하였는데 앞집과 뒷집의 출입부와 조망권을 가리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반영된 것이다. 신도들은 종교적 행사, 교육, 사회적 활동 뿐 만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마을에 필요한 환경을 스스로 정비해 나갔다. 1960년대에 들어서 생활에 필요한 우물, 도로의 개설, 공중 화장실, 의료 및 교육시설, 경제적 기반을 갖추기 위한 제조업 등의 공장을 건설했다<Figure 1-2>. 마을 내부에 시설들이 생겨나면서 생겨난 새로운 길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동시에 축을 형성하여 북쪽 아미고개로 까지 발달하게 된다. 아미고개의 입구에 아미성당이 설립되었는데 태극도와 별도로 아픈 주민들을 돌봐주며 아이들의 교육과 피란민들의 생활을 돕는 시설이었다. 1970~80년대는 산등선 경사를 따라 서북쪽, 동남쪽의 높은 지대까지 집들이 확장5)되었다. 소방도로가 정비되며 현재 옥천로가 마을 관통 중심축이 되었다. 중심축을 따라 고지대로 뻗은 가로 길은 마치 실핏줄과 같이 발달된 형태이다. 내부적으로는 태극도가 분파되기 시작하면서 9감의 구역은 해체되는 모습이다. 비교적 평평한 남쪽의 저지대에는 주택계량사업의 영향으로 길과 필지를 통합하면서 공동 주택 등이 건설되어 막다른 길이 생겨났다<Figure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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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Gamcheon Culture Village (left) and Uam Somak Village (right) change by period and major locations

1990년대에는 대중교통이 발달하면서 마을내부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외곽 경계도로가 확장되고 천마산 산복도로가 건설되었다. 도로 변을 따라 접근성이 좋은 부지에 마을 지원시설이 들어서자 인접 필지를 통합한 큰 규모의 주택이 신축되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 산등선을 따라 형성된 주거와 독특한 경관의 마을은 도시화의 영향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빈집, 노후화 되어 갔으나 문화 예술을 가미한 도시재생사업이 실행되었다. 마을의 중심축을 따라 주민 커뮤니티를 위한 시설들이 생겼고 외곽의 도로를 접한 곳에는 카페, 상점과 같은 상업시설이 형성되었다.

3. 우암 소막 마을

조선시대 우암(牛岩)지역6)은 용이한 포구였다. 일본인은 우암포의 지형과 위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1909년 소(牛) 반출을 위한 검역소를 설치했다. 1920년대에는 일본으로 수탈하는 소가 증가하자 시설규모를 확장했고 해안 일대를 매립하였다<Figure 1-5>. 1930년에서 1940년대에는 산업용 부지를 위한 매축공사와 철도시설을 갖추며 기반시설을 확보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징병 군인들을 일시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시설을 계획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수출입 물량 자체가 없어져 귀향 동포들에게 임시수용시설로 제공되었다. 이후 1950년대 피란민 수용소로 지정되면서 피란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수용소 동측 하천을 경계로 수출우검역소 중심부가 피란민들의 주 거주구역이 되었다. 서북방향의 산비탈, 하천 넘어 동쪽외곽, 철길 아래쪽 까지 판잣집7)의 영역이 확대되었다. 당시 아궁이, 코크스, 촛불 등의 사용으로 빈번한 화재8)도 발생하였다. 하천과 접한 수용소 중심구역 골목에 시장9)이 형성되었고 하천을 중심으로 동측구역에 보급소, 구호병원, 기술학교, 조산원과 같은 시설물들이 형성되었다<Figure 1-6>. 이후 하천은 복개되었고 지금의 장고개 이다. 복개로는 마을을 관통하는 축을 이루며 남쪽 뱃길 포구를 통해 자갈치, 남포동으로 향하며 북쪽 방향의 장고개로는 부산장(釜山場),10) 동서 방향으로 문현동, 서면, 감만 부두로 통하는 사통팔달의 요지였다. 과거 매축지에 형성된 미군부대, 보급창고 등이 주민들과 내부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일제강점기 때부터 철도, 부두와 같은 기반시설을 갖춘 우암동에는 1970년대 때 각종 공업시설,11) 극장 등이 생겨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1980년대 장고개를 중심으로 가로 면에 상업시설이 발달하였고 계속되는 인구 유입으로 한정된 토지 안에서 가옥의 수직적 확장12)이 이루어졌다. 이후 마을 외곽부지에 학교, 공공시설물들이 설치되고 필지를 통합한 공동 주택 등이 생겨났다. 교통의 발달로 포구와 철도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폭이 확장된 도로가 마을의 경계를 이루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인구 감소가 시작하고 대형마트의 영향으로 우암시장은 과거의 명성이 무색해지고 마을 일대가 노후, 불량주택이 밀집된 주거 취약지역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주민들의 노력으로 공동묘지를 숲 공원으로 변모하였으며 골목 환경, 정비 사업, 공중화장실 설치 등과 소막사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행해지고 있다.

