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the Korean Housing Association. 25 April 2016. 43-51
https://doi.org/10.6107/JKHA.2016.27.2.043

ABSTRACT


MAIN

I.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신라 건축에 대한 연구는 경주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개별 건축에 대한 것과 왕경의 도시 측면에서 접근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신라 건축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향의 연구를 모두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축과 도시는 상호 관계를 맺으면서 성립·발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특히 신라의 경주는 천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나라의 수도 역할을 중단 없이 수행했다는 점에서도 건축과 도시의 유기적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경주 왕성의 방(坊)은 건축물의 집합이면서 도시를 구성하는 단위 요소가 되는 매개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는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고대 건축의 경우에 실물 유적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건축물의 상세 모습을 추정하고 해석하는 것이 쉽지 않다. 방(坊)에 존재했던 건축에 대한 연구 역시 다르지 않은 실정이지만, 건물지 발굴 성과가 증가하고 있고 데이터가 체계화 되어가는 점에 기대를 하는 것이다. 신라 건축물을 정확하게 추정하기 위해서 필요한 발굴 및 조사 내용을 확인하고 기존 자료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 연구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2. 연구의 범위 및 방법

신라 왕경에서 경주시 교동 일대 재매정지(사적 제246호, 5,481 m2), 황룡사 동편 지구(S1E1 지구), 경주국립경주박물관 남측부지의 인왕동 98번지 일원(63,341 m2) 등에서 의미 있는 발굴 성과가 있었는데, 그 결과 얻어진 보고서 자료를 기본으로 삼았다. 보고서 내용 중에서 단위 건물의 크기가 비교적 정확한 사례들을 구체적인 검토 대상으로 삼았는데, 재매정지에서 70개 건물지, 황룡사 동편에서 98개 건물지, 인왕동에서 43개 건물지 등 모두 211개 건물지를 확인하였다.

먼저 신라방 건물지의 평면의 특징을 확인하였는데 이는 적심의 위치를 통해 분석할 수 있었고 다음은 평면을 기초로 세워질 수 있는 구조를 추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 건축 형식의 특징을 확인하고 향후 발굴 또는 조사 과정에서 주의 깊게 다루어야할 내용을 검토하였다. 마지막에는 신라 주택 건축과 관련하여 옥사조의 실장광(室長廣)에 대한 해석과 주택 건축에 적용된 영조척에 대한 의문점을 확인하기 위해 각각 한척(漢尺), 당척(唐尺), 고려척(高麗尺)으로 환산하고 해당 건물지에서 비율을 구하는 방법으로 당시 사용되었을 영조척의 종류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한지 검토하였다.

II. 건물지 건축 평면

1. 재매정지 건축 평면 분석

경주시 교동 일대 재매정지의 I구역 42개 건물지와 II구역 28개 건물지 등 모두 70개 건물지의 평면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1)

I구역 1차 발굴(1996년) 건물지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경우는 18호로서 정면 3간(3.5 m), 측면 2간(북 4.2, 2.1 m)으로 면적은 66.15 m2(≒20평)이다. 3간, 1간의 주실 전면으로 툇간이 달린 형식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건물 내부에도 기둥이 생략되지 않은 정연한 모습이다.

I구역 2차 발굴(2013~2014년) 건물지에서는 5호 건물이 가장 규모가 큰 경우가 되는데, 정면 3간(3.5 m), 측면 3간(2.0, 2.4, 2.0 m)이며 면적은 67.2 m2(≒20평)이다.

이밖에는 I구역 1차 발굴지 가운데 4호 건물지가 정면 2간(3.6, 3,6 m), 측면 2간(3.6, 3.6 m)의 정방형 건물로 51.84 m2(≒16평)이고 I구역 1차 발굴지의 17호 건물이 정면3간(각3.76 m), 측면 1간(4.5 m)로 49.95 m2(≒15평)가 된다. I구역의 2차 발굴지 중에는 15호 건물이 정면 5간(각 1.5 m), 측면 2간(각 3.9 m)으로 면적은 58.5 m2(≒18평)으로 비슷한 면적인데, 가로 방향 주간이 좁다는 점에서 특징을 보인다.

이와 비교하면 II구역은 발굴 건물지 모두 측면이 1간으로 단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재매정의 건축은 가장 큰 규모가 20평 내외에 불과하여 다른 곳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고 평면 형식 또한 단순한 모습이다. 이런 건축적 특징과 주택이 이루어진 시기를 관련지어 볼 때,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2)

2. 신라왕경 황룡사 동편 지역(S1E1) 건축 평면 분석

신라왕경 황룡사 동편 지역(S1E1) 발굴조사에서는 총 18가옥3)에서 115개의 건물지가 확인 조사되었다. 이곳 방 유적은 신라 왕경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되는 만큼4)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1가옥의 2건물지는 황룡사 동편 지역 건물 가운데서 가장 큰 건물이다. 정면 5간(17.7 m), 측면 4간(12 m) 건물로 면적은 212.4 m2(≒65평)에 이른다. 남쪽으로 탑지로 보이는 건물지와 문지가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찰의 금당 건물로 추정된다. 주간거리는 정면 3.5 m, 측면 3.0 m를 기본으로 하고 정면 어간만 3.7 m로 다소 넓게 하였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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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Silla-Bang Site (East of HwangRyong-sa)

