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효율적인 부엌을 만들기 위해 냉장고와 싱크, 가스레인지의 세 점을 이어주는 삼각형의 변의 총길이가 짧을수록 좋다’(Lee et. al., 1998)라는 문장은 부엌 설계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원칙이다. 일반적으로 ‘부엌의 삼각형(Kithen Triangle)’ 혹은 ‘작업삼각형(Working Traingle)’이라 부르며, 건축 각론에서 언급한 ㄱ자형이나 ㄴ자형, 11자형 등의 싱크대 배치 유형도 모두 이 원리에 기반한다. 그러나 그것의 구체적 등장 과정과 의미에 대해서는 크게 밝혀지지 않았다.
작업삼각형은 부엌의 효율성 개념에 기반하므로 그 기원을 밝히기 위해서는 부엌 설계에 효율성이 적용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효율성은 20세기 부엌의 가장 차별적 특성으로서 전통부엌과 대비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 때문이다(Do, 2020). 프레데릭 테일러로 대표되는 과학적 관리법이 이와 깊게 관련된다는 점은 이미 선행연구에서도 언급되었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틴 프레데릭의 『New Housekeeping』(1913)이나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의 프랑크푸르트 키친(1926~1927)에 관한 연구를 들 수 있다(Lee, 2005; Jeon, 2017). 특히 크리스틴이 1913년과 1915년의 저서를 통해 발표한 부엌의 동선 다이어그램은 20세기 부엌의 효율적 개선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가장 유명하며, 프랑크푸르트 키친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선행연구가 대부분 프랑크푸르트 키친의 디자인적 우수성을 분석하는 것에 집중된 경향이 있어, 구체적으로 작업삼각형과 이론적 영향 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주택설계에서 부엌의 중요성과 기능성을 생각할 때, 관습적으로 적용되는 작업삼각형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필요하다.
한편 릴리언 길브레스는 동작연구(Motion Study)의 대표적 연구자로서 크리스틴 프레데릭의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이를 다루었던 선행연구도 일부에 불과하다. Do(2020)가 릴리언 길브레스의 가사노동에서의 동작연구를 언급한 적이 있고, Pai(2013)가 근대건축사의 다이어그램 기법이 등장하는 현상과 과학적 관리법의 관련성을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다루는 작업삼각형에 대한 구체적 자료를 조명하였던 것은 아니다. 또한 릴리언의 생애와 주요 활동에 대한 국내 산업공학 분야의 선행연구도 있지만(Song, 2014), ‘순환작업공간(Circular Work Space)’에 대한 건축적 고찰은 다루지 않았다. 이에 본 연구는 릴리언 길브레스의 연구활동을 중심으로 20세기 초 가사노동의 효율성 연구와 부엌의 동선 다이어그램의 성립 과정과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작업삼각형 개념의 등장 과정과 의미에 대한 역사적 고찰로서, 과학적 관리법과 동작연구가 현대 부엌 계획에 미친 영향의 비판적 고찰을 시도한다. 특히 본 연구에서 다루는 작업삼각형 사례 자료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서 새로운 연구자료 발굴의 가치가 있다. 현대 부엌 계획의 이론적 발전을 위한 기초자료로 유용하며, 이를 통해 향후 실질적인 부엌 설계 및 주거 공간 계획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 연구의 방법과 범위
연구의 방법은 문헌고찰이며, 프랭크와 릴리언 길브레스 부부의 원저와 관련 문헌을 시간 순서에 따라 분석한다.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부엌의 효율성 연구 계보를 중심으로 이론적 특이점과 영향관계를 도출하여 작업삼각형의 의미를 분석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문헌을 연구 대상으로 하되 기술적(descriptive)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질적연구의 내러티브 연구로 분류할 수 있다. 연구 범위는 과학적 관리법의 효율성 개념과 동작연구의 관계, 20세기 초 가사노동의 효율성 연구, 릴리언 길브레스의 키친 프랙티컬과 순환작업공간에서 작업삼각형 개념의 등장까지이다.
원저로는 남편 프랭크 길브레스와의 공동연구인 『동작연구(Motion Study, 1911)』, 『피로연구(Fatigue Study, 1916)』, 『응용동작연구(Applied Motion Study, 1917)』 등이며, 릴리언의 단독 저서인 『경영심리학(The Psychology of Management, 1914)』, 『가정관리자와 그녀의 일(The Home-maker and Her Job, 1927)』과 자서전 『나의 기억: 릴리언 길브레스 자서전(As I Remember: An Autobiography by Lillian Gilbreth Moller)』도 참고하였다. 또한 동작연구의 이론적 행보와 그 이면적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참고자료로서 릴리언의 생애와 주요 연구활동을 분석한 논문 자료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대표적으로 그라함(Graham, 1994; Graham, 1997; Graham, 1999; Graham, 2013)을 비롯한, 산업공학자로서의 릴리언 길브레스를 다룬 선행 연구(Trescott, 1983; Des Jardin, 2013; Song, 2014)를 고찰하였다. 또한 가사공학 분야에서의 활동 비교를 위해 동시대 가정경제학자였던 크리스틴 프레데릭에 관한 연구(Rutherford, 2003)도 함께 참고하였다.
II. 과학적 관리법과 시간의 경제성
1. 『과학적 관리법의 원칙』과 효율성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은 20세기 초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적 영향을 미쳤던 산업공학이자 경영 이론이다. ‘테일러리즘(Taylorism)’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되기도 하지만, 헨리 간트(Henry L. Gantt), 칼 게오르그 바스(Carl Georg Barth), 프랭크 길브레스(Frank Gilbreth)와 릴리언 길브레스(Lillian Gilbreth), 해링턴 에머슨(Harrington Emerson) 등 동시대 다수의 연구자가 활동하였다. 과학적 관리법이 곧 테일러리즘으로 각인된 이유는 1911년 테일러의 저서 『과학적 관리의 원칙(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의 영향력이 컸다.
과학적 관리법의 등장 배경은 19세기 후반의 미국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노동자들은 공장의 생산량이 증가하게 되면 오히려 자신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염려하여 고의적이고 조직적인 근무 태만을 감행하였는데, 이를 당시 전형적인 ‘태업(怠業, Soldiering)’이라 부른다. 기업가들은 이를 타진하기 위한 경영 시스템을 강구하게 되었고 인적·물적 자원의 과학적 관리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였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과학적(Scientific)’이란 표현은 일종의 유행처럼 통용된 용어로서, 반드시 화학, 물리, 생물과 같은 과학 과목을 지칭하는 말과는 달랐다. 테일러가 “알고 있는 지식을 객관적인 수치로 주장할 수 있을 때가 과학적인 것”이라 설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테일러는 “최선의 경영이란 명백히 입증할 수 있는 규칙과 원칙을 기반으로 한 진정한 과학”이라 정의하였다(Taylor, 2020).
