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Housing Association
[ Article ]
Journal of the Korean Housing Association - Vol. 33, No. 2, pp.55-63
ISSN: 2234-3571 (Print) 2234-225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25 Jun 2022
Received 19 Jan 2022 Revised 21 Feb 2022 Accepted 02 Mar 2022
DOI: https://doi.org/10.6107/JKHA.2022.33.2.055

구술생애를 통한 주거의 의미에 관한 이해 : 부천 역곡 고택 가옥주의 생애사 연구를 중심으로

오민정* ; 류성룡**
*정회원(주저자), 고려대학교 도시재생협동과정 박사수료
**정회원(교신저자),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Meaning of Housing Through Oral Life History : Experience of an Old Woman Living in an Old House for more than 80 Years
Oh, Min-Jung* ; Ryoo, Seong-Lyong**

Correspondence to: Seong-Lyong Ryoo, Department of Architecture, Korea University, 145 Anam-ro, Seongbuk-gu, Seoul 02841, Korea. E-mail: ryoosl@korea.ac.kr

Abstract

This paper seeks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housing through an oral life history of an old woman who was born in an old house and survived Japanese military occupation and Korean War in 1950s, and lived in the old house for more than 80 years. To this end, the study used D. G. Mandelbaum’s framework of analysis such as dimensions of life, turnings and adaptation. In the dimensions of life, the house is ‘a space where she should live eternally’ as well as a space identified with its holder and her family. At the turning point, she could have two events to change her perception of housing in her life story. At the life of adaptation, she actively involves to strengthen the solidarity between residents and local community to publicize the value of preservation of her house. Her current perception and action regarding the house are clearly distinguished from her past experiences. This paper identifies and uncovers the layered experiences of an old woman who expresses her house as ‘an original root’, and she perceives that ‘the house’ is a medium for preservation of the family and its members, and that ‘the house’ is the only space, everything that she can rely on.

Keywords:

Housing Experience, Meaning of Housing, Oral Life History, Qualitative Research

키워드:

주거경험, 주거의미, 구술생애사, 질적연구

I.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평범한 개인의 생애사가 사회적 의미를 담을 수 있을까? 평범한 개인이 겪어온 삶의 궤적과 주거의 관계적 의미를 사회사적 의미로 엮어낼 수 있을까?

Jurgen(2003)은 ‘미시사(micro-history)’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작은 역사로 정의하였다.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세밀하게 관찰하되 그 연구대상의 범위를 넓게 잡는 것으로 이전의 역사 연구에서는 전혀 주목받지 못 했던 과거의 본질적인 여러 현상을 가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미 미시사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제기되었다. 역사 속의 평범한 개인을 ‘능동적인 존재, 행동하는 존재’로 간주하고 인간의 사회관계와 행동 양식을 중심에 놓고 파악하는 데 의의를 두어, 이를 통해 역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였다(Hong, 2005).

특히, 주거의 미시사를 다루는 것은 그 속에서 생활하는 인간의 삶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다(Hong, 2005). 인간의 삶과 주거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거와 그 속에 머무르고 있는 개인의 관계적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것은 미시사의 관점을 통해 주거와 개인사(個人史) 간의 밀접성에 대해 입체적인 분석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주거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의미를 넘어서 그 공간에서 주거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의 변화에 따라 기능과 의미가 달라지는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구조물이기 때문이다(Altman & Werner, 1994, Lee et al; Marcus, 1995; as cited in Song&Chong, 2019).

오늘날 우리사회의 주거공간에 대한 인식은 신분의 상징, 자산증식을 위해 소유하는 경제적 상징을 담고 있고 ‘개발’이라는 국가의 개입과 조정 아래 공적 영역이 사적 영역으로의 ‘침범’이 이루어지고 있다. O. F. Bollnow(1988, as cited in Kang, 2007)는 오늘날 신문, 방송, 텔레비전을 통하여 공공적인 것이 집의 개인적인 영역 안으로 침투하여 사적 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안락함을 위협하여, 인간의 안정된 주거와 집다운 공간이 해체되는 탈주(脫住)의 현상에 주목하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실존철학에서 제기된 인간 소외, 고향 상실, 존재 망각의 문제 지평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본 연구의 대상지인 부천시 원미산 동쪽 편에는 조선시대 자연부락인 ‘벌응절리(伐應節里)’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그 가운데 위치한 역곡동 165번지1)는 1894년에 지어진 한옥으로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이다. 이 집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고택 가옥주는 현(現) 집에서 태어나 노년이 된 지금까지 -한국전쟁으로 인한 3년간 피난생활을 제외한- 80여 년간 집을(비혼(非婚)이자, 이주 경험이 전무(全無)함) 지키며 살고 있다. 불행히도 2020년 7월 ‘부천역곡 공공주택지구’ 개발사업 시행이 발표되면서 이 고택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렇다면 가옥주는 왜 이 집을 오랫동안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가?