Source. Silla WangGyeong-The Excavtion Report. Gyeongju (2002).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3건물지와 4건물지는 동일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측면이 2간으로 구성되면서 앞쪽 주간은 좁게 되어 있고 뒷간 주간은 넓게 되어 있다. 전면은 4개의 기둥으로 3간을 만들고 있으며 배면은 3개의 기둥으로 2간으로 구성한 것이다. 4번 건물지는 3번 건물지보다 후대에 건축되었는데, 좌우 주간의 거리가 4.2 m와 3.5 m로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6) 전면의 적심 개수와 후면의 적심 개수가 다른 것에 대하여 동일한 기둥을 설치하면서 개수를 달리한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전면의 4개 기둥이 후면의 3개 기둥과 형식이 차이나는 것을 사용하고 설치한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2가옥에서는 1건물지만 정면3간, 측면3간 평면이고 나머지는 모두 측면 1간으로 폭이 좁은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1건물 역시 주간 거리가 1.6, 1.7, 1.8 m로 6척 이하로 다른 건물에 비해 좁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측면 1간 건물은 주간이 2.7~3 m인 경우가 많고 이 경우에 정면은 1간, 2간, 3간 등 다양한 간수로 구성되고 있다.

3가옥에서는 유일하게 ㄴ자 모양 건물이 확인된다.7) 정면 3간, 측면 1간의 一자 건물에서 서쪽간의 북쪽으로 1간을 달아낸 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면은 3 m, 측면은 2.8 m인데 달아낸 1간은 2 m로 주간이 짧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심을 사용하여 기둥을 세운 건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임시적인 증축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3가옥에서 중심이 되는 3건물지와 4건물지는 정면이 3간이고 측면이 2간인 모습이다. 그런데 정면과 측면의 주간이 모두 같지 않다는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으며 적심열은 중간 기둥 위치에서도 발견된다. 3가옥의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주간거리가 일정하지 않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4가옥에서는 우물이 3기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는 건물(6호 건물지) 내부에서 우물이 발견된 경우도 있다. 6호 건물지는 우물 조성 이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정면 3간 측면 2간 건물로서 중앙에도 적심이 설치되어 있는데 주간이 모두 다른 것으로 측정되었다. 6호 건물지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7호 건물지는 정면 2간 측면 2간 건물로 중앙에도 적심이 있으며 주간거리 역시 모두 다른 모습이다. 이와 관련하여 측면 1간으로 장방형 건물들 역시 정면의 주간거리가 다르게 측정되고 있는데 이는 4가옥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8) 한편 정면1간, 측면 1간인 정방형 건물은 두 곳이 있는데, 정면과 측면 모두 3.6 m 크기의 5건물지는 내부에 석조 유구를 안치하고 있다.

5가옥의 중심 건물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3번 건물지로 정면은 대체로 유사한 주간으로 볼 수 있으나 측면의 앞뒤는 3.5 m와 1.7 m의 다른 주간을 갖기 때문에 건물 내부 적심이 중앙열에 위치하지 않는다. 한편 5가옥에서는 변소로 추정되는 공간이 보고되고 있는데, 남북으로 길게 배치되고 있는 정면 4간, 측면 1간 건물의 남쪽 첫 번째 간과 세 번째 간에서 주둥이만 노출된 상태로 대호(大壺)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 해당간의 크기는 정면이 4.2 m와 4.4 m이고 측면은 3.5 m이다. 따라서 면적은 14.7~15.4 m2으로 대략 5평 내외가 된다.

6가옥은 당시 발굴지 중 가장 협소하고 출입문이 서쪽에 있다는 점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특징적인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서쪽 대문을 남쪽에 치우치게 위치시키고 중심건물은 남향을 하도록 북쪽에 가로로 배치하였으며 부속건물은 일직선이 아닌 대지 모양과 담장에 맞도록 배치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문지는 정면 2간, 측면 1간 규모의 남쪽간에는 계단을 두고 북쪽간에는 경사로를 두어 출입하는 기능에 따라 구분한 것이 조사되었다. 정면 주간은 각각 1.3 m로 큰 규모가 아니다. 한편 중심 건물은 정면이 3간, 측면 2간 규모로 전면에 퇴를 두는 형태로 조사되었는데 측면에서 전퇴는 1.9 m이고 후실은 4.4 m 깊이다.

7가옥은 우물이 4개 발견되었는데 이를 중심으로 하는 좌측과 우측의 두 개 공간으로 나뉜다. 서남쪽 5건물지는 남북으로 정면이 2간(2.7, 3.0 m), 동서로 측면이 1간(2.7, 2.7 m)인 문지로 추정되는데 일반적인 출입은 남쪽의 넓은 주간인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면 당시 건물은 일정한 주간으로 계획하는 것도 있고 필요와 기능에 따라 주간을 달리하는 계획도 일상적인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문지와 같은 방향으로 대지 중앙에 건물지가 있는데 우물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지 가장 안쪽에는 전퇴가 있는 정면 3간(2.3, 3.0, 3.0 m), 측면 2간(1.4, 2.3 m) 건물이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8가옥의 6건물지 내부에서는 목탄(木炭)과 재가 다량 혼입된 소토층(燒土層)이 소형 배수로와 함께 출토되었는데 이는 공방지로 추정되는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공방 건물은 정면 3간(2.2, 2.3, 2.6 m), 측면 1간(2.4 m)의 단순한 형태를 띄는 모습이다.