테일러가 제시한 과학적 관리의 원칙은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과거의 주먹구구식을 대신할 과학의 개발, 둘째 노동자의 선발과 훈련, 셋째 경영자와 노동자의 협력, 넷째 노사 간 균등한 책임 분배와 경영진의 새로운 시스템 구축과 운영이었다(Taylor, 2020). 즉 전통적인 경영자가 작업자의 개인적 판단과 능력에 일임하는 ‘솔선과 격려의 경영’을 행해온 것에 대해, 경영자가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시급히 필요함을 의미한다.
근본적으로 과학적 관리법은 노사 간의 원활한 협력과 상호관계를 강조하였다. 테일러는 ‘경영의 주목적이 고용인과 고용주 모두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라 보았으며, 노사가 서로 협력할 때 모두가 만족스러운 이익을 얻게 됨을 강조하였다(Taylor, 2020).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성과급(incentive)’ 제도이다. 생산 목표량 이상의 성과를 달성했을 때 그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경영자는 합리적인 비용으로 생산량 목표치를 달성하고 노동자는 무조건적 고강도 노동을 계속하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임금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는 것으로, 과학적 관리법은 20세기 초 산업사회의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근대적 가치로 부상한 개념이 ‘효율성(Efficiency)’이었다. 테일러는 각 현장에 맞는 작업의 효율성을 먼저 찾아내는 과정을 ‘과학적’ 경영의 중요한 단계로 보았다(Taylor, 2020). 테일러가 언급한 ‘국가적 효율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석탄, 철광석, 수자원같이 눈에 보이는 자원에 대한 관리만큼이나 노동력과 시간에 대한 과학적 관리가 효율성 향상의 중요한 수단이자 목표임을 강조하였다(Taylor, 2020). 과학적 관리는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을 찾아내고 제거하여 꼭 필요한 공정의 노동 환경을 재구축하는 방법론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2. 시간·동작연구와 시간의 경제성
효율성은 목표 생산량의 달성하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되는가를 기준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게 되므로, 더욱 ‘시간’의 가치에 집중하게 되는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전통사회 장인의 수공업과 달리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자의 시간이 가치 판단의 척도가 됨을 의미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가장 대표적 방법론이 ‘시간·동작연구(Time-Motion Study)’였으며, 정확히는 테일러의 ‘시간연구’와 길브레스의 ‘동작연구’로 구분된다. ‘시간연구(Time Study)’는 일련의 작업에 대해 스톱워치와 같은 시간 기록 장치를 이용하여 분석하는 것으로, 특정 작업에 걸리는 시간을 비교하는 방식을 말한다. 테일러는 공장 노동자의 작업을 관찰하여, 첫째 반복적인 주기가 있다는 점, 둘째 모든 작업에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양한 작업방식이 존재한다는 점, 셋째 작업 사이클마다 각 과정을 통제하는 요소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Taylor, 2020).
테일러는 각각 5파운드부터 40파운드까지 5파운드 단위로 다르게 실험하여, 삽 작업을 하는 데에도 하루 목표치의 효율성과 연관된 한 번의 적정한 무게가 있다는 예시를 내세웠다. 만약 일류 노동자로 가정한다면, 삽질 한 번에 흙을 18~27파운드씩 퍼담는 것보다 정확히 21파운드씩 담을 때 하루 동안 가장 많은 양을 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방법을 각 현장의 상황에 맞게 적용할 때 하루의 적정한 작업량을 산출할 수 있고 노사간 서로 만족할 만한 임금을 산정할 수 있어,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유리한 경영이 된다고 설명하였다.
이에 반해 ‘동작연구(Motion Study)’는 ‘사람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것’으로, 일련의 작업에 발생하는 동작을 최소 단위로 분해하고 측정하여 목적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을 말한다(Gilbreth, 1921). 동작연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프랭크와 릴리언 길브레스 부부를 들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해 ‘동작을 연구한다’는 개념을 최초로 주창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였고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프랭크는 『동작연구』에서 이미 ‘미국 정부가 이미 전쟁과 관련된 동작연구에 이미 수백만 달러를 썼고, 군인의 동작을 연구하여 검과 총, 총검을 연습하는 데 활용하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제는 평화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때임을 강조하였다(Gilbreth, 1921). 앞서 테일러가 언급한 ‘국가적 효율성’과도 일맥상통한다.
프랭크 길브레스는 건설업 사업가이자 미국기계엔지니어협회(ASME) 회원으로서 본래 테일러와 함께 과학적 관리법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노동자에 대한 기본적 입장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 결별하고, 1914년 이후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시간연구와 동작연구 모두 작업시간을 단축하는 것에 주력하였지만, 동작연구는 타임워치로 측정할 수 없는 ‘인간 요소(Human element)’를 도입하였다는 차이가 있다. 동작연구가 한층 학문적 깊이를 더할 수 있었던 데는 아내 릴리언의 역할이 컸다.1) 그 핵심은 ‘작업에 불필요한 동작(Eliminating of useless motion)을 제거하고 올바른 동작을 찾아내는 것’이었다(Gilbreth, 1921). 테일러는 길브레스의 동작연구를 시간연구의 하위개념으로 간주하였지만, 과학적 관리법에서 동작연구가 차지하는 권위를 전부 부정할 수는 없었다(Cresswell, 2012).
길브레스 부부는 동작연구의 세 가지 단계를 제시하였는데, 첫째 모범적인 작업 사례의 선정과 분류, 둘째 사례의 분석 및 동작의 법칙 추론, 셋째 발견한 법칙의 적용 및 작업의 표준화였다. 즉 동작연구에서는 하나의 작업에 필요한 인간의 움직임을 기본 요소들로 분해하고 재배치하거나 조정하는 과정을 수행하였다. 궁극적으로 동작을 표준화시켜 노동의 과학적 통제 및 계획에 유용한 방향을 추구하였다.
초창기의 프랭크 길브레스는 벽돌쌓기 작업을 예로 들었다. 벽돌쌓기가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일 가운데 하나이며 문명국가 비문명국가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작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Gilbreth, 1921). 예를 들면, 벽돌을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몰탈을 바르는 동작을 하는 것, 작업자의 자세, 벽돌을 잡기 편한 더미의 위치 등의 변화에 따라 걸리는 시간을 실험하여, 전체 18개의 동작을 5개로 줄일 수 있다는 결과를 제시하였다.