본 연구는 한 주거공간에서 80여 년간 정주해온 개인의 주거경험을 통해 주거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술생애사 방법론을 채택하여 주거의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선행연구를 정리하고, 주거경험에 의해 변화되는 주거의미를 D.G. Mandelbaum(1973)의 생애사 분석틀을 적용하여 해석함으로써 개인의 주거관의 변화에 영향을 끼친 배경과 요인을 파악하고자 한다.

개발이라는 외부 요인에 의하여 주거공간을 잃게 된 한 개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주거의미의 변화를 이해하고, 주거공간을 ‘사적 자산’에서 ‘공적 자산’으로 인지하며 바뀌게 된 개인의 주거인식이 오늘날의 주거개발에서 개별가구나 개인이 지닌 주관성을 중시하지 않는 점과 개인이 갖는 태도와 행태, 그리고 이것에 영향을 미치는 제약과 요구 등이 무엇인지 적절하게 고려되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는데 연구의 의의를 두고자 한다.

2. 연구의 방법 및 범위

본 연구는 부천 역곡동 165번지에서 80년 이상 거주해오고 있는 고택 가옥주의 생애를 인터뷰하였다.

자료 수집방법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단계는 부천 역곡 고택과 관련된 미디어 자료, 역곡동 고택의 문화재 및 우수건축자산 지정신청서 및 자료보고서, 사진, 신문스크랩 등을 참고하여 연구에 필요한 이해를 돕는데 활용하였다. 두 번째 단계는 2021년 2월부터 연구의 구체적인 설계를 위해 고택을 드나들며 연구 참여자와 관계(rapport) 맺기 시간을 가졌다. 이후, 2021년 9월 4일~26일까지 총 4회에 걸쳐 1회당 약 90분 정도의 시간으로 생애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 장소는 연구 참여자가 편하게 느끼고 생애를 회상하기 적합하다고 고려한 자택인 고택에서 이루어졌다. 인터뷰 전 과정을 녹취하며 기록하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연구의 엄격성을 견지하기 위해 책임지도 교수와 동료 연구생과 함께 토의를 거쳐 공동연구를 진행하였고, 질문지 작성과 질문의 적절성에 대해 몇 차례 자문을 받았다. 윤리적 문제와 관련하여 연구의 목적과 취지를 설명하고 수집된 자료들은 이후 폐기할 것을 약속하였다. 연구내용은 사전에 공유하여 민감한 내용과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을 경우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하여 녹취에 관해 동의 후 진행하였다.


II. 이론적 배경

1. 구술생애사연구방법론

구술생애사연구방법론은 구술사(oral history)와 생애사(life history) 2개의 연구 분야가 합쳐진 것이다. 구술사는 살아온 경험을 자신의 말로 이야기한 기록(Yoo, 1990)으로, 전기, 자서전 구술사 및 개인자료를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Yoon, 1996)이자 구술자의 사적인 기억으로 정의된다(Chi, 2014). 정의에서 언급된 사적인 기억의 ‘주관성’, ‘개인성’은 이 연구방법론의 한계로 객관성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기도 한다. 특히, 역사학 분야에서 이 방법론을 많이 채택하는 이유는 구술사가 비공식적 역사로 정의되지만 기록형태로 제시될 때는 공식역사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역사를 목격한 사람들의 목소리, 잊혀져 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수집하는데 강력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Yeum, 2006).

Yoon(2010a)은 기억이란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면서 과거가 현재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동시에 현재가 과거의 재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알려주는 적극적인 장치로서 분석되어야 한다’고 나탕 바슈텔(N. Wachtel)의 주장을 역설한다. Wachtel은 기억이 현재의 역학 관계를 규명해 주는 유용한 도구라는 점에 착안해서 구술사 연구를 발전시켰다(Yoon, 2010b).

생애사의 전제는 행동과 경험을 행위자의 관점 내지는 주관적인 관점에서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이다(Denzin, 1989). 개인의 일생은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삶의 과정의 해석을 보여주는 개인적 경험과 요구에 맞추어진 서술이지만 개인의 삶이 과연 대표성을 지니는가와 함께 개인 생애사의 주관성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Hong, 2009a). 그러나 개인의 삶은 사회적 과정과 구조에 의해 형성되지만 그 구조들을 만드는 것이 개인임을 인식한다면 해결이 된다고 보았다(Hong, 2009b). 또한, 생애사의 주관성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모든 역사적 자료는 애초부터 주관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완전무결한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통해 해결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Yoon, 2004). 생애사에서는 구술자의 경험, 견해, 가치관 등과 같은 사실적 기술(factual account) 부분에 초점을 두게 된다. 오히려 Vansina(1980, as cited in Yoon, 1994)는 “자료가 더 주관적일수록 더욱더 과거의 현실을 잘 반영한다”라고 하여 구술사의 특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구술사와 생애사에 대하여 일군의 학자들은 끊임없이 해법을 제시해오고 있지만 방법론의 주관성, 개인화, 신뢰, 타당성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heon(2004)은 질적연구는 인식론과 존재론이 결합한 방법론적 결과로서 인간이나 인간행위의 의미를 파악하고 인간경험에 대한 통찰을 위한 것이므로 심층면접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았다. 여기에서 현상을 직접 체험한 구술자가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여 그 자체가 연구 자료가 되도록(Kim, 1997a) 하면 되고 타당도는 구술자의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것보다 연구자의 해석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느냐 하는 문제, 즉 개인의 경험을 사회와 문화 속으로 옮기는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Kim, 1997b) 단 한사람의 이야기만으로도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Kim, 1997c, as cited in Hong, 2009).