III. 주민 인지 특성

1. 조사 개요

주민들의 기억 속에 잠재적으로 축적된 실질적인 사회적 공간구조를 분석하기 위해 수집한 스케치맵은 판독이 불가능한 맵을 제외하고 각각 35매를 반영하였다. 스케치맵에는 자주 방문하는 장소, 떠오르는 길, 건물, 영역 등이 선이나 그림으로 자유롭게 표현되었다. 먼저 65세 이상과 남성의 거주 비율13)이 높은 감천문화마을의 경우 스케치맵 응답자도 60세 이상의 남성참가율이 높았다. 응답자는 평균 71세가 49년 동안 거주하였다. 젊은 세대의 주민을 만나는 어려움이 있었고 응답자는 50대에서 80대로 구성되었다. 응답자는 대부분 피란을 왔고 일부는 가족, 친척을 따라 오거나 혼인을 하면서 1960년대 이주한 주민이다. 응답자의 여성은 현재 태극도 신도가 없고 남성은 약 60%가 마을로 이주할 때에는 태극도를 믿었다가 현재는 타종교로 개종한 상태이며 응답자중 2명이 태극도 신도이다. 소막 마을은 남녀의 인구수가 비슷하고 50~70대의 거주비율14)이 높다. 응답자는 평균 67세가 43년 동안 거주하였다. 응답자는 50대에서 80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70~79세가 가장 많다. 응답자는 대부분 피란15)을 왔고 일부는 1960년대에 혼인을 하거나 일자리를 구해 이주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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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Respondent information

2. 인지구조의 정위(定位)와 범위(範圍)

지리학적 방위는 지구의 자력에 의해 결정되는 자연과학적 방위로 공간과 연결되는 인간이 지닌 공간의식의 한 형태이다. 스케치맵에서는 응답자가 공간구조를 지각할 때에 방위, 방향성, 공간의 범위16)를 인지하게 된다. 이때의 공간 구조는 공간경험의 범주를 전제하는 지각적인 능력으로 기초적인 단계이자 스케치맵의 상대적인 위치를 설정하는 기본적인 요소가 된다. 이러한 범주는 주변 환경, 랜드 마크, 사물, 도로 등 자신이 경험했거나 처해있는 총체적인 정황과 관계하여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특히 앞으로, 뒤로 와 같은 방향성과 통로의 목표, 자신의 위치를 판단할 수 있는 감각을 주기도 한다.

본 연구에서는 인지 구성 요소인 방위를 스케치맵을 작성할 때에 지도의 상위 방향을 근거로 한 스케치맵의 정위로 두었다. 스케치맵의 정위와 함께 설정된 방향성 및 범주의 범위에 대하여 탐색해보고자 한다. 스케치맵의 정위를 살펴보면 감천 문화 마을은 전체응답자의 약 50%이상이 북(北)향을 25%는 동으로 70o 정도 치우친 정위로 나타났다. 즉 마을이 형성되면서 나타난 중심축의 북향과 북동쪽의 지역을 넘어가는 길목인 아미고개를 정위로 두는 경향이 가장 많다. 남향과 동향의 오차는 모두 마을 북서쪽 높은 지대에 거주하는 여성주민에게만 나타났다. 우암마을은 전체 50%가 북향을 두었고 약 35%가 동향을 정위로 두었다. 과거 매립된 하천이었던 중심축이 이 지역을 넘어가는 길목인 장고개와 우암시장의 수평적 도로에서 동쪽 감만동으로 향하는 방향이 가장 많다. 일부 남향과 서향의 오차는 거주기간 30년 미만인 주민으로 스케치맵에 바다, 부두와 같은 자연 환경적 요소와 같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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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Orientation of sketch-maps