그 결과, 시간당 작업량이 벽돌 125개에서 350개로 증가하게 되므로 생산성은 높아지고 경영자와 노동자의 수입도 모두 충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Gilbreth, 1921). 프랭크는 이를 ‘동작경제(Motions economy)’라는 용어를 들어 강조하였다(Gilbreth, 1921). 동작연구가 생산성 및 경제성으로 연결된다는 의미로서, 즉 시간의 경제성을 지칭한다. 산업사회의 효율성에 내포된 시간의 가치는 전통적수공업과 확실히 구분되는 근대적 특성이었다.
Ⅲ. 동작연구와 가사노동의 효율성 연구
1. 피로연구와 동작의 표준화
산업공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릴리언은 과학적 관리법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작업 효율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동작을 가려내기 위한 ‘피로(Fatigue)’라는 요소에 주목한 것이다(Gilbreth, 1919). 1916년 출간한 『피로연구(Fatigue Study)』에 따르면 모든 작업의 동작에는 ‘필요한 피로’와 ‘불필요한 피로’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 책의 부제가 ‘인간에게 가장 불필요한 낭비의 제거: 동작연구의 첫 번째 단계(The Elimination of Humanity's Greatest Unnecessary Waste: A First Step in Motion Study)’였던 것처럼, 불필요한 피로를 줄이면 작업의 전체적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즉, 노동의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작업자의 신체 및 환경조건에 맞는 다양한 장치를 개발하고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 줄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만약 의자나 도구가 부족하거나 적절하지 못한 상황, 소음이 많고 조명이 충분하지 않은 작업 환경 등이 모두 효율성의 저하로 연결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도구 개발이나 작업 환경 조성에 있어 동작연구에 따른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노동자가 장시간 서서 작업할 때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의자(Adjustable chair), 고속 기계가 작동하는 건물에서 바닥 진동을 완충시킬 수 있는 스프링 달린 의자 등을 개발하고 소개하였다(Gilbreth, 1919).
길브레스 부부는 동작연구에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초창기의 프랭크는 활동사진을 많은 프레임으로 나누어 찍는 방식을 채택하였으나 결정적으로 스톱워치의 정확성을 보장할 수 없었다. 당시의 스톱워치가 다양한 속도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길브레스 부부는 사진을 초 단위로 분석하는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를 도입하였다. 1시간을 1만 개의 단위로 나눈 특수시계를 사진 프레임과 함께 촬영하는 기법을 말한다. 작업자가 들어가 있는 벽·천장·바닥의 좌우상하에 격자무늬의 스크린(Cross-Sectioned Screen)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작업자가 움직인 만큼의 길이와 넓이를 계산하는 식이었다(Gilbreth, 1917).
그러나 여전히 미세한 동작까지 모두 분석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그다음에는 ‘싸이클그래프(Cyclegraph)’라는 특수 사진 기법을 도입하였다. 작업자의 손가락, 무릎, 팔꿈치 등에 작은 전구를 부착시켜 카메라의 노출을 길게 하여 촬영했는데, 이를 통해 작업자의 움직임을 일련의 빛을 ‘선(line)’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선의 모양이 간결하고 일관적일수록 효율적인 동작들로 이루어진 동선을 의미한다고 보았다(Gilbreth, 1917).
이후에는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크로노싸이클그래프(Chronocyclegraph)’도 도입하였다. 싸이클그래프는 전구를 계속 켜놓고 촬영하였지만, 이것은 일정 시간 동안 일정하게 깜박거리도록 조절한다는 점이 달랐다. 사진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동작의 방향과 시간 측정을 보완한 것이다. 빛의 선이 점의 형태로 기록되므로 그 간격을 통해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다. 동작의 시작점보다 나아가는 방향으로 전구의 빛 크기 차이를 이용하면 마치 화살표처럼 사진이 찍히게 되어, 동작의 방향도 분석할 수 있었다(Gilbreth, 1917).
이에 더하여, 동작 사진을 보다 입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당시 입체사진 촬영에 이용하던 ‘스테레오스코픽 카메라(Stereoscopic camera)’를 연계하였다. 관찰 대상의 움직임을 찍고 빛의 궤적으로 분석해 ‘스테레오싸이클그래프’로 만든 것이다. 움직임 궤적의 3차원 좌표값을 추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본래 스테레오스코픽 사진을 보기 위해서는 스테레오스코프 같은 특수 장비가 필요하지만, 길브레스 부부는 특수 장치가 없어도 관찰자가 동작을 파악할 수 있도록 결과물을 철사 모형으로 제작하였다<Figure 2>.

Figure 2.
Painting the Time Spot on a Motion Model to Correspond with Those of a Chronocyclegraph through a Stereoscope (left), A Wire Models Showing One Man’s Progress of Learning Paths of Least Waste. (right)
Source. Gilbreth, 1917
길브레스 부부는 이러한 사진기술을 이용한 동작데이터들을 행동별로 분류하여 최종적으로 도표를 만들었다. ‘써블리그’라 명명했던 이것은 ‘Gilbreth’ 철자를 거꾸로 조합하여 만든 명칭이었으며, ‘찾기, 발견하기, 고르기, 잡기, 위치잡기, 조립하기, 사용하기, 분리하기, 검사하기, 운반하기, 다음 동작을 위한 위치잡기, 짐풀기, 운반하기, 기다리기(불가피한 대기), 기다리기(피할 수 있는 대기), 생각하기’ 등의 동작을 간단한 그림, 색깔, 기호로 구분한 것이다(Des Jardins, 2013).
이는 동작을 요소별로 분해하고 불필요한 피로요소를 가려낸 뒤 필요한 동작으로만 재구성하는 표준화의 과정을 의미한다. 표준화는 과학적 관리법이 추구하는 협업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Taylor, 2020). 길브레스 부부가 『Fatigue Study』를 통해 “표준 인간이란 최상의 동작연구와 시간연구로 관찰될 수 있는 이상적 인간이며, 최선의 동작을 지도받고 시간연구 전문가의 지시에 가장 빨리 반응할 수 있는 노동자”라 밝힌 것에서도 알 수 있다(Gilbreth, 1914).