2. 구술생애사 연구를 통하여 주거의 의미를 밝힌 선행연구

본 연구에서 구술생애사 연구를 채택한 이유는 생애사는 개인의 삶의 이야기를 자신의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이야기로서(Park, 2004) 개인은 역사적 산물이며, 개인의 삶은 사회적 과정이나 구조에 의해 구성되고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주체적인 자아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Hong(2009)은 생애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개인 혹은 가족의 생활 변화를 해석하기 위해 개인의 생애를 깊이 있게 회고하며 기술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는데, 주거의 미시사적 측면인 개인과 가족의 일대기 이야기를 단순히 기술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거시적인 사회변화를 함께 읽어 낸다면 개인적으로 경험한 삶의 궤적과 사회사적 변화를 엮어낼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라 논한다.

대개 주거에 관한 연구에서 전통적인 설문조사(survey) 연구의 한계점과 주거 소유형태에 대한 미시적인 관점이 확대될 때마다 질적 연구에 대한 필요성의 목소리는 커져왔다(Franklin, 1990). Clapham(2005, as cited in Shin & Yoon, 2009)은 주거를 이해하려는 기존의 전통적인 접근방법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주거시스템의 주행위자(actors)인 개인(individual)과 세대(household)에 초점을 두지 않았기에, 주거를 바라보는 대안적 관점이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특히, 철학분야와 건축학분야에서는 주거 본래의 의미를 현상학적 이론으로 논하거나 물리적 주택의 공간에 대한 행태적, 공간적 변화, 생활양식에 대한 변화들을 대표성을 가진 표본에 의존하여 객관적이고 정태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주류임이 관찰되었다. 이러한 연구 흐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주거 분야의 연구에서 개인의 생애과정에서 읽혀지는 맥락적 구조와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적 차원을 동태적으로 해석하고 다루어지는 연구가 필요하다.

구술생애사 방법론을 채택하여 주거의 의미를 재구성한 선행연구로서 KCI에 등재된 4편의 논문과 학술발표 논문 2편(Shin & Yoon, 2008; Jang & Hong, 2012)을 확인할 수 있었다.2) 6편의 논문 가운데 5편은 개인들의 주거경험을 경로 중심으로 파악하여 주거의미를 분석하였다. 나머지 1편은 노년기에 배우자와 사별한 여성 재가 노인을 대상으로 삶의 맥락과 주거공간의 관계성에 주목하여 주거공간의 의미를 재구성한 논문이었다<Table 1>.

Pre-Study on Meaning of Housing through Oral Life History

개인의 주거의미를 분석한 논문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개인에게서 해석되는 주거의 의미를 경로접근(pathway approach)(Clapham, 2005) 또는 주거 이동을 파악하여 분석하였다. Arias(1993, as cited in Hong, 2009)는 주거의 의미(meaning)는 사용(use)을 전제로 하거나 사용(use)이 이어지기 때문에 그 경로가 시간을 두고 탐색될 때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고 보고 사회변화에 따라 즉, 개인의 생애가 진전됨에 따라 정체성과 생활양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경로접근(pathway approach)의 인식론을 가지며(Clapham, 2005) 이는 주거의 변화는 총체적일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Hong(2009)은 심층면접방식을 진행하여 경로접근에서 본 주거의 의미를 생활을 담는 그릇, 경제적 안정을 위한 투자수단, 사회적 지위/가문을 표상하는 수단, 몸을 의탁하는 은신처 등의 인식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Shin & Yoon(2009)은 생애사 자료를 이용한 주거이동 연구는 주거이동에 대한 다양한 영향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특히 서베이 조사와 같은 정태적 자료는 주거이동의 종단적 성질을 파악할 수 없고 주거이동 행태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맥락에 대한 결핍의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생애구술을 통해 본 판자촌주민들의 주거경로 및 주거결정요인’ 발표 연구에서 판자촌 주민의 주거결정요인을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을 파악하여 국가의 경제위기가 이들의 주거에 영향을 준 요인중 하나로 분석하였다는 점에서(Jang & Hong, 2012) 본 연구를 진행하는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었다.

Song & Chong(2019)은 대상에 따라 주거의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연구하였는데 노년기에 사별한 여성 재가노인을 대상으로 주거공간의 의미를 재구성한 바 있다. 주거공간은 상실감을 다루는 공간, 자율과 생활대처능력을 세워나가는 공간, 환경 속 개인의 역량강화 공간 등의 의미로 재구성될 수 있다고 하였다.