스케치맵에는 다양한 형태와 마을구조가 표현되었는데 <Figure 4>를 참고하면 감천문화 마을은 약 54%의 응답자가 마을 내에서 비교적 넓은 범위의 길과 장소를 구조적으로 묘사하였고 약 34%가 산복도로와 마을외곽 도로를 울타리 식으로 표현한 뒤 그린 영역 안에서 장소들을 배치하는 형태였다. 소막마을은 약 80%가 응답자의 생활범위 안에서 인지하는 장소들을 구조적으로 묘사하였는데 통로의 경우 목표나 방향을 함께 설정하였다. 종합하면 감천문화마을은 마을범위를 울타리 형식으로 표현하며 마을 안의 넓은 범위를 나타냈다. 반면 소막마을은 개개인의 생활권 안에서 비교적 좁은 범위의 길과 장소를 구조적으로 묘사하고 길과 방향성을 함께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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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Type of Sketch-map

3. 인지 장소

영역성(Territory)은 개인별 인지 특성이 스케치맵에 표현되는 지표를 통해 분석될 수 있다. 인지되는 장소는 개인이 체험, 경험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반영된 것으로 사회적 공간의 조직과도 관련이 있다. 스케치맵에 나타난 장소와 길의 명칭을 추출하고 출현은 성별, 연령대, 거주기간별로 분류하여 빈도수를 분석하였다.

감천문화 마을은 스케치맵에 길과 장소가 총 80개 출현하였다. 1인당 남성 6.2개, 여성 9.4개, 평균 7.1개의 장소가 나타났다. 스케치맵의 장소의 상위 출현 장소와 빈도수를 <Table 1>에 요약하였다. 출현률은 마을 동북쪽 언덕에 위치한 초등학교가 남성과 여성의 가장 높게 나타냈다. 30년 이상 거주한 응답자로부터의 인지 출현 비율은 마을 서남쪽 진입부분의 버스 종점과 삼거리, 아미고개가 높게 나타났다. 인터뷰에 의하면 차량접근이 어려웠던 시절에 버스정류장은 마을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이다. 30년 미만 거주한 응답자는 문화마을이 조성되면서 형성된 문화마을입구가 상징적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Table 1.

Frequency Analysis on Path and Place of Gamcheon Culture Village

By gender
Men (n=22)Women (n=13)
1Ele. school 10 (46%)Ele. school 7 (54%)
2Bus terminal 7 (32%)a forked road 6 (46%)
3Graveyard 6 (28%)Bus terminal 6 (46%)
By age
50~59 (n=3)60~69 (n=11)
1Taegeukdo H.O. 2 (67%)Bus terminal 6 (55%)
2Bus terminal 2 (67%)a forked road 5 (46%)
70~79 (n=14)80~ (n=7)
1Ele. school 7 (64%)Senior Center 5 (72%)
2a forked road 6 (55%)Elementary school 4 (58%)
By Period of residence
Over 30years (n=30)Under 30years (n=5)
1Ele. school 15 (50%)Village gate 3 (60%)
2Bus terminal 12 (40%)Graveyard 2 (40%)

남녀 성별에 따른 장소의 빈도는 남성일수록 마을 지원시설에 대한 장소가 높은 출현률을 나타냈고 여성은 자신이 자주 방문하는 장소가 많이 나타났다. 특히 오래 거주한 여성일수록 자택과 경로당을 다른 영역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거주기간과 관계없이 초등학교는 주민들 심상에 공통적으로 지배되고 있는 장소로 보인다.

우암 소막마을은 길과 장소가 총 87개 출현하였다. 1인당 남성 7.6개 여성 5.8개의 장소가 나타났다. <Table 2>를 보면 마을의 중심지에 위치한 골목시장과 북향, 동향, 서향의 길을 따라 뻗는 장고개,17) 감만동, 문현동의 지역명칭의 출현 비율이 가장 높다. 마트, 은행, 식당과 같은 상업시설은 남성에게서 출현 빈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

Table 2.