2. 동작연구와 ‘가사노동의 효율성’ 연구
과학적 관리법의 영향은 20세기 초 미국 중산층 가정에도 파급력을 넓혔다. 특히 가사노동도 공장노동처럼 전문적으로 경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중산층 주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대표적으로 마사&로버트 브루어(Martha and Robert Bruère)의 『가정 효율성의 향상(Increasing Home Efficiency)』, 크리스틴 프레데릭의 『새로운 가정관리(New Housekeeping, 1913)』, 조지 보인튼 차일드의 『효율적 부엌(The Efficient Kitchen, 1914)』, 매리 패티슨의 『가정공학의 원칙(Principles of Domestic Engineering, 1915)』등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크리스틴 프레데릭(Chrisitine Frederick)은 이 방면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인물로 꼽힌다. 크리스틴은 1912년에 미국의 유명 여성지인 『레이디스 홈 저널(Ladies’ Home Journal)』에 중산층 주부의 가정관리에 대한 몇 편의 글을 발표하였는데 그것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레이디스 홈 저널의 가정 부문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에는 그린론(Greenlawn)의 자택에 ‘애플크로프트 가정실험소(Applecroft Home Experiment Station)’를 열고 그곳에서 가전제품에서 식품에 이르기까지 약 1,800개 정도의 다양한 제품을 조사하였다.2)
그의 핵심 주장은 바로 ‘가사노동의 효율성’이었다. 1913년에 출간한 『새로운 가정관리(New Housekeeping)』는 1912년 레이디스 홈 저널에 기고한 같은 제목의 연재를 한 권으로 엮은 것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효율성이야말로 당시 미국 중산층 여성들이 가정관리에 있어 겪고 있는 혼란을 해결할 수단이자 목표’임을 강조하였다(Christine, 1913) 이 책은 중산층 주부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었고 이후 미국을 넘어 유럽에도 번역되었다. 1915년에는 『가사공학(Household Engineering: Scientific Management in the Home)』을 발간하고,3) 이른바 가사공학 분야의 전문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크리스틴의 연구 활동은 길브레스 부부의 동작 연구와 상당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일례로 청소와 음식 만들기 등에 있어 올바른 동작과 그릇된 동작을 구분하고자 했던 것, 시간을 단축하고 피로 요소를 줄일 수 있는 도구와 의자 등을 제안한 것은 이미 『Motion Study』나 『Applied Motion Study』에서 언급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크리스틴의 연구가 인기를 얻기 전인 1912년 4월, 길브레스 부부는 「가사에서의 동작연구(Motion Study in Household)」라는 글을 『사이언스 아메리카(Science America)』를 통해 먼저 발표하였다. 길브레스 부부는 가사노동에 일어나는 동작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크게 세 그룹으로 분류하고 그 안에서 각각 13~15개의 변수를 나누어 가사노동을 분석한 바 있다. 첫째,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오는 피로, 둘째 불필요한 피로, 셋째 효율적인 작업 사이 발생하는 불가피한 피로로 구분하였으며, 가사노동의 속도를 떨어뜨리거나 지속적인 동작을 방해하지 않는 환경 조성의 필요성을 피력하였다(Gilbreth, 1912).
즉, 가사노동에서도 ‘잘못된 동작을 골라내고 올바른 동작으로 일련의 작업을 구성’할 것을 말하며, 크리스틴의 주요 주장도 이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Household Engineering』의 1919년 판에는 프랭크 길브레스가 추천사를 실었는데, 크리스틴이 강조하는 효율성이 곧 ‘불필요한 동작의 제거(Elimination of useless motion)’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Frederick, 1919). 20세기 중산층 주부들에게서 큰 주목을 받았던 가사노동의 효율성 연구는 본래 과학적 관리법의 효율성 개념을 가정영역에 응용한 것으로, 직접적으로 동작연구를 차용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Figure 3.
Using the Short Handled and Long Handled Dustpan (left), Vegetable Preparing Table (right)
Source. Frederick, 1919
3. 부엌의 동선 다이어그램과 근대적 기능주의
동작연구는 인간의 움직임을 선(line)으로 기록하고 측정하며 계획할 수 있음을 표방하였다. 노동자가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 계획에 동선 개념이 쓰였던 것처럼, 가사노동에 대한 관심도 곧 부엌을 무대로 한 효율성 동선 계획을 중심으로 표현되었다.
일례로 미국의 부엌 가구로 유명했던 후지어(Hoosier)사의 1911년 11월의 광고를 들 수 있다. 광고에 삽입된 도해로서, 부엌 가구 배치를 재편하기 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복잡한 동선으로 설명한 그림이다. 후지어 부엌 가구를 도입할 경우 ‘걷는 거리가 단축(Saving Miles Step)’되고 동선이 개선되어 편리해진다는 설명을 담고 있다(House Beautiful, 1911). 동선의 단축화가 가사노동의 효율성을 실천하는 주요 도구이자 목표로 강조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크리스틴의 효율성 주장에서도 이와 같은 동선 다이어그램이 등장한 바 있다. 크리스틴의 1913년 저서 『New Housekeeping』에서 간단한 다이어그램으로 발표하였다가 1915년 『Household Engineering』에서 다시 다듬어 넣었을 정도로 반복적으로 이를 강조하였다. <Figure 5>와 <Figure 6>을 보면, 크리스틴은 이 그림에서 부엌 동선을 ‘음식 준비 동선(A)’와 ‘정리하는 동선(B)’으로 나누었는데, 각각 좌측의 A와 B의 동선이 서로 교차하고 복잡한 형상인 것에 반해, 우측 그림은 음식을 준비하는 일련의 순서에 맞게 정렬된 동선을 보여준다. 복잡하고 꼬여있는 비효율적 동선을 간결하고 짧은 거리의 효율적 동선과 대조시키는 방법을 통해, 부엌의 효율성 개선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의도가 파악된다.

Figure 5.
Christine Frederick’s Kitchen Planning: Comparison an Inefficient Kitchen (left) with an Efficient Kitchen (right)
Source. Frederick, 1913

Figure 6.