선행연구들은 개개인의 주거이동의 경험을 추적하여 개인의 심리, 개인의 생애단계 및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상이한 주거의 요인들이 개인의 생애에 미치는 영향을 유형화를 통해 분석하고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이와 비교할 때, 본 연구는 생애사 연구방법을 적용하여 주거 이동의 경험이 전혀 없는 한 개인을 통해 오랫동안 주거해 온 공간과 개인 생애의 상호관계성 관점에서 주거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선행연구들에서 다루지 않았던 영향 요인인 외부의 변수(물리적 개발)에 의해 개인의 이야기가 어떻게 사회의 이야기로 연결될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실증적 연구와 차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3. 만델바움(D.G. Mandelbaum)의 분석 이론틀

생애사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 미국의 인류학자 D.G. Mendelbaum(1973)은 30년 전에 생애사 연구가 서술적 연구를 넘어, 분석적인 수준으로 발전되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주장을 통해 생애사에 대한 분석 및 해석 작업이 제한적 수준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적절한 분석적 개념틀이 부재한 것이라 보았다(Han, 2005).

생애사 분석을 보다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연대기순에 따른 생애사기술의 서술적 분석을 넘어서 삶의 다차원적 영역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첫째,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몇 가지 차원이나 측면, 즉 생애사 자료를 생물학적 영역(the biological dimension), 심리적 영역(the psychological dimension), 심리사회적 영역(the psychosocial dimension), 사회적 영역(the social dimension), 문화적 영역(the cultual dimension) 등 다양한 삶의 영역으로 나누어 분석할 것을 제안하였다. 둘째, 삶의 주요 전환점 및 이들 전환점 전후의 생활조건들을 살펴볼 것과 마지막으로 개인의 고유한 적응양식을 살펴볼 것을 제안하였다(Han, 2005). 특히 ‘적응’을 개인의 독자적인 행위라기보다는 환경과 구조 속에서 생성된 발현물로 보고 한 개인의 적응은 연령, 사회적 지위, 경제적 상황 및 시기와 사건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있다고 보았다(Homo Academicus). 만델바움이 제안한 ‘영역’ 개념은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원동력들(forces)을 이해하기 위한 범주를 제공하게 될 것이고 ‘전환점’ 개념은 개인이 경험하고 주도하는 주요 변화로서 생의 기간들을 구획하는 지표를 제공할 것으로 보았다(Han, 2005a). 개인의 ‘적응’에 초점을 맞춘 분석은 개인이 경험하고 주도하는 ‘변화’와 생애과정을 통해 유지하는 ‘연속성’의 두 측면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것으로 제안하였다(Han, 2005b).

이러한 관점에 따라서 만델바움이 제안한 분석 틀인 삶의 영역(dimensions), 전환점(turnings), 적응(adaptation)을 적용하여 가옥주의 주거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삶의 영역에서 고택 가옥주의 생애를 통해 주거공간이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을 두 가지 측면 즉, 집의 본연의 기능인 주거함과 정체성의 형성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전환점은 주거공간에 관한 인식과 의미가 전환된 계기를 개인과 주거공간의 상호작용 방식을 통해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적응’은 개인이 고택의 보존을 위해 어떠한 삶의 형태를 유지하고 변화/발전시켜나가는지를 분석하였다. 특히, ‘적응’ 분석틀 적용은 개인이 주거공간을 지켜오는 과정에서 개인의 삶이 가족 간의 분화, 고생담, 지역사회와의 협력, 국가 개발정책으로 인한 위기 등과 상호작용하면서 개인과 사회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에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삶의 범주들을 개념화함으로써 개인의 시각으로 개인의 삶 전체를 회고하고 분석하기에 유용한 분석틀이라고 본다(Lee & Cho, 2019).


III. 주거경험을 통해 본 주거의 의미

1. 만델바움(D.G.Mandelbaum) 분석틀을 통한 주거의미 분석

1) 삶의 영역

(1) 본연의 기능 ‘거주함’

가옥주에게 집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삶을 이어주는 공간이다. 가옥주는 1942년에 고택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와 함께 총 4대가 함께 살아왔고, 현재는 홀로 고택을 지키며 살고 있다.

“처음 이 집에서 태어났을 때, 증조할아버지 있었지. 친할아버지, 아버지. 나까지 4대가 살았어. 증조할아버지는 저기 사랑채, 증조할머니는 바깥채(대지 안에서 제일 먼저 지어진 집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증조할머니하고 같이 한방을 썼어. 그 할머니 94살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는 여기 안방, 그 할아버지는 서울가서 음... 살림을 하셨고. 아버지랑 어머니는 여기 건너방. 우리 이렇게 다 같이 살았어.”

명절마다 고택은 친척들과 손님들로 가득했다. 돌아보면 ‘기억난다’라고 회상할 추억들은 이 고택에서 경험한 것들이다. 한옥이라는 장점이 채가 나뉘어져 있어서 공간적 분리로 잠시 지내기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친척들과 인근 이웃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함께 지내는 것이 가능하였고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 관계가 혼재된 가족문화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었다.