9가옥은 대지 내부에서 초석 하부를 지탱하는 적심이 독립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담장 형태와 같은 줄기초 흔적이 주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 위치에는 주거 건물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창고, 공방, 축사, 가건물 등의 특별한 용도로 사용된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9)

10가옥은 방의 서북쪽 모서리에 위치하는데 대지 서남 모서리에 서향하는 2간(2.8, 2.2 m), 2간(2.4, 3.0 m) 건물이다. 앞서 살펴보았던 문지들과 달리 측면도 2간이라는 점과 중앙에도 적심이 남아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12가옥에는 특이한 적심형태를 볼 수 있는데 1건물지에서 ×모양의 줄기초가 발견되었다. 대지 중 가장 규모가 큰 건물로서 전면에는 정면 3간의 툇간이 확인되고 이 안쪽에 사방 1간(5.4, 5.2 m)의 정방형 공간 하부를 줄기초위에 구성한 것이다. 이는 서쪽에서 발견된 적심열과 동북쪽 적심 바깥에서 별도 적심이 발견된 점을 종합하고 심도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3건물지는 전면에 툇간이 있고 안쪽에 본당이 구성된 모습이다. 본당의 적심 사이는 돌을 사용하여 정연한 줄을 만들고 있으며 가로 방향 중간에는 2개, 세로 방향으로 중간에는 1개의 비교적 큰 돌이 배치되어 있다.

14가옥은 남쪽 대로(大路)에서 북쪽 방향으로 긴 골목을 통과해야 진입할 수 있다. 중심 건물 1건물지는 정면 2간(4.4, 5.2 m), 측면 2간(2.0, 5.5 m) 건물로 전면에 툇간이 있는 형식이다. 1건물의 서쪽 기단 앞에는 40 cm 거리에 소형 담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건물 자체로도 동쪽 간에는 없는 적심들이 서쪽 간에서 다수 발견되는 모습이 특이한데, 좌우 공간의 성격이 다른 것을 평면 계획에 반영한 것인지 주목된다. 맞은편의 2건물지 역시 정면 2간(3.1, 3.1 m), 측면 2간(북 2.1 m, 남 3.5 m) 건물인데, 툇간이 북쪽에 있기 때문에 중심건물(1건물지)을 향해 북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마당 서쪽에 위치한 3건물지 역시 정면 2간(서 3.2, 동 2.5 m) 측면2간(북 1.4 m, 남 3.6 m) 평면이다. 1건물지 그리고 2건물지와 관계를 고려할 때, 3건물지 역시 북향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10) 1건물지 앞마당 동쪽으로는 다른 건물과 비교하면 다소 떨어진 위치에 1간 폭(3.5 m) 건물이 남북 길이방향으로 3간(2.3, 2.5, 2.7 m) 규모로 배치되고 있어서 14가옥은 전체적으로 튼ㅁ자 마당을 구성하고 있다.

16가옥은 대지가 북쪽을 향하고 있어서 문지 역시 북쪽에서 확인되는데, 정면 3.5 m 측면 1.5 m의 1간 규모로 조사되었다. 문지 서남쪽으로 3~4 m 거리에 가옥의 중심 건물인 1건물지가 위치한다. 동서 2간(5.0, 4.5 m), 남북 3간(3.5, 3.0, 3.0 m) 평면으로 전체적인 모습이 정방형 건물이라 건물의 방향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다만 정면3간, 측면 2간 평면의 중심건물이라고 본다면 동향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11) 한편 중심건물 반대편으로 남동쪽에는 부속 건물로 보이는 건물지가 두 곳 확인되었는데 주간이 7 m 또는 8 m인 것으로 조사되어 다른 경우에 비해 긴 주간으로 구성되었다.

17가옥은 16가옥의 뒤편에 위치하는데 북쪽도로에 일부 연결되는 모습이라서 북쪽의 짧은 진입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북쪽 진입로를 통과하면 가로 방향의 건물지가 나타난다. 3, 4, 5건물지가 중복되어 확인되는데 모두 측면이 1간이라는 공통점을 감안하면 남쪽에 있는 중심 건물의 부속건물 기능인 것으로 추정된다.12) 남쪽으로는 중심 건물로 추정되는 1건물지와 2건물지가 중첩되는 모습으로 확인되었다. 먼저 건축된 1건물지는 툇간이 없는 형식의 정면 3간(2.2, 2.0, 2.2 m), 측면 2간(북 2.0, 1.5 m) 규모였는데, 이후에 건축된 2건물지는 북쪽으로 툇간이 있는 형식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툇간은 2간(서 2.5, 3.0 m)으로 하였고 주실은 3간(1.5, 1.5, 1.5 m)으로 구성한 형식이다.13) 남북방향은 툇간이 2.2 m 주실간은 3.5 m로 이를 감안하면 2건물지의 방향은 북향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두 건물의 건축 형식의 차이를 보면 1건물지는 내부 기둥까지 정연하게 배치된 모습이고 2건물지는 툇간의 정면 주간과 주실의 정면 주간을 달리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다른 모습의 건축 형식이 시대를 달리하여 나타나는 것이 시대적 차이인지 건축계획상 필요에 의해 선택적으로 나타나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18가옥은 다른 가옥들로 둘러싸여 있는 위치라서 대로에서 바로 진입할 수 없는 모습이다. 실제로 이에 대한 의문점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14) 대지의 중심건물은 1건물지로서 전체 모습은 가로 8.4 m, 세로 8.8 m로서 정방형에 가깝다. 주간의 구성을 보면 정면 2간(서 4.0 m, 4.5 m), 측면 2간(북 3.6, 3.5 m)의 주실에 북쪽으로 측면 1간의 툇간을 조합시킨 모습인데, 툇간의 정면은 주실의 2간과 달리 3간(서 3.0, 2.6, 2.9 m)을 부가하였다. 주 건물 내부에서는 주실 북쪽 양편으로 박석유구가 확인되었는데 무거운 상부하중에 대한 보강시설물로 볼 수 있다면 주거 건축이 아닌 사찰 불전 건축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15) 이것이 사실이라면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주실 북편에 만약 불상이 안치되었다고 한다면 1건물지는 남향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불전의 정면이 짝수간일 수도 있다. 셋째, 툇간이 정면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배면에도 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7건물지는 1건물지 남쪽에서 전면을 향해 남북방향으로 길게 배치되고 있다. 기둥 배치를 보면 남북방향으로 3간(3.5, 3.5, 2.15 m)이고 좁은 동서방향으로는 2간(서 1.5, 2.0 m)이다. 그런데 동서방향의 단변이 3.5 m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기둥을 설치한 적심이 중앙으로 열을 지어 구성한 것으로 보면 특별한 건축계획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 황룡사 동편 지역의 발굴 건물지는 개개의 건축 형식과 규모가 다양하고 건물들이 서로 연계되어 이루어지는 공간과 도시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3. 인왕동 왕경유적 건축 평면 분석