Christine Frederick’s Kitchen Planning: Comparison an Inefficient Kitchen (left) with an Efficient Kitchen (right)
Source. Frederick, 1919
크리스틴의 동선 다이어그램은 『New Housekeeping』의 인기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례로서, 1921년 이레네 뷔테(Irene Witte)가 이를 번역하면서 유럽 사회에도 소개되었다. 가사노동의 효율성이란 개념은 합리적이고 기능적 공간으로서 유럽의 부엌 및 주거 공간 설계에 큰 영감을 주었으며,4) 가장 대표적 사례가 프랑크푸르트 키친(Frankfurt Kitchen)이다. 프랑크푸르트 키친은 1926년에 오스트리아의 여성 건축가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가 설계하였고, 에른스트 마이가 이끄는 “새로운 프랑크푸르트(Das Neue Frankfurt)’의 공동주택 프로젝트를 통해 설계되어 당시 12,000호의 가구에 도입되었다.5) 3.44 m×1.90 m 유닛의 이 작은 부엌 모델은 아주 좁은 면적의 부엌에서도 동선의 낭비 없이 주부가 일할 수 있는 효율적 디자인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Lee, 2005). 1927년 프랑크푸르트 전시회를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오늘날에도 수준 높은 디자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Figure 7>을 보면 크리스틴과 유사한 부엌을 동선 다이어그램에 근거하여 설계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쉬테-리호츠키는 크리스틴의 저서를 자신의 바이블이라 불렀을 정도로 신봉하였다(McLeod, 1983). 프랑크푸르트 키친의 디자인적 우수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계획 기법은 1910년대 이미 미국에서 일어났던 가사노동의 효율성 주장을 그대로 따랐음을 보여준다. 동선 다이어그램이 20세기 효율적 부엌 설계의 중요한 방법론으로 중요시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Figure 7.
A Diagram of Efficient Circulation of the Frankfurt Kitchen (right), Compared to an Inefficient Traditional Kitchen (left)
Source. Werkbundarchiv
이러한 현상은 과학적 관리법의 영향이 주거 공간 내 투입된 직접적 증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동선 다이어그램이 오직 과학적 관리법의 영향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건축 평면도에서 동선 개념이 등장한 기록은 19세기 말에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Figure 8>은 미국 건축가 프란시스 오스본이 1888년에 출간한 『주택 계획 기법의 주안점(Note on The Art of The House Planning)』에 나오는 도판이다. 이 그림은 주택 계획에서 몇 가지 주요 동선을 나타낸 것으로 주인과 하인의 동선을 나누어 구분한 것이다. 그림에서 ‘Pu’는 ‘Public’, ‘Pi’는 ‘Private’, ‘S’는 ‘Service’, ‘Sp’는 ‘Servant Private’을 의미한다(Osborne, 1888). 오스본은 주택 계획을 방(Room)과 그것을 연결하는 복도 및 홀로 나누어 설명하였는데, 특히 통로와 홀은 집을 이루는 뼈대(Skeleton)에 비유하여 그 공간에 발생하는 동선의 종류를 네 가지로 구분하였다. 다만 이 동선에는 시작과 끝이 없으며, 동선의 형상이 간결하거나 복잡한 것 등으로 구분하지 않았고 총길이를 비교하지도 않았다. 즉 동선 작성에 있어 시간 개념이 투영되어 있지 않았고, 종류를 구분하였을 뿐 효율성을 도해한 것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또 하나, 건축에 사용되는 모든 동선 도해가 간결한 모양이나 거리 단축을 목표하는 것은 아니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백화점을 계획할 때 고객과 직원, 물류의 동선 계획이 가장 중요하지만, 고객 동선의 경우에는 오히려 일부러 많은 거리를 돌아 매장을 오래 걸어 다니도록 계획한다는 사실과 분명히 차별된다. 건축 평면도에 그려지는 동선 다이어그램은 필요에 따라 다양한 목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부엌의 동선 다이어그램은 과학적 관리법의 효율성이 적용된 사례임이 분명하다. 항상 간결하고 최단거리가 되기를 도모하였다는 점에서 시간의 경제성이 적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과거 하인이나 하녀 등으로 부엌의 작업자가 여러 명일 수 있었던 것과 달리, 한 사람의 작업을 대상으로 동선을 상정하였다는 점도 이 시기부터 두드러지는 부엌 계획의 특징으로 관찰된다. 부엌의 동선 다이어그램은 근대적 기능주의의 산물로서, 한 사람의 효율성 동선을 표방하기 시작하였다.
IV. 순환작업공간과 작업삼각형
1. 키친 프랙티컬(The Kitchen Practical)
릴리언 길브레스가 주로 산업현장을 대상으로 연구해오던 동작연구를 가정영역으로 옮기게 된 것은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였다. 1924년 남편 프랭크 길브레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릴리언이 길브레스 회사를 떠맡게 된 어려운 상황의 영향이 컸다. 이전의 주요 고객층은 갑작스럽게 등을 돌렸고, 남편의 생전에 약속되어있었던 강연 일정도 취소되었다. 미국기계엔지니어협회도 릴리언의 회원 가입을 거절하였는데, 협회는 릴리언의 가입문의 편지에 대해 ‘여성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anti-woman feeling)’며 거절하였다(Graham, 1999). 20세기 초의 산업 사회는 여성의 학위와 전문지식만으로 진입하기 어려운 남성 중심적 성격이 컸다(Cresswell, 2012).
그러나 릴리언은 그 위기를 역으로 활용하여, 여성을 많이 채용한 회사의 경영 컨설팅이나 상품개발 고문을 맡기 시작하였다. 주로 여성 직원이 많았던 존슨앤드존슨이나 메이시스 백화점(Macy’s) 등이 길브레스 회사의 새로운 고객이 되었다. 시기적으로 볼 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성장이라는 배경도 중요하게 작용하였다(Cowan, 1983). 여성의 일자리 증가로 인해 여직원 관리에 대한 과학적 방법론을 주목하기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중산층 가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으로 인해 ‘소비자(Consumer)’로서의 여성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과 도 부합하였다.