Frequency Analysis on Path and Place of Uam Somak Village

By gender
Men (n=20)Women (n=15)
1Gammandong 9 (45%)Alley market 7 (47%)
2Moonhyeondong 9 (45%)Janggogae 4 (27%)
3Alley market 8 (40%)Cowshed 4 (27%)
By age
50~59 (n=4)60~69 (n=20)
1Uam mart 2 (50%)Alley market 8 (40%)
2Janggogae 2 (50%)Janggogae 7 (35%)
70~79 (n=8)80~ (n=3)
1Alley market 5 (63%)Nalaebi 2 (67%)
2Janggogae 4 (50%)Quarantine 2 (67%)
By Period of residence
Over 30years (n=28)Under 30years (n=7)
1Alley market 12 (43%)Bank 3 (43%)
2Janggogae 11 (40%)Alley market 3 (43%)

연령대가 70대 이상 30년 이상 거주한 응답자 중에는 구 동사무소, 검역소, 나래비집, 나룻배, 소막사와 같은 과거의 장소가 출현했다.

거주기간이 60년 이상 거주한 응답자는 북쪽을 검역소, 동쪽을 감만부두, 남쪽을 나룻배를 타고 남포동으로 가는 뱃머리, 서쪽을 문현동이라 지칭하였다. 마을에 있는 우물, 자율방범초소, 마을지기사무소, 지장사, 감화교회와 같은 장소들도 일부 나타났다. 남녀 성별에 따른 장소의 빈도는 식당, 목욕탕과 같은 상업시설은 연령대가 낮을수록 출현률이 높았고 길의 명칭이나 주변 지역에 관한 곳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출현률이 높게 나타났다.

4. 집합적 이미지

마을의 결절점(Nodes)과 경계(Edge)에 대한 인지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스케치맵에 나타난 길과 장소를 추출하고 전체 빈도를 통합하여 집합적 이미지를 작성하였다. 스케치맵에 나타난 길은 출현빈도수 만큼 중첩시켜 굵은(bold)선과 방형의 크기로 표현하였다. 집합적 이미지는 스케치맵 35매 전체와 성별, 연령대, 거주기간별로 분류하여 그 차이를 비교하였으며 분석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감천문화마을 전체의 집합적 이미지<Figure 5>를 보면 마을의 서남쪽에서 동북 방향으로의 넓은 범위의 장소들이 축을 구성하고 있다. 마을을 구성하는 3개의 세로축과 같은 길이 마을을 통과 하는 동시에 감싸는 형태로 마을의 구조를 뚜렷하게 나타낸다. 버스종점과 삼거리, 초등학교, 경로당은 축을 따라 강한 결절 점을 이뤘다. 삼거리를 중심으로 아미고개로 향하는 통로가 뚜렷한 방향성을 보여주며 세로축의 가로가 발달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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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5.

Collective map of Gamcheon Culture Village

거주기간이 30년 이상 거주한 주민들의 집합도에는 결절 점들이 집적되어 꼭짓점 형태의 마치 활모양의 겹을 이룬 두른 길과 장소가 나열되어 있다. 겹겹이 마을을 감싸는 길은 굴곡을 이루는 지점에서 파생된 길이 발달된 형태이다. 거주기간이 30년 이하의 주민들의 집합도에는 출현 장소와 길과의 통로 반경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주도로와 접한 장소의 인지성이 높으나 범위가 상대적으로 낮고 길은 목표 지점 없이 단순한 통로로써의 개념으로 인지되는 모습이다. 일부 단절 현상과 교차점에서 막다른 길로 표현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성별집합도를 비교해 보면 남녀 모두 초등학교와 버스종점이 꼭짓점을 이루고 있으나 남성에게 경로당의 결절점이 포함되어 넓은 범위가 인지되고 있다. 반면 여성에게는 복잡한 길의 연결도가 높아 마치 실핏줄처럼 발달되었고 통로의 목적지인 경찰서, 복지회관 등의 장소가 출현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거주자 연령대를 10년 주기로 분류한 집합도를 보면 마을을 인지하는 범위의 구조가 서남쪽에서 동북방향으로 이동·회전되는 독특한 형태를 나타냈다. 60~79세는 버스 종점, 삼거리의 장소와 아미고개로의 방향성을 따라 발달된 모습으로 갈림길에서의 발달된 길들의 연결도가 뚜렷하다. 80세 이상은 경로당 중심의 파생된 길들이 발달되어 있는데, 이는 생활반경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장소(Landmarks) 인지성에 대한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우암 소막마을의 전체 스케치맵을 통합한 집합적 이미지<Figure 6>를 분석하였다. 마을 중심에 정(井)자 모양의 가로에 장소들이 집약되어 있다. 수평적으로 형성된 골목길들은 과거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영역 내에서 지형과 주택 사이로 산만하게 흩어진 모습이다. 남쪽의 과거 기찻길이 경계를 이루고 중심역역 바깥으로 뻗은 길은 동, 서, 북의 방향성을 강하게 나타났다. 집약된 장소는 골목시장의 영역이 넓고 역사적 흔적인 소막사와 근대적 시설인 은행, 마트가 결절점이 되어 마름모 형태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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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6.