인왕동 왕경유적 발굴은 국립경주박물관 남측에 위치하는 면적 63,341 m2의 부지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곳에서는 동서도로 1개 그리고 남북도로 2개 등 3개의 도로와 함께 방(坊) 4개가 확인되었다. 1방의 35호, 2방의 8호, 3방의 4호, 4방의 6호 등 총 53호의 주거지가 발굴되었다.

I방의 건물지에서는 적심 열이 있는 건물지 31개소와 온통기초인 건물지 2개소, 그리고 수혈주거 2개소가 확인되었다.

6호 건물지는 남쪽으로 담장이 있었기 때문에 북쪽을 향하는 건물로 추정되고 1, 2, 3, 4호 건물들과 같은 구역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6호 건물지는 정면과 배면의 주간 및 각각의 거리가 다른 모습이다. 마당을 향하는 북쪽 정면은 3간인 반면에 남쪽의 배면은 2간이지만 전체 길이는 같기 때문이다. 즉, 6호 건물은 정면 2간(3.0, 4.8 m), 측면 1간(4.8 m)의 주실 공간에 정면 3간(전체 6 m), 측면 1간(2.28 m)의 툇간을 부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16) 면적은 대략 55.2 m2(≒16.7평)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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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I-6 & I-32 (InWang-dong)

7, 8호 건물지는 남북 방향으로 길게 선 부속 건물로 추정되는데 7호 건물은 정면 2간(각 3.3 m), 8호 건물은 정면 3간(각 3.1 m)이고 측면은 둘 다 1간(각 3.1, 3.3 m)이다. 부속 건물의 경우에도 1간의 크기가 대략 3 m 정도인 것을 알 수 있다.

12호 건물지는 담장축과 일치하고 담장선 안쪽으로 적심이 2개 발견된다는 점에서는 문지로 추정되고 형식상으로는 사주문일 가능성이 높다. 주택의 사주문 역시 주간거리가 3 m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13호 건물지는 정면 3간(4.0, 2.5, 4.0 m), 측면2간(서 2.4, 3.0 m)으로 면적은 56.7 m2(≒17평)이다. 남북방향으로 길게 서 있는데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운데 간이 2.5 m로 좌우측간의 4.0 m 보다 좁은 모습이 특징이다.

24호 건물지는 정면 4간(2.8, 4.8, 4.8, 2.8 m), 측면 3간(2.4, 3.6, 2.4 m)으로 정면은 15.2 m, 측면은 8.4 m가 되므로 면적은 127.68 m2(≒39평)이다. 인왕동 왕경유적 건물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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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I-17 & I-24 (InWang-dong)

32호 건물지는 온통기초인 건물지로서 바닥이 가로 8.7 m, 세로 8 m의 정방형(69.6 m2≒21평)에 가까운 모습이다. 기초는 작은 자갈과 와편을 섞은 점토층 위에 다시 강돌과 할석을 쌓는 방법으로 구성하였다.18)

한편 III방에서 발견된 건물지 중 2호 건물지는 정면이 4 m이고 측면이 3 m인 사방 1간 건물로 도로와 인접한 담장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문지로 추정된다. I방의 문지와 비교하면 규모와 형식이 비슷하다. 문이 설치되는 위치는 마주보도록 설치한 것이 아니라 서쪽으로 치우치게 하여두 개의 문은 서로 어긋나는 위치에 서 있다.

IV방에서도 담장에 설치한 문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6호 건물지는 정면과 측면이 모두 4.4 m의 사방 1간 규모로서 앞서 I방과 III방의 문보다 다소 크다. 문의 위치는 방의 서북쪽 모서리에 가깝다. 문지 주변에는 다소 많은 건물지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들 사이에 시기상 관계에 대해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을 보면 인왕동 건물지의 건축은 재매정지 건축과 비교하면 규모가 커지고 평면 모습도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다.