릴리언은 산업공학자와 경영심리학자로서의 전문성을 내세워 차별화를 기하였다. 동작연구를 생활에 적용하여 사무용 타자기에서 부엌까지, ‘합리적 움직임’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각종 발명품도 선보였다. 대표적으로 페달 달린 휴지통, 냉장고의 문 쪽에도 음식물을 보관하는 선반을 달게 된 것 등을 들 수 있다(Graham, 1999). 또한 침구와 테이블 정리, 세탁, 설거지, 베이킹과 같은 동작을 요소로 구분하고 이를 정량적으로 계산해내는 방법 등, 독자적인 동작연구의 기법을 적용한 가사노동 효율성 연구를 본격화하였다. 릴리언이 1927년에 발표한 『가정관리자와 그녀의 일(The Home-Maker and Her Job)』에 따르면, ‘할머니 때의 하던 습성대로 집안일을 행하는 것은 무용하다’는 대목을 볼 수 있다. 특히 중산층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효율성(Inefficiency)’에 주목하고 이를 시급히 고칠 것을 강조하였다.6)
다만 릴리언은 『Applied Motion Study』에서 설명했던 복잡한 사진기술이나 그래프를 적용하기보다, 주부층에 좀 더 심리적이고 친숙한 관점으로 접근하였다는 그간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베이킹 순서에 맞는 자리에 핀을 꽂아놓고 일련의 베이킹 과정 동안 주부가 부엌 내에서 걸어야 하는 거리를 줄의 길이로 비교하는 방식이었다(Graham, 1999). 부엌의 효율성을 강조하였던 것은 이미 익숙한 개념이었으나,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설명하였다는 점에서 주부층에 훨씬 ‘과학적’으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6년 10월에는 소정의 연구 결과를 라디오에서 연설하였고, 같은 해 산업공학협회의 ‘피로요소제거위원회(the Fatigue Elimination Committee of the Society of Indusrtial Engineer)’의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1927년에는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 티처스 칼리지(Teacher’s College in New York)에서 열린 가정 경영과 과학적 관리법의 적용에 대한 컨퍼런스의 강연도 맡았다. 이 강연은 총 200명 규모의 가정경제학자와 학생들, 사업 관계자 등이 참가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가정 효율성(Domestic Efficiency) 분야에서 릴리언은 더욱 명성을 높여갔다(Graham, 1999). 이러한 릴리언의 연구활동은 곧 부엌 관련 산업계에 포착되었다. 브루클린 보로우 가스사의 사장이었던 메리 딜런(Mary Dilon)은 1927년 시카고에서 열렸던 ‘미국가스산업협회’에서 릴리언의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동작연구와 효율성이라는 개념이 가스 산업에 적극적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직감하였다(Graham, 1999). 딜런은 릴리언에게 상업화가 가능한 부엌 프로토 타입의 설계를 의뢰하였고, 그 결과물로서 ‘키친 프랙티컬(the Kitchen Practical)’이 1929년 코니 아일랜드의 ‘여성박람회(Woman’s Exposition)’를 통해 발표되었다.
당초 이 부엌은 중산층 주부를 공략한 상업적 모델로 개발되었다. 가사노동의 전문성을 의미하는 ‘관리용 책상(Planning Desk)’을 제안하여 책상 위에 라디오, 타자기, 전화기, 책 등으로 꾸민 점도 인기를 끌었다. 마치 공장장이나 경영자의 책상과 같은 전문성을 상징하였기 때문이다(Cresswell, 2012). 이 책상을 영수증, 요리책 등을 정리하고 가사계획을 세우는 곳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기존 부엌 모델과의 차별성을 내세웠다.
‘실용적 부엌’이란 의미의 키친 프랙티컬은 맞춤형 부엌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우선 주부의 평균 신장을 고려하여 작업대 높이를 고안하였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었는데, 평균 신장 5피트 7인치의 여성으로 가정했을 때 높이 36인치의 부엌 작업대가 적합하다는 분석치를 내세웠다. 이는 신체에 맞는 작업대를 사용하였을 때 피로요소가 감소한다는 동작연구의 논리에 따른 것이다.
릴리언은 두 종류의 베이킹 과정을 사례로 들어 키친 프랙티컬의 효율성을 설명하였다. 전형적인 베이킹 행태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가려내고 필수적인 동작으로만 정렬하면 동작의 ‘개수’를 줄이고 총 ‘거리’를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면 기존의 부엌에서 커피 케이크 하나를 만드는데 주부가 걸어야 했던 거리가 43미터였다면, 키친 프랙티컬에서는 7.3미터 밖에 되지 않아 최대 6분의 1로 단축된다는 것이다(Cresswell, 2012). <Figure 11>은 1930년 3월에 릴리언이 『Architectural Record』에 발표한 키친 프랙티컬의 설명과 그림이다. 그림 우측에 두 개의 차트를 비교하였는데, 베이킹에 소요되는 50개의 동작이 키친 프랙티컬에서는 24개로 감소된다는 리스트를 통해 주장을 명료하게 정리한 것을 볼 수 있다.
2. 순환작업공간과 작업삼각형
건축적 관점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키친 프랙티컬을 통해 ‘순환작업공간(Circular Work Space)’이라는 개념을 발표하였다는 점이다. 위 <Figure 11>에서 두 개 도면 중 아래 그림의 점선 곡선을 말한다. 주부가 부엌 내 한 지점에 서서 순환하는 작은 공간을 만들며 일할 때 에너지의 큰 낭비 없이 최대의 효율성을 만족시킨다는 개념이다. 릴리언은 바퀴가 달린 이동식 작업대(Service table on wheels)를 제안하였는데, 이 작업대를 하나의 지점으로 하고 냉장고와 스토브 등을 순환하며 작업할 때 최소한의 면적에서 최대의 효율적 작업공간이 형성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전까지 부엌의 효율성 동선이 그려지던 방식에 비하여, ‘순환’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다. 최소의 면적에서 최대의 효율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을 ‘순환 동선’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낸 것이다. 부엌의 전체 바닥 평면을 대상으로 동선을 그려내던 방식과 달리, 이동식 작업대를 제시하여 효율성이 집결된 최소면적의 작업공간을 스스로 창출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이 개념은 미국 사회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릴리언은 부엌 계획의 독보적 존재로 부상하였다(Graham, 1999).7)
그 후속연구로 등장한 것이 ‘작업삼각형(Work Triangle)’이었다. 이 연구는 코넬대와 일리노이 공대의 메리 하이너와 헬렌 맥컬로우, 그리고 퍼듀 대학의 마빈 E. 먼델(Marvin E. Mundel)과 오레곤 주립대의 마우드 윌슨이 참여했는데, 이중 먼델은 퍼듀대학에서 길브레스의 동작연구를 계승한 연구자로 평가받는다.8)
이는 1949년 일리노이 공대 건축학과가 발행하는 『Circular』를 통해 발표되었고, 일리노이 공대의 건축연구회(Building Research Council)의 활동 중 소규모 주택 연구회(Small Homes Council)의 연구로서 소형 주택에 적합한 대량생산형 부엌 모델개발 연구의 일환이었다.

Figure 12.
The Two Papers for Kitchen Planning as the Circular Series
Source. University of Illinois Archives)
먼델 등은 먼저 ‘기존의 부엌 내 기물 배치가 건축적 계획과 조화롭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Circular C5.32, 1949). 대표적 문제점으로 수납공간이 부족한 점, 불편한 설비와 비효율적인 배치, 실·창문·문 크기와 같은 건축적 요소 등을 들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첫째 필요 공간의 산정, 둘째 건축적 공간의 계획, 셋째 효율적인 설비 배치의 순서의 연구를 2편의 논문을 통해 발표하였다. 그 연구 시리즈의 결론으로서 제안한 것이 작업삼각형이었으며, 순환작업공간을 기본으로 하되 부엌의 효율성을 완성하는 구체적인 세 지점의 거리와 각도를 수치적으로 계산한 연구였다.