Collective map of Uam Somak Village

거주기간이 30년 이상 거주한 응답자의 집합도에는 과거 기찻길이 마을의 경계인 동시에 강한 방향성을 나타냈다. 북측으로 향하는 장고개는 마을 공간축이 되어 접한 가로길이 발달되었고 가로의 골목길들은 모퉁이나 교차 길에서의 연결도가 낮지만 다수 인지되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 거주기간이 30년 이하의 주민 응답자의 집합도 에서는 경계도로와 접한 마을 내부의 수직적 길의 통로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통로에서 골목시장과 접한 골목길이 인지되나 길에서 목표지점이나 방향성이 없어 장소의 인지범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모습이다.

성별집합도에서는 남녀 모두 인지적 범위와 공간 구조가 비슷한 형태이나 남성에게는 샛길이 발달되어 있고 여성에게서 길의 집중도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거주자 연령대를 10년 주기로 분류한 집합도를 분석하면, 먼저 60~69세는 동, 서, 북으로의 강한 방향성을 나타낸 길과 내부의 통로를 사이에 둔 가로형 골목길이 가장 발달되었다. 길을 경계로 둔 골목시장이 균형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70세 이상은 과거의 기찻길의 경계와 동항성당, 소막사, 뱃머리와 같은 과거의 공간들이 기억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특히 80세 이상에서 뱃길과 부두, 검역소였던 소막사 과거의 외곽부가 마을 경계로 각인되어 있었다.

통로(Path) 개념에 대해 종합하면 감천문화마을은 버스 종점에서 시작하여 삼거리를 원점으로 두는 아미고개로의 방향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마을을 감아 도는 길이 겹겹이 확장되어 굽이친 굴곡에서 길이 파생된 형태이다. 특히 높은 인지성을 보인 장소는 길의 축을 따라 결절점을 이뤘다. 연령대나 거주기간별로 인지하는 범위에 차이가 있었으나 마치 활 모양처럼 서남쪽에서 아미고개 방향으로 이동하는 형태였다. 거주기간이 높을수록 골목길, 교차점에서의 길을 단순 통로가 아니라 마을의 경계로써 확장하여 넓은 범위를 가진 영역성을 나타냈다.

우암 소막마을은 과거 교통의 요충지로써 내부 주변 지역으로의 방향성이 발달되어 있었다. 마을 안에서는 중심성은 골목시장에 집중되었고, 좁은 영역 내에 기적되는 장소들이 집약되어 나타났다. 외부 방향성 인지에 대해서는 남쪽의 뱃길은 없어졌지만 과거의 기찻길과 장고개가 뚜렷하게 인지되며 70세 이상 30년 이상 거주한 응답자에게서 과거 장소가 기억 속에 이미지화가 지속되고 있다.

IV. 결 론

케빈 린치의 이미지화 가능성 개념을 통해 피란민 정착지인 감천문화마을과 소막마을 주민의 기억 속에 내재되어 있는 마을공간에 대한 인지특성을 분석한 결과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마을 공간의 영역성(Territory)에 대한 특성을 분석하였다. 감천문화마을은 태극도의 신념하에 마을영역을 구획하고 지형을 따라 길을 형성시켜 가며 거점들을 확보하며 공간을 확장, 발달시켜왔다. 마을이 시대별로 확장되면서 중심축이 이동하나 초기부터 형성된 삼거리가 주민들의 인지 속에 중심성이 형성되어 있었다. 반면 소막마을은 피란시절부터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여러 동이 배치된 소막사라는 특수시설과 도로망이 이미 형성되어 있어 기존의 시설물과 영역 안에서 수직적인 팽창을 이뤘다. 마을의 사통팔달 연결된 도로는 외부와 차별되는 강한 영역성과 함께 격자형의 방향감을 주고 있지만 주민들의 인지 속에는 마을의 과거 경계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다.