III. 건물지 구조 형식

1. 재매정지 건축 구조 분석

재매정지 건물지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인 I구역 1차 18호 건물지의 건축 구조를 고려할 때, 측면 2간으로 보가 설치된다고 본다면 툇간이 2.1 m인 1고주 5량 형식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도리 배치는 삼분변작 형식이 된다. 기둥은 3열로 배치되고 있기 때문에 내부에는 기둥이 없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용마루를 중심으로 지붕의 앞뒤가 비대칭인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Figure 4>와 같은 모습이 되는데, 측면이 4.2 m인 주실을 3량으로 구성한 다음 전면에 2.1 m인 툇간을 부가하게 되면 4량 구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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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Asymmetrical Structure

I구역 18호 건물지와 비슷한 규모로 2013~2014년에 추가 발굴된 5호 건물지를 들 수 있는데, 정면 3간(3.5 m), 측면 3간(2.0, 2.4, 2.0 m)이다. 내부 기둥 2열이 고주라고 한다면 2고주 5량 형식이 된다. 도리 배치가 3분변작에 가깝다는 점에서 앞선 건물과 유사하다. 그러나 앞의 건물과 달리 앞뒤가 대칭인 경우만 가능하다.

두 가지 사례를 통해서 주심도리와 중도리 사이 간격 및 중도리와 중도리 사이 간격이 7척 내외가 되기 때문에 전체 측면 길이가 6.3, 6.4 m인 5량집을 추정할 때, 1고주 형식도 있고 2고주 형식도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이다.19)

한편 I구역 2차 15호 건물은 정면 5간(각 1.5 m), 측면 2간(각 3.9 m)이면서 중앙에 기둥열이 있는데, 주심도리 사이가 7.8 m이기 때문에 양쪽으로 주심도리와 종도리 사이가 3.9 m(≒13척)가 되는데, 3량 형식보다는 5량 형식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 남아있는 전통 한옥들의 측면 규모를 감안하면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20) 그런데 가로 방향 주간이 같은 1.5 m이면서 측면 2간 역시 1.5 m인 I구역 2차 14호 건물은 고주 또는 평주가 사용된 3량 가구일 가능성이 높다.

재매정지 발굴된 건물지들은 측면이 1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범위는 1.6 m에서부터 5.5 m 사이에 있다. 그 중에서도 3 m 내외인 경우가 많은데, 이 건물들의 경우에 3량 형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는 옥사조(屋舍條)에서 언급한 장광(長廣) 15尺이라는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21) 재매정지의 건물지 건축 중 측면이 4.5 m가 넘는 경우는 70개 중 10개가 해당된다. 이 가운데 건물 측면이 7.2 m 넘는 경우가 2곳, 6.3 m 넘는 경우가 2곳, 5.4 m 넘는 경우가 1곳, 4.5 m 넘는 경우가 5곳이다.22)

2. 신라왕경 황룡사 동편 지역(S1E1) 건축 구조 분석

신라왕경 황룡사 동편 지역(S1E1) 발굴조사에서는 총 18가옥에서 115개의 건물지가 확인 조사되었다.

이 중 1가옥에서는 사찰 건축으로 추정할 수 있는 모습들이 많이 확인된다. 그 중 2건물지는 정면 5간, 측면 4간 건물로 면적은 212.4 m2(≒65평)에 이르는 황룡사 동편 지역의 모든 건물 가운데 가장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간거리는 정면 3.5 m, 측면 3.0 m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도리 길이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황룡사 동편 지역 건물 가운데서 볼 수 있는 특징의 하나로 주실의 정면 주간과 퇴간의 정면 주간이 다른 건물들이 다수 확인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1가옥에서 3건물지와 4건물지의 경우를 보면, 측면 2간 중 앞에는 주간을 좁게 하여 퇴를 구성하였고 뒤쪽은 주간을 넓게 하여 주실을 구성하였다. 툇간의 전면에는 기둥을 4개 세워 3간을 만들고, 뒤에 있는 주실은 기둥을 3개 세워 2간으로 한 것이다.

https://cdn.apub.kr/journalsite/sites/khousing/2016-027-02/N0450270205/images/JKHA_2016_v27n2_43_f005.jpg
Figure 5.

Irregular-Column Style Structure

먼저 3건물지 건축의 구조와 관련하여 먼저 툇간과 주실의 전면 기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측면 기둥만 고려한다면 1고주 5량 형식을 고려할 수 있다. 이 경우 주심도리와 중도리 사이 간격이 2.6 m가 되고 중도리와 종도리의 간격은 1.75 m라고 할 수 있다. 2.6 m와 1.75 m를 더한 두 배 값이 건물의 측면 전체 길이 8.7 m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툇간의 기둥과 주실의 기둥 위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툇보가 일정하게 설치될 수 없어서 툇간에 설치되는 보가 주실의 도리에 얹혀지는 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유사한 건축의 구조를 조선 후기 나주 도래마의 ‘홍기헌가옥 사랑채’에서도 찾아볼 수는 있다.23)

다른 한편으로 고려할 수 있는 모습으로는 전면 툇간과 후면 주간을 독립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실의 6.1 m 1간만 5량 구조로 독립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툇간 2.6 m를 한쪽 경사지붕으로 구성하여 부가시키는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형식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좌우 측면 기둥은 툇간과 주실을 연결하고 가운데 기둥은 서로 연결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세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 만드는 6.1 m의 무고주 5량 형식은 삼분변작에 가까울 수도 있고 사분변작에 가까울 수 있다.

4번 건물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다만 주실의 측면이 3.9 m로 넓지 않기 때문에 5량이 아닌 3량 구조에 툇간 지붕을 부가하여 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동일한 모습은 17가옥의 2번 건물지와 18가옥 1번 건물지에서도 예상할 수 있다.