맨 처음 그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제시한 작업삼각형의 모형은 각 변의 길이가 ‘9피트 6인치-5피트 6인치-6피트 6인치이고 각 변의 총합이 21피트 6인치’가 될 때였다. 이때 삼각형의 작업 경로는 자연스럽게 순환의 형태가 되어, 최소의 면적 내 최대의 효율을 만족하는 순환작업공간을 이루게 된다. 원래 릴리언이 순환작업공간에서 이동식 작업대를 제시하였던 것과 달리, 먼델 등은 싱크대, 냉장고, 가스레인지를 부엌 효율성의 구체적 세 지점으로 지정하였다는 차이가 있다.
삼각형 각 점의 거리에 따른 효율성 차이를 증명하고자,먼델 등은 서로 다른 삼각형 동선을 가진 두 개의 부엌 배치를 비교하였다. 10피트×12피트(약 11 m2)의 부엌 두 개를 비교하여 냉장고-레인지-싱크대라는 각 점 사이의 각도와 거리에 따라 부엌의 효율성 점수가 달라지는 것을 사례로 들었다. 여기서 ‘점수’란 <Figure 14>의 자체적인 기준표의 총합을 말한다. 수납(Storage), 작업대(Counter), 기구 사이의 거리(Distances between appliances)로 구성한 점수표로서, 동일한 크기의 부엌 두 개를 가정했을 때 작업대의 배치에 따라 삼각형 각 변의 거리가 달라지며 결과적으로 부엌의 전체 효율성 점수도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Figure 14>의 점수표에 따르면, Plan B의 삼각형 동선 점수가 100점으로 나와 Plan A의 삼각형 동선보다 효율적인 구성임이 증명된다. 즉, 같은 부엌 공간 안에서도 작업삼각형의 크기에 따라 가사노동의 효율성이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한다. 이를 기반으로 ‘L자형, U자형, 끊어진 U자형(Broken U type)’ 등 다양한 배치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배치에 따라 삼각형 각 변의 길이가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냉장고와 싱크대 간의 거리가 4~7피트, 싱크대와 레인지 사이는 4~6피트, 레인지에서 냉장고까지의 거리는 4~9피트 범위가 될 때 효율적인 삼각형 동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작업삼각형 연구의 최종 결론이었다(Circular C5.32, 1949). 하지만 최적의 순환동선을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은 분명하나, 부엌의 공간 계획이 오직 기능주의적 관점에 구속되는 한계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다. 20세기 초부터 진행되어왔던 부엌의 동선 다이어그램이 최적의 순환동선으로 정리되는 일종의 성과로 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부엌의 설계 범위가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냉장고로 압축되는 현상으로도 판단된다.
3. 작업삼각형과 기능주의 다이어그램
이상의 고찰을 종합해보면, 작업삼각형은 20세기 초부터 등장한 부엌의 동선 다이어그램과 순환작업공간 개념의 융합적 결과로 정의할 수 있다. 먼델 등이 발표한 작업삼각형 개념은 부엌 계획과 건축의 조화로운 계획을 의도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동선 다이어그램의 정형화와 수치적 정확성을 기하는 결과에 머물렀다. 이는 20세기 초에 확산되었던 부엌의 효율적 동선 만들기의 기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근본적으로 과학적 관리법의 영향 아래 여전히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동작연구는 인간의 움직임을 선으로 나타내고 계획하는 방법을 발전시켰고, 동작의 표준화와 동선의 단축화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부엌의 동선 다이어그램이 과학적 관리법의 영향에 따랐음은 앞서서도 살펴보았지만, 부엌 설계의 기준이 동선 다이어그램에 좌우될 때 나타나는 오류와 한계를 다음과 같이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첫째, 20세기 초 부엌의 동선 다이어그램은 연구자가 ‘올바른 동작과 순서’라고 정의한 이상적 작업 프로세스를 나타낸 다이어그램이었다. 따라서 현실적인 부엌 노동과의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 부엌에서는 항상 다양한 작업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을 누락시켰고 가족생활에 따라 가사노동의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는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가사노동은 공장노동처럼 환경조건의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하므로, 산업노동을 대상으로 발전된 동작연구 방법론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
실제로 크리스틴 프레데릭의 부엌 계획을 다시 살펴보면, 부엌에서 일어나는 작업을 ‘음식 준비(A)’와 ‘정리(B)’라는 두 가지로만 지나치게 단순화하였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A와 B 사이의 반복적인 동선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준화를 방해할 만한 요소는 동선 설정의 첫 단계에서 미리 배제하였기 때문이다. 크리스틴은 가사노동이 공장노동과 달리 통제된 노동환경 조성이나 표준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고, 이는 프랑크푸르트 키친에서도 마찬가지의 오류로 확인된다. 만약 부엌에서 주부가 계획된 동선 순서를 철저히 지키지 않는다면 부엌의 효율성은 이론만큼 쉽게 충족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은 20세기 산업사회의 합리주의와 기능주의 담론에 따른 과학적 관리법의 비약적 확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과학적 관리법을 가정영역에 여과없이 받아들였던 것으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단순화와 표준화, 무리한 객관화의 일면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일어난 미국 가정의 공간 변화를 연구한 돌로레스 헤이든의 정의를 인용하자면, 효율적 부엌 개념의 등장과 발전은 시작부터 ‘가짜 과학적 관리(Pseudoscientific management)’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없다(Hayden, 1982).