둘째, 마을의 결절점(Nodes)과 경계(Edge)에 대한 인식 차이가 나타났다. 학교, 버스종점, 은행, 공공시설 등 마을이 확장되며 마을 공간의 인지 특성을 비교하면, 감천문화마을은 삼거리를 기점해서 축이 형성된 중심축에서 학교와 과거 유일한 교통수단인 버스종점을 결절점으로 중심축을 변형시키고 있다. 반면 소막마을은 과거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뱃머리는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기찻길이 마을영역의 인지적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기존의 틀 안에서 골목시장을 중심으로 장소들을 작은 범위의 영역(Districts)으로 이미지화가 나타났다.

셋째, 마을의 방향성을 갖는 통로(Path) 개념을 통한 비교이다. 두 마을을 관통하며 동선을 이어주는 수직 동선이 유일한 마을 외부 통로가 되고 있다. 공통점으로는 주민들은 마을공간을 인지할 때 수직 동선축인 아미고개, 장고개의 축을 정위로 삼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반면 차이점으로서는 감천문화마을은 아미고개가 넘어가는 북동쪽 방향을 지도의 상위인 정위로 삼고 마을의 지형을 따라 형성된 외곽 길을 울타리 같은 경계로 마을 영역으로 인지하였다. 소막마을은 장고개 북쪽 방향을 공간적 정위로 삼고 접한 골목길을 특히 수평적으로 인식하고 있어 생활권 내에 좁은 범위의 장소들이 사회적 이미지화되어 있다. 이러한 인지성이 두 마을의 공간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었다.

넷째, 두 마을의 스케치맵 비교를 통해 나타난 다양한 장소(Landmarks) 인지성에 대한 특성을 종합하면, 자신의 고유한 상황이나 여러 총체적 환경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연령대, 성별, 거주기간별로 차이를 나타났다.

먼저, 감천문화마을은 마을역사와 관련한 태극도의 시설은 연령대가 낮고, 거주기간이 낮을수록 인지되고 있었다. 반면 연령대가 높을수록 경로당과 같이 실제로 왕래하는 주변의 장소가 높게 나타났다. 반면 소막마을은 상점, 공공시설은 연령대가 낮은 남성에게 높게 나타났다. 거주기간이 높을수록 동항성당, 검역소, 소막사, 나래비집, 뱃머리와 같은 역사와 관련한 장소인지성이 나타났다. 이는 장소는 사라졌지만 주민의 잠재된 인지 속에서 과거의 공간에 대한 기억이 지속되고 있는 특성들을 도출하였다.

이상 생활문화유산인 피란마을의 피란민들의 삶의 기억들이 공간구조와 얽혀 지속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담긴 마을의 관계망이 구조화된 장소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선 마을의 물리적 자산에 대한 관심뿐 만 아니라 주민들의 삶에 깊숙이 내제되어 있는 사회적 공간까지 관심을 확장시켜 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 스케치맵을 통하여 분석한 내용은 마을의 객관적 지표와 계량적 연구방법의 한계가 있었지만 향후도시 환경이미지를 상이한 배경과 특성을 가진 마을을 대상으로 다양한 요인으로 마을인지 분석을 시도하기 위한 방법론을 발전시켜 체계적으로 비교 분석을 통한 심층적인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Notes

[1] 1) 케빈린치의 도시이미지 이론의 후속연구는 국내에서도 시도되고있다. 이훈(1999)은 맨탈맵을 통해 다양한 개개인이 인지하는 공동 이미지를 찾기 위하여 애플야드(Applyard)의 분류체계에 따라 분석하였고 거리 및 방향의 왜곡정도를 조사하였다. 신순용(2006)은 5가지 이미지 구성요소를 기반으로 스케치맵을 분석하여 그 지역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설계방안을 제시하였다. 국외에선 Edward-Relph (1976), Norberg-Shulz (1979)가 장소의 이미지와 개인의 정체성, 지각 공간과 장소에 대한 의미의 다양성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최근 Filomena et al. (2019)은 GIS와 계량적 방법을 통해 케빈린치가 주장한 맨탈맵과 5가지 요소로 비교 분석하였다.

[2] 2) 1916년 조철제(趙哲濟) 교주가 세운 증산교 계통의 교단이다.