3. 인왕동 왕경유적 건축 구조 분석

인왕동 왕경유적 발굴지에서 툇간과 주실의 정면 주간이 서로 다른 건물로 I방의 6호 건물지를 들 수 있다. 발견되는데 남쪽에 담장 흔적이 있기 때문에 툇간이 있는 북쪽이 정면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I방 6호 건물지를 제외하면 인왕동 발굴지에서는 주실의 정면 기둥 배치와 주간을 툇간의 정면에서도 동일하게 유지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1방에서는 1호, 9호, 13호, 15호, 22호, III방 3호, IV방 1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측면이 3간으로 조사된 건물이 있는데, I방 17호(1.8, 2.6, 1.8 m)와Ⅰ방 24호(2.4, 3.6, 2.4m)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17호 건물은 남쪽 남쪽 주실에 북쪽 툇간이 부가된 경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24) 한편 24호 건물 역시 측면을 3간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북쪽 주실에 남쪽 툇간을 부가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를 감안한다면 신라방에서 주실의 앞뒤로 툇간이 부가되는 사례는 아직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IV방 2호 건물지는 내부공간을 구성하는 건축 방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데 내부 중앙에 석축유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측면 벽에는 중앙 위치에 적심을 설치할 수 있지만 내부에서는 중앙의 석축 유구를 피해서 적심을 설치하고 구조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IV. 영조척 추정

1. 신라의 영조척

신라에서 고려척이 사용된 건축으로는 황룡사탑이 대표적이고, 신라왕경의 도시계획을 위한 구획에도 이용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일 이후로 당척이 사용되는데, 불국사 전반의 계획과 석가탑, 다보탑, 그리고 석굴암, 사천왕사지, 망덕사지, 천군리사지, 화엄사 삼층사자석탑 등 많은 건축과 건물이 여기에 해당된다.25) 이 같은 주장은 연구자에 따라 다른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불국사 다보탑이 고려척으로 해석26)될 수 있다든지 같은 황룡사에서도 금당과 목탑은 고려척일 가능성이 높지만 강당의 경우에는 고려척과 당척 중 어느 것이 사용되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고 한다.27) 또 통일 이후의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석조계단과 기단의 영조척을 분석해보면 시대와 상관없이 한척, 고려척, 당척이 모두 혼재되어 사용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28)

한편『삼국사기』「옥사조」에는 건축의 규모와 관련하여 품계에 따라 실(室)의 크기를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 다시 말해 실(室)의 장광(長廣)을 24척, 21척, 18척, 15척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각각 한척29), 당척, 고려척을 적용하여 그 길이를 추정하였다. <Table 2>에서 볼 수 있듯이 한척 또는 남조척으로 환산하면 3.8, 4.5, 5.3, 6.0 m가 분류 기준이 되고 당척으로 환산하면 4.5, 5.4, 6.3, 7.2 m가 분류 기준이 되며, 고려척으로 환산하면 5.3, 6.3, 7.4, 8.4 m가 분류 기준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Table 1.

List of Buildings & Measuring Unit

TempleYearBuildingunitnuit type
Hwang
Ryong
Sa
584Main Building stylobate35 cmGoGuRyeo
Main Building stairs
645Wooden Pagoda stairs25 cmNamJo
Wooden Pagoda steppingstone35 cmGoGuRyeo
SaCheon
Wang Sa
679Main Builbing stairs30 cmTang
Wooden Pagoda stylobate35 cmGoGuRyeo
GamEun
Sa
682Main Building stylobate35 cmGoGuRyeo
Main Building stairs
Assembly Hall stylobate25 cmNamJo
Assembly Hall stairs24 cmHan
MangDeok
Sa
685Wooden Pagoda stairs35 cmGoGuRyeo
BulGuk Sa751DaeUngJeon sylobate35 cmGoGuRyeo
GeukRakJeon sylobate24 cmHan
BiRoJeon sylobate35 cmGoGuRyeo
KwanEumJeon sylobate30 cmTang
DaBoPagoda sylobate35 cmGoGuRyeo
CheongUn Bridge35 cmGoGuRyeo
BaekUn Bridge30 cmTang
YeonHwa Bridge24 cmHan
ChilBo Bridge35 cmGoGuRyeo

장광의 의미는 너비뿐만 아니라 깊이, 즉 건물의 측면 길이도 포함된다.

2. 신라방 건물의 영조척 분석

<Table 2>의 세 가지 분류 기준을 이용하여 건물들의 분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Table 2.

2. Golpum System & Dwelling House Size

RankMeasuring
unit
NamJoChuk
HanChuk
TangChukGoGuRyeo
Chuk
1Chuk=25 cm1Chuk=30 cm1Chuk=35 cm
JinGol24 Chuk6.0 m7.2 m8.4 m
YukDuPum21 Chuk5,3 m6.3 m7.4 m
ODuPum18 Chuk4.5 m5.4 m6.3 m
SaDuPum15 Chuk3.8 m4.5 m5.3 m