“사촌들은 방학 때가 되면은 여기가 종갓집이라고 다 들어왔어. 뭐 4촌, 6촌 또 음... 5촌. 그냥 이러데서 자고(대청을 가리키며). 방이 이거(안방), 이거(건너방) 또 저 쪽에 두 개 있고 그러니까. 여럿이 껴 자지 뭐. 6·25때 또 친척들이 와서도 있고 이랬어. 친고모들 우리 할머니 딸들, 이들도 와서 살고 또 사촌들도 와서 살았어. 여름에 쑥대 같은 걸 펴(쑥을 피워 모기향 대신 쓴다는 의미). 마당에다 펴고 고구마 쪄다 먹고 밤 삶아 먹고. 그리고 식구들이 이제 아버지, 엄마, 나, 할머니, 그 94살 된 할머니도 같이 여기 쭉 마당에 둘러 앉아가지고. 이제 또 일하는 사람들 그렇게 해서 여러 명이지 뭐. 친척집 고모들 와있으면 거진 뭐 8명, 10명이 이렇게 둘러앉아서.”

종가는 문중 자손들의 마음의 안식처라 하였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고 찾아와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이 종가이며, 자손들의 회귀본능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안식처인 것이다(Lee & Cho, 2019).

“여기서 낳아서 여기서 자라고 뭐 여기서 지금 늙었는데 뭐(내 집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연구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뭘 왜 그래 집이니까 그러지. 특별하긴 뭐 그냥 자기(나의) 뿌리가 여기니까. 나는 돈 많이 받고 팔고 가고 그런 거 그렇게 생각 안 해. 이 집은 나의 일생이야.”

Bachelard(2003)는 인간이 자신의 집에 사는 방식을 ‘거주함’으로 표현하였다. Kang(2007a)은 볼노우에게 있어 거주함이란 인간과 자기 집의 관계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거주한다는 말은 사람이 집 속에 어떤 물건처럼 그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 그 공간에서 삶을 구현하면서 근원적으로 삶을 체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Kang, 2007b). 고택 주인이 ‘집’, ‘주거’를 근원적 개념으로 받아들였던 곳은 역곡동 165번지 한옥인 것이다.

(2) 정체성의 형성

농경사회에서 ‘집’은 물리적 실체이기도 하지만 가족과 친족이 있는 삶의 근거지로서 심리적인 의미가 강하였고, 집의 얼굴인 대문과 집의 규모와 재료 등 장식적인 측면은 사회적 지위를 표상하는 수단(Hong, 1992)으로서 기능하였으며, 가문의 정체성이 곧 개인의 정체성이기도 하였다(Hong, 2009).

개인들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로서 가족, 직업, 학력, 현 소득 등이 중요하고 보았는데(Clapham, 2005), 고택주에게서는 이러한 요소들보다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재산배분에서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이 평범한 맏딸과 손녀의 역할을 확장하게 만들었고, 종손(宗孫)의 역할을 수용하고 인정하면서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하게 된다. 재산 배분에서의 배제 경험은 가문의 정체성을 개인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니까 이제 거기는 할아버지 형제잖아. 그니깐은 이제 그 노 할아버지의 재산이 있잖아. 우리가 큰 집으로서 종갓집으로 할 도리는 다 했는데, 자기 우리 집은 아들이 없다고 이제 재산 노나메기 할 때 이제 안 줄라 그러는거지. 그래가지고 지금 여기 동네 산이 많은데 자기네들 이름으로는 산을 해놓고 아들이 있다고.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산에 끼워주지도 않았다고.”

가옥주는 종갓집임에도 불구하고 대를 이을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가족들과의 재산 분배 과정에서 배제된 경험을 이야기한다.

“뭐 종손 집은 뭐 그냥 무슨 저기 뭐 그렇게 힘든 거만 짊어지는 것 같아. 음... 조상님은 그러니까 4대 5대까지 아버지, 엄마가 이제 모셨지. 아버지. 엄마 살아 계실 때까지도 조상님은 우리가 모셨어. 종갓집이니까. 그리고 이제 지금은 이제 엄마 아버지가 하시던 거니까 내가. 조상님이 저 위에 계시거든(근처 조상묘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그래서 하여튼 지금은 아버지, 엄마까지 다섯 산소라 그래야지 뭐. 산소를 내가 관리하고 있어. 벌초하고 그런거.”

당시 자라온 시대상을 감안할 때, 가옥주는 6·25와 일제 강점기를 모두 경험하였지만 인근에서 가장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근대적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하였다. 10대 때 집 근처 밭에서 찍은 사진에서는 가옥주와 친척들이 청바지를 입고 있는 ‘신여성’의 모습이 관찰되기도 하였다. 이후, 가족 구성원 간의 재산 배분에서의 배제로 인해 상실감을 경험하고 함께 살던 가족들과의 사별로 홀로 집을 지키며 맏딸로서 종손으로서 그 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 있다.