[3] 3) 당시 부산시에서는 영도구 청학동으로 이주를 권하였으나 신앙인들은 감내(甘內)를 점거하였다. 신도에 의하면 마을 터는 감내의 신을 상징하고 감천만이 펼쳐져 있어 팔괘형국(八卦形局)을 이루는 명당으로 본다. 즉 ‘지성(至誠)이면 감천(甘川)이다.’라고 하여 신에게 비는 장소로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4] 4) 주민들은 구두닦이, 고물장수, 지게꾼, 공장, 발전소, 부두일등의 막노동을 생계 삼으며 품앗이 형태로 서로 도와 집을 지었다. 태극도 신자가 아니면 태극도 에서 집을 분양받거나 셋방을 얻어 거주하였다(남광지 78세 증언).

[5] 5) 1980년대 감천은 인구 약 25,000명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가족이 늘어나고, 분가를 하는 등 가구 구성 변화가 생겨 신축, 증축이 이루어 졌다. 당시 외벽 페인트 도장이 시작되었는데 한집에서 페인트를 칠하고 남으면 이웃집에서 남은페인트를 활용해 도색을 하여 지금의 경관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손판암 80세 증언)

[6] 6) 포구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마치 소의 형태와 같아 우암(牛岩)포라고 불렸다. 바위는 매축을 하면서 사라졌고 우암동 북동쪽의 산이 붉어 일본인들이 적기(赤崎)라고 이름 하였다.

[7] 7) 피란민들은 검역소의 화장터, 진단소와 같은 부속시설물 뿐만 아니라 천막 수용소에서 생활하고 그 외 개울이나 철길 빈터에 움막집, 하꼬방을 짓고 살았다. 당시 4부두의 북쪽 55보급 창고에서 군용박스, 깡통을 주어와 기름을 먹인 루핑(roofing)으로 지붕을 이어 거처를 마련했다. 아궁이, 코크스, 촛불의사용으로 빈번한 화재가 발생했는데 미군으로부터 라왕·미송 등을 지원받아 집을 짓기도 하였다(김찬옥, 88세 증언).

[8] 8) 1955년에는 미군 휘발유드럼통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도랑으로 흘러 도랑가에 기름이 누출되자 이를 확인하려고 불을 붙인 성냥불에 화재로 번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일부 장소에 미군이 수용소를 재건축하여 등록된 피란민만 입주 하도록 하였다. 임시수도기념관,『부산 1950년』, (주)신흥기획, 2013.02, 124쪽.

[9] 9) 1962년 화폐개혁 때 부산에서 가장 많은 현금이 나온 곳이 우암시장이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부흥했었다.

[10] 10) 지금의 부산진시장

[11] 11) 1970년대 이후 동명목재, 성창목재, 광명목재, 철사공장, 그릇공장, 방직공장등이 생겨나 많은 노동자들이 우암동에 모이게 되어 인구 약 3만 명으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12] 12) 인구가 늘어나면서 한정된 토지안의 가옥에 다락방을 만들고, 수직적 증축을 하면서 2층이 1층보다 더 내어서 짓는 가분수 형태의 독특한 주거양식이 생겨났다.

[13] 13) 부산광역시 사하구 2019년 09월 주민등록 인구 현황

[14] 14) 부산광역시 2019 인구통계표

[15] 15) 인터뷰에 의하면 1·4후퇴 흥남철수로 거제도에 도착한 뒤 적기 피란민수용소로 입주하거나, 한국전쟁당시 함경도 일대에서 걸어 내려와 서울, 인천을 통과해 피란민수용소로 유입되었다.

[16] 16) 피아제(Piaget, 1986-1980)의 인지발달론(Theory of cognitive development)에서 인간은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인간의 기억 속에 축적된 사고 또는 기본 구조를 담고 있다. 공간 구조와 틀(frame)은 인지할 때 남성은 상대적으로 넓은 이미지를 가지고 여성은 즉시적 환경의 세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였다.

[17] 17) ‘장을 보러 갈 때 넘는 고개’라는 뜻에서 장고개 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신발이 닳도록 장고개를 넘어 부산장으로 다녔고 뱃머리는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고 한다.

Acknowledgements

이 연구는 2020년도 한국연구재단 연구비 지원에 의한 결과의 일부임. 과제번호: 2016R1D1A3B01013867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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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Capital Memorial Hall. (2014). 1950 Pusan (pp. 20-71). Busan: Sinh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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