이상의 표 내용 중, 방(坊) 건물에 한척(漢尺)을 사용했다면 인왕동에서는 사두품 이하의 비율(40%)이 사두품 이상의 비율(60%)보다 작게 되는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또 고려척을 사용했을 경우에는 재매정지에서 사두품 이하의 비율(94%)이 사두품 이상의 비율(6%)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역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먼저 재매정지의 한척, 당척, 고려척에 따른 비율을 보았을 때, 고려척으로 건물지가 계획되었다고 한다면 사두품을 제외한 오두품 이상의 비율이 대단히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고려척이 사용되지 않았을 가능성과 함께 재매정지가 상대적으로 다른 건축에 비해 건물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황룡사 동편의 비율은 전체적으로는 가장 무난한 현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남조척과 고려척을 사용했을 경우에는 진골의 경우보다 성골의 경우가 많게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셋째, 인왕동의 경우에 한척으로 계획했다고 한다면 사두품부터, 성골까지 비슷한 비율로 분포하게 되는데, 이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품계가 높을수록 비율이 낮아진다는 일반적인 사실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사두품의 비율만을 비교해 보면 재매정지>황룡사동편>인왕동의 순으로 나타나는데, 신분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들의 분포는 반대로 재매정지<황룡사동편<인왕동 순이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당척의 경우에 가장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구려척과 한척의 경우에는 성골 규모의 건물보다 진골 규모에 해당하는 건물이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Table 3.

According to Han-Chuk

Sadu
Pum
Odu
Pum
Yukdu
Pum
JinGolSungGolTotal
JaMaeJung48
(72)
9
(14)
5
(7)
1
(1)
4
(6)
100
S1E156
(57)
7
(7)
12
(12)
9
(9)
14
(15)
100
InWang dong17
(40)
4
(10)
5
(13)
4
(10)
11
(27)
100
Table 4.

According to Tang-Chuk

Sadu
Pum
Odu
Pum
Yukdu
Pum
JinGolSungGolTotal
JaMaeJung57
(85)
5
(8)
1
(1)
2
(3)
2
(3)
100
S1E163
(64)
13
(14)
8
(8)
7
(7)
7
(7)
100
InWangdong22
(51)
5
(12)
8
(18)
3
(7)
5
(12)
100
Table 5.

According to GoRyeo-Chuk

Sadu
Pum
Odu
Pum
Yukdu
Pum
JinGolSungGolTotal
JaMaeJung62
(94)
1
(1)
2
(3)
1
(1)
1
(1)
100
S1E175
(77)
9
(9)
7
(7)
1
(1)
6
(6)
100
InWang dong27
(63)
8
(19)
4
(9)
0
(0)
4
(12)
100
https://cdn.apub.kr/journalsite/sites/khousing/2016-027-02/N0450270205/images/JKHA_2016_v27n2_43_f006.jpg
Figure 6.

Ratio according to Table 3, Table 4, Table 5

다만 이런 결과가 방의 특성을 설명해주는 것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사두품의 비율이 건물지의 위치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건물지의 위치에 따라 특정 골품이 우세하게 위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V. 결 론

재매정지, 황룡사지 동편, 인왕동 등의 신라방 관련 건물지를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평면을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재매정의 경우, 비교적 규모가 작고 평면 모습 역시 단순하다. 가장 큰 건물은 정면 3간인 두 건물을 들 수 있는데, 20평 정도의 규모이다. 이에 비하면 황룡사 동편의 경우, 다양한 건물이 확인되는데 사찰의 금당 건축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정면 5간, 측면 4간으로 65평 정도가 되어 가장 크다. 평면 유형 중에는 넓은 주실과 한쪽으로 툇간을 덧붙이는 형식이 다수 발견되는데 기둥열이 일정한 경우도 있고 일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ㄴ자 형태의 건물이 유일하게 발견되는데, 일자(一字) 건물의 끝을 달아낸 것인지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화장실로 추정되는 4.2 m×3.5 m의 5평 공간도 확인되었다. 인왕동 건물지는 형태나 규모면에서 재매정지와 황룡사 동편지구 중간이라고 볼 수 있다. 정면4간, 측면3간의 15.2 m×8.4 m, 39평 건물이 가장 크다. 그리고 인왕동에서는 비교적 다양한 문지들이 확인되는데 이를 통해 당시에도 사주문 형식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구조를 고찰한 결과이다. 재매정지 건물지 중 주실에 툇간이 부가되어 측면이 넓은 간과 좁은 간의 2간으로 형성된 건물은 지붕 용마루를 중심으로 대칭형이 될 수도 있고 비대칭형이 될 수도 있다. 대칭형인 경우에는 삼분변작의 1고주 5량 구조가 가능하고, 비대칭형인 경우에는 4량 구조가 가능하다. 그러나 측면이 3간인 경우에는 대칭형인 경우만 가능한데, 삼분변작의 2고주 5량 구조일 가능성이 높다. 대체로 삼분변작 형식의 구조가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 황룡사지 동편 부지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건물도 주간은 3.0 m 또는 3.5 m라는 점을 감안하면 목재의 규격에는 큰 차이가 없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주실의 전면 기둥과 툇간의 기둥 간격이 다른 건물의 경우에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전형적 방식의 툇보 결구가 아니라 기둥과 도리를 연결하는 소위 덕량 방식의 결구일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 또는 주실은 견고한 구조로 만들고 전면의 툇간은 가설로 세우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양면 방향의 경사지붕에 한쪽으로만 경사 가설지붕을 설치되는 모습이 된다.

인왕동 왕경유적에서는 측면이 3간으로 조사되었던 건물지 2곳이 실제는 주실과 툇간으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확인된다면 3곳의 신라방 유적에서는 전후퇴가 설치된 건물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런 점은 향후 신라방과 관련된 발굴 조사에서 유념해서 확인해야할 내용 중 하나로 여겨진다.