이렇듯 인간의 정체성은 계급, 세대, 성과 같은 계층요인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아동, 청소년, 중장년, 노년기의 생애 주기에 따라 발달과정에서 다양하게 경험된다(Park, 2004a). Erikson(1979, as cited in Park, 2004b)은 생애과정을 개인의 심리와 정체성이 발달되는 과정으로 파악함으로서 출생에서부터 노년기까지 각 생애 단계에서 신뢰/불신, 자립/의심과 창피함, 개혁/죄의식, 근면/열등, 정체성/역할혼돈, 친숙/고립, 성숙/정체, 자아통합/절망과 같은 자아 통합의 과제와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아발달을 인지심리발달의 내적인 과정으로 강조하는 주장에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자아발달이 생애과정의 다양한 긴장 요인들에 직면한 주체의 의지적인 실천에 의해 성취된다는 주장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Park, 2004c).

2) 전환점(turnings)

(1) 가족구성원들로부터 재산을 지키기 위한 역할의 전환

가옥주는 종갓집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하지만 대를 이을 자식이 없고(손아래 남동생이 출생 직후 사망하였음) 아버지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가족의 재산 상속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옥주는 집에 대한 인식이 ‘머무르고 살아가는 주거 공간’에서 ‘자산’으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옥주의 아버지는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가족구성원들의 청구로 재산상속에서 배제되는 한정치산자(限定治産者)로 선고되었고, 이 사건을 통해 가옥주의 가족은 온전한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결국, 재산 상속과 가문 유지를 위해 가옥주와 그녀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돈을 지불하고 고택과 농지를 사들였다.

“음... 우리 죽산 박씨 문중 역곡의 문중에서 내가 여자지만 종손이거든 종손. 그러니까는 이게 이 집을 이제 내가 어렵게 그 조상님한테 받았지. 어렵게, 어렵게...... 그래서 내 인생의 의미가 커. 쉽게 받았으면 쉽게 이렇게 할텐데 그냥 어렵게 정말. 아버지하고 나하고 둘이서 물려받았다고....”

과거 한국의 남성중심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가족 내 상속 관계에서 여성의 권리는 공정하지 않았다. 특히, 조선시대 장남을 우대하는 상속 관행이 고착된 이후로 사회적 변화와 무관하게 전통적 관행이 뿌리 깊게 잔존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 상속 관행은 가옥주의 가족구성원에게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가옥주의 아버지는 집안 내에서 장남이자 종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 하였지만, 재산 상속자에서 배제되었는데, 이러한 가족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 상충은 이후 가족 구성원 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때는) 집이 북적북적되고 외롭진 않았어. 뭐 그 사람들이(아버지 형제 및 친인척을 일컬음) 실속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 하나도 보탬이 되는 사람은 아니라고. 한 부모 자손이래도 재산 가지고 싸우잖아.”

재산 상속 배분의 불공정성은 북적북적했던 주거공간이 소원해지기 시작하면서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의 갈등의 원인이 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후, 가옥주는 부친이 돈을 지불하고 사들인 현재의 고택과 재산을 지키는 역할을 맡게 된다. Sung & Lee(2021)는 가계재무관리 관점에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상속경험, 상속과 가족갈등, 상속재산의 사회적 의미와 세대 간 전이의 도덕적 양가성 등의 연구에서 재산상속의 문제가 가족 내에서 얼마나 첨예하고 복잡한 사안인지에 대하여 논한 바 있다.

(2) 개발로부터 주거공간을 지키기 위한 주거인식의 변화

2020년 초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와 부천시가 역곡 공공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오랫동안 살아온 주거공간이 없어질 위기에 있다. LH는 인근의 다른 터에 고택을 옮겨주겠다는 대안을 제시하였으나, 집의 본래의 터가 아닌 다른 터에 옮기는 것은 가옥주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부모가 여기 사시고 부모가 물려준 거니까. 그거보다도 여기 이거는 음... 내 꺼보다 그래도 오래된 거니까 보물이 돼서. 여기다 대한민국에다 남기고 싶어. 내가 여기서 자라났고. 뭐 부모와 추억도 있고.”
“젊어서는 그냥 내 집이니까. 그냥 내가 사는 집으로만 생각했지.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서 신경 안 썼었어. 이제 나이가 얼마 안 있으면 팔십 하나가 되니까. 앞을 내다보고 이 집을 어디다가 맡겨야 되나. 나는 이 집을, 우리 어머니가 날 낳으면서 여기서 자랐고, 아버지도 여기서 나서 자랐고 결혼하셔서 날 낳았지. 이제 내가 나이가 많아지니까 그 전에는 생각 안했는데 진작 좀 생각했어야 되는데.”