둘째, 부엌의 동선 다이어그램이 내포한 비과학적 속성은 동선 자체의 수치적 정확성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동선 다이어그램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대중을 설득하였다. 크리스틴의 동선 도해를 다시 살펴보면, 정확한 수치적 근거에 기반한 동선을 작도한 것이었다기보다 마치 효율성이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는 직관적 그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레이디스 홈 저널에서의 명성 이후 그의 연구 활동이 주로 상업적 목적으로 진행되었던 것과도 깊게 연관된다(Rutherford, 2003). 앞서 살펴본 후지어의 부엌 광고도 마찬가지의 설득력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동선을 비효율성 사례로 강조하거나 두 개의 동선을 비교하는 그림은 부엌의 실제적 효율성을 입증하기보다 동선 다이어그램을 더욱 과학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하는 상징적 장치로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1930년 3월과 10월에 소개된 키친 프랙티컬의 안내문에서 그림 차이를 들 수 있다. 키친 프랙티컬을 발표할 당시의 릴리언 길브레스는 부엌 평면 전체에 동선 다이어그램을 그리는 대신, 요리 공정의 전체 리스트가 얼마나 줄어드는가를 통해 키친 프랙티컬의 장점을 설명하였다. 본래 릴리언의 상세한 동작연구에 따르자면 전체 부엌 평면을 대상으로 일방향의 동선을 그리기 어렵기 때문이다(Pai, 2013). <Figure 11>을 다시 보면, 1930년 3월에 길브레스는 순환작업공간의 범위만 점선으로 표시하였고 전체적인 동선은 그려 넣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해 10월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서는 동선의 도해 방식을 바꾸었다.
<Figure 15>를 보면, 우측 그림에 순환작업공간을 원형으로 표시하면서 순차적인 동선을 추가하였고, 좌측의 복잡한 비효율적 동선과 비교하는 방식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순환작업공간을 도입하였을 때 부엌의 효율성이 개선되는 효과를 강조한 직관적 도해로서, 키친 프랙티컬의 실제적 동선이 아니라 더욱 대중적인 설득력을 위해 부수적으로 그려넣은 다이어그램이었다.

Figure 15.
Plan No. I & II,” by Lillian Gilbreth, in “New York Herald Tribune Institute Presents Four Model Kitchens,” in New York Herald Tribune, October 1930.
Source. Purdue University Libraries
셋째, 순환작업공간의 후속연구로서 작업삼각형은 부엌 동선의 설계에 있어 더욱 과학적·객관적 수치 분석을 강화하였지만, 부엌의 설계 범위를 싱크대-가스레인지-냉장고 둘레에 한정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작업삼각형에 기준한 부엌 설계에 따른다면 점점 주택 전체에서 부엌이 갖는 공간적 관련성은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부엌의 동선 다이어그램은 과학적 관리법의 기능다이어그램에 입각하여 성립하였지만, 그것을 부엌 설계에 적용시키는 과정에서 건축 다이어그램으로 변환된 증거는 찾아보기는 어렵다. 또한 한 사람의 동선에만 기반하므로, 다양한 부엌 사용방식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발견된다. 가족의 다양성과 변화가 요구되는 현대에 있어 향후 다양한 부엌 구성을 생각해야 한다면, 주택 계획에서 현재와 같은 작업삼각형의 부엌 설계 기법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V. 결 론
본 연구는 현대 부엌계획에 관습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작업삼각형에 관한 비판적 고찰로서, 과학적 관리법의 효율성과 릴리언 길브레스의 동작연구 및 순환작업공간의 등장 과정을 작업삼각형의 이론적 성립 과정에 대입하여 분석하였다.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20세기 초 산업사회를 지배했던 과학적 관리법은 산업현장을 넘어 가정영역에도 확산되었고, 부엌은 주거공간 내 가장 기능적 공간으로서 가사노동의 효율성을 구현할 장소로 주목받았다. 근대적 가사노동은 경영자로서의 합리성과 노동의 과학적 관리라는 가치를 표방하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20세기 초 가정경제학자들의 활동 사례를 발견할 수 있지만 직접적인 이론적 뒷받침이 된 것은 길브레스 부부의 동작연구였다.
둘째, 동작연구에 따른 동작의 표준화와 동선의 단순화는 동선 다이어그램으로서 부엌의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기능주의적 관점을 관철시켰다. 부엌의 동선 다이어그램은 건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동선 기법 중에서도 시간의 단축을 목표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비효율적 동선과 효율적 동선을 비교하는 방식은 과학적이라기보다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직관적 도해로서 효율적 부엌을 만들고자 하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셋째, 부엌 동선 다이어그램은 가사노동의 이상적 순서를 연결한 것으로서 부엌에서 실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변수를 간과하였다. 크리스틴의 주장에서 오류를 확인한 바와 같이, 부엌일은 공장노동처럼 한 두 가지의 공정에 따른다고 보기 어렵고 단순한 몇 가지 동선으로만 분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20세기 부엌사(史)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키친이 크리스틴의 연구에 영향을 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디자인 우수성 이외에 실제적 효율성의 과학적 근거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헤이든이 언급한 ‘가짜 과학적 관리’의 의구심을 배제할 수 없다.
넷째, 부엌 동선의 전체적인 모양과 거리를 간소하게 다듬는 것이 1910~20년대 초 가정학자들의 관심이었다면, 릴리언의 순환작업공간은 여기에 ‘순환’이라는 개념적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간소한 동선이란 학자마다 다르게 도해할 수 있는 각각의 그림이었던 것에 반해, 최소면적을 순환하는 공간으로 정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 이후 작업삼각형 연구의 토대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산업공학자 릴리언 길브레스가 근대 주거 건축에 미친 영향의 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작업삼각형의 한계로도 평가된다. 작업대의 치수나 사이 간 거리 등 수치적·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하여 편리한 부엌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현재에도 계속되지만, 부엌을 사고하는 범위가 삼각형 세 지점에 국한된 기능주의적 관점에 집중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부엌의 편리성이 도면상의 2차원적 동선 효율성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더구나 작업삼각형 연구가 원래 삼각형의 각 변의 길이, 각도 등 수치적 분석을 추구하였던 것에 반해, 현재는 단순히 삼각형 동선을 만들어주는 것으로만 인식된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 사람의 효율성 동선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도 앞으로의 다양한 부엌 설계 가능성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내포한다. 현재와 같은 작업삼각형의 적용 방식에 있어, 반복적인 답습이 아닌 그 의미와 목적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현대 부엌 계획에서 기본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작업삼각형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서, 과학적 관리법의 근본적 영향과 동작연구의 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부엌의 효율성 개념이 근대적 산물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은 미래 부엌의 설계와 주거계획의 기초자료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아울러 그동안 주목되지 않았던 릴리언 길브레스의 연구 활동이 건축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고 작업삼각형에 관한 새로운 자료를 소개하였다는 점에서도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다만 부엌의 동선 효율성을 강조하였던 현상은 20세기 초 가정 및 주부담론과 연결되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부엌에 드리워진 과학적 관리법과 근대 가족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사회학·여성학적 관점의 복합적인 연구가 수반되어야 하며, 향후 다학제간 융합 연구를 통해 부엌 계획에 관한 실질적 분석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