『삼국사기』「옥사조」실장광(室長廣)의 수치를 근거로 신라 왕경의 방에 있는 건물지들을 각각 한척, 당척, 고려척으로 환산해서 비율을 고려한 결과를 보면, 당척을 사용했을 비교적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각 방(坊)의 서로 다른 조성 시대 또는 거주 신분의 다소 등의 차이에 따른 예외적 특성은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편, 위치가 다른 건물지들마다 각각의 특성을 가진 건축 형식들이 존재했었다는 점을 보았을 때, 신라방마다 각기 다른 기능과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각 신라방이 지녔던 다른 특성이나 또는 시대에 따라 신라방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신라방의 건축에 대한 연구가 심도 있게 지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Notes

[1] 1) I구역과 II구역 사이에는 도로가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신라시대에도 같은 모습이었다.

[2] 2) 이처럼 주택의 형식상 특징이 상대등에 오른 7C 김유신의 저택이라는 점과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3] 3) 현재의 개념으로 보면 필지라고 말할 수 있다.

[4] 4) 전덕재(2015). 신라왕경의 방에 대한 종합적 고찰. 방 정비 및 활용을 위한 학술심포지움, p. 25

[5] 5) 외진과 내진의 기둥 배열을 기본으로 동쪽 내진의 기둥 하나를 생략하였는데, 이는 동향의 아미타불을 안치한 부석사 무량수전의 감주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6] 6) 이정미(2015). 통일신라시대 주택의 평면유형 분석. 한국주거학회논문집, 26(6), p. 143 (해당 형식에 대해 전퇴부가형으로 분류하였다.)

[7] 7) 신라 주택에서도 한국건축의 채(棟) 분화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8] 8) 4건물지는 정면 3간 측면 1간 규모로 정면은 3, 2, 2.7 m이고 측면은 1.3 m로 조사되었다. 정면의 주간이 모두 다른 점과 함께 측면 주간이 1.3 m로 매우 좁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9] 9)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2002). 신라왕경발굴조사보고서. 경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p. 278

[10] 10) 앞의 보고서(하권 p. 137) 에서는 동향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3건물지에서 발굴된 출토유물은 대략 8세기경이라고 하였다.

[11] 11) 앞의 보고서(하권 p. 164) 에서는 남향 또는 북향으로 추정하고 있다.

[12] 12) 3건물지는 정면 3간(2.0, 3.0, 3.0 m) 측면 1간(3.2 m) 건물이고 4건물지는 정면 2간, 측면 1간 건물이며, 5건물지는 정면 1간, 측면 1간 건물이다.

[13] 13) 소위 정치형 건물보다 전퇴부가형 건물이 나중에 건축된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정치형이라도 전퇴와 후실의 주간이 다른 건물은 측면이 같은 주간으로 구성된 건물보다 앞선 형식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14] 14) 앞의 보고서(하권 p.183) 에서는 18가옥의 대지 형태를 보면 남쪽으로 상당이 큰 규모의 돌출부를 만들고 있고 대지의 중심건물의 위치를 보았을 때 남쪽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을 배체할 수 없다고 본다. 이 경우에 다른 가옥을 통해 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15] 15) 앞의 보고서(하권 p. 187) 에서는 남향 또는 북향으로 추정하고 있다.

[16] 16) 발굴 당시 건물지 내부에서 대호 6개가 수습되었기 때문에 저장시설 용도의 건물로 확인되었다.

[17] 17) 건물의 규모가 가장 큰 건물들을 비교하면 황룡사 동편 발굴지, 인왕동, 재매정지 순(順)이 된다.

[18] 18) 국립경주박물관·신라문화유산연구원(2014). 경주 인왕동 왕경유적 II. 경주: 경주박물관, p. 77

[19] 19) 대들보 길이가 6 m 내외인 주택 건축 본채에서 삼분변작으로 5량인 구조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 20) 중앙에 기둥을 세우지 않는 3량 구조의 경우로서 앞뒤 기둥 사이에 대들보가 긴 사례로는 4.3m의 양동마을 관가정 안대청을 들 수 있다.

[21] 21) 옥사조에 따르면 사두품 이하부터 백성까지는 ‘室長廣不過十五尺’이라고 하였다.

[22] 22) ‘室長廣이 각각 24척, 21척, 18척, 15척 넘지 않는다.’라는 표현에 따라 고구려척과 당척으로 환산하여 적용해 볼 수 있다.

[23] 23) 신라시대에 이런 방식의 결구가 존재했을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하여 심도 있는 연구가 요구된다.

[24] 24) 적심의 유구를 보면 하나의 내부 공간인 주실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면의 방향이 주실인지 아니면 툇간인지는 알기 어려운데, 주실의 남쪽면에서 적심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25] 25) 尹張燮(1975). 韓國의 營造尺度. 대한건축학회지 19(63), 2-10

[26] 26) 朴興秀(1979). 多寶塔의 平面圖와 營造尺」. 한국과학사학회지 1(1), 93-95

[27] 27) 權鶴洙(1999). 黃龍寺 建物址의 營造尺 분석. 韓國上古史學報 31, 7-22

[28] 28) 김수명·장헌덕·황종국·김상태(2011). 統一新羅 石造階段의 形態와 尺度에 關한 硏究. 대한건축학회지연합회 학술발표대회논문집, 539-548

[29] 29) 한척은 대략 23 cm 정도이지만, 당척과 고려척의 차이를 감안하여 같은 당척보다 5 cm 작은 25 cm로 환산하여 진행하였다.

Acknowledgements

이 논문은 2013년도 계명대학교 비사연구과제 연구비 지원으로 수행되었음.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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