현 고택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어느덧 노년의 생을 보내고 있는 가옥주에게 주거공간의 의미는 가족과 가문의 공간이자 자산이다. 그러나 그린벨트 지역이 해제되고 개발의 위기에 놓이자 가옥주는 개인의 사유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보다는 공공의 자산으로 인식을 전환하게 된다.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있고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는 것을 이제야 알았지. 젊었을 때는 그냥 사는 집, 우리집인가 보다 했지. 이렇게 오래된 집을 전문가들이 다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 집이 그냥 아파트로 만들어져서 없어진다면 난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 꼴을 못 봐.”
3) 적응(adaptation)

(1) 주거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가져온 적극적 삶의 태도

가옥주는 개발의 위기에서 집을 지키기 위해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새롭게 맺으며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고택을 기부하기로 결심하고 시민자산화 운동을 전개하는 사람으로서 삶을 살게 되면서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현재 가옥주의 정체성은 예전과 확실히 구분될 수 있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로 주거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그냥 사는 집이니까 지켜야 된다 뭐 그렇게까지 생각을 안 했지. 또 그린벨트였고. 요 근래 이제 나이 들면서 여기는 이거는 보존을 해야 된다. 뭐 이렇게 생각을 했죠. 한 70대나 돼서. 고 전에도 그린벨트였고 뭐저거 하는 거는(개발) 상상은 안 했거든. 그린벨트 지정한지가 한 50년 됐나? 그런데 그 50년 동안을 그냥 여기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거니까. 나는 그냥 뭐 내가 돈 받아서 하는 것보다 그냥 보전하는 게 더 좋지.”

어떤 사람에게는 각인된 경험이 생애 전기(유소년기나 성장기의 경험)의 사건이 되는가 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생애 후기(노년기에 겪는 경험)의 사건이 중심이 된다(Park, 2004). 가옥주의 생애에서는 분명 젊은 시기에 주거공간을 가족으로부터 지키려고 한 역할이 노년기에 이르러 국가를 상대로 지키기 위한 역할로 변하면서 역할의 정체성은 생애 후기에 점차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옥주가 경험하는 역할의 정체성 확장은 지역과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대대로 농업에 종사하며 지켜온 가문과 가족의 영속을 위한 매개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고, 개인의 삶과 가족에 대한 기억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응시하면서 시작된다. 어쩌면, 사회의 변화에 순응하도록 강요받는 현실에 가옥주는 거부감을 드러내며 자신의 토지와 집을 지키겠다는 농촌사회에서 본능적으로 키워온 정체성과 역할을 새롭게 확장하며 나름의 생존 전략을 세우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2) 지역사회와의 강한 연대

가옥주는 주거공간을 지켜오는 과정에서 가족과의 분화(갈등), 고생담, 지역사회와의 협력, 국가 개발정책으로 인한 위기 등의 상호작용이 가옥주 개인의 생애에 영향을 끼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 역량 강화라는 새로운 대처를 위한 행동들을 적극적으로 취하게 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20년 초쯤. 동네 김oo와 한옥 전문가를 찾았어. 집을 보존할 방법을 찾으려. 한옥oooo을 찾아갔지. 거기서 전문가 교수님도 만나고 책(문화재 지정에 필요한 자료 수집본을 의미)도 만들어줬네.”

국가의 개발압력으로부터 주거공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힘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인지하게 되었고, 고택의 문화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고 지키고자 지역과 교육기관 등과 적극적인 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문화재 지정을 위한 신청 작업도 여러 차례 시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부결되었다.3) 지역의 주민들과 고택영구보전 범시민서명운동(2020)을 이끌면서 4만여명 이상의 시민들이 서명하는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현재 가옥주는 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며, 지역의 시민들, 시민사회단체 및 학교기관과의 연대를 통해 고택의 가치를 알리고 고택을 공공의 자산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오랫동안 살아온 주거공간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명분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적극적인 연대 활동의 경험은 주거공간을 ‘개인의 자산’으로 인식하고 가족들로부터 지키고자 했던 생애 경험과 분명 구분된다.

2. 구술생애사를 통해본 주거의 의미

본 연구는 4대가 함께 살아왔던 고택을 원하지 않는 개발로부터 지키고자 작고(作苦) 중인 평범한 개인의 구술생애사를 통해 한 곳에서 80여 년간 정주해온 개인의 주거경험을 바탕으로 주거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시도한 연구이다. 본 연구를 이끌고 왔던 주된 연구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만델바움이 제안한 분석틀 즉, 삶의 영역(dimensions), 전환점(turnings), 적응(adaptation)을 적용하여 가옥주의 생애사에서 도출된 의미있는 삶의 요소들을 이해하고 맞추어 해석하고자 하였다.

전통적으로 생애사 연구는 개인의 특별한 생애이력 혹은 생애사건에 관심을 둔다(Denzin, 1989). 생애의 일부분을 특징짓는 사건을 어떻게 겪게 되었는지가 1차적인 관심사이기에 그 전 생애가 그 사건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 사건을 계기로 이후의 생애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밝히는데 의의가 있기에(Han & Lee, 2017) 만델바움의 분석틀을 적용하여 분석을 시도하였다.

삶의 영역에서는 가옥주에게 집은 ‘영원히 살아가는 공간’으로서 근원적 의미인 주거공간이었다. 삶을 유지하고 체험해가는 공간이자 가족 간의 유대를 지탱해주는 공간인 것이다. 가옥주는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자산인 집’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 후, 가옥주의 정체성과 가문의 정체성을 동일시하게 되며, 이때부터 ‘살아가는 공간’이자 동시에 가족들로부터 ‘지켜나가야 하는 공간’으로 주거의 의미를 부여함을 알 수 있다.

전환점에서는 가옥주는 왜 집에 집착하는가? 어떠한 시기와 계기를 통해 자신의 주거공간을 치열하게 지키려고 하는가? 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였다. 가옥주의 생애 분석에서 집을 지키기 위해 인식과 역할을 전환하게 된 계기가 두 차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계기는 집안의 장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살아가는 부친이 대를 이을 아들이 없고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재산 분배’에서 배제를 경험한다. 이 사건은 가옥주와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이 양산되는 계기이자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상실감을 경험하게 된 계기가 된다. 이를 계기로 가옥주는 선친(先親)과 함께 조부(祖父)에게 금전을 지불하고 고택을 사들이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었고 스스로 집안 종손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게 된다.

두 번째 계기는 국가의 개발압력에 혼자서 집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자 가옥주는 ‘사적 자산’으로 인식해온 주거공간을 ‘공적 자산’으로 인식을 전환하고 역할의 정체성을 확장하게 된다. 이것은 농촌사회에서 본능적으로 키워온 정체성과 역할을 새롭게 확장하며 나름의 생존 전략을 세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마지막 적응에서는 현재 가옥주의 삶의 태도와 역할을 통해 주거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현재 가옥주의 주거에 대한 인식과 행동은 예전의 경험과는 확실히 구분된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시민들의 뜻을 모으고 지역사회와 연대를 강화하며 주거공간의 보존 가치를 알리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증조 할아아버지는) 집에 대한 애정이야 있었겄지. 당신이(증조할아버지) 다 지은 건데. 그런데 이제 그분들은 세상이 이런지 모르고(개발로 없어질 위기가 닥칠 줄 모르고), 이제 그때는 그냥 뭐 이렇게 그냥 촌이었잖아. 그러니까는 그냥 영원한 줄 아셨겠지. 영원히 살 집. 응 그냥 대대로 살집. 여긴 우리의 뿌리지.”

가옥주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주거공간을 ‘본래의 뿌리’로 표현한다. 6·25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집안의 여성들은 피난을 거부하고 그대로 남아서 집을 지켰다. 비록 집안의 남성들이 출세를 위해 서울로 향하여 일부다처제 가족을 구성하면서 ‘이주형’의 삶을 살기도 하였고 그런 이유들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간에 불화와 갈등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 모두 집을 버리지 않았고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왔다. 이런 역사를 통해, 현재의 가옥주와 가족 구성원들에게 ‘집’이란 가문과 가족의 영속을 위한 매개체라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는 곳이고(Hong, 2009)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자 모든 것임을 알 수 있다.

Dovey(1985, as cited in Sohn, 1990)는 주거공간이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주택’의 의미를 넘어 장소이면서 동시에 인간과 환경과의 심리적·체험적 관계를 의미하며, ‘내 마음이 있는 곳’으로서 주거가 없다는 것은 마음을 둘 곳이 없다는 심리적 불안정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이동이 잦은 현대사회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경험을 가진 가옥주의 주거경험을 구술생애사 연구방법론을 통해 ‘이야기말하기(storytelling)’4)의 형식을 빌어 연구를 시도한 이유는 주거공간에 대한 의미들이 각자가 살아온 생의 경험과 방식, 욕구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어야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경제적 자산’으로서 인식이 지배적이라는 점과 함께 개인에게 목숨과 같은 사적 공간에 대하여 국가의 침범(신도시개발과 같은 물리적 힘)이 너무 손쉽게 일어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개인의 사적 영역인 ‘주거’의 영역을 공적 영역으로 의미를 확대 또는 변화시켜 나 혹은 네가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말하고, 함께 행동하고, 대화하며, 우리의 이해와 경험, 관점을 상대방의 입장에 맞게 조정하는(Park, 2019) 것이 필요함을 논하고자 하며, 개발이라는 외부 요인으로부터 주거공간을 잃게 된 한 개인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주거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자는데 연구의 의미가 있다.


IV. 결 론

Tuan(1975)은 집은 ‘일상생활의 중심축으로서 삶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으로 의미를 붙인다. Kang(2007)은 볼노우가 밝힌 거주함의 의미를 일반적으로 “편안한 느낌이 들다”, 어떤 확실한 장소에 “체류하다, 처하다”의 의미로 함축하며, 거주함을 공간 속에 확실한 자리를 가짐으로서 그 자리에 귀속하고 그 속에 뿌리내리고 있음으로 표현한다. 이렇듯 집, 우리의 주거공간은 해가 어둑해지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나이가 들면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예전 음식이 생각나고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 즉 이것은 인간의 회귀본능이며 본래의 뿌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심리적 정착성5)이 배태된 본능이다.

안타깝게도, 현 고택은 개발의 위기 상황에 있고 고택의 주인은 그의 삶의 공간을 지키고자 현재 작고(作苦) 중이다. 그의 작고는 그와 가족의 고향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며 그의 집과 가족의 근간 및 존재가 부정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본 연구만으로 한 사람의